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코지마의 유행가가 된 ‘아리랑’ [창+]

입력 2024.08.13 (14:00) 수정 2024.08.13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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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군속이 팠다는 우물에서 기도하고 있는 ‘구와에 유키노 씨’. 오키나와 평화운동가이자 가수, 의사이기도 한 그녀는 시사기획 창 ‘오키나와 아리랑’ 편에서 미야코지마로 아리랑의 흔적을 찾아 떠났다.조선 군속이 팠다는 우물에서 기도하고 있는 ‘구와에 유키노 씨’. 오키나와 평화운동가이자 가수, 의사이기도 한 그녀는 시사기획 창 ‘오키나와 아리랑’ 편에서 미야코지마로 아리랑의 흔적을 찾아 떠났다.

최근 직항편이 취항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알려지기 시작한 일본 미야코지마는 특히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미야코지마는 오키나와에서 가면 비행기로 한 시간, 타이완과 오키나와 중간 쯤에 위치한 섬입니다.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지만 꽤 오래전 미야코지마에서 '아리랑'이 '유행가'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미야코지마의 아름다운 바닷가미야코지마의 아름다운 바닷가

■ '아리랑'을 유행시킨 이들

일본군은 태평양 전쟁 말기 본토 수호를 외치며 오키나와에 집결합니다.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투로 남아 있는 오키나와 전투의 서막입니다.

미야코지마에도 3만 명의 일본군이 밀려 들어옵니다. 당시 주민이 5만 명 가량이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일본군이 한꺼번에 진주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군과 함께 섬에 온 조선 사람들이 있습니다. 군 지원을 위해 한반도에서 '군속'으로 동원된 이들과 '위안부'였습니다.

"아리랑 노래를 부르면서 (우물을) 열심히 파니까 들렸습니다만...부르니까 저절로 들린 거죠.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라고 노래 부르네 하고 들었어요(이라부 미요/미야코지마 주민)."

밭일을 하면서도 아리랑을 흥얼거릴 정도로 아리랑을 자주 부른 이라부 할머니는 자신의 집안 밭에 우물을 파던 조선 군속들이 아리랑을 부르던 걸 뚜렷이 기억했습니다.

갑자기 많은 수의 군인이 들어와 여기저기서 진지 공사들을 진행했고, 식수를 확보하기 위해 우물도 새로 팠습니다. 그 우물을 파 준 고마운 사람으로 조선 군속들을 기억하고 있는 겁니다.

■ 특별했던 그들의 관계

요나하 할아버지가 취재진을 만나 소년 시절 위안부들을 만났던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요나하 할아버지가 취재진을 만나 소년 시절 위안부들을 만났던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

미야코지마 사람들에게 어느날 군과 함께 나타난 '위안부'들은 좀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농사일로 검게 그을린 현지 주민들과 달리 하얀 피부에 아름다운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위안소 주변에도 소나 말의 꼴을 베러 부근을 왔다갔다 했으니까요. 처음에는 일본군 막사였는데 예쁜 누나들이 보여서 왜 병사 숙소에 여성들이 있나하고 의아했죠. 소학교 5학년 시선으로 보면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정말 예쁜 누나들이었어요(요나하 히로토시/미야코지마 주민, 위안부를 만난 할아버지)."

일본군은 미야코지마에서 행사를 열기도 했습니다. 군 사기를 올리기 위한 것인데, 여기에 동원된 것도 위안부들이었습니다.

"군기제라는 행사를 열었는데 위안소에 있던 누나들도 그 행사에서 아리랑을 부르면서 춤을 췄습니다.
손수건 같은 것을 흔들면서 양쪽으로 나뉘어 노래를 부르고(요나하 히로토시/미야코지마 주민)"

마을 주민들도 일본군 행사에 가서 아리랑을 들었습니다. 요즘으로 하면 군 위로 방문행사에 나타난 '가수'를 인근 주민들이 봤었던 걸까요? 하지만 주민들은 단순히 행사에서 '아리랑'을 들었다고 유행한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아리랑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춘 일만 있었던 게 아니라, 아리랑이 유행한 것은 마을 누나들과 함께 빨래하면서 교류했기 때문이에요(요나하 히로토시/미야코지마 주민)."

우물가, 또 빨래터에서 위안부들과 마을 사람들이 교류했다는 증언은 꽤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들 사이에 싹튼 '오고 감'이 아리랑을 저절로 미야코지마에 스며들게 한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누구에게 배웠다는 말은 들은 적은 없지만요. 참 이상한 건, 저도 확실히 누구한테 배웠다고 들은 적은 없지만 그 연령대 분들 중 여러 명이 이 노래를 부를 줄 알아요. 아리랑을요.(우에사토 기요미/ 미야코지마 주민)"

이제 아리랑을 조선 군속이나 위안부들에게 직접 배웠다는 분들은 많이 돌아가시고 살아계신 분들도 90대입니다. 그들이 간직하고 있는 유행가 '아리랑'의 기억.

시사기획창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시사기획창 '오키나와 아리랑' 8월 13일 KBS1TV 저녁 10시

'시사기획 창' 홈페이지 https://news.kbs.co.kr/vod/program.do?bcd=0039&ref=pMenu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Eb31RoX5RnfYENmnyokN8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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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직항편이 취항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알려지기 시작한 일본 미야코지마는 특히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미야코지마는 오키나와에서 가면 비행기로 한 시간, 타이완과 오키나와 중간 쯤에 위치한 섬입니다.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지만 꽤 오래전 미야코지마에서 '아리랑'이 '유행가'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미야코지마의 아름다운 바닷가
■ '아리랑'을 유행시킨 이들

일본군은 태평양 전쟁 말기 본토 수호를 외치며 오키나와에 집결합니다.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투로 남아 있는 오키나와 전투의 서막입니다.

미야코지마에도 3만 명의 일본군이 밀려 들어옵니다. 당시 주민이 5만 명 가량이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일본군이 한꺼번에 진주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군과 함께 섬에 온 조선 사람들이 있습니다. 군 지원을 위해 한반도에서 '군속'으로 동원된 이들과 '위안부'였습니다.

"아리랑 노래를 부르면서 (우물을) 열심히 파니까 들렸습니다만...부르니까 저절로 들린 거죠.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라고 노래 부르네 하고 들었어요(이라부 미요/미야코지마 주민)."

밭일을 하면서도 아리랑을 흥얼거릴 정도로 아리랑을 자주 부른 이라부 할머니는 자신의 집안 밭에 우물을 파던 조선 군속들이 아리랑을 부르던 걸 뚜렷이 기억했습니다.

갑자기 많은 수의 군인이 들어와 여기저기서 진지 공사들을 진행했고, 식수를 확보하기 위해 우물도 새로 팠습니다. 그 우물을 파 준 고마운 사람으로 조선 군속들을 기억하고 있는 겁니다.

■ 특별했던 그들의 관계

요나하 할아버지가 취재진을 만나 소년 시절 위안부들을 만났던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
미야코지마 사람들에게 어느날 군과 함께 나타난 '위안부'들은 좀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농사일로 검게 그을린 현지 주민들과 달리 하얀 피부에 아름다운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위안소 주변에도 소나 말의 꼴을 베러 부근을 왔다갔다 했으니까요. 처음에는 일본군 막사였는데 예쁜 누나들이 보여서 왜 병사 숙소에 여성들이 있나하고 의아했죠. 소학교 5학년 시선으로 보면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정말 예쁜 누나들이었어요(요나하 히로토시/미야코지마 주민, 위안부를 만난 할아버지)."

일본군은 미야코지마에서 행사를 열기도 했습니다. 군 사기를 올리기 위한 것인데, 여기에 동원된 것도 위안부들이었습니다.

"군기제라는 행사를 열었는데 위안소에 있던 누나들도 그 행사에서 아리랑을 부르면서 춤을 췄습니다.
손수건 같은 것을 흔들면서 양쪽으로 나뉘어 노래를 부르고(요나하 히로토시/미야코지마 주민)"

마을 주민들도 일본군 행사에 가서 아리랑을 들었습니다. 요즘으로 하면 군 위로 방문행사에 나타난 '가수'를 인근 주민들이 봤었던 걸까요? 하지만 주민들은 단순히 행사에서 '아리랑'을 들었다고 유행한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아리랑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춘 일만 있었던 게 아니라, 아리랑이 유행한 것은 마을 누나들과 함께 빨래하면서 교류했기 때문이에요(요나하 히로토시/미야코지마 주민)."

우물가, 또 빨래터에서 위안부들과 마을 사람들이 교류했다는 증언은 꽤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들 사이에 싹튼 '오고 감'이 아리랑을 저절로 미야코지마에 스며들게 한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누구에게 배웠다는 말은 들은 적은 없지만요. 참 이상한 건, 저도 확실히 누구한테 배웠다고 들은 적은 없지만 그 연령대 분들 중 여러 명이 이 노래를 부를 줄 알아요. 아리랑을요.(우에사토 기요미/ 미야코지마 주민)"

이제 아리랑을 조선 군속이나 위안부들에게 직접 배웠다는 분들은 많이 돌아가시고 살아계신 분들도 90대입니다. 그들이 간직하고 있는 유행가 '아리랑'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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