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를 쫓아라”…바다 휘젓는 ‘무법’ 돌고래 관광

입력 2024.08.17 (08:00) 수정 2024.08.17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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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낮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해상에서 돌고래 관광 선박이 관광객을 태우고 운항에 나선 모습. 이광행 씨 제공지난 15일 낮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해상에서 돌고래 관광 선박이 관광객을 태우고 운항에 나선 모습. 이광행 씨 제공

멸종 위기 제주 남방큰돌고래를 위협하는 관광이 법망을 피해 횡행하고 있습니다.

돌고래가 헤엄치는 길목을 막아서는 무리한 돌고래 관광은 돌고래 생태계에 영향을 미친다며 전문가들이 자제를 요청하고 있지만 별 효과가 없습니다.

지난 15일 낮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서 찍은 영상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제주 연안에만 서식하는 남방큰돌고래가 수면 밖으로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해역 중 하나입니다.

이날도 '돌고래를 볼 수 있다'는 기대를 안고 찾아온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해안가로 모여들었습니다.

저마다 바다가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 올라 서서, 남방큰돌고래 무리가 보이기를 기다렸습니다.

지난 15일 낮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해상에서 제주 남방큰돌고래 무리가 헤엄치고 있다. 이광행 씨 제공지난 15일 낮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해상에서 제주 남방큰돌고래 무리가 헤엄치고 있다. 이광행 씨 제공

그런데 이곳에서 멀지 않은 바다에 떠 있는 레저 선박과 어선 몇 척이 눈에 띕니다.

제자리에 멈춰선 채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합니다.

멀리서 한눈에 봐도 조업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윽고 나타난 돌고래 떼. 그러자 이 선박들이 기다렸다는 듯 무리에 바싹 붙습니다.

좀 더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돌고래 떼의 진로를 방해하는 일도 서슴지 않습니다.

돌고래가 지나가려고 하자 선박 한 척은 이를 막아서고, 돌고래 무리가 배를 피해 방향을 틀자 뒤쫓기도 합니다.

관광 선박들은 서로 협력하며 돌고래를 한 데 몰아놓습니다.

엄연한 법 위반입니다.

지난 15일 낮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해상에서 돌고래 관광 선박이 관광객을 태우고 운항에 나선 모습. 이광행 씨 제공지난 15일 낮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해상에서 돌고래 관광 선박이 관광객을 태우고 운항에 나선 모습. 이광행 씨 제공

마침, 주변을 지나던 제주도민 이광행 씨가 이 같은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이 씨는 즉시 휴대전화 카메라를 꺼내 돌고래 관광 현장을 촬영했습니다.

"바다에 있던 선박들이 합작해 돌고래 무리가 지나는 길목을 막아서 못 지나게 하며 관광하고 있었어요. 돌고래 학대가 아닌가요?"

이광행 씨는 영상을 촬영해 제보하면서 취재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정읍 일대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에요. 저번에도 방송을 통해 문제가 지적된 것으로 압니다. 남방큰돌고래 개체 수가 얼마 남지 않은 데다 스트레스를 받아 멸종할 수도 있다고 해도, 돌고래 학대가 버젓이 이뤄지고 있어요." - 제주도민 이광행 씨


지난 15일 낮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해상에서 제주 남방큰돌고래 무리가 헤엄치고 있다. 이광행 씨 제공지난 15일 낮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해상에서 제주 남방큰돌고래 무리가 헤엄치고 있다. 이광행 씨 제공

실제 이 같은 선박 관광 행태는 돌고래에게 매우 치명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경고입니다.

서로의 소리를 들으며 이동하고, 소통하는 돌고래 특성상 선박 엔진과 스크루(Screw·회전축 끝에 달린 나선면을 이룬 금속 날개가 회전하면서, 선박을 움직이게 하는 장치)가 만들어내는 굉음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등 생태적으로도 악영향을 받는다는 겁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바다를 가르는 선박에 치여 몸 일부가 잘려 나가는 등 크게 다치거나 심지어는 죽기도 합니다.

실제로도 제주 바다에선 지느러미나 꼬리가 잘린 돌고래가 목격되고 있습니다.

■ "남방큰돌고래 주변 운항 제한"…낚시 어선은 '무법 영업'

무리한 돌고래 관광 행태를 막기 위해 법 개정이 이뤄졌지만, 현장에선 '반쪽짜리'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제주도 앞바다에서 남방큰돌고래가 무리를 지어 유영하고 있다. KBS제주 DB제주도 앞바다에서 남방큰돌고래가 무리를 지어 유영하고 있다. KBS제주 DB

지난해부터 시행 중인 해양생태계법 개정안은 남방큰돌고래에 접근하는 거리와 운항 속도, 선박 수 등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남방큰돌고래에 바짝 붙거나, 가까이에서 배를 움직이는 행위 모두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집니다. 유도선, 마리나 선박, 수상레저기구 등 레저 선박 대부분이 해당 법 적용을 받습니다.

그러나 영상 속 '낚시 어선'은 이를 위반해도 처벌 대상이 아닙니다. 이른바 '체험형 배낚시'와 같이 레저 목적으로 쓰여도, 관련법상 어선이라는 이유로 법망을 빠져나가는 탓입니다.

이 같은 지적에 해양수산부는 지난해 말 낚시 어선이 법 사각지대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시행 규칙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 달라진 게 없습니다.

무리한 돌고래 관광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돌고래 관광 영업을 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이 같은 관광 상품을 서로 권하고, 구매하는 관광객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건 아닐까요?

지난해 10월, 제주도 서쪽 차귀도 해상에서 남방큰돌고래 무리를 발견한 배 여러 척이 빠르게 무리를 향해 접근하고 있다. 촬영한 이정준 감독은 “선박 7척이 마치 ‘사냥하듯’ 돌고래 떼를 에워쌌다”고 밝혔다. 미디어 물 제공지난해 10월, 제주도 서쪽 차귀도 해상에서 남방큰돌고래 무리를 발견한 배 여러 척이 빠르게 무리를 향해 접근하고 있다. 촬영한 이정준 감독은 “선박 7척이 마치 ‘사냥하듯’ 돌고래 떼를 에워쌌다”고 밝혔다. 미디어 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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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 어선에 포위된 채 쫓기는 돌고래 떼…“보호 대책 강화해야” (2023.11.06 뉴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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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 당하듯 쫓기는 돌고래떼…낚시 어선은 법망 사각지대? (2023.11.08 심층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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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고래를 쫓아라”…바다 휘젓는 ‘무법’ 돌고래 관광
    • 입력 2024-08-17 08:00:05
    • 수정2024-08-17 08:05:16
    심층K
지난 15일 낮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해상에서 돌고래 관광 선박이 관광객을 태우고 운항에 나선 모습. 이광행 씨 제공
멸종 위기 제주 남방큰돌고래를 위협하는 관광이 법망을 피해 횡행하고 있습니다.

돌고래가 헤엄치는 길목을 막아서는 무리한 돌고래 관광은 돌고래 생태계에 영향을 미친다며 전문가들이 자제를 요청하고 있지만 별 효과가 없습니다.

지난 15일 낮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서 찍은 영상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제주 연안에만 서식하는 남방큰돌고래가 수면 밖으로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해역 중 하나입니다.

이날도 '돌고래를 볼 수 있다'는 기대를 안고 찾아온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해안가로 모여들었습니다.

저마다 바다가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 올라 서서, 남방큰돌고래 무리가 보이기를 기다렸습니다.

지난 15일 낮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해상에서 제주 남방큰돌고래 무리가 헤엄치고 있다. 이광행 씨 제공
그런데 이곳에서 멀지 않은 바다에 떠 있는 레저 선박과 어선 몇 척이 눈에 띕니다.

제자리에 멈춰선 채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합니다.

멀리서 한눈에 봐도 조업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윽고 나타난 돌고래 떼. 그러자 이 선박들이 기다렸다는 듯 무리에 바싹 붙습니다.

좀 더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돌고래 떼의 진로를 방해하는 일도 서슴지 않습니다.

돌고래가 지나가려고 하자 선박 한 척은 이를 막아서고, 돌고래 무리가 배를 피해 방향을 틀자 뒤쫓기도 합니다.

관광 선박들은 서로 협력하며 돌고래를 한 데 몰아놓습니다.

엄연한 법 위반입니다.

지난 15일 낮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해상에서 돌고래 관광 선박이 관광객을 태우고 운항에 나선 모습. 이광행 씨 제공
마침, 주변을 지나던 제주도민 이광행 씨가 이 같은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이 씨는 즉시 휴대전화 카메라를 꺼내 돌고래 관광 현장을 촬영했습니다.

"바다에 있던 선박들이 합작해 돌고래 무리가 지나는 길목을 막아서 못 지나게 하며 관광하고 있었어요. 돌고래 학대가 아닌가요?"

이광행 씨는 영상을 촬영해 제보하면서 취재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정읍 일대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에요. 저번에도 방송을 통해 문제가 지적된 것으로 압니다. 남방큰돌고래 개체 수가 얼마 남지 않은 데다 스트레스를 받아 멸종할 수도 있다고 해도, 돌고래 학대가 버젓이 이뤄지고 있어요." - 제주도민 이광행 씨


지난 15일 낮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해상에서 제주 남방큰돌고래 무리가 헤엄치고 있다. 이광행 씨 제공
실제 이 같은 선박 관광 행태는 돌고래에게 매우 치명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경고입니다.

서로의 소리를 들으며 이동하고, 소통하는 돌고래 특성상 선박 엔진과 스크루(Screw·회전축 끝에 달린 나선면을 이룬 금속 날개가 회전하면서, 선박을 움직이게 하는 장치)가 만들어내는 굉음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등 생태적으로도 악영향을 받는다는 겁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바다를 가르는 선박에 치여 몸 일부가 잘려 나가는 등 크게 다치거나 심지어는 죽기도 합니다.

실제로도 제주 바다에선 지느러미나 꼬리가 잘린 돌고래가 목격되고 있습니다.

■ "남방큰돌고래 주변 운항 제한"…낚시 어선은 '무법 영업'

무리한 돌고래 관광 행태를 막기 위해 법 개정이 이뤄졌지만, 현장에선 '반쪽짜리'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제주도 앞바다에서 남방큰돌고래가 무리를 지어 유영하고 있다. KBS제주 DB
지난해부터 시행 중인 해양생태계법 개정안은 남방큰돌고래에 접근하는 거리와 운항 속도, 선박 수 등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남방큰돌고래에 바짝 붙거나, 가까이에서 배를 움직이는 행위 모두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집니다. 유도선, 마리나 선박, 수상레저기구 등 레저 선박 대부분이 해당 법 적용을 받습니다.

그러나 영상 속 '낚시 어선'은 이를 위반해도 처벌 대상이 아닙니다. 이른바 '체험형 배낚시'와 같이 레저 목적으로 쓰여도, 관련법상 어선이라는 이유로 법망을 빠져나가는 탓입니다.

이 같은 지적에 해양수산부는 지난해 말 낚시 어선이 법 사각지대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시행 규칙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 달라진 게 없습니다.

무리한 돌고래 관광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돌고래 관광 영업을 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이 같은 관광 상품을 서로 권하고, 구매하는 관광객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건 아닐까요?

지난해 10월, 제주도 서쪽 차귀도 해상에서 남방큰돌고래 무리를 발견한 배 여러 척이 빠르게 무리를 향해 접근하고 있다. 촬영한 이정준 감독은 “선박 7척이 마치 ‘사냥하듯’ 돌고래 떼를 에워쌌다”고 밝혔다. 미디어 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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