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멍이 상대한건 쑨잉사만이 아니었다 [특파원 리포트]
입력 2024.08.08 (16:13)
수정 2024.08.08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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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올림픽 여자 탁구 최강자를 가리는 천멍(陳夢)과 쑨잉사(孫穎莎)의 단식 결승전이 열리던 지난 3일.
경기가 채 시작하기도 전에 중국 베이징 번화가인 싼리툰에 쑨잉사의 금메달과 그랜드슬램을 축하하는 커다란 옥외광고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중국 유명 유제품 기업 이리(伊利)가 내건 광고였습니다.
이리는 중국 탁구 국가대표팀의 스폰서이기도 합니다.
그런 회사가 최종 승자가 정해지기도 전, 자국 대표선수가 맞붙은 결승전에서 특정 선수의 승리를 미리 축하한 셈입니다.
하지만 광고와는 달리 천멍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이리는 광고를 테스트하던 중이었다며 공식 사과했습니다.
한편, 이 날 천멍은 올림픽 결승무대에서 쑨잉사를 응원하는 자국 팬들의 야유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자국 선수 두 명이 금, 은 메달을 놓고 실력을 겨루는데도 자본과 팬 모두가 쑨잉사만을 응원하는 듯한 모습은 전 세계 스포츠팬들 사이에서 의문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대체 이유가 뭘까요?
베이징 번화가에 노출된 쑨잉사 금메달&그랜드슬램 달성 축하 광고판. 천멍이 우승하자 광고를 내건 기업은 공식 사과했다. (출처 : 웨이보)
■'세계 최강' 중국 탁구의 고민…"금메달 기계는 NO, 스타가 필요해!"
중국 탁구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입니다. 전 세계 수많은 선수들이 국제대회에서 만리장성의 벽을 넘기 위해 도전하지만, 번번이 좌절하고 맙니다.
매일매일 함박웃음만 지을 것 같지만, 사실 10여 년 전 중국 탁구계는 큰 고민에 빠져있었습니다.
2014년, 중국 탁구 슈퍼리그는 1998년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메인 스폰서도 없이 대회를 치르는 굴욕을 겪었습니다. 별다른 경제적 효과가 없다는 판단에 어떤 기업도 스폰서를 자처하지 않았던 겁니다.
2015년에는 메인 스폰서가 생기기는 했지만, 대회 운영비의 3분의 1도 안 되는 1,000만 위안(우리 돈 약 19억 2천만 원)의 후원 비용만으로 자리를 얻어냈습니다.
공원만 가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탁구를 하고 있을 만큼 탁구가 대중화된 나라지만, 프로 리그에 대한 관심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던 겁니다.
이 즈음, 중국 탁구의 전설이자 현 중국 탁구 협회장인 류궈량(劉國梁)도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이런 고민을 드러냅니다.
"탁구도 스타효과가 필요합니다. 장지커 vs 마룽의 경기가 레알 마드리드 vs 바르셀로나 같은 열기로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우리 선수들이 금메달만 따오고 종합적인 자질을 갖추지 못한다면 팬들의 사랑을 받지 못할 겁니다. 그렇다면 '금메달 기계'가 되어 버리지 않겠습니까? 탁구는 사회적으로 더 큰 영향력을 가져야 합니다." |
금메달 기계라니, 국가대표 선수에게는 무엇보다 영광스러운 칭호일 것 같지만, 프로리그가 고사할 위기에 처했던 중국 탁구계는 뛰어난 선수를 넘어선 스타가 필요했습니다.
유명 선수들이 각종 예능프로그램과 컨텐츠에 적극 출연하며 팬 층을 쌓아나가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때부터입니다.
이런 노력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맞아 마침내 대박을 터뜨립니다.
당시 중국 탁구는 금메달 4개, 은메달 2개를 따내는 쾌거를 거뒀고, 전 국민이 환호했습니다. 당시 올림픽 기간 탁구대표팀 장지커(張繼科) 선수의 검색량만 4억 건으로 집계됐을 정도입니다.
공항 마중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팬들은 선수의 SNS에 몰려들었고,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슈퍼리그 경기까지 찾아다니며 응원전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입장권이 20분 만에 다 팔려 만석이 되고, 원래 가격의 세 배가 넘는 값에 암표까지 성행했습니다.
그리고 파리올림픽까지 8년의 시간이 흐르며, 중국 탁구의 팬덤화는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현 시점, 가장 두터운 팬덤층을 자랑하는 선수 중 하나가 바로 웨이보 팔로워 수만 548만 명에 달하는 쑨잉사입니다.
올림픽을 앞두고 각종 제품의 광고모델로 발탁된 쑨잉사. 금메달을 딴 건 천멍이지만, 상업적 가치는 여전히 쑨잉사가 더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극성 팬덤에 환호하는 자본…천멍에게는 '야유'
쑨잉사는 '덕질 포인트'가 많습니다. 세계 랭킹 1위라는 실력은 기본이고, 순둥하고 귀여운 여동생 같은 이미지도 팬들의 덕질을 유발합니다.
무엇보다 새로운 전설을 쓸 수 있다는 가능성이 팬들을 열광하게 했습니다.
만일 이번에 쑨잉사가 천멍에게 승리하고 올림픽 금메달을 땄다면 쑨잉사는 2000년대 출생자 최초로 올림픽, 세계선수권, 월드컵에서 모두 우승하는 그랜드슬램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중국 남자 탁구 스타 장지커가 세운 445일만의 세계 최단기간 그랜드슬램 기록을 433일로 단축시키면서 말입니다.
게다가 2000년 11월생으로 아직 만 23세에 불과합니다. 다음 올림픽 출전도 가능합니다.
중국 여자 탁구의 전설 장이닝이 세운 '더블 그랜드슬램'의 위업도 쑨잉사에게는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었던 겁니다.
반면 세계 랭킹 4위의 1994년생 천멍은 새로운 전설을 써 내려가기에는 선수로서 적지 않은 나이입니다.
파리올림픽 결승전을 찾은 중국 팬들은 대표팀을 응원하는 팬들이라기보다는 쑨잉사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대관식을 원했던 개인 팬덤이었고, 이들의 눈에는 천멍이 자국의 자랑스런 대표선수가 아니라 쑨잉사의 황금빛 커리어에 제동을 건 선수로 보였던 듯 합니다.
쑨잉사에게는 응원과 환호가 쏟아졌지만, 천멍의 점수가 올라갈 때는 야유와 침묵이 대신했습니다.
결승전에서 천멍을 향해 손가락 욕설을 하는 여성의 모습. 한 때 쑨잉사를 모델로 쓰는 기업 ‘이리’의 관계자라는 잘못된 소문이 돌아 사측이 해명하기도 했다. (출처 : 소후)
자본은 팬덤에 환호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키웁니다. 애국주의의 영향으로 스포츠 스타들의 광고 효과가 큰 중국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2015년에만 해도 중국에서 스포츠 스타를 모델로 쓴 광고가 8건에 불과했지만, 2021년에는 161건으로 늘었습니다. 이들의 광고효과가 꾸준히 커졌다는 방증입니다.
특히나 올림픽을 앞두고는 식품, 의류, 가전을 가리지 않고 선수들이 온갖 광고에 출연합니다.
보통 메달을 따면 광고가 들어오는 한국과 달리 메달을 딸 가능성이 있는 선수를 미리 광고모델로 선점하는 구조입니다. 선수의 메달 획득 후 대박을 기대하며 일종의 베팅을 하는 겁니다.
광고에 많이 노출될수록 팬덤도 커지고, 라이벌 선수의 팬덤을 공격하고 서로 경쟁하면서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의 브랜드를 집중적으로 소비하기도 합니다.
이러다보니 쑨잉사는 기업 입장에서 결코 놓칠 수 없는 광고 모델입니다. 코카콜라, 이리, PICO 등이 쑨잉사와 광고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미리 우승 축하 광고를 실으며 논란을 일으킨 이리 역시 탁구 대표팀의 스폰서이면서 동시에 쑨잉사를 광고 모델로 쓰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결승무대에 오른 천멍은 눈 앞의 실력자 쑨잉사 외에도 쑨잉사의 승리를 바라는 거대 팬덤·거대 자본도 함께 상대했던 셈입니다.
금메달과 은메달을 각기 목에 걸고 파리 올림픽 시상대에 선 천멍과 쑨잉사
■뒤늦은 '악성 팬덤' 고민…천멍 "승패 마주해야"
금메달을 목에 건 뒤에도 천멍은 쑨잉사 팬들의 비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자국 선수가 우승하고도 야유와 비난에 시달리는 모습이 전 세계에 노출되자 중국에서는 팬덤화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SNS에서 천멍을 비방한 네티즌이 공안 당국에 구속됐고, 웨이보도 일부 이용자가 선수와 코칭스태프를 비이성적으로 비난하고 있다며 1만 2천 건의 게시물을 단속했다고 밝혔습니다.
천멍도 결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달라며 팬들을 향해 목소리를 냈습니다.
"팬들은 모두 좋아하는 선수의 승리를 바랍니다. 하지만 시합에서는 언제나 승패가 갈립니다. 팬들이 승패를 분명히 마주하기를 바랍니다. " "스포츠에 관심을 가진다면 (승패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스포츠의 매력이기 때문입니다." |
대표팀 내에서 분위기를 저해하고 스포츠 정신을 훼손시킨다는 부작용 외에도, 아이돌 사생팬을 방불케 하는 극성 팬들도 문제로 떠오릅니다.
일부 극성 팬들이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의 호텔에 찾아오고, 몰래 훈련 모습을 찍어 판매하는 대리 촬영 시장까지 생겨나자, 견디다 못한 남자 세계랭킹 1위이자 이번 올림픽 혼합복식 금메달 리스트인 왕추친 선수는 사생활을 존중해달라고 호소하기까지 했습니다.
팬덤과 이들이 끌어들인 자본에 힘입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온 중국 탁구지만, 이제는 잠시 업계의 모습을 돌아보고 자정 방법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 됐습니다.
비인기 종목의 발전과 그리고 프로 리그의 활성화를 꿈꾸는 모든 스포츠인들의 고민과도 맞닿아 있는 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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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올림픽 여자 탁구 최강자를 가리는 천멍(陳夢)과 쑨잉사(孫穎莎)의 단식 결승전이 열리던 지난 3일.
경기가 채 시작하기도 전에 중국 베이징 번화가인 싼리툰에 쑨잉사의 금메달과 그랜드슬램을 축하하는 커다란 옥외광고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중국 유명 유제품 기업 이리(伊利)가 내건 광고였습니다.
이리는 중국 탁구 국가대표팀의 스폰서이기도 합니다.
그런 회사가 최종 승자가 정해지기도 전, 자국 대표선수가 맞붙은 결승전에서 특정 선수의 승리를 미리 축하한 셈입니다.
하지만 광고와는 달리 천멍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이리는 광고를 테스트하던 중이었다며 공식 사과했습니다.
한편, 이 날 천멍은 올림픽 결승무대에서 쑨잉사를 응원하는 자국 팬들의 야유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자국 선수 두 명이 금, 은 메달을 놓고 실력을 겨루는데도 자본과 팬 모두가 쑨잉사만을 응원하는 듯한 모습은 전 세계 스포츠팬들 사이에서 의문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대체 이유가 뭘까요?
■'세계 최강' 중국 탁구의 고민…"금메달 기계는 NO, 스타가 필요해!"
중국 탁구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입니다. 전 세계 수많은 선수들이 국제대회에서 만리장성의 벽을 넘기 위해 도전하지만, 번번이 좌절하고 맙니다.
매일매일 함박웃음만 지을 것 같지만, 사실 10여 년 전 중국 탁구계는 큰 고민에 빠져있었습니다.
2014년, 중국 탁구 슈퍼리그는 1998년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메인 스폰서도 없이 대회를 치르는 굴욕을 겪었습니다. 별다른 경제적 효과가 없다는 판단에 어떤 기업도 스폰서를 자처하지 않았던 겁니다.
2015년에는 메인 스폰서가 생기기는 했지만, 대회 운영비의 3분의 1도 안 되는 1,000만 위안(우리 돈 약 19억 2천만 원)의 후원 비용만으로 자리를 얻어냈습니다.
공원만 가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탁구를 하고 있을 만큼 탁구가 대중화된 나라지만, 프로 리그에 대한 관심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던 겁니다.
이 즈음, 중국 탁구의 전설이자 현 중국 탁구 협회장인 류궈량(劉國梁)도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이런 고민을 드러냅니다.
"탁구도 스타효과가 필요합니다. 장지커 vs 마룽의 경기가 레알 마드리드 vs 바르셀로나 같은 열기로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우리 선수들이 금메달만 따오고 종합적인 자질을 갖추지 못한다면 팬들의 사랑을 받지 못할 겁니다. 그렇다면 '금메달 기계'가 되어 버리지 않겠습니까? 탁구는 사회적으로 더 큰 영향력을 가져야 합니다." |
금메달 기계라니, 국가대표 선수에게는 무엇보다 영광스러운 칭호일 것 같지만, 프로리그가 고사할 위기에 처했던 중국 탁구계는 뛰어난 선수를 넘어선 스타가 필요했습니다.
유명 선수들이 각종 예능프로그램과 컨텐츠에 적극 출연하며 팬 층을 쌓아나가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때부터입니다.
이런 노력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맞아 마침내 대박을 터뜨립니다.
당시 중국 탁구는 금메달 4개, 은메달 2개를 따내는 쾌거를 거뒀고, 전 국민이 환호했습니다. 당시 올림픽 기간 탁구대표팀 장지커(張繼科) 선수의 검색량만 4억 건으로 집계됐을 정도입니다.
공항 마중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팬들은 선수의 SNS에 몰려들었고,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슈퍼리그 경기까지 찾아다니며 응원전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입장권이 20분 만에 다 팔려 만석이 되고, 원래 가격의 세 배가 넘는 값에 암표까지 성행했습니다.
그리고 파리올림픽까지 8년의 시간이 흐르며, 중국 탁구의 팬덤화는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현 시점, 가장 두터운 팬덤층을 자랑하는 선수 중 하나가 바로 웨이보 팔로워 수만 548만 명에 달하는 쑨잉사입니다.
■극성 팬덤에 환호하는 자본…천멍에게는 '야유'
쑨잉사는 '덕질 포인트'가 많습니다. 세계 랭킹 1위라는 실력은 기본이고, 순둥하고 귀여운 여동생 같은 이미지도 팬들의 덕질을 유발합니다.
무엇보다 새로운 전설을 쓸 수 있다는 가능성이 팬들을 열광하게 했습니다.
만일 이번에 쑨잉사가 천멍에게 승리하고 올림픽 금메달을 땄다면 쑨잉사는 2000년대 출생자 최초로 올림픽, 세계선수권, 월드컵에서 모두 우승하는 그랜드슬램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중국 남자 탁구 스타 장지커가 세운 445일만의 세계 최단기간 그랜드슬램 기록을 433일로 단축시키면서 말입니다.
게다가 2000년 11월생으로 아직 만 23세에 불과합니다. 다음 올림픽 출전도 가능합니다.
중국 여자 탁구의 전설 장이닝이 세운 '더블 그랜드슬램'의 위업도 쑨잉사에게는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었던 겁니다.
반면 세계 랭킹 4위의 1994년생 천멍은 새로운 전설을 써 내려가기에는 선수로서 적지 않은 나이입니다.
파리올림픽 결승전을 찾은 중국 팬들은 대표팀을 응원하는 팬들이라기보다는 쑨잉사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대관식을 원했던 개인 팬덤이었고, 이들의 눈에는 천멍이 자국의 자랑스런 대표선수가 아니라 쑨잉사의 황금빛 커리어에 제동을 건 선수로 보였던 듯 합니다.
쑨잉사에게는 응원과 환호가 쏟아졌지만, 천멍의 점수가 올라갈 때는 야유와 침묵이 대신했습니다.
자본은 팬덤에 환호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키웁니다. 애국주의의 영향으로 스포츠 스타들의 광고 효과가 큰 중국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2015년에만 해도 중국에서 스포츠 스타를 모델로 쓴 광고가 8건에 불과했지만, 2021년에는 161건으로 늘었습니다. 이들의 광고효과가 꾸준히 커졌다는 방증입니다.
특히나 올림픽을 앞두고는 식품, 의류, 가전을 가리지 않고 선수들이 온갖 광고에 출연합니다.
보통 메달을 따면 광고가 들어오는 한국과 달리 메달을 딸 가능성이 있는 선수를 미리 광고모델로 선점하는 구조입니다. 선수의 메달 획득 후 대박을 기대하며 일종의 베팅을 하는 겁니다.
광고에 많이 노출될수록 팬덤도 커지고, 라이벌 선수의 팬덤을 공격하고 서로 경쟁하면서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의 브랜드를 집중적으로 소비하기도 합니다.
이러다보니 쑨잉사는 기업 입장에서 결코 놓칠 수 없는 광고 모델입니다. 코카콜라, 이리, PICO 등이 쑨잉사와 광고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미리 우승 축하 광고를 실으며 논란을 일으킨 이리 역시 탁구 대표팀의 스폰서이면서 동시에 쑨잉사를 광고 모델로 쓰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결승무대에 오른 천멍은 눈 앞의 실력자 쑨잉사 외에도 쑨잉사의 승리를 바라는 거대 팬덤·거대 자본도 함께 상대했던 셈입니다.
■뒤늦은 '악성 팬덤' 고민…천멍 "승패 마주해야"
금메달을 목에 건 뒤에도 천멍은 쑨잉사 팬들의 비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자국 선수가 우승하고도 야유와 비난에 시달리는 모습이 전 세계에 노출되자 중국에서는 팬덤화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SNS에서 천멍을 비방한 네티즌이 공안 당국에 구속됐고, 웨이보도 일부 이용자가 선수와 코칭스태프를 비이성적으로 비난하고 있다며 1만 2천 건의 게시물을 단속했다고 밝혔습니다.
천멍도 결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달라며 팬들을 향해 목소리를 냈습니다.
"팬들은 모두 좋아하는 선수의 승리를 바랍니다. 하지만 시합에서는 언제나 승패가 갈립니다. 팬들이 승패를 분명히 마주하기를 바랍니다. " "스포츠에 관심을 가진다면 (승패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스포츠의 매력이기 때문입니다." |
대표팀 내에서 분위기를 저해하고 스포츠 정신을 훼손시킨다는 부작용 외에도, 아이돌 사생팬을 방불케 하는 극성 팬들도 문제로 떠오릅니다.
일부 극성 팬들이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의 호텔에 찾아오고, 몰래 훈련 모습을 찍어 판매하는 대리 촬영 시장까지 생겨나자, 견디다 못한 남자 세계랭킹 1위이자 이번 올림픽 혼합복식 금메달 리스트인 왕추친 선수는 사생활을 존중해달라고 호소하기까지 했습니다.
팬덤과 이들이 끌어들인 자본에 힘입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온 중국 탁구지만, 이제는 잠시 업계의 모습을 돌아보고 자정 방법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 됐습니다.
비인기 종목의 발전과 그리고 프로 리그의 활성화를 꿈꾸는 모든 스포츠인들의 고민과도 맞닿아 있는 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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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기자 mjnew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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