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컵에 나눠마신 커피’ 외 다른 경로? (사건 재구성)
입력 2024.07.25 (16:47)
수정 2024.07.25 (16:48)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지난 15일 사고가 발생한 봉화군의 한 경로당. 열흘 넘게 경찰 출입금지 통제선이 쳐져 있다.
천3백여 명이 사는 경북 봉화군의 한 마을. 주민 5명이 중태에 빠진 살충제 음독 사건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60명 가까운 경찰이 투입돼 전담수사팀이 꾸려졌지만, 열흘 넘게 수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용의자는 아직 특정되지 않았습니다. 피해 주민 2명은 여전히 위중한 상태입니다.
■피해자들 함께 있었던 공간은 '경로당'
초복이었던 지난 15일 새벽, 경로당 회장 A 씨 등 4명은 봉화읍 그라운드골프장에서 1시간 넘게 운동했습니다. 이후 이들은 경로당 단체 점심 식사 자리에 참석했습니다. 마을의 한 식당에서 같은 식탁에 앉아 오리 불고기를 먹었습니다. 이후 경로당에 잠깐 들렀다가 헤어졌습니다.
80대 할머니 B 씨도 이날 식당에서 점심 식사한 후 저녁 늦게까지 경로당에서 다른 할머니들과 화투를 치다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경로당 내부.
■'종이컵에 나눠마신 커피'…피해자 1명은 안 마셔
경로당에 간 A 씨 등 4명은 주방 냉장고에서 냉커피를 꺼내 종이컵에 나눠 마셨습니다. 냉커피는 A 씨가 1 리터짜리 플라스틱 통에 커피 믹스 여러 개를 섞어 미리 타둔 겁니다. 한 경로당 회원은 "날씨가 더워 경로당 회원들이 매번 커피를 타 먹기 힘들어해 회장 A 씨가 큰 통에 커피나 식혜를 만들어 냉장고에 자주 넣어둔다"며 "(사고 당일) 경로당엔 방이 여러 개여서 4명(피해자)만 주방에 들어가 먹었고 다른 사람들은 그때 마실 겨를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커피를 나눠마신 이들은 경로당에서 나와 각자 복지회관에 가거나 집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경로당에 있었던 B 씨는 이날 냉커피를 마시지 않았다는 진술이 나왔습니다.
경로당 내부.
■피해자 1명 사흘만에 병원행…"시간차 증상 배경 수사"
커피를 마신 A 씨 등 3명은 사고 당일 잇따라 복통과 호흡 곤란 등의 증상을 보이며 쓰러졌습니다.
이어 다음 날 오전엔, 함께 커피를 마셨던 또 다른 회원이 집에서 탈수 증상으로 정신을 잃었습니다. 이 회원은 전날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도 식은땀을 많이 흘렸습니다.
이들 네 명의 위 세척액에선 살충제 2가지 성분이 검출됐습니다.
사고 발생 사흘 뒤, B 씨에게도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B 씨는 이날 오전에 노인 일자리사업에 참여했습니다.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조퇴하려다, 참고 일을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로당 한 회원은 "B 씨는 오후에 들린 읍내병원에서 '그날 오리고기 먹고 음료수 먹은 게 속이 안 좋다. 나도 비슷하니까 안동병원에 보내달라'해서 안동에 가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B 씨의 위 세척액에도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습니다. 경찰은 "B 씨가 뒤늦게 농약을 마셨거나, 증상이 늦게 발현됐거나, 또 다른 경로로 음독하게 됐는지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안동병원 전경.
■현장감식 감정물만 3백여 점…"용의자 특정 단계"
경로당 건물 내외부엔 CCTV가 없거나 고장 났습니다.
경북경찰청 수사전담팀은 주변 CCTV와 차량 블랙박스 등 86곳의 광범위한 영상 자료를 확보해 분석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경로당에서만 두세 번 현장 감식을 진행했습니다. 경로당 식기류 외에도 이불류, 일반쓰레기 등을 수거해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피해자들이 커피를 마신 컵과 용기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장 감식은 피해 주민 집에도 진행됐습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물 311점을 의뢰한 상태입니다.
마을 주민 등 관련자 56명에 대한 조사도 마쳤습니다. 경찰은 "모든 증거 자료를 종합해 면밀히 분석 중"이라며 용의자 특정 단계에 들어갔습니다.
농약 업체에서 판매 중인 살충제 성분 농약 .
■갈등 관계?…"계획된 범행 가능성"
취재진이 만난 경로당 회원 10여 명은 모두 "사이가 너무 좋았다. 최근에 싸웠던 일도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을 토대로 경로당 내 누군가가 고의로 커피에 살충제 성분을 넣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경찰은 주민 간의 갈등이나 원한 관계도 파악하고 있습니다. 또 범행 대상이 특정인인지 불특정 다수인지도 검증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또, 피해자 5명 가운데 건강을 회복 중인 3명에 대한 대면 조사도 조만간 진행될 예정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종이컵에 나눠마신 커피’ 외 다른 경로? (사건 재구성)
-
- 입력 2024-07-25 16:47:53
- 수정2024-07-25 16:48:09
천3백여 명이 사는 경북 봉화군의 한 마을. 주민 5명이 중태에 빠진 살충제 음독 사건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60명 가까운 경찰이 투입돼 전담수사팀이 꾸려졌지만, 열흘 넘게 수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용의자는 아직 특정되지 않았습니다. 피해 주민 2명은 여전히 위중한 상태입니다.
■피해자들 함께 있었던 공간은 '경로당'
초복이었던 지난 15일 새벽, 경로당 회장 A 씨 등 4명은 봉화읍 그라운드골프장에서 1시간 넘게 운동했습니다. 이후 이들은 경로당 단체 점심 식사 자리에 참석했습니다. 마을의 한 식당에서 같은 식탁에 앉아 오리 불고기를 먹었습니다. 이후 경로당에 잠깐 들렀다가 헤어졌습니다.
80대 할머니 B 씨도 이날 식당에서 점심 식사한 후 저녁 늦게까지 경로당에서 다른 할머니들과 화투를 치다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종이컵에 나눠마신 커피'…피해자 1명은 안 마셔
경로당에 간 A 씨 등 4명은 주방 냉장고에서 냉커피를 꺼내 종이컵에 나눠 마셨습니다. 냉커피는 A 씨가 1 리터짜리 플라스틱 통에 커피 믹스 여러 개를 섞어 미리 타둔 겁니다. 한 경로당 회원은 "날씨가 더워 경로당 회원들이 매번 커피를 타 먹기 힘들어해 회장 A 씨가 큰 통에 커피나 식혜를 만들어 냉장고에 자주 넣어둔다"며 "(사고 당일) 경로당엔 방이 여러 개여서 4명(피해자)만 주방에 들어가 먹었고 다른 사람들은 그때 마실 겨를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커피를 나눠마신 이들은 경로당에서 나와 각자 복지회관에 가거나 집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경로당에 있었던 B 씨는 이날 냉커피를 마시지 않았다는 진술이 나왔습니다.
■피해자 1명 사흘만에 병원행…"시간차 증상 배경 수사"
커피를 마신 A 씨 등 3명은 사고 당일 잇따라 복통과 호흡 곤란 등의 증상을 보이며 쓰러졌습니다.
이어 다음 날 오전엔, 함께 커피를 마셨던 또 다른 회원이 집에서 탈수 증상으로 정신을 잃었습니다. 이 회원은 전날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도 식은땀을 많이 흘렸습니다.
이들 네 명의 위 세척액에선 살충제 2가지 성분이 검출됐습니다.
사고 발생 사흘 뒤, B 씨에게도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B 씨는 이날 오전에 노인 일자리사업에 참여했습니다.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조퇴하려다, 참고 일을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로당 한 회원은 "B 씨는 오후에 들린 읍내병원에서 '그날 오리고기 먹고 음료수 먹은 게 속이 안 좋다. 나도 비슷하니까 안동병원에 보내달라'해서 안동에 가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B 씨의 위 세척액에도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습니다. 경찰은 "B 씨가 뒤늦게 농약을 마셨거나, 증상이 늦게 발현됐거나, 또 다른 경로로 음독하게 됐는지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현장감식 감정물만 3백여 점…"용의자 특정 단계"
경로당 건물 내외부엔 CCTV가 없거나 고장 났습니다.
경북경찰청 수사전담팀은 주변 CCTV와 차량 블랙박스 등 86곳의 광범위한 영상 자료를 확보해 분석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경로당에서만 두세 번 현장 감식을 진행했습니다. 경로당 식기류 외에도 이불류, 일반쓰레기 등을 수거해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피해자들이 커피를 마신 컵과 용기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장 감식은 피해 주민 집에도 진행됐습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물 311점을 의뢰한 상태입니다.
마을 주민 등 관련자 56명에 대한 조사도 마쳤습니다. 경찰은 "모든 증거 자료를 종합해 면밀히 분석 중"이라며 용의자 특정 단계에 들어갔습니다.
■갈등 관계?…"계획된 범행 가능성"
취재진이 만난 경로당 회원 10여 명은 모두 "사이가 너무 좋았다. 최근에 싸웠던 일도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을 토대로 경로당 내 누군가가 고의로 커피에 살충제 성분을 넣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경찰은 주민 간의 갈등이나 원한 관계도 파악하고 있습니다. 또 범행 대상이 특정인인지 불특정 다수인지도 검증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또, 피해자 5명 가운데 건강을 회복 중인 3명에 대한 대면 조사도 조만간 진행될 예정입니다.
-
-
김지홍 기자 kjhong@kbs.co.kr
김지홍 기자의 기사 모음
-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