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풍 특보 없었는데”…돌풍 30분 만에 마을 쑥대밭

입력 2024.08.02 (16:29) 수정 2024.08.02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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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강풍 피해를 입은 충북 음성군의 한 마을지난달 25일, 강풍 피해를 입은 충북 음성군의 한 마을

갑자기 쑥대밭으로 변한 마을… "강풍 위력이 어마어마"

지난달 25일, 평화롭던 한 시골 마을이 쑥대밭으로 변했습니다. 주민들이 평생 겪어보지 못한 위력적인 바람 때문이었는데요, 당시에는 강풍이나 태풍 특보가 내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당시 바람은 불과 30여 분 만에 마을 곳곳에 깊은 상흔을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바람의 정체는 뭐였을까요? KBS가 주민들의 목격담을 통해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봤습니다.

지난달 25일 저녁 7시 30분, 하늘에 갑자기 짙은 먹구름이 끼더니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주민들이 입을 모아 "위력이 어마어마했다"고 말하는 이 바람은 시야를 가릴 만큼 뿌옇게 휘몰아치며 마을 이곳저곳을 훑고 지나갔습니다.

당시 밭일을 하던 70대 주민은 "몸이 휘청거릴 만큼 강력한 바람에 놀라 급히 집안으로 몸을 피했다"고 합니다. 이 주민은 "그냥 하늘에서 뭐가 막 그냥 '팍',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소리가 나면서 '솨악' 지나가는 소리만 들렸다"고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마을 창고 CCTV에 잡힌 강풍 당시 모습마을 창고 CCTV에 잡힌 강풍 당시 모습

■ CCTV에 포착된 강풍… "400년 넘게 끄덕 없었는데"

당시 길 건너편 비닐하우스 옆에서 마을 주민 3명과 함께 배수로를 점검하던 60대 주민도 아찔한 경험을 했습니다. "주민 4명이 동시에 주저앉을 정도로 바람이 강했다"고 합니다. "생전 처음 겪는 바람"이라고도 했습니다.

실제 KBS 취재진이 확인한 마을 창고 폐쇄회로(CC)TV 영상에도 환했던 화면이 갑자기 어두워지며 무섭게 몰아치는 흰색 돌풍이 포착됐습니다. 순식간에 마당에 쌓아둔 자재가 날아가고 심지어 창고 지붕 전체가 뜯겨 나가는 장면도 확인됐습니다.

사건 발생 닷새 뒤 취재진이 찾은 마을은 이미 쑥대밭으로 변해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취재진 눈에 들어온 건 마을 어귀에 뿌리째 뽑힌 거대한 나무였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태풍이 불어도 끄떡없을 것 같은 크기였습니다.

수령 400년 이상인 마을 보호수가 강풍에 꺾인 모습수령 400년 이상인 마을 보호수가 강풍에 꺾인 모습

둘레 6.5m, 높이 23m의 수령 430년 된 느티나무(보호수)가 속절없이 부러진 겁니다. 나무는 뿌리를 훤히 드러난 채 나무 밑동은 반으로 쪼개졌고, 굵은 나뭇가지를 지탱하던 쇠기둥들도 모두 뽑혔습니다.

400년 넘게 해마다 태풍과 비바람, 호우에도 끄떡없던 보호수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바람 때문에 한순간에 힘없이 쓰러진 겁니다. 이 보호수와 100여m 남짓 떨어진 야산의 나무 숲도 V(브이)자 형태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피해는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강풍에 주택 앞마당까지 날아든 지붕 상판과 철골 구조물강풍에 주택 앞마당까지 날아든 지붕 상판과 철골 구조물

CCTV로 확인한 것처럼, 바람이 불면서 창고 지붕은 모두 뜯겨 앙상한 뼈대만 남았고, 창고에 쌓아둔 판매용 제품들은 모두 비에 젖어 망가졌습니다. 갑자기 날아온 상판과 철골 구조물에 주택들도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흉기로 변한 잔해물은 마당 안에서 나뒹굴며 주민을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70대 고령의 주민이 치우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강풍에 위험하게 기울어진 마을 담벼락강풍에 위험하게 기울어진 마을 담벼락

건너편 조립식 창고 건물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담벼락이 기울고 기왓장 절반이 뜯겨 날아가거나 사라진 주택도 있었습니다. 당시 바람의 위력과 지나간 흔적이 마을 곳곳에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습니다.

불과 30여 분 만에 벌어진 일들입니다. 당시 충북 음성군 대소면과 삼성면, 금왕읍 일대에서 강풍 피해가 신고된 시설물은 24개. 대부분 60대 이상이 거주하는 40여 가구의 이 마을이지만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습니다.

바람이 지나간 뒤 브이(V)자 형태로 갈라진 나무 숲바람이 지나간 뒤 브이(V)자 형태로 갈라진 나무 숲

■ "회오리 바람이었어요"… 관측 수치보다 더 위력적

당시 기상 장비가 관측한 이 3개 읍·면의 바람 세기는 최대순간풍속이 초속 10m 안팎이었습니다. 나무 전체가 흔들리거나 우산이 뒤집히는 세기인데, 피해 규모를 봤을 때 실제로는 이보다 더 위력적인 바람이 불었던 겁니다.

"바람의 형태가 어땠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주민들은 하나같이 "'회오리 바람의 형태였다"고 입을 모읍니다. 마을 곳곳을 살펴봐도 마치 회오리 바람이 지나간 흔적처럼 특정 경로를 따라 주택과 나무 등 일부 시설만 피해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비닐하우스 같은 약한 구조물들은 오히려 멀쩡했습니다.

피해 조사에 나선 음성군 재난담당 공무원은 "야산에서 불어온 바람으로 추정된다"면서도 "이례적인 피해였다고"라고 설명했습니다.

2020년 12월 1일 KBS 보도: 강원 강릉시 죽헌동에서 발생했던 회오리 바람2020년 12월 1일 KBS 보도: 강원 강릉시 죽헌동에서 발생했던 회오리 바람

우리나라에서 종종 목격되는 '회오리 바람'은 주로 강렬한 햇볕에 지면이 뜨거워져 대기 상층과 하층의 온도 차가 벌어졌을 때 상승 기류가 발생하고, 주변으로 바람이 몰려들면서 생깁니다. 규모가 큰 회오리 바람을 '토네이도'라고 하는데, 발생 원리는 같습니다.

주변보다 특정 지면이 뜨거워졌을 때 발생하는 만큼 국지적으로 나타나고 지속 시간도 짧아 기상 장비로 잘 관측되지 않습니다.

KBS 시청자 제보 영상: 지난 6월, 충북 충주시 앙성면에서 발생한 회오리 바람KBS 시청자 제보 영상: 지난 6월, 충북 충주시 앙성면에서 발생한 회오리 바람

김승배 한국자연재난협회 본부장(KBS 재난방송전문위원)은 "지구 온난화로 과거보다 더 뜨거워진 여름을 보내면서 회오리 바람이 자주 발생할 수 있는 기상 조건으로 바뀌었다"면서 "강한 일사에 의해 대기가 불안정해지고 더 강한 상승기류가 생기면서 바람의 세기도 더 강해질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번처럼 발생 시간도 예측하기 어렵고, 바람의 방향도 파악하기 힘든 회오리 바람을 예상할 수 있는 정보는 '돌풍' 예보입니다. 돌풍은 갑자기 세게 부는 바람을 일컫는데, 김승배 본부장은 " 대기 불안정에 따라 천둥, 번개가 치며 '돌풍'을 동반한 비가 내릴 수 있다는 기상 예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안 된다"며 "이 돌풍이 회오리 바람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몇 시에 어디에서 회오리 바람이 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돌풍 예보를 보면 미리 대비는 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표면이 쉽게 달궈지는 여름철, 기상 예보를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것이 회오리바람으로 인한 피해 예방의 최선책입니다.

[연관 기사] [현장K] 평화롭던 마을이 쑥대밭…“회오리 바람이 휩쓸어” [2024. 7. 30 보도/ 취재 송국회, 촬영 최영준, 편집 정진욱]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24703&re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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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풍 특보 없었는데”…돌풍 30분 만에 마을 쑥대밭
    • 입력 2024-08-02 16:29:13
    • 수정2024-08-02 17:4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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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강풍 피해를 입은 충북 음성군의 한 마을
갑자기 쑥대밭으로 변한 마을… "강풍 위력이 어마어마"

지난달 25일, 평화롭던 한 시골 마을이 쑥대밭으로 변했습니다. 주민들이 평생 겪어보지 못한 위력적인 바람 때문이었는데요, 당시에는 강풍이나 태풍 특보가 내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당시 바람은 불과 30여 분 만에 마을 곳곳에 깊은 상흔을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바람의 정체는 뭐였을까요? KBS가 주민들의 목격담을 통해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봤습니다.

지난달 25일 저녁 7시 30분, 하늘에 갑자기 짙은 먹구름이 끼더니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주민들이 입을 모아 "위력이 어마어마했다"고 말하는 이 바람은 시야를 가릴 만큼 뿌옇게 휘몰아치며 마을 이곳저곳을 훑고 지나갔습니다.

당시 밭일을 하던 70대 주민은 "몸이 휘청거릴 만큼 강력한 바람에 놀라 급히 집안으로 몸을 피했다"고 합니다. 이 주민은 "그냥 하늘에서 뭐가 막 그냥 '팍',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소리가 나면서 '솨악' 지나가는 소리만 들렸다"고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마을 창고 CCTV에 잡힌 강풍 당시 모습
■ CCTV에 포착된 강풍… "400년 넘게 끄덕 없었는데"

당시 길 건너편 비닐하우스 옆에서 마을 주민 3명과 함께 배수로를 점검하던 60대 주민도 아찔한 경험을 했습니다. "주민 4명이 동시에 주저앉을 정도로 바람이 강했다"고 합니다. "생전 처음 겪는 바람"이라고도 했습니다.

실제 KBS 취재진이 확인한 마을 창고 폐쇄회로(CC)TV 영상에도 환했던 화면이 갑자기 어두워지며 무섭게 몰아치는 흰색 돌풍이 포착됐습니다. 순식간에 마당에 쌓아둔 자재가 날아가고 심지어 창고 지붕 전체가 뜯겨 나가는 장면도 확인됐습니다.

사건 발생 닷새 뒤 취재진이 찾은 마을은 이미 쑥대밭으로 변해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취재진 눈에 들어온 건 마을 어귀에 뿌리째 뽑힌 거대한 나무였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태풍이 불어도 끄떡없을 것 같은 크기였습니다.

수령 400년 이상인 마을 보호수가 강풍에 꺾인 모습
둘레 6.5m, 높이 23m의 수령 430년 된 느티나무(보호수)가 속절없이 부러진 겁니다. 나무는 뿌리를 훤히 드러난 채 나무 밑동은 반으로 쪼개졌고, 굵은 나뭇가지를 지탱하던 쇠기둥들도 모두 뽑혔습니다.

400년 넘게 해마다 태풍과 비바람, 호우에도 끄떡없던 보호수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바람 때문에 한순간에 힘없이 쓰러진 겁니다. 이 보호수와 100여m 남짓 떨어진 야산의 나무 숲도 V(브이)자 형태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피해는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강풍에 주택 앞마당까지 날아든 지붕 상판과 철골 구조물
CCTV로 확인한 것처럼, 바람이 불면서 창고 지붕은 모두 뜯겨 앙상한 뼈대만 남았고, 창고에 쌓아둔 판매용 제품들은 모두 비에 젖어 망가졌습니다. 갑자기 날아온 상판과 철골 구조물에 주택들도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흉기로 변한 잔해물은 마당 안에서 나뒹굴며 주민을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70대 고령의 주민이 치우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강풍에 위험하게 기울어진 마을 담벼락
건너편 조립식 창고 건물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담벼락이 기울고 기왓장 절반이 뜯겨 날아가거나 사라진 주택도 있었습니다. 당시 바람의 위력과 지나간 흔적이 마을 곳곳에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습니다.

불과 30여 분 만에 벌어진 일들입니다. 당시 충북 음성군 대소면과 삼성면, 금왕읍 일대에서 강풍 피해가 신고된 시설물은 24개. 대부분 60대 이상이 거주하는 40여 가구의 이 마을이지만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습니다.

바람이 지나간 뒤 브이(V)자 형태로 갈라진 나무 숲
■ "회오리 바람이었어요"… 관측 수치보다 더 위력적

당시 기상 장비가 관측한 이 3개 읍·면의 바람 세기는 최대순간풍속이 초속 10m 안팎이었습니다. 나무 전체가 흔들리거나 우산이 뒤집히는 세기인데, 피해 규모를 봤을 때 실제로는 이보다 더 위력적인 바람이 불었던 겁니다.

"바람의 형태가 어땠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주민들은 하나같이 "'회오리 바람의 형태였다"고 입을 모읍니다. 마을 곳곳을 살펴봐도 마치 회오리 바람이 지나간 흔적처럼 특정 경로를 따라 주택과 나무 등 일부 시설만 피해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비닐하우스 같은 약한 구조물들은 오히려 멀쩡했습니다.

피해 조사에 나선 음성군 재난담당 공무원은 "야산에서 불어온 바람으로 추정된다"면서도 "이례적인 피해였다고"라고 설명했습니다.

2020년 12월 1일 KBS 보도: 강원 강릉시 죽헌동에서 발생했던 회오리 바람
우리나라에서 종종 목격되는 '회오리 바람'은 주로 강렬한 햇볕에 지면이 뜨거워져 대기 상층과 하층의 온도 차가 벌어졌을 때 상승 기류가 발생하고, 주변으로 바람이 몰려들면서 생깁니다. 규모가 큰 회오리 바람을 '토네이도'라고 하는데, 발생 원리는 같습니다.

주변보다 특정 지면이 뜨거워졌을 때 발생하는 만큼 국지적으로 나타나고 지속 시간도 짧아 기상 장비로 잘 관측되지 않습니다.

KBS 시청자 제보 영상: 지난 6월, 충북 충주시 앙성면에서 발생한 회오리 바람
김승배 한국자연재난협회 본부장(KBS 재난방송전문위원)은 "지구 온난화로 과거보다 더 뜨거워진 여름을 보내면서 회오리 바람이 자주 발생할 수 있는 기상 조건으로 바뀌었다"면서 "강한 일사에 의해 대기가 불안정해지고 더 강한 상승기류가 생기면서 바람의 세기도 더 강해질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번처럼 발생 시간도 예측하기 어렵고, 바람의 방향도 파악하기 힘든 회오리 바람을 예상할 수 있는 정보는 '돌풍' 예보입니다. 돌풍은 갑자기 세게 부는 바람을 일컫는데, 김승배 본부장은 " 대기 불안정에 따라 천둥, 번개가 치며 '돌풍'을 동반한 비가 내릴 수 있다는 기상 예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안 된다"며 "이 돌풍이 회오리 바람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몇 시에 어디에서 회오리 바람이 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돌풍 예보를 보면 미리 대비는 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표면이 쉽게 달궈지는 여름철, 기상 예보를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것이 회오리바람으로 인한 피해 예방의 최선책입니다.

[연관 기사] [현장K] 평화롭던 마을이 쑥대밭…“회오리 바람이 휩쓸어” [2024. 7. 30 보도/ 취재 송국회, 촬영 최영준, 편집 정진욱]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24703&re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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