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소녀들의 ‘입대할 결심’ [취재후]

입력 2024.07.01 (11:18) 수정 2024.07.01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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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KBS는 6·25 참전 여성 간호장교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50만 명이 넘는 장병들을 간호한 천 3백여 명의 간호장교들. 이제 머리가 하얗게 센 그녀들이 6·25 전쟁과, 간호장교로 살아온 세월을 이야기합니다.


고 박옥선 간호장교: '호랑이' 같지만, '소녀'이기도 했던

고 박옥선 씨의 생전 인터뷰 모습 (KBS 스페셜 전쟁과 여성, 2017)고 박옥선 씨의 생전 인터뷰 모습 (KBS 스페셜 전쟁과 여성, 2017)

외교관을 꿈꾸던 18살의 고 박옥선 씨는 1951년, 18살에 간호장교로 지원했습니다.

서울역에서 군대로 향하는 기차에 오르던 날.

외동딸이던 박 씨는 뒤돌아서서 소리 없이 울던 아버지를 뒤로 한 채, 전쟁터로 향했습니다.

고 박옥선 씨가 입대할 결심이 섰던 18살의 모습 (KBS 스페셜 전쟁과 여성, 2017)고 박옥선 씨가 입대할 결심이 섰던 18살의 모습 (KBS 스페셜 전쟁과 여성, 2017)

훈련 도중 수류탄이 바로 옆에서 터져 귀가 들리지 않았어도 간호장교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간호장교가 된 박 씨는 병실도 모자란 전쟁터에서 대구, 부산, 철원 등을 오고 가며 다친 군인들을 치료했습니다.

"그때는 연병장에 병실이 모자라니까 노천에다 자리 깔고 치료했습니다. 환자도 정상적인 환자가 아니라 정말 볼 수 없는 처참한 환자들이었어요."

- 고 박옥선 씨 인터뷰 中 (KBS 스페셜 전쟁과 여성, 2017) -

전역하고 난 뒤에도 박 씨는 '도움의 손길'을 이어갔습니다.

박 씨는 지난 2009년부터 6.25 참전 서울지부 종로구지회 지회장을 맡아 봉사했습니다.

박옥선 씨가 유공자 집에 방문해 사람들을 돌보는 모습 (KBS 스페셜 전쟁과 여성, 2017)박옥선 씨가 유공자 집에 방문해 사람들을 돌보는 모습 (KBS 스페셜 전쟁과 여성, 2017)

눈을 감을 때까지 주변 사람들을 간호하고, 살림을 도와주며 유공자와 그 가족들을 직접 찾아 각별히 챙겼습니다.

단짝친구처럼 박 씨와 친하게 지내던 김영곤 씨는 박 씨를 '남을 위해서 태어난 사람' 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박 씨는 인간적인 면에선 '호랑이' 같기도 하고, '소녀' 같았던 평범한 여성이었습니다.

"그분한테는 웬만한 할아버지들이 덤비질 못했어요. 할아버지들이 조금 시원찮은 말씀을 하시면 양반은 즉시 그냥 육군 저 간호장교 대위로 변해버려. 아주 호랑이 같은 대장으로 바뀝니다"

"(여행을) 강릉을 가시더니 아주 소녀같이 좋아서 팔짝팔짝 뛰시다시피 하더라고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이 양반이 잘 어디 돌아다니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엄청나게 좋아하시고"

-김영곤/고 박옥선 씨 단짝친구-

국가와 사회를 위해 봉사했던 고 박옥선 간호장교는 훈장을 가슴에 품고, 지난해 별이 됐습니다.


신현재 간호장교: 6·25 전쟁 속 ' 간호 장교'에서 '보건 교사'까지


1950년 상업고등학교에 다니며 회사원의 삶을 꿈꾸던 평범한 소녀 신현재 씨.

6·25 전쟁이 시작돼 신 씨의 집은 안방과 부엌에 폭격을 맞았습니다.

1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은 신 씨는 나라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입대할 결심'이 섰습니다.

신문에서 봤던 '간호 장교'를 지원해 환자 후송 열차를 타고 군대로 향했습니다.


여성 군인이 없었던 시절, 치수가 큰 남자 군복을 입고 '간호 장교'의 첫 걸음을 내딛었습니다.

"남자 군복 큰 걸 다 입게 됐잖아요. 큰 걸 다 줄여 입지도 못하고 고무줄로 해서 입었죠. 그때 우리 따로 만든 게 아니고 남자 군복을 입었으니까. 불편하고 뭐고 불편할 새도 없는 거죠. 그거라도 입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신현재 씨 인터뷰 中-



2년 동안의 교육을 받고 신 씨는 제주도, 포천, 강원도를 거치며 군인들을 치료했습니다.

'수술방 간호사'가 되어 점심도 거른채 7시간도 넘는 뇌수술을 하고, 사지가 모두 잘린 군인들도 도왔습니다.

"양쪽 팔 다 없는 사람, 뭐 기가 막혀서 말을 할 수가 없어요. 사지가 다 없는 사람도 있다고. 사지가 그 사람은 퇴원해도 그냥 세상에서 못 살았을 거에요."

"그 사람들도 다 학교 다니다 나온 사람들이니까… 생각이 안 그래 전쟁이 없었으면 이런 일이 없어. 전쟁 때문에 이런 게 있으니까는 어떡하나. 언제 평화가 되나"

-신현재 씨 인터뷰 中-

1957년 전역한 뒤엔 '간호장교 신현재'가 아닌 '보건교사 신현재'로 일했습니다.

신 씨가 간호할 사람은 이제 '군인'이 아닌 '학생'들이었지만, "누군가를 보살피고 간호하는 일은 똑같이 보람찼다"고 전했습니다.


일명 '나 때는 말이야'로 불리는 '군대 이야기'를 동기들과도 종종 했다는, 이젠 92살이 된 신현재 씨.

전쟁터에서의 기억을 함께 공유했던 동기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지만, 그 기억을 후손들이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소망합니다.

" 아이들은 (전쟁을)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니까는, 그거를 엄마 아버지가 겪은 거 알아줬으면, 6·25를 기억을 꼭 했으면 좋겠다고"

-신현재 씨 인터뷰 中-

[연관 기사] 어느 소녀의 ‘훈장’…6·25 참전 간호장교 이야기 [보훈기획]②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96333&ref=A

촬영기자: 허수곤, 강현경 / 자료 출처: KBS 스페셜 전쟁과 여성, 2017 / 장소 제공: 국군간호사관학교, 전쟁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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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여덟 소녀들의 ‘입대할 결심’ [취재후]
    • 입력 2024-07-01 11:18:37
    • 수정2024-07-01 16:56:24
    취재후·사건후
<strong>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KBS는 6·25 참전 여성 간호장교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50만 명이 넘는 장병들을 간호한 천 3백여 명의 간호장교들. 이제 머리가 하얗게 센 그녀들이 6·25 전쟁과, 간호장교로 살아온 세월을 이야기합니다.</strong>

고 박옥선 간호장교: '호랑이' 같지만, '소녀'이기도 했던

고 박옥선 씨의 생전 인터뷰 모습 (KBS 스페셜 전쟁과 여성, 2017)
외교관을 꿈꾸던 18살의 고 박옥선 씨는 1951년, 18살에 간호장교로 지원했습니다.

서울역에서 군대로 향하는 기차에 오르던 날.

외동딸이던 박 씨는 뒤돌아서서 소리 없이 울던 아버지를 뒤로 한 채, 전쟁터로 향했습니다.

고 박옥선 씨가 입대할 결심이 섰던 18살의 모습 (KBS 스페셜 전쟁과 여성, 2017)
훈련 도중 수류탄이 바로 옆에서 터져 귀가 들리지 않았어도 간호장교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간호장교가 된 박 씨는 병실도 모자란 전쟁터에서 대구, 부산, 철원 등을 오고 가며 다친 군인들을 치료했습니다.

"그때는 연병장에 병실이 모자라니까 노천에다 자리 깔고 치료했습니다. 환자도 정상적인 환자가 아니라 정말 볼 수 없는 처참한 환자들이었어요."

- 고 박옥선 씨 인터뷰 中 (KBS 스페셜 전쟁과 여성, 2017) -

전역하고 난 뒤에도 박 씨는 '도움의 손길'을 이어갔습니다.

박 씨는 지난 2009년부터 6.25 참전 서울지부 종로구지회 지회장을 맡아 봉사했습니다.

박옥선 씨가 유공자 집에 방문해 사람들을 돌보는 모습 (KBS 스페셜 전쟁과 여성, 2017)
눈을 감을 때까지 주변 사람들을 간호하고, 살림을 도와주며 유공자와 그 가족들을 직접 찾아 각별히 챙겼습니다.

단짝친구처럼 박 씨와 친하게 지내던 김영곤 씨는 박 씨를 '남을 위해서 태어난 사람' 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박 씨는 인간적인 면에선 '호랑이' 같기도 하고, '소녀' 같았던 평범한 여성이었습니다.

"그분한테는 웬만한 할아버지들이 덤비질 못했어요. 할아버지들이 조금 시원찮은 말씀을 하시면 양반은 즉시 그냥 육군 저 간호장교 대위로 변해버려. 아주 호랑이 같은 대장으로 바뀝니다"

"(여행을) 강릉을 가시더니 아주 소녀같이 좋아서 팔짝팔짝 뛰시다시피 하더라고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이 양반이 잘 어디 돌아다니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엄청나게 좋아하시고"

-김영곤/고 박옥선 씨 단짝친구-

국가와 사회를 위해 봉사했던 고 박옥선 간호장교는 훈장을 가슴에 품고, 지난해 별이 됐습니다.


신현재 간호장교: 6·25 전쟁 속 ' 간호 장교'에서 '보건 교사'까지


1950년 상업고등학교에 다니며 회사원의 삶을 꿈꾸던 평범한 소녀 신현재 씨.

6·25 전쟁이 시작돼 신 씨의 집은 안방과 부엌에 폭격을 맞았습니다.

1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은 신 씨는 나라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입대할 결심'이 섰습니다.

신문에서 봤던 '간호 장교'를 지원해 환자 후송 열차를 타고 군대로 향했습니다.


여성 군인이 없었던 시절, 치수가 큰 남자 군복을 입고 '간호 장교'의 첫 걸음을 내딛었습니다.

"남자 군복 큰 걸 다 입게 됐잖아요. 큰 걸 다 줄여 입지도 못하고 고무줄로 해서 입었죠. 그때 우리 따로 만든 게 아니고 남자 군복을 입었으니까. 불편하고 뭐고 불편할 새도 없는 거죠. 그거라도 입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신현재 씨 인터뷰 中-



2년 동안의 교육을 받고 신 씨는 제주도, 포천, 강원도를 거치며 군인들을 치료했습니다.

'수술방 간호사'가 되어 점심도 거른채 7시간도 넘는 뇌수술을 하고, 사지가 모두 잘린 군인들도 도왔습니다.

"양쪽 팔 다 없는 사람, 뭐 기가 막혀서 말을 할 수가 없어요. 사지가 다 없는 사람도 있다고. 사지가 그 사람은 퇴원해도 그냥 세상에서 못 살았을 거에요."

"그 사람들도 다 학교 다니다 나온 사람들이니까… 생각이 안 그래 전쟁이 없었으면 이런 일이 없어. 전쟁 때문에 이런 게 있으니까는 어떡하나. 언제 평화가 되나"

-신현재 씨 인터뷰 中-

1957년 전역한 뒤엔 '간호장교 신현재'가 아닌 '보건교사 신현재'로 일했습니다.

신 씨가 간호할 사람은 이제 '군인'이 아닌 '학생'들이었지만, "누군가를 보살피고 간호하는 일은 똑같이 보람찼다"고 전했습니다.


일명 '나 때는 말이야'로 불리는 '군대 이야기'를 동기들과도 종종 했다는, 이젠 92살이 된 신현재 씨.

전쟁터에서의 기억을 함께 공유했던 동기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지만, 그 기억을 후손들이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소망합니다.

" 아이들은 (전쟁을)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니까는, 그거를 엄마 아버지가 겪은 거 알아줬으면, 6·25를 기억을 꼭 했으면 좋겠다고"

-신현재 씨 인터뷰 中-

[연관 기사] 어느 소녀의 ‘훈장’…6·25 참전 간호장교 이야기 [보훈기획]②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96333&ref=A

촬영기자: 허수곤, 강현경 / 자료 출처: KBS 스페셜 전쟁과 여성, 2017 / 장소 제공: 국군간호사관학교, 전쟁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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