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콧 보라스’ 꿈꿨던 변호사들…스포츠 에이전트의 현실은 ‘장롱 자격증’
입력 2024.07.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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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 미 더 머니!(Show me the money!)”
전화기를 붙잡고 이렇게 외치는 인물은 영화 '제리 맥과이어 Jerry Maguire(1997)'의 주인공 제리(톰 크루즈)입니다. 영화 속 제리는 수십 명의 선수들을 관리하며 하루에만 200통 넘는 전화를 받는 '잘나가는' 스포츠 에이전트입니다.
스포츠 에이전트란 주로 선수를 대신해서 구단과 연봉협상을 하고 신규입단, 이적, 광고 출연 등을 담당하는 대리인을 말합니다.
현실에선 박찬호나 류현진 같은 한국 야구 스타들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때 에이전트를 맡아 우리나라 야구팬들에게 익숙한 미국 변호사 '스콧 보라스'가 대표적인 인물인데요.
하지만 우리 나라 프로스포츠 리그에선 '에이전트 제도'가 낯선 직업입니다.
2001년 한국프로야구를 운영하는 한국야구위원회(KBO)가 구단과 선수 간 계약 때 선수의 대리인을 허용하지 않도록 정한 이른바 '대면 계약' 규정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법 위반이라고 지적한 게 시초였습니다. "사업자 단체의 불공정행위"라며 시정명령을 내리면서 제도 도입의 물꼬가 트인 겁니다.
한국스포츠리그에 처음으로 에이전트 제도가 정식 공인을 받아 도입된 건 2010년 프로축구인 K리그가 최초였습니다. 공정거래 시정명령을 받은 당사자인 KBO는 에이전트제도 시행을 미루다 2018년에야 에이전트 제도를 공인했습니다.
한국프로스포츠협회에 가입한 프로리그는 총 7개지만, 에이전트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건 한국프로축구리그와 한국프로야구리그, 이렇게 두 개뿐입니다.
프로농구와 프로배구의 경우 에이전트 규정 자체는 있지만 리그가 인정할 때 시행한다는 입장이라 사실상 공정위의 시정명령을 어기고 있고, 음성적으로 에이전트가 활동하고 있을 뿐입니다.
국내 법령상 스포츠 에이전트를 규율하는 법령은 전무한 상황입니다.
■ '스콧 보라스' 꿈꾸며 뛰어든 변호사들 …현실은
그럼, 어떻게 스포츠 에이전트가 될 수 있을까요?
우선 K리그 에이전트가 되는 데는 별다른 걸림돌이 없습니다. 협회나 연맹 임직원이나 심판 등 결격사유에만 해당하지 않으면 누구나 대한축구협회에 선수중개인으로 등록하고 K리그 에이전트로 활동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KBO는 다릅니다. 격년제로 시행되는 선수협회의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에이전트 활동 자격이 주어집니다.
과목은 적지 않습니다. △KBO리그 공인선수대리인 규정 △표준선수대리인 계약서 △KBO 규약 △야구선수 계약서 △협정서(한미, 한일, 한대만, 아마) △야구 배트 공인 규정 △상벌위원회규정 △국가대표운영규정 △프로스포츠 도핑방지규정 △국민체육진흥법 △계약법 등 전과목에서 100점 중 60점을 넘겨야 합니다.
KBO가 2018년 에이전트제도를 도입할 때만 해도, 에이전트 시장의 장래는 밝아 보였습니다.
당시 문화체육관광부는 스포츠 산업의 성장에도 에이전트 제도가 발달하지 않아 선수관리·마케팅·홍보 등 연관산업의 발전이 지체됐다고 판단하고,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미국의 스포츠 에이전시인 IMG를 모델로 제시하며 스포츠산업 활성화 대책의 한 축으로 스포츠 에이전트 육성을 꼽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이었을까요. 도입 당시 에이전트 시험에 누구보다 열심히 참여한 건 변호사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한국의 스캇 보라스'를 꿈꾸며 시험에 대거 참여했습니다. 2018년 에이전트 제도가 시행된 1회 시험에서 선발된 91명의 에이전트 가운데 변호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45%(40명)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지금까지 에이전트로 활발히 활동하는 변호사는 소수에 불과합니다. 어째서일까요.
■ 만나기도 어려운데…2년간 선수와 계약 못 하면 '퇴출'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김영훈)는 지난 9일 '변호사 에이전트 활성화를 위한 포럼'을 열었습니다.
포럼에서는 현행 에이전트 제도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습니다.
우선 선수대리 제한 부분이 지적됐습니다.
김선웅 변호사(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사무총장)는 "KBO 리그에서 에이전트로 활동하더라도 구단당 3명, 전체 15명의 선수까지만 계약을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조항은 영향력이 큰 에이전트가 출현해 구단들과의 협상에서 우위에 서는 것을 막기 위해 제도 시행 당시 들어간 내용이었습니다.
이는 현행 에이전트의 수수료 상한선과도 맞물리는데, KBO리그에선 에이전트가 연봉계약을 대리할 경우 받을 수 있는 수수료율이 최대 5%에 불과합니다. 선수 연봉 규모가 수천만 원 수준인 2군 이하 선수들을 대상으론 연봉 계약 대리만으로 에이전트 전업 활동을 이어가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입니다.
또 한국에서는 관리와 에이전트의 개념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지 않아 선수들이 에이전트에게 계약 체결뿐 아니라 재산관리나 용품 장비 등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이에 대한 서비스 비용을 모두 청구하는 미국과 사정이 달라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특히, KBO 에이전트 제도는 다른 자격제도와 달리 실제 선수들과의 계약을 강제하고 있다는 부분이 문제로 지적됐습니다. 2년 이내에 선수들과 계약을 체결하지 못하는 경우 대리인 자격이 취소된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입니다.
KBO리그 선수대리인 규정 제9조 제4항 선수대리인으로 공인된 후 2년 이내에 선수와 선수대리인 계약을 체결하지 못하는 경우, 해당 선수대리인의 공인은 공인선수대리인명부에 등록한 날로부터 2년 경과 후 자동으로 취소됨 |
김근확 변호사(전 프로야구 에이전트)는 "(동료 선수나 은퇴 선수 출신, 장비업체 출신 에이전트에 비해) 변호사로서 클라이언트, 선수 섭외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면서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선수가 없거나 별도로 선수를 접촉할 기회가 없다면 계약 체결 가능성이 매우 낮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한국프로스포츠협회를 통한 공익에이전트 등록 제도가 있지만, 정작 2024년 6월 기준 공익에이전트 매칭이 이뤄진 건 단 2건에 불과할 정도로 제도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나마 선수와 대리인 간 계약 기간마저 1년으로 제한돼 있어, 지속적인 협력 관계를 이어가기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김준태 변호사(프로야구 에이전트)는 "신인 선수나 한 시즌 성적이 좋았던 선수 등이 사라지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프로스포츠의 특성상 이른바 언론과 팬의 관심이 높아지는 경우 더 나은 대우를 요구하거나 대형 에이전트 지원을 희망하며 '갈아타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며 "장기적 안목으로 선수와 미래를 준비하던 중 결별이 발생하면서 선수와 에이전트 모두에게 부정적 결과가 발생하는 경우를 다수 목격했다"고 말했습니다.
■ "변호사 에이전트 경쟁력 높지 않아" 냉정한 지적도
시장 초기엔 변호사들이 법률 전문가로서 조력이 클 것이란 예상이 우세했습니다.
프로스포츠리그는 사실상 독점 체제로, 구단으로 구성된 리그 사무국이 선수보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데다 선수의 권리 의무에 관한 리그 규정을 일방적으로 제·개정해왔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선수와 구단의 계약, 징계 등 권리 의무 문제가 불공정한 경우 법률가의 개입과 조력으로 대항할 필요가 있다는 관점이었습니다.
선수들의 권리구제와 개선으로 이어진 사례도 실제로 있습니다. FA 계약이 체결되지 않는 경우 다음 해 선수 활동을 금지하는 규약이 가처분 승소로 변경돼 언제든 계약을 하면 선수 활동이 가능하도록 변경됐고, 거의 선수 측이 이기지 못하던 연봉조정에서 2021년 KT위즈 선수가 변호사 에이전트의 도움을 받아 이기기도 했습니다.
KOVO 여자배구리그의 한 선수는 소속팀에서 전력 외 통보를 받자 다른 팀에서 뛰게 자유계약선수로 인정해달라고 잔여 연봉도 포기하고 계약해지에 합의했는데, 구단 측이 선수를 임의탈퇴선수로 등록해버려 다른 팀 이적이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선수는 생을 마감했습니다. 포럼에선 변호사 에이전트가 있었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건이라고 입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함상완 변호사는 "중고등학교 아마추어 시절 계약을 하는 경우, 또는 선수의 해외 진출 단계에서 불공정한 계약을 방지하는 제도가 없어 취약한 환경에 놓인 선수들이 있다"며 "이런 부분은 변호사 에이전트가 필요한 측면"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포럼에선 변호사가 에이전트라고 해서 다른 에이전트들에 비해 높은 경쟁력을 지니는 건 아니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김태훈 전 SSG 랜더스 투수는 "2군 이하 저연봉 선수들은 구단에서 정해져 있는 고과시스템에 따라 연봉을 예를 들어 3천만 원에서 3,500만 원으로 정해서 받는데, 에이전트에 관심이 없을뿐더러, 굳이 필요할까 생각하는 선수들이 대다수"라며 선수들이 에이전트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선수들이 에이전트와 매니지먼트를 구분하지 못한다"며 이들은 장비, 스폰서쉽 등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는데 사실상 1억 원 이상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 에이전트를 이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협상을 다수 진행했던 류선규 전 SSG 랜더스 단장도 고액 연봉 선수여야 그나마 에이전트를 고려한다는 점에 동의하면서, 법률 지식이 에이전트 시장에서 특별한 강점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류선규 전 SSG 랜더스 단장 "에이전트를 선정하는 데는 (변호사들이 강점으로 생각하는) 법률서비스가 결코 메인이 될 수 없다. 법적인 문제가 생기면 그때 외부 변호사를 선임하면 되는 것이고, 변호사 에이전트라고 해서 특별히 몸값을 올려주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우선 매니지먼트, 용품 공급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두 번째가 연봉 상승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법률서비스는 부차적 요소다." |
특히 류 전 단장은 "에이전트로서 적극적으로 활약하고자 한다면 중요한 건 업계에 대한 이해(정보력)"이라며, "KBO 사무국이나 야구단 프론트, 선수단을 합쳐봐야 2천 명이 안 되는 조그만 시장이다. 리그 특징을 파악하고 선수 개개인 특성, 소속선수를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얼마나 유대관계를 형성하느냐의 싸움"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앞서 소개해드린 영화 '제리 맥과이어'에서 제리는 도로시(르네 젤위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You complete me."
직역하자면 '당신이 나를 완성해요' 정도가 되겠습니다. 별거 중인 아내에게 돌아와 달라고 간청하며 했던 이 말을 에이전트와 선수의 관계에 적용해보면 어떨까요? 프로 스포츠 선수가 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아 '완성'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로서의 에이전트가 우리나라에도 나타나려면 아직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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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 미 더 머니!(Show me the money!)”
전화기를 붙잡고 이렇게 외치는 인물은 영화 '제리 맥과이어 Jerry Maguire(1997)'의 주인공 제리(톰 크루즈)입니다. 영화 속 제리는 수십 명의 선수들을 관리하며 하루에만 200통 넘는 전화를 받는 '잘나가는' 스포츠 에이전트입니다.
스포츠 에이전트란 주로 선수를 대신해서 구단과 연봉협상을 하고 신규입단, 이적, 광고 출연 등을 담당하는 대리인을 말합니다.
현실에선 박찬호나 류현진 같은 한국 야구 스타들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때 에이전트를 맡아 우리나라 야구팬들에게 익숙한 미국 변호사 '스콧 보라스'가 대표적인 인물인데요.
하지만 우리 나라 프로스포츠 리그에선 '에이전트 제도'가 낯선 직업입니다.
2001년 한국프로야구를 운영하는 한국야구위원회(KBO)가 구단과 선수 간 계약 때 선수의 대리인을 허용하지 않도록 정한 이른바 '대면 계약' 규정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법 위반이라고 지적한 게 시초였습니다. "사업자 단체의 불공정행위"라며 시정명령을 내리면서 제도 도입의 물꼬가 트인 겁니다.
한국스포츠리그에 처음으로 에이전트 제도가 정식 공인을 받아 도입된 건 2010년 프로축구인 K리그가 최초였습니다. 공정거래 시정명령을 받은 당사자인 KBO는 에이전트제도 시행을 미루다 2018년에야 에이전트 제도를 공인했습니다.
한국프로스포츠협회에 가입한 프로리그는 총 7개지만, 에이전트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건 한국프로축구리그와 한국프로야구리그, 이렇게 두 개뿐입니다.
프로농구와 프로배구의 경우 에이전트 규정 자체는 있지만 리그가 인정할 때 시행한다는 입장이라 사실상 공정위의 시정명령을 어기고 있고, 음성적으로 에이전트가 활동하고 있을 뿐입니다.
국내 법령상 스포츠 에이전트를 규율하는 법령은 전무한 상황입니다.
■ '스콧 보라스' 꿈꾸며 뛰어든 변호사들 …현실은
그럼, 어떻게 스포츠 에이전트가 될 수 있을까요?
우선 K리그 에이전트가 되는 데는 별다른 걸림돌이 없습니다. 협회나 연맹 임직원이나 심판 등 결격사유에만 해당하지 않으면 누구나 대한축구협회에 선수중개인으로 등록하고 K리그 에이전트로 활동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KBO는 다릅니다. 격년제로 시행되는 선수협회의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에이전트 활동 자격이 주어집니다.
과목은 적지 않습니다. △KBO리그 공인선수대리인 규정 △표준선수대리인 계약서 △KBO 규약 △야구선수 계약서 △협정서(한미, 한일, 한대만, 아마) △야구 배트 공인 규정 △상벌위원회규정 △국가대표운영규정 △프로스포츠 도핑방지규정 △국민체육진흥법 △계약법 등 전과목에서 100점 중 60점을 넘겨야 합니다.
KBO가 2018년 에이전트제도를 도입할 때만 해도, 에이전트 시장의 장래는 밝아 보였습니다.
당시 문화체육관광부는 스포츠 산업의 성장에도 에이전트 제도가 발달하지 않아 선수관리·마케팅·홍보 등 연관산업의 발전이 지체됐다고 판단하고,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미국의 스포츠 에이전시인 IMG를 모델로 제시하며 스포츠산업 활성화 대책의 한 축으로 스포츠 에이전트 육성을 꼽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이었을까요. 도입 당시 에이전트 시험에 누구보다 열심히 참여한 건 변호사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한국의 스캇 보라스'를 꿈꾸며 시험에 대거 참여했습니다. 2018년 에이전트 제도가 시행된 1회 시험에서 선발된 91명의 에이전트 가운데 변호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45%(40명)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지금까지 에이전트로 활발히 활동하는 변호사는 소수에 불과합니다. 어째서일까요.
■ 만나기도 어려운데…2년간 선수와 계약 못 하면 '퇴출'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김영훈)는 지난 9일 '변호사 에이전트 활성화를 위한 포럼'을 열었습니다.
포럼에서는 현행 에이전트 제도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습니다.
우선 선수대리 제한 부분이 지적됐습니다.
김선웅 변호사(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사무총장)는 "KBO 리그에서 에이전트로 활동하더라도 구단당 3명, 전체 15명의 선수까지만 계약을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조항은 영향력이 큰 에이전트가 출현해 구단들과의 협상에서 우위에 서는 것을 막기 위해 제도 시행 당시 들어간 내용이었습니다.
이는 현행 에이전트의 수수료 상한선과도 맞물리는데, KBO리그에선 에이전트가 연봉계약을 대리할 경우 받을 수 있는 수수료율이 최대 5%에 불과합니다. 선수 연봉 규모가 수천만 원 수준인 2군 이하 선수들을 대상으론 연봉 계약 대리만으로 에이전트 전업 활동을 이어가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입니다.
또 한국에서는 관리와 에이전트의 개념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지 않아 선수들이 에이전트에게 계약 체결뿐 아니라 재산관리나 용품 장비 등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이에 대한 서비스 비용을 모두 청구하는 미국과 사정이 달라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특히, KBO 에이전트 제도는 다른 자격제도와 달리 실제 선수들과의 계약을 강제하고 있다는 부분이 문제로 지적됐습니다. 2년 이내에 선수들과 계약을 체결하지 못하는 경우 대리인 자격이 취소된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입니다.
KBO리그 선수대리인 규정 제9조 제4항 선수대리인으로 공인된 후 2년 이내에 선수와 선수대리인 계약을 체결하지 못하는 경우, 해당 선수대리인의 공인은 공인선수대리인명부에 등록한 날로부터 2년 경과 후 자동으로 취소됨 |
김근확 변호사(전 프로야구 에이전트)는 "(동료 선수나 은퇴 선수 출신, 장비업체 출신 에이전트에 비해) 변호사로서 클라이언트, 선수 섭외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면서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선수가 없거나 별도로 선수를 접촉할 기회가 없다면 계약 체결 가능성이 매우 낮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한국프로스포츠협회를 통한 공익에이전트 등록 제도가 있지만, 정작 2024년 6월 기준 공익에이전트 매칭이 이뤄진 건 단 2건에 불과할 정도로 제도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나마 선수와 대리인 간 계약 기간마저 1년으로 제한돼 있어, 지속적인 협력 관계를 이어가기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김준태 변호사(프로야구 에이전트)는 "신인 선수나 한 시즌 성적이 좋았던 선수 등이 사라지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프로스포츠의 특성상 이른바 언론과 팬의 관심이 높아지는 경우 더 나은 대우를 요구하거나 대형 에이전트 지원을 희망하며 '갈아타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며 "장기적 안목으로 선수와 미래를 준비하던 중 결별이 발생하면서 선수와 에이전트 모두에게 부정적 결과가 발생하는 경우를 다수 목격했다"고 말했습니다.
■ "변호사 에이전트 경쟁력 높지 않아" 냉정한 지적도
시장 초기엔 변호사들이 법률 전문가로서 조력이 클 것이란 예상이 우세했습니다.
프로스포츠리그는 사실상 독점 체제로, 구단으로 구성된 리그 사무국이 선수보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데다 선수의 권리 의무에 관한 리그 규정을 일방적으로 제·개정해왔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선수와 구단의 계약, 징계 등 권리 의무 문제가 불공정한 경우 법률가의 개입과 조력으로 대항할 필요가 있다는 관점이었습니다.
선수들의 권리구제와 개선으로 이어진 사례도 실제로 있습니다. FA 계약이 체결되지 않는 경우 다음 해 선수 활동을 금지하는 규약이 가처분 승소로 변경돼 언제든 계약을 하면 선수 활동이 가능하도록 변경됐고, 거의 선수 측이 이기지 못하던 연봉조정에서 2021년 KT위즈 선수가 변호사 에이전트의 도움을 받아 이기기도 했습니다.
KOVO 여자배구리그의 한 선수는 소속팀에서 전력 외 통보를 받자 다른 팀에서 뛰게 자유계약선수로 인정해달라고 잔여 연봉도 포기하고 계약해지에 합의했는데, 구단 측이 선수를 임의탈퇴선수로 등록해버려 다른 팀 이적이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선수는 생을 마감했습니다. 포럼에선 변호사 에이전트가 있었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건이라고 입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함상완 변호사는 "중고등학교 아마추어 시절 계약을 하는 경우, 또는 선수의 해외 진출 단계에서 불공정한 계약을 방지하는 제도가 없어 취약한 환경에 놓인 선수들이 있다"며 "이런 부분은 변호사 에이전트가 필요한 측면"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포럼에선 변호사가 에이전트라고 해서 다른 에이전트들에 비해 높은 경쟁력을 지니는 건 아니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김태훈 전 SSG 랜더스 투수는 "2군 이하 저연봉 선수들은 구단에서 정해져 있는 고과시스템에 따라 연봉을 예를 들어 3천만 원에서 3,500만 원으로 정해서 받는데, 에이전트에 관심이 없을뿐더러, 굳이 필요할까 생각하는 선수들이 대다수"라며 선수들이 에이전트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선수들이 에이전트와 매니지먼트를 구분하지 못한다"며 이들은 장비, 스폰서쉽 등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는데 사실상 1억 원 이상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 에이전트를 이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협상을 다수 진행했던 류선규 전 SSG 랜더스 단장도 고액 연봉 선수여야 그나마 에이전트를 고려한다는 점에 동의하면서, 법률 지식이 에이전트 시장에서 특별한 강점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류선규 전 SSG 랜더스 단장 "에이전트를 선정하는 데는 (변호사들이 강점으로 생각하는) 법률서비스가 결코 메인이 될 수 없다. 법적인 문제가 생기면 그때 외부 변호사를 선임하면 되는 것이고, 변호사 에이전트라고 해서 특별히 몸값을 올려주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우선 매니지먼트, 용품 공급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두 번째가 연봉 상승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법률서비스는 부차적 요소다." |
특히 류 전 단장은 "에이전트로서 적극적으로 활약하고자 한다면 중요한 건 업계에 대한 이해(정보력)"이라며, "KBO 사무국이나 야구단 프론트, 선수단을 합쳐봐야 2천 명이 안 되는 조그만 시장이다. 리그 특징을 파악하고 선수 개개인 특성, 소속선수를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얼마나 유대관계를 형성하느냐의 싸움"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앞서 소개해드린 영화 '제리 맥과이어'에서 제리는 도로시(르네 젤위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You complete me."
직역하자면 '당신이 나를 완성해요' 정도가 되겠습니다. 별거 중인 아내에게 돌아와 달라고 간청하며 했던 이 말을 에이전트와 선수의 관계에 적용해보면 어떨까요? 프로 스포츠 선수가 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아 '완성'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로서의 에이전트가 우리나라에도 나타나려면 아직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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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성 기자 isbaek@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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