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 승진’ 촉망받던 한 젊은 경찰, 왜 세상을 등졌나? [취재후]
입력 2024.07.25 (15:44)
수정 2024.07.25 (18:4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서울의 한 경찰서 앞에 조화가 늘어섰습니다. 조화를 보낸 사람들은 전국 각지에서 근무하고 있는 현장 경찰관들입니다.
지난 18일, 이 경찰서에서 근무하던 30대 송 모 경위가 '업무 고충'으로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이 알려졌습니다.
■젊은 경찰이 남긴 메시지 "길이 안 보여"
송 경위는 촉망받은 경찰이었습니다.
2016년 순경 경채로 입직한 뒤 올해 초 경위로 '초고속' 승진했습니다. 5년 전 쓰러진 70대 노인의 생명을 살려 KBS 뉴스에 보도됐을 만큼 직업정신도 투철했습니다.
"성품이 워낙 밝고 순진하고. 표창도 많이 받고. 너무나 성실하게 살아왔어요." - 송○○ 경위 아버지 |
하지만 송 경위는 지난 2월 수사 부서로 발령받은 뒤부터 업무 고충을 호소했습니다.
입직 이례 처음 맡게 된 수사 업무였지만, 제대로 적응할 겨를도 없이 송 경위 앞으로 사건이 쏟아졌습니다.
"수사과로 전입을 오면서 전에 근무했던 직원의 사건을 한 40건 정도를 받았다고 해요. 수사를 처음 해보는 사람이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보여요. 저도 수사를 15년 정도 했는데. 수사 한 번도 안 해본 사림이 40건, 50건. 이건 길이 없어요." - 민관기 / 전국경찰직장협의회 위원장 |
송 경위는 동료들에게 고충을 토로했습니다.
부서에서 나가고 싶어도 "인계서조차 못 쓸 정도"라고 했고, "죽을 거 같다. 길이 안 보인다"고 호소했습니다.
■담당 사건 50여 건…"어떻게 버티겠어요"
송 경위가 담당한 사건은 50여 건.
처리해야 할 사건이 쌓이면서 송 경위는 결국 서울경찰청 수사부 '장기사건' 점검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자신이 속한 팀은 물론 소속 경찰서의 성과와도 연결된 문제인 터라 송 경위는 이때부터 더 큰 심리적 부담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직원이 장기 사건 보유 하위 20%에 해당된 거예요. 근데 상식적으로 수사를 모르는 사람이 오자마자 50건 이상을 받은 거잖아요. 이거 (사건을) 절대 못 쳐내요. 무슨 재주로 하냐고요." - 민관기 / 전국경찰직장협의회 위원장 |
결국 송 경위는 인사 고충을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하반기 다른 부서로 이동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송 경위는 '업무 과중'으로 인한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숨졌습니다. 서울경찰청 방문 점검을 나흘 앞두고였습니다.
"조직 내에 문제가 있었을 거 아니에요. 업무 과다라든가, 업무량 증가라든가. 사건이 70여 개 이 정도 된다면 어떻게 버티겠어요." - 송○○ 경위 아버지 |
■"송 경위의 죽음…남 일 같지 않습니다"
송 경위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경찰 내부는 동요했습니다.
일선 수사관의 업무가 지나치게 많다는 동료 경찰들의 성토가 잇따랐습니다.
"송 경위님의 죽음은 수사를 잠깐이라도 해본 경찰이라면 절대 남 일같이 느낄 수가 없습니다. 수사경찰의 대부분이 송 경위님과 같은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일선 경찰서 직원들은 한 번에 서른 건 이상의 사건을 담당합니다. 하나 겨우 다 끝냈다 싶으면 두 건, 세 건이 더 들어옵니다. 위에서는 3개월 안에 어떻게든 종결하라고 닦달하고, 그 안에 못 끝내면 사건은 쌓이고 문책과 징계가 뒤따릅니다." - 익명의 경찰 / 직장인 커뮤니티 |
수사 경찰의 업무가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수사 인력은 그대로인데 고소·고발 사건은 매년 늘어나고 있습니다. 수사관 한 명이 담당해야 할 사건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또 3년 전 검·경 수사권 조정과 지난해 법무부의 '고소·고발 반려제도' 폐지 역시 경찰 수사관들의 업무 과중에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3년 전 수사·기소권 분리 이후 수사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방안으로 '수사 완결성' 때문에 수사가 더 힘들어지고 있고요. 고소·고발을 하는 국민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접수되는 사건의 양은 많은 데 비해서 수사 인력은 충원되지 않은 거죠." - 민관기 / 전국경찰직장협의회 위원장 |
촉망받던 경찰의 죽음.
동료들은 송 경위의 죽음을 계기로 경찰 지휘부에 수사 환경의 개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픽: 권세라)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상담 전화 ☎1393, 정신건강상담 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고속 승진’ 촉망받던 한 젊은 경찰, 왜 세상을 등졌나? [취재후]
-
- 입력 2024-07-25 15:44:12
- 수정2024-07-25 18:40:43
서울의 한 경찰서 앞에 조화가 늘어섰습니다. 조화를 보낸 사람들은 전국 각지에서 근무하고 있는 현장 경찰관들입니다.
지난 18일, 이 경찰서에서 근무하던 30대 송 모 경위가 '업무 고충'으로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이 알려졌습니다.
■젊은 경찰이 남긴 메시지 "길이 안 보여"
송 경위는 촉망받은 경찰이었습니다.
2016년 순경 경채로 입직한 뒤 올해 초 경위로 '초고속' 승진했습니다. 5년 전 쓰러진 70대 노인의 생명을 살려 KBS 뉴스에 보도됐을 만큼 직업정신도 투철했습니다.
"성품이 워낙 밝고 순진하고. 표창도 많이 받고. 너무나 성실하게 살아왔어요." - 송○○ 경위 아버지 |
하지만 송 경위는 지난 2월 수사 부서로 발령받은 뒤부터 업무 고충을 호소했습니다.
입직 이례 처음 맡게 된 수사 업무였지만, 제대로 적응할 겨를도 없이 송 경위 앞으로 사건이 쏟아졌습니다.
"수사과로 전입을 오면서 전에 근무했던 직원의 사건을 한 40건 정도를 받았다고 해요. 수사를 처음 해보는 사람이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보여요. 저도 수사를 15년 정도 했는데. 수사 한 번도 안 해본 사림이 40건, 50건. 이건 길이 없어요." - 민관기 / 전국경찰직장협의회 위원장 |
송 경위는 동료들에게 고충을 토로했습니다.
부서에서 나가고 싶어도 "인계서조차 못 쓸 정도"라고 했고, "죽을 거 같다. 길이 안 보인다"고 호소했습니다.
■담당 사건 50여 건…"어떻게 버티겠어요"
송 경위가 담당한 사건은 50여 건.
처리해야 할 사건이 쌓이면서 송 경위는 결국 서울경찰청 수사부 '장기사건' 점검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자신이 속한 팀은 물론 소속 경찰서의 성과와도 연결된 문제인 터라 송 경위는 이때부터 더 큰 심리적 부담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직원이 장기 사건 보유 하위 20%에 해당된 거예요. 근데 상식적으로 수사를 모르는 사람이 오자마자 50건 이상을 받은 거잖아요. 이거 (사건을) 절대 못 쳐내요. 무슨 재주로 하냐고요." - 민관기 / 전국경찰직장협의회 위원장 |
결국 송 경위는 인사 고충을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하반기 다른 부서로 이동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송 경위는 '업무 과중'으로 인한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숨졌습니다. 서울경찰청 방문 점검을 나흘 앞두고였습니다.
"조직 내에 문제가 있었을 거 아니에요. 업무 과다라든가, 업무량 증가라든가. 사건이 70여 개 이 정도 된다면 어떻게 버티겠어요." - 송○○ 경위 아버지 |
■"송 경위의 죽음…남 일 같지 않습니다"
송 경위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경찰 내부는 동요했습니다.
일선 수사관의 업무가 지나치게 많다는 동료 경찰들의 성토가 잇따랐습니다.
"송 경위님의 죽음은 수사를 잠깐이라도 해본 경찰이라면 절대 남 일같이 느낄 수가 없습니다. 수사경찰의 대부분이 송 경위님과 같은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일선 경찰서 직원들은 한 번에 서른 건 이상의 사건을 담당합니다. 하나 겨우 다 끝냈다 싶으면 두 건, 세 건이 더 들어옵니다. 위에서는 3개월 안에 어떻게든 종결하라고 닦달하고, 그 안에 못 끝내면 사건은 쌓이고 문책과 징계가 뒤따릅니다." - 익명의 경찰 / 직장인 커뮤니티 |
수사 경찰의 업무가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수사 인력은 그대로인데 고소·고발 사건은 매년 늘어나고 있습니다. 수사관 한 명이 담당해야 할 사건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또 3년 전 검·경 수사권 조정과 지난해 법무부의 '고소·고발 반려제도' 폐지 역시 경찰 수사관들의 업무 과중에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3년 전 수사·기소권 분리 이후 수사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방안으로 '수사 완결성' 때문에 수사가 더 힘들어지고 있고요. 고소·고발을 하는 국민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접수되는 사건의 양은 많은 데 비해서 수사 인력은 충원되지 않은 거죠." - 민관기 / 전국경찰직장협의회 위원장 |
촉망받던 경찰의 죽음.
동료들은 송 경위의 죽음을 계기로 경찰 지휘부에 수사 환경의 개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픽: 권세라)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상담 전화 ☎1393, 정신건강상담 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
이예린 기자 eyerin@kbs.co.kr
이예린 기자의 기사 모음
-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