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필 대위’ 용맹 이은 프랑스 생도들, 지평리 전적지를 찾다
입력 2024.07.11 (07:34)
수정 2024.07.11 (07:4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프랑스 육군사관생도들이 6.25전쟁의 역사적 전투가 벌어졌던 지평리 전적지를 찾았습니다.
유엔군으로 참전했다가 산화한 자신들의 선배이자 영웅인 로베르 구필 대위를 추모하러 온 건데요.
추모 현장을 김민아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유엔참전기념비 앞에 프랑스 생도들이 도열합니다.
생시르 육군사관학교 생도들로 자신들의 선배인 로베르 구필(Robert Goupil) 대위를 추모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겁니다.
고인을 애도하는 조화가 차례로 놓여지고, 우리 군도 예를 갖춰 조총(弔銃)을 발사하며 넋을 기렸습니다.
구필 대위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유엔군프랑스대대에 자원해 중대를 지휘했습니다.
이듬해 2월 지평리 전투를 성공으로 이끌면서, 빼앗겼던 서울을 되찾고 한국전쟁을 승리로 이끈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라파엘/생시르 육군사관생도 :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유엔군 프랑스 대대가 프랑스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구필 대위 기수를 부여 받아 프랑스에 한국을 더 잘 알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평리 전투가 끝나고 일곱달 뒤, 정찰 임무를 수행하다 전사하면서 끝내 고국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당시 대위의 나이는 서른이었습니다.
모교인 생시르 육사는 대위의 업적을 기리는 의미로 내년 졸업을 앞둔 이들 209기 생도를 대위의 이름을 딴 '구필(Goupil) 대위' 기수로 명명했습니다.
[필립 베르투/주한 프랑스대사 : "프랑스와 한국의 안보 및 국방 관계가 서로 연관돼 있고 상호적이며 연대성을 띄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사입니다."]
'구필 대위'를 아로새긴 사관생도들은 추모행사에 참여한 뒤 서울 등에서 여러 한국 문화를 체험하다 13일 본국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KBS 뉴스 김민아입니다.
촬영기자:조창훈/영상편집:안재욱/사진제공:주한 프랑스대사관
프랑스 육군사관생도들이 6.25전쟁의 역사적 전투가 벌어졌던 지평리 전적지를 찾았습니다.
유엔군으로 참전했다가 산화한 자신들의 선배이자 영웅인 로베르 구필 대위를 추모하러 온 건데요.
추모 현장을 김민아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유엔참전기념비 앞에 프랑스 생도들이 도열합니다.
생시르 육군사관학교 생도들로 자신들의 선배인 로베르 구필(Robert Goupil) 대위를 추모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겁니다.
고인을 애도하는 조화가 차례로 놓여지고, 우리 군도 예를 갖춰 조총(弔銃)을 발사하며 넋을 기렸습니다.
구필 대위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유엔군프랑스대대에 자원해 중대를 지휘했습니다.
이듬해 2월 지평리 전투를 성공으로 이끌면서, 빼앗겼던 서울을 되찾고 한국전쟁을 승리로 이끈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라파엘/생시르 육군사관생도 :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유엔군 프랑스 대대가 프랑스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구필 대위 기수를 부여 받아 프랑스에 한국을 더 잘 알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평리 전투가 끝나고 일곱달 뒤, 정찰 임무를 수행하다 전사하면서 끝내 고국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당시 대위의 나이는 서른이었습니다.
모교인 생시르 육사는 대위의 업적을 기리는 의미로 내년 졸업을 앞둔 이들 209기 생도를 대위의 이름을 딴 '구필(Goupil) 대위' 기수로 명명했습니다.
[필립 베르투/주한 프랑스대사 : "프랑스와 한국의 안보 및 국방 관계가 서로 연관돼 있고 상호적이며 연대성을 띄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사입니다."]
'구필 대위'를 아로새긴 사관생도들은 추모행사에 참여한 뒤 서울 등에서 여러 한국 문화를 체험하다 13일 본국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KBS 뉴스 김민아입니다.
촬영기자:조창훈/영상편집:안재욱/사진제공:주한 프랑스대사관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구필 대위’ 용맹 이은 프랑스 생도들, 지평리 전적지를 찾다
-
- 입력 2024-07-11 07:34:07
- 수정2024-07-11 07:41:19
[앵커]
프랑스 육군사관생도들이 6.25전쟁의 역사적 전투가 벌어졌던 지평리 전적지를 찾았습니다.
유엔군으로 참전했다가 산화한 자신들의 선배이자 영웅인 로베르 구필 대위를 추모하러 온 건데요.
추모 현장을 김민아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유엔참전기념비 앞에 프랑스 생도들이 도열합니다.
생시르 육군사관학교 생도들로 자신들의 선배인 로베르 구필(Robert Goupil) 대위를 추모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겁니다.
고인을 애도하는 조화가 차례로 놓여지고, 우리 군도 예를 갖춰 조총(弔銃)을 발사하며 넋을 기렸습니다.
구필 대위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유엔군프랑스대대에 자원해 중대를 지휘했습니다.
이듬해 2월 지평리 전투를 성공으로 이끌면서, 빼앗겼던 서울을 되찾고 한국전쟁을 승리로 이끈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라파엘/생시르 육군사관생도 :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유엔군 프랑스 대대가 프랑스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구필 대위 기수를 부여 받아 프랑스에 한국을 더 잘 알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평리 전투가 끝나고 일곱달 뒤, 정찰 임무를 수행하다 전사하면서 끝내 고국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당시 대위의 나이는 서른이었습니다.
모교인 생시르 육사는 대위의 업적을 기리는 의미로 내년 졸업을 앞둔 이들 209기 생도를 대위의 이름을 딴 '구필(Goupil) 대위' 기수로 명명했습니다.
[필립 베르투/주한 프랑스대사 : "프랑스와 한국의 안보 및 국방 관계가 서로 연관돼 있고 상호적이며 연대성을 띄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사입니다."]
'구필 대위'를 아로새긴 사관생도들은 추모행사에 참여한 뒤 서울 등에서 여러 한국 문화를 체험하다 13일 본국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KBS 뉴스 김민아입니다.
촬영기자:조창훈/영상편집:안재욱/사진제공:주한 프랑스대사관
프랑스 육군사관생도들이 6.25전쟁의 역사적 전투가 벌어졌던 지평리 전적지를 찾았습니다.
유엔군으로 참전했다가 산화한 자신들의 선배이자 영웅인 로베르 구필 대위를 추모하러 온 건데요.
추모 현장을 김민아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유엔참전기념비 앞에 프랑스 생도들이 도열합니다.
생시르 육군사관학교 생도들로 자신들의 선배인 로베르 구필(Robert Goupil) 대위를 추모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겁니다.
고인을 애도하는 조화가 차례로 놓여지고, 우리 군도 예를 갖춰 조총(弔銃)을 발사하며 넋을 기렸습니다.
구필 대위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유엔군프랑스대대에 자원해 중대를 지휘했습니다.
이듬해 2월 지평리 전투를 성공으로 이끌면서, 빼앗겼던 서울을 되찾고 한국전쟁을 승리로 이끈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라파엘/생시르 육군사관생도 :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유엔군 프랑스 대대가 프랑스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구필 대위 기수를 부여 받아 프랑스에 한국을 더 잘 알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평리 전투가 끝나고 일곱달 뒤, 정찰 임무를 수행하다 전사하면서 끝내 고국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당시 대위의 나이는 서른이었습니다.
모교인 생시르 육사는 대위의 업적을 기리는 의미로 내년 졸업을 앞둔 이들 209기 생도를 대위의 이름을 딴 '구필(Goupil) 대위' 기수로 명명했습니다.
[필립 베르투/주한 프랑스대사 : "프랑스와 한국의 안보 및 국방 관계가 서로 연관돼 있고 상호적이며 연대성을 띄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사입니다."]
'구필 대위'를 아로새긴 사관생도들은 추모행사에 참여한 뒤 서울 등에서 여러 한국 문화를 체험하다 13일 본국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KBS 뉴스 김민아입니다.
촬영기자:조창훈/영상편집:안재욱/사진제공:주한 프랑스대사관
-
-
김민아 기자 kma@kbs.co.kr
김민아 기자의 기사 모음
-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