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솔 씨는 서울 서대문구 신촌역 인근 학교에서 신대방역 근처까지 2시간 반 하굣길을 매일 걸어 다녔습니다.
만져본 적도 없는 대출금 1억 원과 이자를 갚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솔 씨는 3년 전, 대학원에 진학하며 신촌에 머무르기 시작했습니다. 전세보증금 1억 2천5백만 원, 5평짜리 원룸이었습니다. 갓 대학교를 졸업한 23살 학생이 대출 없이 구하기 어려운 금액이었습니다.
계약이 끝나갈 때쯤, 문 앞에 붙어 있던 경매 통보. 평온했던 솔 씨의 일상은 뒤틀렸습니다. 집주인은 보증금 반환을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습니다.
계약 기간이 끝난 지 10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이젠 단수, 경매 통보를 받아보는 건 예삿일입니다. 견디다 못해 일단 짐은 놔둔 채 도망치다시피 빠져나왔습니다.
솔 씨가 전세로 들어온 연희동 주택의 감정가는 29억 원 남짓. 하지만 기존에 잡혀 있는 근저당 액수만 23억 7천만 원입니다. 거기에 보증금을 못 돌려받은 세입자들이 임차권 등기를 설정한 금액만 10억 원이 넘습니다. 그마저도 집주인이 체납한 세금과 임차권 등기 설정을 안 한 세입자의 보증금은 빠진 액수입니다. 주택이 팔려도 솔 씨가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연희동엔 이 씨처럼 임대인 최 모 씨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가 80명 정도 더 있습니다. 대부분 비슷한 또래의 2030 청년들입니다.
26살 이정은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은 씨는 24살이던 2022년 2월, 연희동의 다섯 평짜리 원룸에 전세로 들어왔습니다. 전세보증금 1억 3백만 원, 그중 9,270만 원이 대출이었습니다.
보증금을 당연히 돌려받을 거라 믿었고,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려고 가계약금까지 넣었습니다.
결혼도 미룰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임대인 최 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했지만, 최 씨는 취재진과 만나기로 한 날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최 씨는 몇 년 전 부동산 광풍이 불던 시기, 임차인들의 돈으로 건물을 지어 자산을 불리려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건축 업계에선 흔히 행해지던 방식. 하지만 주택 가격이 폭락하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취약한 구조를 알아차리기 어려운 청년들이 희생양이 되어버렸습니다.
경찰은 지난 4월 임대인 최 씨를 사기 혐의로 송치했습니다. 검찰의 보완 수사 요구에 따라 다시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범행에 가담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며 불송치 했던 공인중개사무소 대표 김 모 씨에 대한 추가 수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 씨는 연희동 인근 피해자 약 80%의 계약을 중개했습니다.
취재진이 제공받은 계약 당시의 녹음 파일
하지만 집주인은 기존의 빚을 갚지 않았습니다. 선순위 보증금이 얼마인지 적혀있을 곳은 0원이라고 표시했습니다.
지난달까지 전세 사기 피해자로 인정된 인원은 만 8천여 명, 4명 중 3명은 2030 청년들입니다.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 특별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상당수는 아직 온전히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매로 집이 팔리더라도 변제 우선순위를 따져보면 세입자 몫이 남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정치권에선 나라가 우선 빚을 갚아주자, 피해 주택을 사들여 손해 본 보증금을 보전해주자 등의 논의가 이어지곤 있지만 진전은 없습니다.
만져본 적도 없는 대출금 1억 원과 이자를 갚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솔/26살 대학원생(가명) 신촌역으로 쭉 걸어서 광흥창 지나고, 국회의사당 지나서, 대방으로 가서 보라매공원 지나서 이렇게 오면 여기가 신대방이에요. 그 경로로 이렇게 항상 걸어왔었어요. 연구실 친한 오빠들, 언니들이 밥 사주고 커피 사주고, 이 정도였는데. 너무 미안해서, 그래서 연구실에 있지도 못하고 몇 번은. 이거라도 아껴서 밥을 먹어야겠다 싶어서 이렇게 걸어 다녔어요. |
솔 씨는 3년 전, 대학원에 진학하며 신촌에 머무르기 시작했습니다. 전세보증금 1억 2천5백만 원, 5평짜리 원룸이었습니다. 갓 대학교를 졸업한 23살 학생이 대출 없이 구하기 어려운 금액이었습니다.
이솔/26살 대학원생(가명) 1억 원은 제가 카카오뱅크 대출을 했었고, 나머지 2,500만 원은 저희 어머니가 제가 박사가 끝났을 때 외국에서 잠시 연수를 하게 되면 그때 쓰라고 모아두신 비용이었어요. |
계약이 끝나갈 때쯤, 문 앞에 붙어 있던 경매 통보. 평온했던 솔 씨의 일상은 뒤틀렸습니다. 집주인은 보증금 반환을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습니다.
이솔/26살 대학원생(가명) 최근에 사업이 많이 어려워져서 그래서 지금 은행 빚 상환을 못해서 그렇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 제가 연락할 때마다 다음 주엔 자금이 들어온다. 그다음 주에 자금이 들어온다. |
계약 기간이 끝난 지 10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이젠 단수, 경매 통보를 받아보는 건 예삿일입니다. 견디다 못해 일단 짐은 놔둔 채 도망치다시피 빠져나왔습니다.
이솔/26살 대학원생(가명) ‘진짜 못 살겠다, 여기 살다 정신병 걸리겠다’였어요. 집도 점점 무너지고, 아래는, 1층은 잠기고 있고. 제 방에 곰팡이 피고 있어서, 모든 옷에, 물건들에 다 냄새가 배고 있고. 화장실도 벽이 무너지고 있고. |
솔 씨가 전세로 들어온 연희동 주택의 감정가는 29억 원 남짓. 하지만 기존에 잡혀 있는 근저당 액수만 23억 7천만 원입니다. 거기에 보증금을 못 돌려받은 세입자들이 임차권 등기를 설정한 금액만 10억 원이 넘습니다. 그마저도 집주인이 체납한 세금과 임차권 등기 설정을 안 한 세입자의 보증금은 빠진 액수입니다. 주택이 팔려도 솔 씨가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연희동엔 이 씨처럼 임대인 최 모 씨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가 80명 정도 더 있습니다. 대부분 비슷한 또래의 2030 청년들입니다.
26살 이정은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은 씨는 24살이던 2022년 2월, 연희동의 다섯 평짜리 원룸에 전세로 들어왔습니다. 전세보증금 1억 3백만 원, 그중 9,270만 원이 대출이었습니다.
이정은/26살 어린이집 교사 제가 계산을 해봤거든요. 지금 가지고 있는 월급에서 백만 원을 만약에 이렇게 (저축)한다고 하면, 10년. 10년, 약 9년에서 10년. 근데 또 그 외에 추가적으로 이자는 또 이자대로 내고서. 그렇게 더 생각하니까 이게 더 너무 막막한 거예요. |
보증금을 당연히 돌려받을 거라 믿었고,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려고 가계약금까지 넣었습니다.
이정은/26살 어린이집 교사 방이 하나 더 있는 집이었어요. 제가…죄송해요. 조금 더 큰 집으로 가고 싶었던 마음에 이제 그랬는데, 네 그렇게 되지 못했죠. |
결혼도 미룰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이정은/26살 어린이집 교사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조금 더 돈을 모아서 이렇게 하자고 얘기를 했었는데 지금 당장 이 상황에서 어떻게. |
임대인 최 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했지만, 최 씨는 취재진과 만나기로 한 날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최 씨는 몇 년 전 부동산 광풍이 불던 시기, 임차인들의 돈으로 건물을 지어 자산을 불리려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강훈/변호사/참여연대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다수의 주택을 짓고, 거기에 토지 대금은 은행에서 이제 저당 대출로 받고, 그다음에 건축비는 임차인들한테서 받아서. 처음엔 다른 데서 자기가 자금을 동원했을지라도 결국은 그걸 다 임차인들한테서 받아 정리하는 방식으로 해서 본인 돈 안 들어가는 방식으로 그렇게 여러 채 건물을 지었던 사례 같습니다. |
당시 건축 업계에선 흔히 행해지던 방식. 하지만 주택 가격이 폭락하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김관기/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전세사기사건 피해자 지원 TF 위원장 주택 하나가 값이 뚝 떨어지면 그거 팔아도 안 되니까, 다른 데에서 마련해서 줄 수도 없고. 그 약속을 못 지킨 거죠. 주머니가 깊지 않은 사람들이 갭 투자로 나오는 거죠. 그러니까 사업의 위험을 부담할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이 임대인으로 나선 게 본질적인 문제죠. |
취약한 구조를 알아차리기 어려운 청년들이 희생양이 되어버렸습니다.
지수/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이 근방의 전세 평균이 2억 원 정도거든요. 근데 1억 5천, 1억 1천, 이 정도의 전세를 구하신 건 정말 저렴한 집 찾으신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정말 어린 연령대의 청년들이 저렴한 집을 찾다가 전세 사기를 당한 상황인 거죠. |
경찰은 지난 4월 임대인 최 씨를 사기 혐의로 송치했습니다. 검찰의 보완 수사 요구에 따라 다시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범행에 가담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며 불송치 했던 공인중개사무소 대표 김 모 씨에 대한 추가 수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 씨는 연희동 인근 피해자 약 80%의 계약을 중개했습니다.
우OO/27살 회사원 7년 동안 이 집주인을 봐온 결과,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공인중개사가 저에게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땅도 집주인에게 직접 알선을 했다고 하고, 이 땅에서 건물을 세우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도 집주인에게 줬고. |
취재진이 제공받은 계약 당시의 녹음 파일
김OO/신촌 인근 공인중개사(음성변조) (근저당이) 14억 2,680만 원과 지금 9억 4천8백만 원이 있어요. 그런데 이 중에서 이 금액(14억 원)을 아마 상환하실 거예요. 11월쯤 상환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이 금액은 아닐 거에요. 서류상으로 볼 때 매매가액 지금 한 40억 원 이상은 아주 보수적으로 본다고 그러면. 저 같으면 하루라도 빨리 입주를 할 것 같아요. 보증금 반환 받아 나가는 데 전혀 지장 없습니다. |
하지만 집주인은 기존의 빚을 갚지 않았습니다. 선순위 보증금이 얼마인지 적혀있을 곳은 0원이라고 표시했습니다.
김OO/신촌 인근 공인중개사(음성변조) (기자: 선순위가 뭐가 잡혀 있는지 안 나오니까 등기부등본 떼어봐도, 그때 뭐라고 한 거예요?) 그때 물어봤는지 안 물어봤는지 모르겠는데, 저는 그분이 힘들단 생각을 안 했었어요. (기자: 왜 이분들한테 괜찮은 물건이라고) 괜찮은 물건 맞았어요. |
지난달까지 전세 사기 피해자로 인정된 인원은 만 8천여 명, 4명 중 3명은 2030 청년들입니다.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 특별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상당수는 아직 온전히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매로 집이 팔리더라도 변제 우선순위를 따져보면 세입자 몫이 남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지수/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그것을 기다리는 것마저도 2년, 3년 어떻게 될지 모르고. 기다린 이후에 내가 배당을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
정치권에선 나라가 우선 빚을 갚아주자, 피해 주택을 사들여 손해 본 보증금을 보전해주자 등의 논의가 이어지곤 있지만 진전은 없습니다.
이강훈/변호사/참여연대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이거 못 받으면 회생하거나 파산하셔야 하는 상황에 들어가시는 분들이 많아요. 20대, 30대 초반에 파산, 회생부터 겪으면서 인생을 출발해야 하겠습니까? 우리 사회가 이런 청년들한테 기운을 주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용기를 북돋아 주는 그런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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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보다] 대학가를 덮친 탐욕 신촌 전세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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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4-07-21 23:11:55
이솔 씨는 서울 서대문구 신촌역 인근 학교에서 신대방역 근처까지 2시간 반 하굣길을 매일 걸어 다녔습니다.
만져본 적도 없는 대출금 1억 원과 이자를 갚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솔 씨는 3년 전, 대학원에 진학하며 신촌에 머무르기 시작했습니다. 전세보증금 1억 2천5백만 원, 5평짜리 원룸이었습니다. 갓 대학교를 졸업한 23살 학생이 대출 없이 구하기 어려운 금액이었습니다.
계약이 끝나갈 때쯤, 문 앞에 붙어 있던 경매 통보. 평온했던 솔 씨의 일상은 뒤틀렸습니다. 집주인은 보증금 반환을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습니다.
계약 기간이 끝난 지 10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이젠 단수, 경매 통보를 받아보는 건 예삿일입니다. 견디다 못해 일단 짐은 놔둔 채 도망치다시피 빠져나왔습니다.
솔 씨가 전세로 들어온 연희동 주택의 감정가는 29억 원 남짓. 하지만 기존에 잡혀 있는 근저당 액수만 23억 7천만 원입니다. 거기에 보증금을 못 돌려받은 세입자들이 임차권 등기를 설정한 금액만 10억 원이 넘습니다. 그마저도 집주인이 체납한 세금과 임차권 등기 설정을 안 한 세입자의 보증금은 빠진 액수입니다. 주택이 팔려도 솔 씨가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연희동엔 이 씨처럼 임대인 최 모 씨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가 80명 정도 더 있습니다. 대부분 비슷한 또래의 2030 청년들입니다.
26살 이정은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은 씨는 24살이던 2022년 2월, 연희동의 다섯 평짜리 원룸에 전세로 들어왔습니다. 전세보증금 1억 3백만 원, 그중 9,270만 원이 대출이었습니다.
보증금을 당연히 돌려받을 거라 믿었고,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려고 가계약금까지 넣었습니다.
결혼도 미룰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임대인 최 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했지만, 최 씨는 취재진과 만나기로 한 날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최 씨는 몇 년 전 부동산 광풍이 불던 시기, 임차인들의 돈으로 건물을 지어 자산을 불리려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건축 업계에선 흔히 행해지던 방식. 하지만 주택 가격이 폭락하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취약한 구조를 알아차리기 어려운 청년들이 희생양이 되어버렸습니다.
경찰은 지난 4월 임대인 최 씨를 사기 혐의로 송치했습니다. 검찰의 보완 수사 요구에 따라 다시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범행에 가담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며 불송치 했던 공인중개사무소 대표 김 모 씨에 대한 추가 수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 씨는 연희동 인근 피해자 약 80%의 계약을 중개했습니다.
취재진이 제공받은 계약 당시의 녹음 파일
하지만 집주인은 기존의 빚을 갚지 않았습니다. 선순위 보증금이 얼마인지 적혀있을 곳은 0원이라고 표시했습니다.
지난달까지 전세 사기 피해자로 인정된 인원은 만 8천여 명, 4명 중 3명은 2030 청년들입니다.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 특별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상당수는 아직 온전히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매로 집이 팔리더라도 변제 우선순위를 따져보면 세입자 몫이 남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정치권에선 나라가 우선 빚을 갚아주자, 피해 주택을 사들여 손해 본 보증금을 보전해주자 등의 논의가 이어지곤 있지만 진전은 없습니다.
만져본 적도 없는 대출금 1억 원과 이자를 갚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솔/26살 대학원생(가명) 신촌역으로 쭉 걸어서 광흥창 지나고, 국회의사당 지나서, 대방으로 가서 보라매공원 지나서 이렇게 오면 여기가 신대방이에요. 그 경로로 이렇게 항상 걸어왔었어요. 연구실 친한 오빠들, 언니들이 밥 사주고 커피 사주고, 이 정도였는데. 너무 미안해서, 그래서 연구실에 있지도 못하고 몇 번은. 이거라도 아껴서 밥을 먹어야겠다 싶어서 이렇게 걸어 다녔어요. |
솔 씨는 3년 전, 대학원에 진학하며 신촌에 머무르기 시작했습니다. 전세보증금 1억 2천5백만 원, 5평짜리 원룸이었습니다. 갓 대학교를 졸업한 23살 학생이 대출 없이 구하기 어려운 금액이었습니다.
이솔/26살 대학원생(가명) 1억 원은 제가 카카오뱅크 대출을 했었고, 나머지 2,500만 원은 저희 어머니가 제가 박사가 끝났을 때 외국에서 잠시 연수를 하게 되면 그때 쓰라고 모아두신 비용이었어요. |
계약이 끝나갈 때쯤, 문 앞에 붙어 있던 경매 통보. 평온했던 솔 씨의 일상은 뒤틀렸습니다. 집주인은 보증금 반환을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습니다.
이솔/26살 대학원생(가명) 최근에 사업이 많이 어려워져서 그래서 지금 은행 빚 상환을 못해서 그렇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 제가 연락할 때마다 다음 주엔 자금이 들어온다. 그다음 주에 자금이 들어온다. |
계약 기간이 끝난 지 10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이젠 단수, 경매 통보를 받아보는 건 예삿일입니다. 견디다 못해 일단 짐은 놔둔 채 도망치다시피 빠져나왔습니다.
이솔/26살 대학원생(가명) ‘진짜 못 살겠다, 여기 살다 정신병 걸리겠다’였어요. 집도 점점 무너지고, 아래는, 1층은 잠기고 있고. 제 방에 곰팡이 피고 있어서, 모든 옷에, 물건들에 다 냄새가 배고 있고. 화장실도 벽이 무너지고 있고. |
솔 씨가 전세로 들어온 연희동 주택의 감정가는 29억 원 남짓. 하지만 기존에 잡혀 있는 근저당 액수만 23억 7천만 원입니다. 거기에 보증금을 못 돌려받은 세입자들이 임차권 등기를 설정한 금액만 10억 원이 넘습니다. 그마저도 집주인이 체납한 세금과 임차권 등기 설정을 안 한 세입자의 보증금은 빠진 액수입니다. 주택이 팔려도 솔 씨가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연희동엔 이 씨처럼 임대인 최 모 씨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가 80명 정도 더 있습니다. 대부분 비슷한 또래의 2030 청년들입니다.
26살 이정은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은 씨는 24살이던 2022년 2월, 연희동의 다섯 평짜리 원룸에 전세로 들어왔습니다. 전세보증금 1억 3백만 원, 그중 9,270만 원이 대출이었습니다.
이정은/26살 어린이집 교사 제가 계산을 해봤거든요. 지금 가지고 있는 월급에서 백만 원을 만약에 이렇게 (저축)한다고 하면, 10년. 10년, 약 9년에서 10년. 근데 또 그 외에 추가적으로 이자는 또 이자대로 내고서. 그렇게 더 생각하니까 이게 더 너무 막막한 거예요. |
보증금을 당연히 돌려받을 거라 믿었고,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려고 가계약금까지 넣었습니다.
이정은/26살 어린이집 교사 방이 하나 더 있는 집이었어요. 제가…죄송해요. 조금 더 큰 집으로 가고 싶었던 마음에 이제 그랬는데, 네 그렇게 되지 못했죠. |
결혼도 미룰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이정은/26살 어린이집 교사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조금 더 돈을 모아서 이렇게 하자고 얘기를 했었는데 지금 당장 이 상황에서 어떻게. |
임대인 최 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했지만, 최 씨는 취재진과 만나기로 한 날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최 씨는 몇 년 전 부동산 광풍이 불던 시기, 임차인들의 돈으로 건물을 지어 자산을 불리려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강훈/변호사/참여연대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다수의 주택을 짓고, 거기에 토지 대금은 은행에서 이제 저당 대출로 받고, 그다음에 건축비는 임차인들한테서 받아서. 처음엔 다른 데서 자기가 자금을 동원했을지라도 결국은 그걸 다 임차인들한테서 받아 정리하는 방식으로 해서 본인 돈 안 들어가는 방식으로 그렇게 여러 채 건물을 지었던 사례 같습니다. |
당시 건축 업계에선 흔히 행해지던 방식. 하지만 주택 가격이 폭락하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김관기/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전세사기사건 피해자 지원 TF 위원장 주택 하나가 값이 뚝 떨어지면 그거 팔아도 안 되니까, 다른 데에서 마련해서 줄 수도 없고. 그 약속을 못 지킨 거죠. 주머니가 깊지 않은 사람들이 갭 투자로 나오는 거죠. 그러니까 사업의 위험을 부담할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이 임대인으로 나선 게 본질적인 문제죠. |
취약한 구조를 알아차리기 어려운 청년들이 희생양이 되어버렸습니다.
지수/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이 근방의 전세 평균이 2억 원 정도거든요. 근데 1억 5천, 1억 1천, 이 정도의 전세를 구하신 건 정말 저렴한 집 찾으신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정말 어린 연령대의 청년들이 저렴한 집을 찾다가 전세 사기를 당한 상황인 거죠. |
경찰은 지난 4월 임대인 최 씨를 사기 혐의로 송치했습니다. 검찰의 보완 수사 요구에 따라 다시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범행에 가담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며 불송치 했던 공인중개사무소 대표 김 모 씨에 대한 추가 수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 씨는 연희동 인근 피해자 약 80%의 계약을 중개했습니다.
우OO/27살 회사원 7년 동안 이 집주인을 봐온 결과,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공인중개사가 저에게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땅도 집주인에게 직접 알선을 했다고 하고, 이 땅에서 건물을 세우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도 집주인에게 줬고. |
취재진이 제공받은 계약 당시의 녹음 파일
김OO/신촌 인근 공인중개사(음성변조) (근저당이) 14억 2,680만 원과 지금 9억 4천8백만 원이 있어요. 그런데 이 중에서 이 금액(14억 원)을 아마 상환하실 거예요. 11월쯤 상환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이 금액은 아닐 거에요. 서류상으로 볼 때 매매가액 지금 한 40억 원 이상은 아주 보수적으로 본다고 그러면. 저 같으면 하루라도 빨리 입주를 할 것 같아요. 보증금 반환 받아 나가는 데 전혀 지장 없습니다. |
하지만 집주인은 기존의 빚을 갚지 않았습니다. 선순위 보증금이 얼마인지 적혀있을 곳은 0원이라고 표시했습니다.
김OO/신촌 인근 공인중개사(음성변조) (기자: 선순위가 뭐가 잡혀 있는지 안 나오니까 등기부등본 떼어봐도, 그때 뭐라고 한 거예요?) 그때 물어봤는지 안 물어봤는지 모르겠는데, 저는 그분이 힘들단 생각을 안 했었어요. (기자: 왜 이분들한테 괜찮은 물건이라고) 괜찮은 물건 맞았어요. |
지난달까지 전세 사기 피해자로 인정된 인원은 만 8천여 명, 4명 중 3명은 2030 청년들입니다.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 특별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상당수는 아직 온전히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매로 집이 팔리더라도 변제 우선순위를 따져보면 세입자 몫이 남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지수/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그것을 기다리는 것마저도 2년, 3년 어떻게 될지 모르고. 기다린 이후에 내가 배당을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
정치권에선 나라가 우선 빚을 갚아주자, 피해 주택을 사들여 손해 본 보증금을 보전해주자 등의 논의가 이어지곤 있지만 진전은 없습니다.
이강훈/변호사/참여연대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이거 못 받으면 회생하거나 파산하셔야 하는 상황에 들어가시는 분들이 많아요. 20대, 30대 초반에 파산, 회생부터 겪으면서 인생을 출발해야 하겠습니까? 우리 사회가 이런 청년들한테 기운을 주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용기를 북돋아 주는 그런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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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수 기자 realwate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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