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차 가능합니다"
지난 9일 새벽 2시 9분, 출발해도 된다는 신호에 '선로 점검 열차'는 구로역으로 향했습니다.
사고가 난 건 출발 7분 뒤인 새벽 2시 16분.
옆 선로에서 작업하던 5~6미터 높이의 '전기 모터카 작업대'를 이 열차가 들이받았습니다.
이 사고로 당시 작업대에서 일하던 30대의 젊은 청년 두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정상적인 신호'를 듣고 출발했는데도 일어난 인명 사고,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 '출발해도 된다' 신호 받았는데 사고?...당시 녹취록 살펴보니
KBS가 사고 당시 열차와 역사간 녹취록을 확보해 살펴봤더니, 같은 시간대에 작업하고 있던 두 작업 차량 간 소통이 미흡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새벽 2시 9분) 선로점검차: "네. 구로(쪽으로) 발차 가능한가요?" 금천구청역: "발차 가능합니다." |
더불어민주당 박해철 의원실이 제공한 녹취록에 따르면 선로 점검 열차는 출발 직전인 2시 9분, 금천구청역에 구로 방면으로 '발차가 가능한지' 묻습니다.
금천구청역은 '가능하다'고 했고, 이에 선로 점검 열차는 '바로 발차하겠다'고 답합니다.
(새벽 2시 16분) 전철모터카: "철도 '구로' 전철모터카 이상 x3, 저희들 사상사고 났습니다. 구급차 좀 불러주세요" |
이후 녹음된 음성은 다급하게 사고 상황을 알리는 내용 뿐입니다.
사고가 난 두 차량을 관제했던 구로역과 금천구청역 간 '소통 정황'은 녹취록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두 작업을 관제하는 역이 서로 달랐다는 이유로, 역 간에 소통이 없었던 겁니다.
사고를 막을 수 있었던 상황에서 '충돌 경고'조차 하지 못했던 이유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사고가 난 전철모터카는 서울 지하철 1호선이 오가는 9번 선로에서 작업하고 있었고, 금천구청역에서 오는 '선로점검차'는 무궁화호가 지나다니는 10번 선로에 있었습니다." - 철도노조 관계자- "하나는 경부선, 하나는 지하철 1호선인데 작업 지시를 내리는 주체가 다릅니다. 주체가 다르면, 상하행선이 작업하면서 소통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안 한 게 큰 문제입니다." -업계 관계자- |
■ "작업계획서에 '인접 선로' 내용 없어…현장 반영 '미흡'"
사고 당시 위 영상과 같이 작업자들은 ' 전철모터카'에 달린 작업대에서 절연구조물을 교체하던 중이었습니다.
보수 작업 등을 하는 특수차량의 경우 관제실과 수시로 소통하면서 작업을 진행합니다.
박채은 일하는시민연구소 정책위원은 "(관제실에서) 모터카 운행 작업자들에게 '작업계획서'에 따라 지시를 하고, (작업) 내용은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작업계획서는 작업장에 대한 사전 조사와 작업 순서, 위험 요인에 대한 안전 조치 방법 등을 사전에 확인해 사고를 막기 위한 최소 조치입니다.
그런데 이 작업계획서에도 두 차량 간 충돌 위험성, 즉 인접 선로의 사고 가능성은 언급돼 있지 않았습니다.
① 작업 장소에 '인접 선로 사고 가능성' 배제
먼저, 작업계획서상 '작업 장소'에 적혀있는 내용을 보면 '구로구 내 5~9선'이 포함됐지만, '10번 선로'는 따로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모터카 작업대는 양옆으로 4m까지 움직일 수 있는 작업 차량입니다.
위 영상에서처럼 선로 간 거리가 1.5m 정도인 구로역 9번 선로에서 작업대가 이동해 작업을 진행하면 10번 선로까지 작업 중 침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작업 장소'에는 9번 선로까지만 기재됐습니다. 작업계획서에 '현장'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겁니다.
② 위험요인에 '이동반경 선로, 열차 운행 여부' 누락
또, 작업 중 위험 요인으로 '차상 점검 시 모터카 상부 작업에 따른 추락 및 모터카 이동 시 시설물 접촉에 의한 부상 주의, 위험요인 지적확인 시행 철저'라고 기재됐습니다.
그럼에도 모터카 작업대의 이동 반경이나, 인접 선로의 열차 운행 여부는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사고가 난 모터카는 이동 시에 위험 요소가 많았지만, 현장에서 이를 점검할 수 있는 '매뉴얼'이 없었던 겁니다.
작업계획서에 '작업 현장의 특성'이 제대로 반영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위험성 평가가 형식적으로 돼 있는 부분입니다. 옆에 선로에 작업하는 데에 부딪히는 걸 생각 못했다는 건 여러 선로가 있는데 작업할 때는 양쪽 선로에 열차가 지나가나 하는 부분을 사전에 관리하고 하는 메뉴얼이 있어야 하는데, 그 부분이 누락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성룡/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중대재해처벌법 전공)- |
■ "인접 선로 차단도, 열차 운행 감시인도 없었다."
이에 더해 철도노조 측은 작업 시 인접 선로를 차단하거나, 현장에서 갑작스런 사고에 대처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현행법에는 '충돌 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을 때 '열차 운행 감시인'을 배치하도록 하지만, 선로를 이동하면서 하는 '단순 점검'의 경우에는 예외를 두고 있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 8장 1절 제407조(열차운행감시인의 배치 등) ① 사업주는 열차 운행에 의한 충돌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궤도를 보수ㆍ점검하는 경우에 열차운행감시인을 배치하여야 한다. 다만, 선로순회 등 선로를 이동하면서 하는 단순점검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
이에 노조 측은 "현재 철도 작업 시, 차가 들어가는 업무에 한해서는 열차를 감시할 수 있는 인원을 배치하지 않는다"며 "차가 아닌 사람만 들어갈 때는 배치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사고와 같이 예기치 못한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차량 작업일 경우에도 '열차 운행 감시인' 배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번 구로역 사고는 옆 차로를 막을 수 있는 강제력이 없었고, 모터카 작업대에 매달려 작업하는 경우 '차량 작업'으로 분리되기 때문에 감시인이 없어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5번째..반복되는 철도 노동자 사망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가 본질적으로 "회사 측의 안전 관리 시스템이 미흡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설명합니다.
"작업계획서와 녹취록을 살펴봤을 때, 한 선로에서 작업할 때 다른 선로의 작업을 못하게끔 하도록 메뉴얼 내지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이번 사고뿐만 아니라, 지난 사고들도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이 되니 산업재해에 노출되는 현재 코레일 노동 구조 문제는 개선돼야 합니다." -박채은 일하는시민연구소 정책위원(법학박사)- |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이번을 포함해 코레일에서는 벌써 다섯 차례나 사망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아직 코레일에서 중대재해법을 적용해 처벌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이번 사고에서도 중대재해법이 적용되는 만큼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정확한 사고 원인과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해 수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래픽: 권세라
촬영기자: 조창훈
자료제공: 더불어민주당 박해철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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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로역 사고’ 현장 소통도, 작업계획서도 모두 ‘미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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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4-08-15 07:01:15
"발차 가능합니다"
지난 9일 새벽 2시 9분, 출발해도 된다는 신호에 '선로 점검 열차'는 구로역으로 향했습니다.
사고가 난 건 출발 7분 뒤인 새벽 2시 16분.
옆 선로에서 작업하던 5~6미터 높이의 '전기 모터카 작업대'를 이 열차가 들이받았습니다.
이 사고로 당시 작업대에서 일하던 30대의 젊은 청년 두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정상적인 신호'를 듣고 출발했는데도 일어난 인명 사고,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 '출발해도 된다' 신호 받았는데 사고?...당시 녹취록 살펴보니
KBS가 사고 당시 열차와 역사간 녹취록을 확보해 살펴봤더니, 같은 시간대에 작업하고 있던 두 작업 차량 간 소통이 미흡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새벽 2시 9분) 선로점검차: "네. 구로(쪽으로) 발차 가능한가요?" 금천구청역: "발차 가능합니다." |
더불어민주당 박해철 의원실이 제공한 녹취록에 따르면 선로 점검 열차는 출발 직전인 2시 9분, 금천구청역에 구로 방면으로 '발차가 가능한지' 묻습니다.
금천구청역은 '가능하다'고 했고, 이에 선로 점검 열차는 '바로 발차하겠다'고 답합니다.
(새벽 2시 16분) 전철모터카: "철도 '구로' 전철모터카 이상 x3, 저희들 사상사고 났습니다. 구급차 좀 불러주세요" |
이후 녹음된 음성은 다급하게 사고 상황을 알리는 내용 뿐입니다.
사고가 난 두 차량을 관제했던 구로역과 금천구청역 간 '소통 정황'은 녹취록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두 작업을 관제하는 역이 서로 달랐다는 이유로, 역 간에 소통이 없었던 겁니다.
사고를 막을 수 있었던 상황에서 '충돌 경고'조차 하지 못했던 이유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사고가 난 전철모터카는 서울 지하철 1호선이 오가는 9번 선로에서 작업하고 있었고, 금천구청역에서 오는 '선로점검차'는 무궁화호가 지나다니는 10번 선로에 있었습니다." - 철도노조 관계자- "하나는 경부선, 하나는 지하철 1호선인데 작업 지시를 내리는 주체가 다릅니다. 주체가 다르면, 상하행선이 작업하면서 소통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안 한 게 큰 문제입니다." -업계 관계자- |
■ "작업계획서에 '인접 선로' 내용 없어…현장 반영 '미흡'"
사고 당시 위 영상과 같이 작업자들은 ' 전철모터카'에 달린 작업대에서 절연구조물을 교체하던 중이었습니다.
보수 작업 등을 하는 특수차량의 경우 관제실과 수시로 소통하면서 작업을 진행합니다.
박채은 일하는시민연구소 정책위원은 "(관제실에서) 모터카 운행 작업자들에게 '작업계획서'에 따라 지시를 하고, (작업) 내용은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작업계획서는 작업장에 대한 사전 조사와 작업 순서, 위험 요인에 대한 안전 조치 방법 등을 사전에 확인해 사고를 막기 위한 최소 조치입니다.
그런데 이 작업계획서에도 두 차량 간 충돌 위험성, 즉 인접 선로의 사고 가능성은 언급돼 있지 않았습니다.
① 작업 장소에 '인접 선로 사고 가능성' 배제
먼저, 작업계획서상 '작업 장소'에 적혀있는 내용을 보면 '구로구 내 5~9선'이 포함됐지만, '10번 선로'는 따로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모터카 작업대는 양옆으로 4m까지 움직일 수 있는 작업 차량입니다.
위 영상에서처럼 선로 간 거리가 1.5m 정도인 구로역 9번 선로에서 작업대가 이동해 작업을 진행하면 10번 선로까지 작업 중 침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작업 장소'에는 9번 선로까지만 기재됐습니다. 작업계획서에 '현장'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겁니다.
② 위험요인에 '이동반경 선로, 열차 운행 여부' 누락
또, 작업 중 위험 요인으로 '차상 점검 시 모터카 상부 작업에 따른 추락 및 모터카 이동 시 시설물 접촉에 의한 부상 주의, 위험요인 지적확인 시행 철저'라고 기재됐습니다.
그럼에도 모터카 작업대의 이동 반경이나, 인접 선로의 열차 운행 여부는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사고가 난 모터카는 이동 시에 위험 요소가 많았지만, 현장에서 이를 점검할 수 있는 '매뉴얼'이 없었던 겁니다.
작업계획서에 '작업 현장의 특성'이 제대로 반영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위험성 평가가 형식적으로 돼 있는 부분입니다. 옆에 선로에 작업하는 데에 부딪히는 걸 생각 못했다는 건 여러 선로가 있는데 작업할 때는 양쪽 선로에 열차가 지나가나 하는 부분을 사전에 관리하고 하는 메뉴얼이 있어야 하는데, 그 부분이 누락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성룡/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중대재해처벌법 전공)- |
■ "인접 선로 차단도, 열차 운행 감시인도 없었다."
이에 더해 철도노조 측은 작업 시 인접 선로를 차단하거나, 현장에서 갑작스런 사고에 대처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현행법에는 '충돌 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을 때 '열차 운행 감시인'을 배치하도록 하지만, 선로를 이동하면서 하는 '단순 점검'의 경우에는 예외를 두고 있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 8장 1절 제407조(열차운행감시인의 배치 등) ① 사업주는 열차 운행에 의한 충돌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궤도를 보수ㆍ점검하는 경우에 열차운행감시인을 배치하여야 한다. 다만, 선로순회 등 선로를 이동하면서 하는 단순점검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
이에 노조 측은 "현재 철도 작업 시, 차가 들어가는 업무에 한해서는 열차를 감시할 수 있는 인원을 배치하지 않는다"며 "차가 아닌 사람만 들어갈 때는 배치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사고와 같이 예기치 못한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차량 작업일 경우에도 '열차 운행 감시인' 배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번 구로역 사고는 옆 차로를 막을 수 있는 강제력이 없었고, 모터카 작업대에 매달려 작업하는 경우 '차량 작업'으로 분리되기 때문에 감시인이 없어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5번째..반복되는 철도 노동자 사망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가 본질적으로 "회사 측의 안전 관리 시스템이 미흡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설명합니다.
"작업계획서와 녹취록을 살펴봤을 때, 한 선로에서 작업할 때 다른 선로의 작업을 못하게끔 하도록 메뉴얼 내지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이번 사고뿐만 아니라, 지난 사고들도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이 되니 산업재해에 노출되는 현재 코레일 노동 구조 문제는 개선돼야 합니다." -박채은 일하는시민연구소 정책위원(법학박사)- |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이번을 포함해 코레일에서는 벌써 다섯 차례나 사망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아직 코레일에서 중대재해법을 적용해 처벌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이번 사고에서도 중대재해법이 적용되는 만큼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정확한 사고 원인과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해 수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래픽: 권세라
촬영기자: 조창훈
자료제공: 더불어민주당 박해철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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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민 기자 toyou@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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