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여권 나왔다, 6시간 뒤 뜨자”…잘 나가던 북한 외교관은 왜? ① [뒷北뉴스]

입력 2024.07.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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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KBS는 북한 관련 소식을 심층적으로 들여다 보는 [뒷北뉴스]를 연재합니다. 한주 가장 화제가 됐던 북한 관련 소식을 '앞면'이 아닌 '뒷면', 즉 이면까지 들여다 봄으로써 북한발 보도의 숨은 의도를 짚고, 쏟아지는 북한 뉴스를 팩트체크해 보다 깊이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쿠바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근무했던 리일규 전 참사가 KBS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쿠바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근무했던 리일규 전 참사가 KBS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성공하면 살고, 실수하면 죽는다'. 쿠바 주재 북한 대사관의 2인자였던 리일규 전 참사는 '탈북'이란 단어의 무게를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북한 체제에 대한 염증과 자녀의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리 전 참사는 새 여권을 받아든 당일 탈북을 감행했습니다. 가족에게는 비행기 이륙 6시간 전에 알렸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목숨 건 첩보 작전을 방불케 하는 탈북이었습니다.

북한 최고의 '남미통'이자, '김정은 표창장'까지 받을 정도로 앞날이 창창했던 그가 탈북을 결심한 건 왜일까요? KBS는 지난해 11월 쿠바에서 한국으로 망명한 리일규 전 참사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3시간에 걸친 대화에서 그는 담담하게, 그러나 확신에 찬 태도로 북한을 떠나온 배경을 설명하며, 북한 체제의 실태를 고발했습니다.

우선 궁금한 건 탈북 동기였습니다. 리 전 참사가 쿠바를 떠나 한국으로 온 건 한국과 쿠바의 수교를 불과 3개월여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혹시 한국과 쿠바 수교에 따른 문책을 피하기 위해서인 건 아닐까 했는데, 그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단 겁니다.

-탈북 계기가 궁금하다.
=북한 사회의 노동에 대한 착취, 불공평한 평가, 이게 가장 기본적인 이유였다. 북한 체제에 대한 염증, 이 사회는 정말 미래가 없고, 암담하고, 이런 사회가 될 것이다. 나는 그래도 수십년 동안 이 사회에서 살면서 많은 걸 이뤄냈고, 최소한 늙어 죽을 때까지 힘들지 않게 살 거란 전망은 있었다. 그런데 내 자식은 어떻게 하나? 이 사회와 같이 할 수 없단 생각은 하고 있었다.

-탈북을 결심하고 어떤 준비를 했나?
=탈북 결심하고 실행하기까지 3개월 안 되는 시간이 걸렸다. 탈북은 사선을 헤치는 모험이다. 성공하면 사는 거요, 실수하면 죽는, 양자 택일의 길. 매우 신중해야 했고, 있을 수 있는 많은 정황 예견해야 했고, 그러자니 한국에 대한 지식, 선배들의 탈북 과정, 이용 경로 이런 걸 종합 분석해야 했다. 가장 기초적 수단은 인터넷이었다. 속상했던 점은 탈북 경위나, 루트라든가 자료가 상당히 적더라.

-북한의 외교관 탈북이 잇따르고 있어서 감시가 엄격할 것 같은데?
=원래 북한에선 수십 년 전부터 대외 활동 원칙이 있다. '2인 결합' 원칙. 외국인을 만나거나, 나가서 대외 활동 할 때 혼자 할 수 없다. 2명이서 같이 움직여야 한다. 간첩 방지 이유도 있는데, 가장 기본적인 건 탈북 방지. 2인 결합으로 감시도 하고, 통제도 한다. (코로나 19로 인한 국경 폐쇄 이후) 북한이 2023년 8월에 처음 국경을 (다시) 열었지 않나. 그때 해외 파견자들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국경 연단 소리는 몇 달 전부터 나왔는데, 어떤 대상들 소환하려 하니 소환 준비해라 지시가 내려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했고, 흔들렸고, 이제 결정할 때가 됐다 해서 많은 분들이 갔다.

-북한은 대사관 여권 따로 갖고 있다던데?
=여권이 만기가 됐다. 북한 여권은 5년이 기한이다. 여권 만기가 돼서 새 여권을 신청했다. (지난해) 8월부터 제한 풀리면서 여권이 나오기 시작했다. 새 여권 오면 그거 먼저 쥐고, 쥔 그날 중으로 비행기표 사서 뜬다고 계획했다. 그게 성공을 한 거다.

-탈북 결심하고 부인과 자녀에게 전했을 때 반응은?
=(지난해) 7월 그때 탈북을 본격적으로 결심했고, 산책 나가서 아내에게 한국에 가잔 소린 안하고 나가 살면 좋지 않겠냔 식으로 말했다. 아내가 깜짝 놀라며 큰 배경 없이 노력해서 여기까지 왔고 탄탄대로가 앞에 있고, 성공할 일만 남았는데 다 버리고 간다는 게 무슨 말이냐, 가면 성공할 담보는 있냐 했다. 아내가 고민을 많이 했다. 무겁고, 부담스럽고, 충격적인 얘기 들어서 심장발작 일으켜 병원에 실려갔다. 그래서 그때 얘긴 농담이고, 새겨듣지 말고, 아무 데도 안가니까 마음 놓으라고 하고 혼자 추진했다.
실지 탈북하기 6시간 전에, 현지 비행기 뜬 게 (새벽) 4시에 떴다. 아내와 자녀에게 말한 건 (밤) 10시에 말했다. 비행기표 다 구입해놓고 가자, 제발 같이 가 달라, 아내는 농담이라 생각했다. 한국이 싫다 이것보다는, 한국에 가잔 얘긴 안 하고 다른 나라 가서 살자고 했다. 한국 싫다기보다 두려운 거다. 성공할 수 있냐, 없냐 이런 위협으로 다가왔다. 끈질기게 설복해서 동의하고 따라왔다. 자식의 경우엔 말을 듣더니 말을 못했다. 따라나서긴 했지만, 큰 충격이다 보니까. 아내와 자식이 나의 뜻을 따라서 같이 와준 걸 고맙게 생각하고 평생 빚이라고 생각한다. 갚아야 할 빚.


1990년대 불었던 한류 바람은 물론이고, 태영호 전 의원 등 외교관 출신 탈북자의 성공적인 한국 정착도 탈북에 영향을 줬다고 했습니다.

-세대별로 북한 우상화에 대한 시각이 다르다. 자녀분들 입장에선 탈북 결정이 새로운 기회가 될 거란 생각을 가지진 않았나?
=한국에선 MZ 세대, 내 자식도 MZ에 속하는데, 자식은 언제부터 고민하냐면 20살 넘으면 고민한다. 뭘 하고 살아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해외 나가 있는 자녀들 속에서 그런 고민이 심하다. 제 자식도 그런 고민을 했다. 그들도 역시 해외 나가 있든 북한에 있든 한류를 많이 접했다. 한국이 잘살고 한번 살아봤으면 하는 생각은 누구나 하지만, 선뜻 가겠단 결심은 쉽지 않다. 이건 죽느냐 사느냐 모험이다. 모험의 길을 선뜻 들어가겠다, 말겠다, 한발짝 잘못 가면 죽음으로 떨어지는데 이 길을 선뜻 나서겠다고 할 땐 큰 용기가 필요하다.
'한국은 멋진 사회다, 가서 살고 싶다' 이 단계는 지났다. 저렇게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한국 사람도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데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사회주의 교육밖에 못 배운 사람이 이런 체제 속에 뛰어들어서 저 사람들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탈북으로 쉽게 이어질 수 있는 길을 차단하는 거다.
선배 탈북민들이 잘 사는 모습만 보여주길 바란다. 그분들의 행복상이 북한 내부 체제 변화를 유도하는 중요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자녀분도 한류 알고 있었던 거지?
=여기 와서 많은 분들 만나봤는데, 우리 자식만큼 한국 연예인들 이름 아는 분들이 없다. 그때 이런 영화 하면 영화나 드라마 제목 바로 튀어나오고, 주인공은 누구였고, 아마 그 정도로 한국 분들보다 더 많이 알 거다.

-해외 외교관 자녀들은 한류 접하는 일이 많을 것 같다.
=한국 분들보다 한류 파악이 더 전문가급으로 깊다.

-남한을 선택한 이유는?
=북한 탈출할 때 한국 외에 선택지를 고려한 적이 없다. 한국은 같은 동족이고, 민족이고, 5천 년 유구한 역사 속에 부모님, 조부모님 공유한 민족의 피가 흐르는 땅이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가 그 어디보다 잘 돼 있고 인권, 인간의 존엄, 이렇게 민주주의 잘 구현돼 있고. 자기 의사를 이렇게 잘 표현할 수 있는 나라 두고 어딜 가겠나.

-국내 외교관 출신 탈북자분들 많은데, 탈북에 영향을 줬는가?
=기다렸던 질문이다. 외무성 근무하다 간 사람들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서치(검색) 많이 한다. 갈등을 좀 했다. 고영환 박사 같은 경우는 한국에 안정적으로 정착해서 큰 일 얼마나 많이 했나. 대한민국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같은 외무성 6국 출신으로서 긍지를 갖는 부분이다. 태영호 의원은 외무성 때부터 알고 지낸 분이다. 능력 있는 분이다. 능력도 있고, 사회 교제성도 출중하신 분이다. 북한 외무성에서 태영호 의원 갔다 했을 때 외무성에 준 충격이 굉장히 컸다. 충격 큰 만큼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 분들 많았다. 우리도 가면 저만한 대우는 받으며 살 수 있겠단 생각이 탈출할까 말까 할 때 그 쪽(탈출)으로 등을 떠민다.
제 후배분들도 제가 나와서 인터뷰하는 걸 볼 거다. 제가 어떻게 살 건지도 보고. 한국을 항상 꿈꾸고 희망하는 사는 마음적 흔들림에 영향 줄 거로 생각한다. 자기 능력으로 사는 게 자본주의 사회는 맞지만, 제가 고위급 간부 만나서 얘기할 때 이런 말 들었다. 어제까지도 한국이랑 쿠바 수교 막는 데 앞장서서 노력한 사람이고, 대한민국이 오늘날 위대한 국가로 되는데 아무 도움도 못 준 사람인데 사상 전향했다고 해서 떠받들어주는 게 제 입장에선 송구하다고.
그분 말씀이 대한민국이 위대한 국가가 된 건 대한민국 국민의 넓은 마음과 표용력이 기반이 됐다는 말씀을 가슴 뜨겁게 받아들였다. 그런 넓은 아량과 포용력으로 한국에 온 모든 탈북민이 안정적으로 정착해서 한국행을 결심한 게 결코 잘못된 게 아니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살 수 있게끔 잘 도와주시길 바란다.

탈북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북한 외교관 특성상 실행 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용기만 가지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미 고위급 외교관 탈북자들이 여럿 더 있다는 얘기도 전했습니다.

-외교관들 거주지가 서로 가까워서 감시 벗어나 공항까지 가는 것도 힘들다던데?
=차를 대사관에 주차하고 있다. 집이랑 가까워서. 내 차 갖고 움직이면 빠르겠지만 차를 두고 왔다. 바로 앞집에 다른 가족이 살고 있다 보니 새벽 2시에 택시 불렀는데 소리 나면 저 집에서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 제가 모아뒀던 돈가방도 못가져오고, 집 열쇠도 못 가져오고, 신분증도 다 거기 놔두고 왔다. 다른 분들도 탈북함에 있어서 그런 것도 상당히 제약은 되지만, 가겠다 결심했다면 방도는 있다. 가겠단 의지를 가지냐, 용단을 내리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북한에선 외교관이 해외 나갈 때 자녀 2명이면 1명 두고 가고, 1명일 때도 데리고 나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고 하는데?
=북한 정권의 사악함에 대해 먼저 말씀드리겠는데, 항상 보면 북한 정권은 인륜이란 걸 거스른다. 왜냐면 그가 간부든, 일반 백성이든 다 부모거든. 부모면 부모 된 심정에서 제일 아끼는 게 누군가, 자식이지 않나. 이건 인륜이잖아. 부모와 자식 간에 맺어진 관계를 인륜이라고 하거든. 누구에게나 가장 약한 고리로 된다. 비단 현 정권뿐 아니고, 오래전부터 3대 세습 거치면서 부모 자식 간에 인륜, 약한 고리를 악용하는 건 오래전부터 있었던 일. 2016년 태영호 의원님 오셨잖아. 그때 오실 때도 시대적 배경 보면 자식 문제 갖고 굉장히 복잡했거든. 23살 이상 다 송환시키라고 했다.
자식들 해외 내보내는 건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었다. 우리가 나라가 돈이 없어서 자식들 공부도 못 시키는데 외교관들이 자녀 데리고 나가서 공짜로 공부시키면 국가에 얼마나 이득이냐. 그런데 다 내보내진 마라. 소학교 나이, 북한 역사 기초 과목 배워야 되는 나이기 때문에 보내지 말고, 대학 나이 땐 또 보내지 마, 이런 식으로 원칙 있었다.
그런데 조금씩 양보되기 시작했다. 김정일 위원장 때 와서 고난의 행군으로 다 완화됐다. 둘, 셋 나가기도 하고. 그러다 다 데리고 탈북해서, 인질 필요하니 하나 두고 가라. 규정이 굉장히 복잡하다. 쌍둥이는 어떻게 해라, 3명이면 어떤 원칙 적용한다, 기타 등등 많은 원칙 있었다.
2020년대 들어와서 규정 바뀌기 시작. 최근 거 말씀드리면 한 명 더 인질 두게 돼 있다. 다행히 전 자녀가 하나라 데리고 나왔고, 오늘 이렇게 나오게 됐다.

-참사보다 높은 직급의 탈북도 있나?
=송구한 게 있는데, 여기 와서 지금까지 고위급, 엘리트 이런 말 많이 들었다. 절 환대해주는 말씀은 너무 고맙다. 전 엘리트, 고위급, 일반 주민 가르는 게 옳은 평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북한 사회에선 그가 간부든, 일반 노동자든 관계없이 받는 대우나 처지는 똑같다.
여하튼 저는 외무성에 있었다. 외무성에서 탈출을 시도했거나, 성공했거나, 성공하지 못해서 북한에 송환된 분들 빠짐없이 알고 있다. 그분들 신상 문제 이유로 밝힐 수는 없지만. 외무성 아닌 다른 기관에서 파견된 분들도 여러 명 탈출한 데 대해서 알고는 있다. 같은 맥락에서 신상에 대해선 말씀드릴 수 없다. 고위직이냐, 낮은 직이냐, 보기가 무리라고 생각. 다 같은 동포고, 동족이고, 정말 불쌍한 우리 주민이고, 같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봐주셨음 좋겠다.

-직급이 높은 분들이 아는 정보나, 의사 결정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지 않나?
=사회적 직급이 높으신 분들일수록 고급 정보, 일반 주민들 접근 못 하는 정보 접근하고 더 많이 알 수 있단 말은 맞아. 그런 급의 분들 나온 분들 있다. 그게 누가 됐든, 고위급이든 일반 주민이든 나름 대한민국에 유익한 정보는 다 갖고 있다.

리일규 전 참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 응하게 된 것도 북한에 남아있는 동료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서였다고 털어놨습니다.

-인터뷰에 나서게 된 계기는?
=북한 정권의 악랄한 실상을 까발리고 싶은 것도 있다. 북한에 두고 온 후배, 동료들, 지인들, 그분들이 저 같은 용단을 내렸으면 한다. 북한 체제가 희망이 없고 미래가 없단 건 잘 아는 거지만 그 속에서 살길을 찾지 말고 용기 있는 행동 하시라. 올 결심 못 세우면 그 체제 안에서 변화를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많은 활동을 해줬으면 좋겠다. 열심히 살겠고, 열심히 사는 모습을 저기 계신 분들에게도 보여주고 싶고. 북한 체제의 악몽같은 사회 변화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리일규 전 참사의 인터뷰는 모두 3편으로 나눠서 게재합니다.
"새 여권 나왔다, 6시간 뒤 뜨자"...잘 나가던 북한 외교관은 왜? ①
김정은 대면한 북한 외교관의 증언..."얼굴 새빨갛고, 숨 가빠" ②
"북한은 뇌물 공화국"...사선 넘어온 북한 외교관의 폭로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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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 여권 나왔다, 6시간 뒤 뜨자”…잘 나가던 북한 외교관은 왜? ① [뒷北뉴스]
    • 입력 2024-07-20 07:00:22
    뒷北뉴스
KBS는 북한 관련 소식을 심층적으로 들여다 보는 [뒷北뉴스]를 연재합니다. 한주 가장 화제가 됐던 북한 관련 소식을 '앞면'이 아닌 '뒷면', 즉 이면까지 들여다 봄으로써 북한발 보도의 숨은 의도를 짚고, 쏟아지는 북한 뉴스를 팩트체크해 보다 깊이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쿠바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근무했던 리일규 전 참사가 KBS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성공하면 살고, 실수하면 죽는다'. 쿠바 주재 북한 대사관의 2인자였던 리일규 전 참사는 '탈북'이란 단어의 무게를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북한 체제에 대한 염증과 자녀의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리 전 참사는 새 여권을 받아든 당일 탈북을 감행했습니다. 가족에게는 비행기 이륙 6시간 전에 알렸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목숨 건 첩보 작전을 방불케 하는 탈북이었습니다.

북한 최고의 '남미통'이자, '김정은 표창장'까지 받을 정도로 앞날이 창창했던 그가 탈북을 결심한 건 왜일까요? KBS는 지난해 11월 쿠바에서 한국으로 망명한 리일규 전 참사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3시간에 걸친 대화에서 그는 담담하게, 그러나 확신에 찬 태도로 북한을 떠나온 배경을 설명하며, 북한 체제의 실태를 고발했습니다.

우선 궁금한 건 탈북 동기였습니다. 리 전 참사가 쿠바를 떠나 한국으로 온 건 한국과 쿠바의 수교를 불과 3개월여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혹시 한국과 쿠바 수교에 따른 문책을 피하기 위해서인 건 아닐까 했는데, 그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단 겁니다.

-탈북 계기가 궁금하다.
=북한 사회의 노동에 대한 착취, 불공평한 평가, 이게 가장 기본적인 이유였다. 북한 체제에 대한 염증, 이 사회는 정말 미래가 없고, 암담하고, 이런 사회가 될 것이다. 나는 그래도 수십년 동안 이 사회에서 살면서 많은 걸 이뤄냈고, 최소한 늙어 죽을 때까지 힘들지 않게 살 거란 전망은 있었다. 그런데 내 자식은 어떻게 하나? 이 사회와 같이 할 수 없단 생각은 하고 있었다.

-탈북을 결심하고 어떤 준비를 했나?
=탈북 결심하고 실행하기까지 3개월 안 되는 시간이 걸렸다. 탈북은 사선을 헤치는 모험이다. 성공하면 사는 거요, 실수하면 죽는, 양자 택일의 길. 매우 신중해야 했고, 있을 수 있는 많은 정황 예견해야 했고, 그러자니 한국에 대한 지식, 선배들의 탈북 과정, 이용 경로 이런 걸 종합 분석해야 했다. 가장 기초적 수단은 인터넷이었다. 속상했던 점은 탈북 경위나, 루트라든가 자료가 상당히 적더라.

-북한의 외교관 탈북이 잇따르고 있어서 감시가 엄격할 것 같은데?
=원래 북한에선 수십 년 전부터 대외 활동 원칙이 있다. '2인 결합' 원칙. 외국인을 만나거나, 나가서 대외 활동 할 때 혼자 할 수 없다. 2명이서 같이 움직여야 한다. 간첩 방지 이유도 있는데, 가장 기본적인 건 탈북 방지. 2인 결합으로 감시도 하고, 통제도 한다. (코로나 19로 인한 국경 폐쇄 이후) 북한이 2023년 8월에 처음 국경을 (다시) 열었지 않나. 그때 해외 파견자들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국경 연단 소리는 몇 달 전부터 나왔는데, 어떤 대상들 소환하려 하니 소환 준비해라 지시가 내려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했고, 흔들렸고, 이제 결정할 때가 됐다 해서 많은 분들이 갔다.

-북한은 대사관 여권 따로 갖고 있다던데?
=여권이 만기가 됐다. 북한 여권은 5년이 기한이다. 여권 만기가 돼서 새 여권을 신청했다. (지난해) 8월부터 제한 풀리면서 여권이 나오기 시작했다. 새 여권 오면 그거 먼저 쥐고, 쥔 그날 중으로 비행기표 사서 뜬다고 계획했다. 그게 성공을 한 거다.

-탈북 결심하고 부인과 자녀에게 전했을 때 반응은?
=(지난해) 7월 그때 탈북을 본격적으로 결심했고, 산책 나가서 아내에게 한국에 가잔 소린 안하고 나가 살면 좋지 않겠냔 식으로 말했다. 아내가 깜짝 놀라며 큰 배경 없이 노력해서 여기까지 왔고 탄탄대로가 앞에 있고, 성공할 일만 남았는데 다 버리고 간다는 게 무슨 말이냐, 가면 성공할 담보는 있냐 했다. 아내가 고민을 많이 했다. 무겁고, 부담스럽고, 충격적인 얘기 들어서 심장발작 일으켜 병원에 실려갔다. 그래서 그때 얘긴 농담이고, 새겨듣지 말고, 아무 데도 안가니까 마음 놓으라고 하고 혼자 추진했다.
실지 탈북하기 6시간 전에, 현지 비행기 뜬 게 (새벽) 4시에 떴다. 아내와 자녀에게 말한 건 (밤) 10시에 말했다. 비행기표 다 구입해놓고 가자, 제발 같이 가 달라, 아내는 농담이라 생각했다. 한국이 싫다 이것보다는, 한국에 가잔 얘긴 안 하고 다른 나라 가서 살자고 했다. 한국 싫다기보다 두려운 거다. 성공할 수 있냐, 없냐 이런 위협으로 다가왔다. 끈질기게 설복해서 동의하고 따라왔다. 자식의 경우엔 말을 듣더니 말을 못했다. 따라나서긴 했지만, 큰 충격이다 보니까. 아내와 자식이 나의 뜻을 따라서 같이 와준 걸 고맙게 생각하고 평생 빚이라고 생각한다. 갚아야 할 빚.


1990년대 불었던 한류 바람은 물론이고, 태영호 전 의원 등 외교관 출신 탈북자의 성공적인 한국 정착도 탈북에 영향을 줬다고 했습니다.

-세대별로 북한 우상화에 대한 시각이 다르다. 자녀분들 입장에선 탈북 결정이 새로운 기회가 될 거란 생각을 가지진 않았나?
=한국에선 MZ 세대, 내 자식도 MZ에 속하는데, 자식은 언제부터 고민하냐면 20살 넘으면 고민한다. 뭘 하고 살아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해외 나가 있는 자녀들 속에서 그런 고민이 심하다. 제 자식도 그런 고민을 했다. 그들도 역시 해외 나가 있든 북한에 있든 한류를 많이 접했다. 한국이 잘살고 한번 살아봤으면 하는 생각은 누구나 하지만, 선뜻 가겠단 결심은 쉽지 않다. 이건 죽느냐 사느냐 모험이다. 모험의 길을 선뜻 들어가겠다, 말겠다, 한발짝 잘못 가면 죽음으로 떨어지는데 이 길을 선뜻 나서겠다고 할 땐 큰 용기가 필요하다.
'한국은 멋진 사회다, 가서 살고 싶다' 이 단계는 지났다. 저렇게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한국 사람도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데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사회주의 교육밖에 못 배운 사람이 이런 체제 속에 뛰어들어서 저 사람들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탈북으로 쉽게 이어질 수 있는 길을 차단하는 거다.
선배 탈북민들이 잘 사는 모습만 보여주길 바란다. 그분들의 행복상이 북한 내부 체제 변화를 유도하는 중요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자녀분도 한류 알고 있었던 거지?
=여기 와서 많은 분들 만나봤는데, 우리 자식만큼 한국 연예인들 이름 아는 분들이 없다. 그때 이런 영화 하면 영화나 드라마 제목 바로 튀어나오고, 주인공은 누구였고, 아마 그 정도로 한국 분들보다 더 많이 알 거다.

-해외 외교관 자녀들은 한류 접하는 일이 많을 것 같다.
=한국 분들보다 한류 파악이 더 전문가급으로 깊다.

-남한을 선택한 이유는?
=북한 탈출할 때 한국 외에 선택지를 고려한 적이 없다. 한국은 같은 동족이고, 민족이고, 5천 년 유구한 역사 속에 부모님, 조부모님 공유한 민족의 피가 흐르는 땅이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가 그 어디보다 잘 돼 있고 인권, 인간의 존엄, 이렇게 민주주의 잘 구현돼 있고. 자기 의사를 이렇게 잘 표현할 수 있는 나라 두고 어딜 가겠나.

-국내 외교관 출신 탈북자분들 많은데, 탈북에 영향을 줬는가?
=기다렸던 질문이다. 외무성 근무하다 간 사람들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서치(검색) 많이 한다. 갈등을 좀 했다. 고영환 박사 같은 경우는 한국에 안정적으로 정착해서 큰 일 얼마나 많이 했나. 대한민국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같은 외무성 6국 출신으로서 긍지를 갖는 부분이다. 태영호 의원은 외무성 때부터 알고 지낸 분이다. 능력 있는 분이다. 능력도 있고, 사회 교제성도 출중하신 분이다. 북한 외무성에서 태영호 의원 갔다 했을 때 외무성에 준 충격이 굉장히 컸다. 충격 큰 만큼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 분들 많았다. 우리도 가면 저만한 대우는 받으며 살 수 있겠단 생각이 탈출할까 말까 할 때 그 쪽(탈출)으로 등을 떠민다.
제 후배분들도 제가 나와서 인터뷰하는 걸 볼 거다. 제가 어떻게 살 건지도 보고. 한국을 항상 꿈꾸고 희망하는 사는 마음적 흔들림에 영향 줄 거로 생각한다. 자기 능력으로 사는 게 자본주의 사회는 맞지만, 제가 고위급 간부 만나서 얘기할 때 이런 말 들었다. 어제까지도 한국이랑 쿠바 수교 막는 데 앞장서서 노력한 사람이고, 대한민국이 오늘날 위대한 국가로 되는데 아무 도움도 못 준 사람인데 사상 전향했다고 해서 떠받들어주는 게 제 입장에선 송구하다고.
그분 말씀이 대한민국이 위대한 국가가 된 건 대한민국 국민의 넓은 마음과 표용력이 기반이 됐다는 말씀을 가슴 뜨겁게 받아들였다. 그런 넓은 아량과 포용력으로 한국에 온 모든 탈북민이 안정적으로 정착해서 한국행을 결심한 게 결코 잘못된 게 아니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살 수 있게끔 잘 도와주시길 바란다.

탈북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북한 외교관 특성상 실행 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용기만 가지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미 고위급 외교관 탈북자들이 여럿 더 있다는 얘기도 전했습니다.

-외교관들 거주지가 서로 가까워서 감시 벗어나 공항까지 가는 것도 힘들다던데?
=차를 대사관에 주차하고 있다. 집이랑 가까워서. 내 차 갖고 움직이면 빠르겠지만 차를 두고 왔다. 바로 앞집에 다른 가족이 살고 있다 보니 새벽 2시에 택시 불렀는데 소리 나면 저 집에서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 제가 모아뒀던 돈가방도 못가져오고, 집 열쇠도 못 가져오고, 신분증도 다 거기 놔두고 왔다. 다른 분들도 탈북함에 있어서 그런 것도 상당히 제약은 되지만, 가겠다 결심했다면 방도는 있다. 가겠단 의지를 가지냐, 용단을 내리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북한에선 외교관이 해외 나갈 때 자녀 2명이면 1명 두고 가고, 1명일 때도 데리고 나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고 하는데?
=북한 정권의 사악함에 대해 먼저 말씀드리겠는데, 항상 보면 북한 정권은 인륜이란 걸 거스른다. 왜냐면 그가 간부든, 일반 백성이든 다 부모거든. 부모면 부모 된 심정에서 제일 아끼는 게 누군가, 자식이지 않나. 이건 인륜이잖아. 부모와 자식 간에 맺어진 관계를 인륜이라고 하거든. 누구에게나 가장 약한 고리로 된다. 비단 현 정권뿐 아니고, 오래전부터 3대 세습 거치면서 부모 자식 간에 인륜, 약한 고리를 악용하는 건 오래전부터 있었던 일. 2016년 태영호 의원님 오셨잖아. 그때 오실 때도 시대적 배경 보면 자식 문제 갖고 굉장히 복잡했거든. 23살 이상 다 송환시키라고 했다.
자식들 해외 내보내는 건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었다. 우리가 나라가 돈이 없어서 자식들 공부도 못 시키는데 외교관들이 자녀 데리고 나가서 공짜로 공부시키면 국가에 얼마나 이득이냐. 그런데 다 내보내진 마라. 소학교 나이, 북한 역사 기초 과목 배워야 되는 나이기 때문에 보내지 말고, 대학 나이 땐 또 보내지 마, 이런 식으로 원칙 있었다.
그런데 조금씩 양보되기 시작했다. 김정일 위원장 때 와서 고난의 행군으로 다 완화됐다. 둘, 셋 나가기도 하고. 그러다 다 데리고 탈북해서, 인질 필요하니 하나 두고 가라. 규정이 굉장히 복잡하다. 쌍둥이는 어떻게 해라, 3명이면 어떤 원칙 적용한다, 기타 등등 많은 원칙 있었다.
2020년대 들어와서 규정 바뀌기 시작. 최근 거 말씀드리면 한 명 더 인질 두게 돼 있다. 다행히 전 자녀가 하나라 데리고 나왔고, 오늘 이렇게 나오게 됐다.

-참사보다 높은 직급의 탈북도 있나?
=송구한 게 있는데, 여기 와서 지금까지 고위급, 엘리트 이런 말 많이 들었다. 절 환대해주는 말씀은 너무 고맙다. 전 엘리트, 고위급, 일반 주민 가르는 게 옳은 평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북한 사회에선 그가 간부든, 일반 노동자든 관계없이 받는 대우나 처지는 똑같다.
여하튼 저는 외무성에 있었다. 외무성에서 탈출을 시도했거나, 성공했거나, 성공하지 못해서 북한에 송환된 분들 빠짐없이 알고 있다. 그분들 신상 문제 이유로 밝힐 수는 없지만. 외무성 아닌 다른 기관에서 파견된 분들도 여러 명 탈출한 데 대해서 알고는 있다. 같은 맥락에서 신상에 대해선 말씀드릴 수 없다. 고위직이냐, 낮은 직이냐, 보기가 무리라고 생각. 다 같은 동포고, 동족이고, 정말 불쌍한 우리 주민이고, 같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봐주셨음 좋겠다.

-직급이 높은 분들이 아는 정보나, 의사 결정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지 않나?
=사회적 직급이 높으신 분들일수록 고급 정보, 일반 주민들 접근 못 하는 정보 접근하고 더 많이 알 수 있단 말은 맞아. 그런 급의 분들 나온 분들 있다. 그게 누가 됐든, 고위급이든 일반 주민이든 나름 대한민국에 유익한 정보는 다 갖고 있다.

리일규 전 참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 응하게 된 것도 북한에 남아있는 동료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서였다고 털어놨습니다.

-인터뷰에 나서게 된 계기는?
=북한 정권의 악랄한 실상을 까발리고 싶은 것도 있다. 북한에 두고 온 후배, 동료들, 지인들, 그분들이 저 같은 용단을 내렸으면 한다. 북한 체제가 희망이 없고 미래가 없단 건 잘 아는 거지만 그 속에서 살길을 찾지 말고 용기 있는 행동 하시라. 올 결심 못 세우면 그 체제 안에서 변화를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많은 활동을 해줬으면 좋겠다. 열심히 살겠고, 열심히 사는 모습을 저기 계신 분들에게도 보여주고 싶고. 북한 체제의 악몽같은 사회 변화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리일규 전 참사의 인터뷰는 모두 3편으로 나눠서 게재합니다.
"새 여권 나왔다, 6시간 뒤 뜨자"...잘 나가던 북한 외교관은 왜? ①
김정은 대면한 북한 외교관의 증언..."얼굴 새빨갛고, 숨 가빠" ②
"북한은 뇌물 공화국"...사선 넘어온 북한 외교관의 폭로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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