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하면 사직’은 관행?…“그런 관행은 위법” [주말엔]

입력 2024.08.10 (08:00) 수정 2024.08.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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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이 사회 문제가 됐지만, 아직도 '출산하면 직장을 그만두는 게 당연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대한민국 법조계입니다.

법무법인은 '출산하면 사직하는 게 관행이며, 다른 여성들도 출산과 동시에 회사를 나갔다'면서 부당해고가 아니라고 소송을 걸기도 합니다.

서울고등법원 행정10-1부(부장판사 오현규 김유진 하태한)는 지난달 19일, 한 법무법인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항소 기각으로 원고 패소 판결했습니다.

■'육아 휴직·출산 휴가' 이후 복직 못 한 여성 변호사

2020년 여성 변호사 A 씨는 둘째를 임신했습니다. A 씨는 자신이 다니는 법무법인에 11월부터 첫째에 대한 육아휴직 3개월을 쓰고, 다음 해 1월 둘째를 출산하면 출산일로부터 3개월 출산휴가를 쓰겠다는 계획을 보고했습니다.

법무법인 대표 B 씨와 대화도 나눴고, 육아휴직과 출산휴가 처리는 문제없이 처리됐습니다.


하지만 A 씨는 출산휴가 중이던 2021년 4월 초, 법무법인 직원으로부터 '출산휴가 후에 더 이상 사무실에 출근하지 말라고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여성 변호사 A 씨는 자초지종을 듣고 싶어 법무법인 대표 B 씨에게 연락했습니다. 하지만 B 씨는 휴직 전과 다른 말을 했습니다. 출산 준비로 인해 근로관계가 끝났다는 겁니다.

법무법인 대표 B 씨는 문자메시지로 "출산 등의 휴가절차는 A 씨의 개인적인 요청을 회사가 협조해 준 것이다"면서 "A 씨와 법무법인의 실질적 근로관계는 지난 출산 준비로 인한 이석 시에 종료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법무법인은 같은 해 6월 퇴직금 약 460만 원을 A 씨 계좌에 일방적으로 입금했습니다. A 씨의 월급은 650만 원이었습니다.

이에 A 씨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고, 서울지방노동위는 구제신청을 인용했습니다.

해당 법무법인은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 신청을 했지만 기각당했고, 이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심 재판부 "'출산 사직' 관행은 위법, 시정돼야 마땅"

법무법인은 '고액의 급여를 받고 재취업이 쉬운 변호사 업계 특성상 여성 변호사 출산에 따른 사직은 업계의 오래된 관행이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같은 법무법인의 다른 여성 변호사들도 출산과 동시에 회사를 사직했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1심과 2심 법원은 모두 법무법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1월 서울행정법원 제11부(부장판사 강우찬)는 중앙노동위의 '부당해고' 판단은 적법하다고 판결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출산 시 사직하는 업무 관행이 있다고 주장하나, 이는 원고의 일방적인 주장이다"면서 "그런 관행이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모성보호 기간에 해고 금지를 규정한 근로기준법에 반하는 것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고, 반드시 시정돼야 마땅하다"고 강조했습니다.

■2심 재판부 "경력 단절·고용 불안 초래…일방적 불리한 관행"


해당 법무법인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항소심 재판부 판단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2심 재판부는 "원고가 일방적인 의사로 여성 변호사 A 씨를 해고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A 씨가 육아휴직과 출산휴가 계획안을 작성해 제출했고, 대표 B 씨도 이의 없이 승인했다"면서 "A 씨는 육아휴직 후 업무에 복귀할 의사로 가사도우미까지 구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출산 사직이 관행이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그런 관행이 존재한다고 인정할 만한 아무런 자료가 없다"면서 "설령 그런 관행과 같은 선례가 있다고 해도 여성 변호사의 경력 단절과 고용 불안 등의 부담만을 초래하는 일방적으로 불리한 내용의 관행이나 선례다"고 지적했습니다.

해당 법무법인이 'A 씨가 업무 복귀를 하지 않고 다른 법무법인에서 일해, 해고 전부터 근로 의사가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근로자 입장에서 부당하게 해고된 이후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부라도 소득을 보전하기 위한 행동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근로기준법 위반…'벌금 300만 원'에서 선고유예로 감형

해당 법무법인 대표 B 씨는 이 사건으로 인해 재판에 넘겨졌지만 2심에선 감형을 받았습니다.

서울중앙지검은 2022년 1월, 출산휴가 기간 중에 A 씨를 사전 예고 없이 문자로 해고한 점을 들어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약식기소했습니다.

1심은 2022년 11월, 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보고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2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4-1부(부장판사 양지정)는 지난 1월, "근로관계 종료를 동의하거나 합의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도 "1심 형(벌금 300만 원)이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고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습니다.

선고유예는 비교적 죄가 가벼운 경우 2년 동안 형 집행을 미루는 걸 말합니다.

■여성변호사회 "전문직이라는 이유로 사각지대"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이 알려진 후, 여성변호사회도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여변은 "여성 변호사 수가 늘어나고 있지만, 근로여건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면서 " 임신과 출산, 육아를 이유로 노골적으로 또는 보이지 않게 차별과 불이익을 당하고 있고, 전문직이라는 이유로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출산과 육아휴직을 허용한 법무법인에 대한 유무형의 인센티브 제공과 다양한 근무환경조성, 모성 보호시설 확충 등 여러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며, 남녀 변호사 모두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필수 과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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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8-10 08:00:15
    • 수정2024-08-10 08:00:26
    주말엔

저출생이 사회 문제가 됐지만, 아직도 '출산하면 직장을 그만두는 게 당연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대한민국 법조계입니다.

법무법인은 '출산하면 사직하는 게 관행이며, 다른 여성들도 출산과 동시에 회사를 나갔다'면서 부당해고가 아니라고 소송을 걸기도 합니다.

서울고등법원 행정10-1부(부장판사 오현규 김유진 하태한)는 지난달 19일, 한 법무법인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항소 기각으로 원고 패소 판결했습니다.

■'육아 휴직·출산 휴가' 이후 복직 못 한 여성 변호사

2020년 여성 변호사 A 씨는 둘째를 임신했습니다. A 씨는 자신이 다니는 법무법인에 11월부터 첫째에 대한 육아휴직 3개월을 쓰고, 다음 해 1월 둘째를 출산하면 출산일로부터 3개월 출산휴가를 쓰겠다는 계획을 보고했습니다.

법무법인 대표 B 씨와 대화도 나눴고, 육아휴직과 출산휴가 처리는 문제없이 처리됐습니다.


하지만 A 씨는 출산휴가 중이던 2021년 4월 초, 법무법인 직원으로부터 '출산휴가 후에 더 이상 사무실에 출근하지 말라고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여성 변호사 A 씨는 자초지종을 듣고 싶어 법무법인 대표 B 씨에게 연락했습니다. 하지만 B 씨는 휴직 전과 다른 말을 했습니다. 출산 준비로 인해 근로관계가 끝났다는 겁니다.

법무법인 대표 B 씨는 문자메시지로 "출산 등의 휴가절차는 A 씨의 개인적인 요청을 회사가 협조해 준 것이다"면서 "A 씨와 법무법인의 실질적 근로관계는 지난 출산 준비로 인한 이석 시에 종료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법무법인은 같은 해 6월 퇴직금 약 460만 원을 A 씨 계좌에 일방적으로 입금했습니다. A 씨의 월급은 650만 원이었습니다.

이에 A 씨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고, 서울지방노동위는 구제신청을 인용했습니다.

해당 법무법인은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 신청을 했지만 기각당했고, 이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심 재판부 "'출산 사직' 관행은 위법, 시정돼야 마땅"

법무법인은 '고액의 급여를 받고 재취업이 쉬운 변호사 업계 특성상 여성 변호사 출산에 따른 사직은 업계의 오래된 관행이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같은 법무법인의 다른 여성 변호사들도 출산과 동시에 회사를 사직했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1심과 2심 법원은 모두 법무법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1월 서울행정법원 제11부(부장판사 강우찬)는 중앙노동위의 '부당해고' 판단은 적법하다고 판결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출산 시 사직하는 업무 관행이 있다고 주장하나, 이는 원고의 일방적인 주장이다"면서 "그런 관행이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모성보호 기간에 해고 금지를 규정한 근로기준법에 반하는 것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고, 반드시 시정돼야 마땅하다"고 강조했습니다.

■2심 재판부 "경력 단절·고용 불안 초래…일방적 불리한 관행"


해당 법무법인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항소심 재판부 판단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2심 재판부는 "원고가 일방적인 의사로 여성 변호사 A 씨를 해고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A 씨가 육아휴직과 출산휴가 계획안을 작성해 제출했고, 대표 B 씨도 이의 없이 승인했다"면서 "A 씨는 육아휴직 후 업무에 복귀할 의사로 가사도우미까지 구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출산 사직이 관행이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그런 관행이 존재한다고 인정할 만한 아무런 자료가 없다"면서 "설령 그런 관행과 같은 선례가 있다고 해도 여성 변호사의 경력 단절과 고용 불안 등의 부담만을 초래하는 일방적으로 불리한 내용의 관행이나 선례다"고 지적했습니다.

해당 법무법인이 'A 씨가 업무 복귀를 하지 않고 다른 법무법인에서 일해, 해고 전부터 근로 의사가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근로자 입장에서 부당하게 해고된 이후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부라도 소득을 보전하기 위한 행동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근로기준법 위반…'벌금 300만 원'에서 선고유예로 감형

해당 법무법인 대표 B 씨는 이 사건으로 인해 재판에 넘겨졌지만 2심에선 감형을 받았습니다.

서울중앙지검은 2022년 1월, 출산휴가 기간 중에 A 씨를 사전 예고 없이 문자로 해고한 점을 들어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약식기소했습니다.

1심은 2022년 11월, 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보고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2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4-1부(부장판사 양지정)는 지난 1월, "근로관계 종료를 동의하거나 합의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도 "1심 형(벌금 300만 원)이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고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습니다.

선고유예는 비교적 죄가 가벼운 경우 2년 동안 형 집행을 미루는 걸 말합니다.

■여성변호사회 "전문직이라는 이유로 사각지대"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이 알려진 후, 여성변호사회도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여변은 "여성 변호사 수가 늘어나고 있지만, 근로여건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면서 " 임신과 출산, 육아를 이유로 노골적으로 또는 보이지 않게 차별과 불이익을 당하고 있고, 전문직이라는 이유로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출산과 육아휴직을 허용한 법무법인에 대한 유무형의 인센티브 제공과 다양한 근무환경조성, 모성 보호시설 확충 등 여러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며, 남녀 변호사 모두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필수 과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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