푸틴은 과거로, 김정은은 미래로 향했다…북러 ‘결정적 순간들’ [뒷北뉴스]

입력 2024.06.22 (07:01) 수정 2024.06.22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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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만에 평양 나들이에 나선 러시아 푸틴 대통령, '지각 대장' 별명답게 당초 예상보다 5시간은 족히 늦게 평양에 도착했습니다. 새벽 2시 반을 넘긴 시각, 국빈을 극진히 환대하는 북한이지만 너무 야심한 탓에 아마도 예정됐었던 환영 행사는 취소된 듯 합니다. 공항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나홀로 영접'에 나섰습니다.


결정적 순간1. 드디어 평양에 도착한 푸틴 대통령, 간단한 환영식을 마치고 준비된 차량을 타고 숙소로 가야 하는데 김정은 위원장과 서로 '먼저 타라'며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브로맨스'의 전주곡이었습니다.

푸틴의 공식 일정은 정오쯤부터 시작됐습니다. 김일성광장에서의 공식 환영식이 첫 순서였습니다. 평양은 이날 낮 최고 기온 32도를 기록했는데 수천 명의 북한 주민들이 길가에서, 광장에서 땡볕 아래 푸틴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결정적 순간2. 러시아 국기 색깔을 상징하는 옷을 맞춰입은 주민들에 기마대까지 출동했는데, 다른 행사와 달리 어린이들이 전면에 나선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북한 어린이들은 푸틴과 김정은이 서있는 연단과 가장 가까운 곳에 배치됐습니다. 러시아와의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도모하려는 김정은 위원장의 갈망이 엿보이는 대목이었습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달랐습니다. 금수산 영빈관에서 시작된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푸틴 대통령은 소련군이 북한군과 함께 1945년 항일 투쟁을 함께 했고, 1950년~1953년 사이 러시아 비행사가 많은 협조를 했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동안 인정하지 않았던 6.25 전쟁 당시 소련군의 참전을 공식화한 겁니다. 이렇게 푸틴 대통령은 과거를 강조했습니다.

어쩌면 북러 정상의 '브로맨스'는 동상이몽에 기초한 게 아닐까라는 의심이 듭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줄곧 '미래'를 얘기하는데 반해, 푸틴 대통령은 시종일관 '과거' 타령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당장 북한의 '과거' 무기가 필요한 러시아와 앞으로 정찰위성 개선 등을 위해 러시아의 '미래' 기술이 절실한 북한의 입장이 다른 것처럼요.


결정적 순간3. 그래도 '지금 이 순간' 북러 정상이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푸틴 대통령이 선물한 차를 서로 바꿔가며 운전하는 장면을 보노라면 전세계에 북러의 초밀착 관계를 과시하고 싶어 안달이 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특히, 푸틴 대통령이 선물한 차량은 러시아판 롤스로이스로 불리는 '아우루스'입니다. 운송 수단의 대북 공급, 판매, 이전을 금지한 안보리 대북 제제 결의를 보란듯이 무시한 겁니다. 이렇게 귀한 선물을 받았으니 김정은 위원장도 가만히 있을 수 없겠죠. 답례 선물로 고른 건 바로 '풍산개'입니다. 애견인으로 소문난 푸틴 대통령의 취향을 고려한 거로 보입니다.


결정적 순간4. 풍산개를 선물하는 모습은 사실 우리에겐 새로운 장면은 아닙니다. 풍산개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선물로 보낸 바 있고, 2018년엔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도 선물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선언한 이후, 한때 남북 교류의 상징이었던 풍산개가 이제는 북러 친교의 상징으로 바뀐 점은 주목할만 합니다.

푸틴 대통령의 지각 탓에 1박 2일 회담은 당일치기가 돼버렸지만, 북러 정상의 밀착도는 줄어든 시간에 반비례했습니다. 북한 측이 준비한 환영 공연은 더할 나위 없이 성대하게 진행됐습니다. 여가수들이 러시아어 노래를 부를 땐 푸틴 대통령이 앞장서서 일어났고, 김정은 위원장과 내내 격의없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포착됐습니다.


결정적 순간 5. 공연장에선 여기저기서 휴대전화를 들고 공연을 촬영하는 러시아인들이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북한과 러시아가 정상 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공연 감상 이후엔 오리 간과 랍스터 샐러드, 튀긴 양고기 등이 곁들여진 만찬이 이어졌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건배사에서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는 속담을 인용하며 "양국 관계의 본질을 충분히 반영했다"고 강조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푸틴 동지가 앞으로 100년 동안 러시아와 북한 인민의 신체적 안녕과 미래를 보장하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준 데 대해 감사하다"고 화답했습니다. 김 위원장의 관심은 역시나 '미래'를 향해 있는 듯 합니다.


결정적 순간6. 이제 헤어질 시간이 왔습니다. 21시간의 짧은 여정을 마친 푸틴 대통령은 이번엔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 간부들의 작별 인사를 받으며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본인도 아쉬웠던 걸까요? 비행기 안에서도 손을 흔들고, 양손을 맞잡고 높이 치켜들며 북러 간 우호적인 분위기를 몸소 보여줬습니다.

하루짜리 '브로맨스'는 이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겉으로만 보면 충분히 북러 관계는 최전성기를 맞이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엔 서로의 필요가 맞아 떨어진 셈이지만, 이런 분위기가 언제까지 갈까요? 푸틴의 입에서 반복적으로 6.25 전쟁 시절까지 거슬러가는 '과거' 얘기가 나왔던 건, 북한과 그려갈 '미래'가 그만큼 불투명했기 때문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짐작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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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틴은 과거로, 김정은은 미래로 향했다…북러 ‘결정적 순간들’ [뒷北뉴스]
    • 입력 2024-06-22 07:01:24
    • 수정2024-06-22 09: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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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만에 평양 나들이에 나선 러시아 푸틴 대통령, '지각 대장' 별명답게 당초 예상보다 5시간은 족히 늦게 평양에 도착했습니다. 새벽 2시 반을 넘긴 시각, 국빈을 극진히 환대하는 북한이지만 너무 야심한 탓에 아마도 예정됐었던 환영 행사는 취소된 듯 합니다. 공항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나홀로 영접'에 나섰습니다.


결정적 순간1. 드디어 평양에 도착한 푸틴 대통령, 간단한 환영식을 마치고 준비된 차량을 타고 숙소로 가야 하는데 김정은 위원장과 서로 '먼저 타라'며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브로맨스'의 전주곡이었습니다.

푸틴의 공식 일정은 정오쯤부터 시작됐습니다. 김일성광장에서의 공식 환영식이 첫 순서였습니다. 평양은 이날 낮 최고 기온 32도를 기록했는데 수천 명의 북한 주민들이 길가에서, 광장에서 땡볕 아래 푸틴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결정적 순간2. 러시아 국기 색깔을 상징하는 옷을 맞춰입은 주민들에 기마대까지 출동했는데, 다른 행사와 달리 어린이들이 전면에 나선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북한 어린이들은 푸틴과 김정은이 서있는 연단과 가장 가까운 곳에 배치됐습니다. 러시아와의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도모하려는 김정은 위원장의 갈망이 엿보이는 대목이었습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달랐습니다. 금수산 영빈관에서 시작된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푸틴 대통령은 소련군이 북한군과 함께 1945년 항일 투쟁을 함께 했고, 1950년~1953년 사이 러시아 비행사가 많은 협조를 했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동안 인정하지 않았던 6.25 전쟁 당시 소련군의 참전을 공식화한 겁니다. 이렇게 푸틴 대통령은 과거를 강조했습니다.

어쩌면 북러 정상의 '브로맨스'는 동상이몽에 기초한 게 아닐까라는 의심이 듭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줄곧 '미래'를 얘기하는데 반해, 푸틴 대통령은 시종일관 '과거' 타령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당장 북한의 '과거' 무기가 필요한 러시아와 앞으로 정찰위성 개선 등을 위해 러시아의 '미래' 기술이 절실한 북한의 입장이 다른 것처럼요.


결정적 순간3. 그래도 '지금 이 순간' 북러 정상이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푸틴 대통령이 선물한 차를 서로 바꿔가며 운전하는 장면을 보노라면 전세계에 북러의 초밀착 관계를 과시하고 싶어 안달이 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특히, 푸틴 대통령이 선물한 차량은 러시아판 롤스로이스로 불리는 '아우루스'입니다. 운송 수단의 대북 공급, 판매, 이전을 금지한 안보리 대북 제제 결의를 보란듯이 무시한 겁니다. 이렇게 귀한 선물을 받았으니 김정은 위원장도 가만히 있을 수 없겠죠. 답례 선물로 고른 건 바로 '풍산개'입니다. 애견인으로 소문난 푸틴 대통령의 취향을 고려한 거로 보입니다.


결정적 순간4. 풍산개를 선물하는 모습은 사실 우리에겐 새로운 장면은 아닙니다. 풍산개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선물로 보낸 바 있고, 2018년엔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도 선물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선언한 이후, 한때 남북 교류의 상징이었던 풍산개가 이제는 북러 친교의 상징으로 바뀐 점은 주목할만 합니다.

푸틴 대통령의 지각 탓에 1박 2일 회담은 당일치기가 돼버렸지만, 북러 정상의 밀착도는 줄어든 시간에 반비례했습니다. 북한 측이 준비한 환영 공연은 더할 나위 없이 성대하게 진행됐습니다. 여가수들이 러시아어 노래를 부를 땐 푸틴 대통령이 앞장서서 일어났고, 김정은 위원장과 내내 격의없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포착됐습니다.


결정적 순간 5. 공연장에선 여기저기서 휴대전화를 들고 공연을 촬영하는 러시아인들이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북한과 러시아가 정상 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공연 감상 이후엔 오리 간과 랍스터 샐러드, 튀긴 양고기 등이 곁들여진 만찬이 이어졌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건배사에서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는 속담을 인용하며 "양국 관계의 본질을 충분히 반영했다"고 강조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푸틴 동지가 앞으로 100년 동안 러시아와 북한 인민의 신체적 안녕과 미래를 보장하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준 데 대해 감사하다"고 화답했습니다. 김 위원장의 관심은 역시나 '미래'를 향해 있는 듯 합니다.


결정적 순간6. 이제 헤어질 시간이 왔습니다. 21시간의 짧은 여정을 마친 푸틴 대통령은 이번엔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 간부들의 작별 인사를 받으며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본인도 아쉬웠던 걸까요? 비행기 안에서도 손을 흔들고, 양손을 맞잡고 높이 치켜들며 북러 간 우호적인 분위기를 몸소 보여줬습니다.

하루짜리 '브로맨스'는 이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겉으로만 보면 충분히 북러 관계는 최전성기를 맞이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엔 서로의 필요가 맞아 떨어진 셈이지만, 이런 분위기가 언제까지 갈까요? 푸틴의 입에서 반복적으로 6.25 전쟁 시절까지 거슬러가는 '과거' 얘기가 나왔던 건, 북한과 그려갈 '미래'가 그만큼 불투명했기 때문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짐작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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