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으로 병원 떠나는 간호사들…‘주 4일제’ 했더니?

입력 2024.07.24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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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낮이 바뀌는 교대근무, 새벽까지 이어지는 연장근무, 충분한 휴게 시간을 갖기 어려운 고강도 노동까지. 간호사들이 흔히 겪는 '번 아웃(Burnout, 육체적·정신적 소진 상태)' 증상의 배경입니다.

급기야 3년 차 미만 신규 간호사들의 '사직률'이 50%에 달하자, 세브란스병원이 노사 합의로 '주 4일제'라는 파격적인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지난해엔 30명, 올해는 50명이 이 시범사업에 참여했습니다. 주 4일제 참여 간호사들의 임금은 10%가량만 삭감하고, 대체인력 채용 등 나머지 비용은 병원이 부담했습니다.

이들의 일과 생활, 그리고 건강엔 1년간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요?

[관련 기사] ‘번아웃’ 간호사 주4일제 1년…‘퇴사율 34%→0%’ 찍기도 (2024.07.23. '뉴스7')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18978

■ 직장에선? "퇴사 생각이 줄고, 더 친절해졌다"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는 신촌과 강남 세브란스병원 주 4일제 시범사업 1년(2023.1.~12.)에 대한 평가 결과를 어제(23일) 발표했습니다.

우선, 가장 큰 걱정거리였던 '퇴사율'이 크게 줄었습니다. 2018~2022년 3년 차 미만 퇴사율이 34%를 넘었던 신촌 세브란스병원 171병동의 경우, 지난해 퇴사자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친절 건수'는 1.5배에서 2.6배까지 증가했습니다. 간호사들이 갖게 된 몸과 마음의 여유가 의료서비스의 질 향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민애 / 신촌 세브란스병원 '주 4일제' 간호사
"환자·보호자를 응대함에 있어서도 제가 더 나은 몸 상태로 대할 수 있게 되니까 이전보다 좀 더 섬세하게 볼 수 있게 됐고, 예민함도 좀 낮아지게 됐습니다. 좀 더 친절하게 한마디 더 안부를 건넬 수 있는 그런 마음이 된 것 같습니다."

병동 분위기도 변화했습니다. 특히 퇴사율이 높았던 저연차 간호사들이 일과 삶의 균형을 누리게 되면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밝아졌다는 게 현장 간호사들의 이야기입니다.

김재희 / 신촌 세브란스병원 '주 4일제' 간호사
"밑에 애들이 분위기가 밝아지고 좋아지니까 이게 이제 위로도 올라오는 것 같아요. 저연차 친구들이 확실히 밝은 에너지를 많이 주니까 저희도 밝아지는 것 같아요."

■ 집에선? "여가시간이 늘고, 행복도가 높아졌다"

개인의 생활에도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우선 휴일 여가시간이 늘면서 행복도와 일·생활 균형지수가 고르게 높아졌습니다.

이전엔 퇴근하면 부족한 수면시간을 채우기 바빴지만, 이젠 운동이나 공부 등 자기 계발을 시작하게 됐고, 가족·친구·연인과 보낼 수 있는 시간도 늘었다고 합니다.


이민애 / 신촌 세브란스병원 '주 4일제' 간호사
"이전에는 운동이나 새로운 시도를 하기가 어려웠는데 주 4일제를 하고 나서는 필라테스나 기존에 미뤄뒀던 영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가족이나 친구와 만날 시간도 이제 확실히 보장되면서 해보지 못했던 연애도 한번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요새는 소개팅도 나가 보고 있습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고 있는 간호사들에게도 주 4일제는 숨통이 트이는 제도입니다. 육아휴직 없이도 돌봄 부담이 줄어 만족도가 높습니다.

김재희 / 신촌 세브란스병원 '주 4일제' 간호사
"정시 출근, 정시 퇴근하는 직장인분들도 당연히 힘들겠지만 잠을 잘 자지 못하고 생체리듬이 다 깨지고 하니까 이런 짜증들이 육아하고 아기들한테 사실 투사되는 경우들이 많거든요. 근데 확실히 그런 게 줄었고, 아기들이랑 시간을 보내는 것도 훨씬 늘었습니다. 그리고 아기들을 봤을 때 안정적, 정서적으로 조금 편안해진 것 같습니다."

지난 19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김재희 간호사는 세 아이 육아를 위해 ‘주 4일제’를 선택했다.지난 19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김재희 간호사는 세 아이 육아를 위해 ‘주 4일제’를 선택했다.

■ 건강은? "덜 우울하고, 더 잘 잔다"

간호사들의 건강 지표도 확실히 개선됐습니다. 수면장애는 26.1%에서 13.6%로 줄었고, 근골격계 질환도 34.8%에서 18.2%로 줄었습니다. 우울감은 4.5%에서 0%까지 떨어졌습니다.

이민애 / 신촌 세브란스병원 '주 4일제' 간호사
"제가 입사를 하고 난 이후에 아무래도 수면을 잘 못 하고 업무의 강도도 높다 보니 그로 인해서 생리 주기가 굉장히 불순해지더라고요. 생리통도 너무 심해져서 응급실도 몇 번 갔었습니다. 주 4일제를 하면 그래도 한 번 몸을 회복할 시간도 있고 제 여유도 즐길 시간이 있다 보니까 심리적으로도 많이 안정되고 신체적인 컨디션도 많이 안정됐습니다."

퇴근 후 체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개선됐다, 일하며 받는 스트레스가 개선됐다, 일의 피로도가 줄었다는 응답도 골고루 확인됐습니다.

지난 19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3년 차 이민애 간호사. 이 간호사는 주 4일제 시범사업 참여 이후 건강과 삶의 만족도가 모두 개선됐다고 말했다.지난 19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3년 차 이민애 간호사. 이 간호사는 주 4일제 시범사업 참여 이후 건강과 삶의 만족도가 모두 개선됐다고 말했다.

■ 남은 건 이제 정부 몫…간호사 퇴사율 줄면 결국은 비용 감축 효과 이어져

올해도 세브란스병원 노조는 병원 측에 시범사업 규모 확대를 요구했습니다. 제도 만족도가 높은 만큼, 궁극적으로는 전 병동에서 주 4일제를 시행했으면 하는 바람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장 주 4일제 간호사들의 대체인력을 채용해야 하는 병원 입장에서는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병원이 시범사업에 드는 비용을 상당 부분 부담하고 있는 구조인데, 이를 더 확대하려면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입니다.

이번 시범사업을 연구한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주 4일제와 같은 일하는 방식의 변화도 정부가 시범사업을 통해서 단계적으로 확장모델을 검토할 시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주 4일제로 신규 간호사의 퇴사율이 줄면 교육훈련 투자 비용이 감소하고 실업급여(구직급여)가 지출되지 않는다"며 "단순 생산성 제고뿐만 아니라 고용보험기금의 사회경제적 감축 효과도 존재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 소장은 현행 보건의료인력지원법에도 정부가 보건의료인력의 ▲장기근속을 유도하기 위한 지원사업 ▲적정 노동시간 확보 및 근무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 ▲교대근무 또는 야간근무하는 인력의 건강권을 보호하고 근무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한 지원을 하도록 명시돼 있다고 짚었습니다.

면접조사에 참여한 권혜원 동덕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일단 내가 쉬고 내 몸이 편안해지고 심리적으로도 스트레스가 줄어들 때 환자에 대한 업무 집중도가 훨씬 늘었다"며 "(참여자들도) 시범사업으로 그치지 않고 전체 병동으로 확대되고, 희망하는 사람이 다 해보길 원한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래픽: 이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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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7-24 06: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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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낮이 바뀌는 교대근무, 새벽까지 이어지는 연장근무, 충분한 휴게 시간을 갖기 어려운 고강도 노동까지. 간호사들이 흔히 겪는 '번 아웃(Burnout, 육체적·정신적 소진 상태)' 증상의 배경입니다.

급기야 3년 차 미만 신규 간호사들의 '사직률'이 50%에 달하자, 세브란스병원이 노사 합의로 '주 4일제'라는 파격적인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지난해엔 30명, 올해는 50명이 이 시범사업에 참여했습니다. 주 4일제 참여 간호사들의 임금은 10%가량만 삭감하고, 대체인력 채용 등 나머지 비용은 병원이 부담했습니다.

이들의 일과 생활, 그리고 건강엔 1년간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요?

[관련 기사] ‘번아웃’ 간호사 주4일제 1년…‘퇴사율 34%→0%’ 찍기도 (2024.07.23. '뉴스7')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18978

■ 직장에선? "퇴사 생각이 줄고, 더 친절해졌다"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는 신촌과 강남 세브란스병원 주 4일제 시범사업 1년(2023.1.~12.)에 대한 평가 결과를 어제(23일) 발표했습니다.

우선, 가장 큰 걱정거리였던 '퇴사율'이 크게 줄었습니다. 2018~2022년 3년 차 미만 퇴사율이 34%를 넘었던 신촌 세브란스병원 171병동의 경우, 지난해 퇴사자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친절 건수'는 1.5배에서 2.6배까지 증가했습니다. 간호사들이 갖게 된 몸과 마음의 여유가 의료서비스의 질 향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민애 / 신촌 세브란스병원 '주 4일제' 간호사
"환자·보호자를 응대함에 있어서도 제가 더 나은 몸 상태로 대할 수 있게 되니까 이전보다 좀 더 섬세하게 볼 수 있게 됐고, 예민함도 좀 낮아지게 됐습니다. 좀 더 친절하게 한마디 더 안부를 건넬 수 있는 그런 마음이 된 것 같습니다."

병동 분위기도 변화했습니다. 특히 퇴사율이 높았던 저연차 간호사들이 일과 삶의 균형을 누리게 되면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밝아졌다는 게 현장 간호사들의 이야기입니다.

김재희 / 신촌 세브란스병원 '주 4일제' 간호사
"밑에 애들이 분위기가 밝아지고 좋아지니까 이게 이제 위로도 올라오는 것 같아요. 저연차 친구들이 확실히 밝은 에너지를 많이 주니까 저희도 밝아지는 것 같아요."

■ 집에선? "여가시간이 늘고, 행복도가 높아졌다"

개인의 생활에도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우선 휴일 여가시간이 늘면서 행복도와 일·생활 균형지수가 고르게 높아졌습니다.

이전엔 퇴근하면 부족한 수면시간을 채우기 바빴지만, 이젠 운동이나 공부 등 자기 계발을 시작하게 됐고, 가족·친구·연인과 보낼 수 있는 시간도 늘었다고 합니다.


이민애 / 신촌 세브란스병원 '주 4일제' 간호사
"이전에는 운동이나 새로운 시도를 하기가 어려웠는데 주 4일제를 하고 나서는 필라테스나 기존에 미뤄뒀던 영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가족이나 친구와 만날 시간도 이제 확실히 보장되면서 해보지 못했던 연애도 한번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요새는 소개팅도 나가 보고 있습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고 있는 간호사들에게도 주 4일제는 숨통이 트이는 제도입니다. 육아휴직 없이도 돌봄 부담이 줄어 만족도가 높습니다.

김재희 / 신촌 세브란스병원 '주 4일제' 간호사
"정시 출근, 정시 퇴근하는 직장인분들도 당연히 힘들겠지만 잠을 잘 자지 못하고 생체리듬이 다 깨지고 하니까 이런 짜증들이 육아하고 아기들한테 사실 투사되는 경우들이 많거든요. 근데 확실히 그런 게 줄었고, 아기들이랑 시간을 보내는 것도 훨씬 늘었습니다. 그리고 아기들을 봤을 때 안정적, 정서적으로 조금 편안해진 것 같습니다."

지난 19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김재희 간호사는 세 아이 육아를 위해 ‘주 4일제’를 선택했다.
■ 건강은? "덜 우울하고, 더 잘 잔다"

간호사들의 건강 지표도 확실히 개선됐습니다. 수면장애는 26.1%에서 13.6%로 줄었고, 근골격계 질환도 34.8%에서 18.2%로 줄었습니다. 우울감은 4.5%에서 0%까지 떨어졌습니다.

이민애 / 신촌 세브란스병원 '주 4일제' 간호사
"제가 입사를 하고 난 이후에 아무래도 수면을 잘 못 하고 업무의 강도도 높다 보니 그로 인해서 생리 주기가 굉장히 불순해지더라고요. 생리통도 너무 심해져서 응급실도 몇 번 갔었습니다. 주 4일제를 하면 그래도 한 번 몸을 회복할 시간도 있고 제 여유도 즐길 시간이 있다 보니까 심리적으로도 많이 안정되고 신체적인 컨디션도 많이 안정됐습니다."

퇴근 후 체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개선됐다, 일하며 받는 스트레스가 개선됐다, 일의 피로도가 줄었다는 응답도 골고루 확인됐습니다.

지난 19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3년 차 이민애 간호사. 이 간호사는 주 4일제 시범사업 참여 이후 건강과 삶의 만족도가 모두 개선됐다고 말했다.
■ 남은 건 이제 정부 몫…간호사 퇴사율 줄면 결국은 비용 감축 효과 이어져

올해도 세브란스병원 노조는 병원 측에 시범사업 규모 확대를 요구했습니다. 제도 만족도가 높은 만큼, 궁극적으로는 전 병동에서 주 4일제를 시행했으면 하는 바람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장 주 4일제 간호사들의 대체인력을 채용해야 하는 병원 입장에서는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병원이 시범사업에 드는 비용을 상당 부분 부담하고 있는 구조인데, 이를 더 확대하려면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입니다.

이번 시범사업을 연구한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주 4일제와 같은 일하는 방식의 변화도 정부가 시범사업을 통해서 단계적으로 확장모델을 검토할 시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주 4일제로 신규 간호사의 퇴사율이 줄면 교육훈련 투자 비용이 감소하고 실업급여(구직급여)가 지출되지 않는다"며 "단순 생산성 제고뿐만 아니라 고용보험기금의 사회경제적 감축 효과도 존재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 소장은 현행 보건의료인력지원법에도 정부가 보건의료인력의 ▲장기근속을 유도하기 위한 지원사업 ▲적정 노동시간 확보 및 근무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 ▲교대근무 또는 야간근무하는 인력의 건강권을 보호하고 근무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한 지원을 하도록 명시돼 있다고 짚었습니다.

면접조사에 참여한 권혜원 동덕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일단 내가 쉬고 내 몸이 편안해지고 심리적으로도 스트레스가 줄어들 때 환자에 대한 업무 집중도가 훨씬 늘었다"며 "(참여자들도) 시범사업으로 그치지 않고 전체 병동으로 확대되고, 희망하는 사람이 다 해보길 원한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래픽: 이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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