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없다”는 경주 월성원전 누출 따져보니…

입력 2024.07.28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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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경북 경주 월성원전 4호기에서 사용후핵연료 저장조의 냉각수가 배수구를 통해 바다로 누출됐습니다.

국내에서 사용후핵연료, 즉 고준위 방사성폐기물과 접촉한 저장수가 바다로 누출된 건 처음입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당시 저장조의 수위가 내려간 것을 발견하고 누출 차단 조처를 했지만, 이미 저장수 2.3톤 정도가 누출된 뒤였습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는 사고 당일 ①원전 인근 4곳에서 해수를 채취해 분석하고, ②포항과 울산 해역의 실시간 방사능 수치를 측정했다고 밝혔습니다.

그 결과 세슘-137의 농도가 검출 하한치(2.88~3.02Bq/L) 이하로 확인되는 등 특이사항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① 해수 채취 분석했다더니…장비 신뢰성 '의문'

그런데 KBS 취재 결과 원안위가 밝힌 해수 채취 지점 4곳 중 2곳(죽전항·읍천항)은 주기적인 분석이 이뤄지는 '정밀·신속분석구간'이 아니었습니다.

일정한 시료 채취를 통해 데이터를 누적해온 곳이 아니어서, 원전 사고 등에 따른 방사능 수치 변화를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운 겁니다.

심지어 원안위는 이곳에 기존 정밀·신속분석구간에서 사용하는 장비보다 최소 검출 가능 농도가 100배 이상 높은, 다시 말해 정밀도가 더 떨어지는 장비를 사용했습니다.


이미 넓은 바다로 누출돼버린 저장수를 감지하기에는 애초 장비부터 적절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원자력 기관 관계자
"마치 미세먼지를 측정하기 위해서 30cm 자로 재고서 측정이 안 되니까 공기가 깨끗하다고 하는 거랑 같은 얘깁니다."

이에 대해 원안위는 사고 직후 마을 인근 지역의 영향을 신속하게 확인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방사능 측정 정밀도는 떨어지지만 분석 시간이 적게 걸리는 장비를 추가적으로 사용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시 방사성 핵종이 측정되지 않았다고 발표한 건 맞지만 '문제가 없다'고 한 적은 없다며, 별도의 정밀 분석이 마무리되는 대로 결과를 공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② 해수 방사능 감시기도 사실상 '무용지물'

원안위가 사고 당시 바닷물 채취 분석과 함께 활용한 바닷속 방사능 감시 기계도 사실상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원안위는 월성원전 주변인 포항·울산을 비롯해 전국 21곳 해역에 '해수 방사능 감시기'를 설치했는데요.


원안위가 더불어민주당 이정헌 의원실에 밝힌 이 감시기의 최소 방사능 농도는 1시간 기준 약 0.32Bq/L. 사실상 1960년대 세계 각국의 핵 실험 당시 서해는 물론, 지난 5월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지 인근의 세슘-137 농도조차 측정하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미세하기는 해도 혹시라도 방사능 오염 농도 변화가 있다 하더라도 0.32Bq/L 이하일 땐 측정조차 되지 않는 건데요. 그럼 1시간 기준 약 0.32Bq/L 농도는 어느 정도 방사능이 검출된 걸 말하는 걸까요?

원자력 기관 관계자
"지금 뭐 아무리 측정해도 그걸로 측정할 수 있는 양이 안 나오거든요. 그 정도까지 올라가려면 핵폭탄이 한 2만 발 터졌어야 해요."

여기에다 설치 이후 6년간 발생한 고장만 40여 차례. 지난 한 해 감시기 유지 보수에 사용된 비용만 2억 3천만 원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에 대해 원안위는 2020년부터 연간 점검횟수를 기존 1회에서 2회로 확대한 이후로는 고장 건수가 대폭 감소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해수 방사능 감시기의 최소 검출 농도는 측정 방법에 따라 다를 수 있다며, 설치 목적에 맞게 신속한(15분) 결과를 볼 수 있게 설계돼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 잇단 원전 사고·고장…"사후 대응 체계 검토해야"

이번 사고 외에도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에 집계된 원전 관련 사고나 고장만 2020년 10건에서 지난해 11건, 올해는 상반기에만 8건으로 계속해서 증가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때마다 원안위와 한수원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주민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재걸/ 경주시 양남면 주민
"사고가 나면 '이런 일이 없도록 이중·삼중·사중의 안전장치를 하겠습니다', 이게 맞잖아요. 근데 우리가 뭘 얘길 하면 '너희들은 몰라도 된다', '자료 공개 못 한다', '너희들 이런 거 나가면 물건 안 팔리고 손해 아니냐' 이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주민들을 갈라놓는 거죠."

"비계획적 유출에 대해 강력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기도 하고. 주민들한테 공개하지 않고 소통하지 않는 이런 부분들이 제일 큰 문제죠."

실제 이번 월성 4호기만 해도 지난 4월 안전장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사실이 내부 제보로 뒤늦게 알려져 가동이 중단된 가운데, 저장수가 누출되는 사고까지 발생한 상황.

게다가 누출 사고 발생 당시 한수원이 사고를 곧장 인지하지 못하면서 사고 발생 5시간이 지나 원안위에 보고가 이뤄졌으며, 원안위는 이로부터 또 3시간이 지나 사고 사실을 지자체와 관계 기관에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정헌/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렇게 해놓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 '별 영향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국민에게 발표하는 것은 아주 심각한, 국민을 속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요. 사고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매뉴얼을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수원의 위기 관리 프로세스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와 분석이 필요하다..."

원안위는 보도 이후 정정자료 등을 통해 '원전 사건 조사와 방사능 분석을 독립적으로 철저하게 수행하고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또, KBS와의 통화에서는 '지금의 방식이 최선이다, 다른 대안이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는데요.

국내 원전은 적어도 2080년까지 가동될 예정입니다. 과거 수십 년, 앞으로 수십 년간 원전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주민들의 불안을 최소화하기 위한 제대로 된 안전 규제와 사후 대처 체계는 고민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하는 지점임은 분명합니다.

촬영기자 김동욱 그래픽 인푸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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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 없다”는 경주 월성원전 누출 따져보니…
    • 입력 2024-07-28 07: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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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경북 경주 월성원전 4호기에서 사용후핵연료 저장조의 냉각수가 배수구를 통해 바다로 누출됐습니다.

국내에서 사용후핵연료, 즉 고준위 방사성폐기물과 접촉한 저장수가 바다로 누출된 건 처음입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당시 저장조의 수위가 내려간 것을 발견하고 누출 차단 조처를 했지만, 이미 저장수 2.3톤 정도가 누출된 뒤였습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는 사고 당일 ①원전 인근 4곳에서 해수를 채취해 분석하고, ②포항과 울산 해역의 실시간 방사능 수치를 측정했다고 밝혔습니다.

그 결과 세슘-137의 농도가 검출 하한치(2.88~3.02Bq/L) 이하로 확인되는 등 특이사항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① 해수 채취 분석했다더니…장비 신뢰성 '의문'

그런데 KBS 취재 결과 원안위가 밝힌 해수 채취 지점 4곳 중 2곳(죽전항·읍천항)은 주기적인 분석이 이뤄지는 '정밀·신속분석구간'이 아니었습니다.

일정한 시료 채취를 통해 데이터를 누적해온 곳이 아니어서, 원전 사고 등에 따른 방사능 수치 변화를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운 겁니다.

심지어 원안위는 이곳에 기존 정밀·신속분석구간에서 사용하는 장비보다 최소 검출 가능 농도가 100배 이상 높은, 다시 말해 정밀도가 더 떨어지는 장비를 사용했습니다.


이미 넓은 바다로 누출돼버린 저장수를 감지하기에는 애초 장비부터 적절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원자력 기관 관계자
"마치 미세먼지를 측정하기 위해서 30cm 자로 재고서 측정이 안 되니까 공기가 깨끗하다고 하는 거랑 같은 얘깁니다."

이에 대해 원안위는 사고 직후 마을 인근 지역의 영향을 신속하게 확인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방사능 측정 정밀도는 떨어지지만 분석 시간이 적게 걸리는 장비를 추가적으로 사용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시 방사성 핵종이 측정되지 않았다고 발표한 건 맞지만 '문제가 없다'고 한 적은 없다며, 별도의 정밀 분석이 마무리되는 대로 결과를 공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② 해수 방사능 감시기도 사실상 '무용지물'

원안위가 사고 당시 바닷물 채취 분석과 함께 활용한 바닷속 방사능 감시 기계도 사실상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원안위는 월성원전 주변인 포항·울산을 비롯해 전국 21곳 해역에 '해수 방사능 감시기'를 설치했는데요.


원안위가 더불어민주당 이정헌 의원실에 밝힌 이 감시기의 최소 방사능 농도는 1시간 기준 약 0.32Bq/L. 사실상 1960년대 세계 각국의 핵 실험 당시 서해는 물론, 지난 5월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지 인근의 세슘-137 농도조차 측정하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미세하기는 해도 혹시라도 방사능 오염 농도 변화가 있다 하더라도 0.32Bq/L 이하일 땐 측정조차 되지 않는 건데요. 그럼 1시간 기준 약 0.32Bq/L 농도는 어느 정도 방사능이 검출된 걸 말하는 걸까요?

원자력 기관 관계자
"지금 뭐 아무리 측정해도 그걸로 측정할 수 있는 양이 안 나오거든요. 그 정도까지 올라가려면 핵폭탄이 한 2만 발 터졌어야 해요."

여기에다 설치 이후 6년간 발생한 고장만 40여 차례. 지난 한 해 감시기 유지 보수에 사용된 비용만 2억 3천만 원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에 대해 원안위는 2020년부터 연간 점검횟수를 기존 1회에서 2회로 확대한 이후로는 고장 건수가 대폭 감소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해수 방사능 감시기의 최소 검출 농도는 측정 방법에 따라 다를 수 있다며, 설치 목적에 맞게 신속한(15분) 결과를 볼 수 있게 설계돼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 잇단 원전 사고·고장…"사후 대응 체계 검토해야"

이번 사고 외에도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에 집계된 원전 관련 사고나 고장만 2020년 10건에서 지난해 11건, 올해는 상반기에만 8건으로 계속해서 증가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때마다 원안위와 한수원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주민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재걸/ 경주시 양남면 주민
"사고가 나면 '이런 일이 없도록 이중·삼중·사중의 안전장치를 하겠습니다', 이게 맞잖아요. 근데 우리가 뭘 얘길 하면 '너희들은 몰라도 된다', '자료 공개 못 한다', '너희들 이런 거 나가면 물건 안 팔리고 손해 아니냐' 이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주민들을 갈라놓는 거죠."

"비계획적 유출에 대해 강력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기도 하고. 주민들한테 공개하지 않고 소통하지 않는 이런 부분들이 제일 큰 문제죠."

실제 이번 월성 4호기만 해도 지난 4월 안전장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사실이 내부 제보로 뒤늦게 알려져 가동이 중단된 가운데, 저장수가 누출되는 사고까지 발생한 상황.

게다가 누출 사고 발생 당시 한수원이 사고를 곧장 인지하지 못하면서 사고 발생 5시간이 지나 원안위에 보고가 이뤄졌으며, 원안위는 이로부터 또 3시간이 지나 사고 사실을 지자체와 관계 기관에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정헌/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렇게 해놓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 '별 영향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국민에게 발표하는 것은 아주 심각한, 국민을 속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요. 사고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매뉴얼을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수원의 위기 관리 프로세스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와 분석이 필요하다..."

원안위는 보도 이후 정정자료 등을 통해 '원전 사건 조사와 방사능 분석을 독립적으로 철저하게 수행하고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또, KBS와의 통화에서는 '지금의 방식이 최선이다, 다른 대안이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는데요.

국내 원전은 적어도 2080년까지 가동될 예정입니다. 과거 수십 년, 앞으로 수십 년간 원전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주민들의 불안을 최소화하기 위한 제대로 된 안전 규제와 사후 대처 체계는 고민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하는 지점임은 분명합니다.

촬영기자 김동욱 그래픽 인푸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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