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어드는 소비…속내 복잡한 ‘쌀의 날’

입력 2024.08.18 (07:00) 수정 2024.08.18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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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쌀의 날입니다. 한자 쌀 미(米)자를 풀면 팔, 십, 팔(八, 十, 八)이 나온다 해서 8(八)월 18(十八)일을 쌀의 날로 정했습니다.

지난 2015년 쌀 시장을 개방하게 되자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중앙회가 우리 쌀의 중요성과 가치를 되새기자는 의미로 정해 10주년을 맞았습니다.

농협중앙회는 ‘八, 十, 八’ 이라는 숫자에는 쌀 한 톨을 얻기 위해 농민의 손길이 88(팔십팔)번 간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합니다.

14일 서울 한국의 집에서 열린 쌀의 날 10주년 기념식. 전국 8도를 상징하는 8색 김밥을 말며 쌀소비 촉진을 다짐했다.14일 서울 한국의 집에서 열린 쌀의 날 10주년 기념식. 전국 8도를 상징하는 8색 김밥을 말며 쌀소비 촉진을 다짐했다.

올해도 쌀의 날을 앞두고 쌀의 날 10주년 기념식이 14일 열렸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농협중앙회와 농림축산식품부, 쌀전업농중앙연합회와 소비자단체 관계자 등 50여 명이 참석해 쌀 소비 촉진을 다짐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쌀 소비 촉진’이 간절한 쌀의 날. 쌀의 날을 맞는 마음이 그리 가볍지 않습니다.

■ 줄어드는 쌀 소비…“하루 평균 쌀 154g 먹어”

통계청은 지난해 우리나라의 쌀 생산량이 370만 2천 톤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정부가 지속적으로 펴고 있는 쌀 생산 감축 정책에 따라 벼 재배면적이 한 해 전보다 2.6% 줄고, 생산량도 1.6% 줄었습니다.

하지만 생산이 줄어드는 것보다 쌀 소비 감소가 더 빠른 게 문제입니다.

우리 국민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지난 30년 동안 연평균 2.3%씩 감소했습니다.


지난해 우리 국민의 1인당 쌀 소비량은 56.4kg입니다. 이 소비량을 일 단위로 환산하면 하루 154.6g입니다.

쌀 150g은 햇반 150g 과는 다르죠. 그럼 대체 얼마큼 먹고 있는 걸까요?

편의점 CU가 올해 출시한 초소형 포장 쌀이 마침 150g 이어서 사진을 가져와 봤습니다.

편의점에서 파는 150g짜리 소포장 쌀.  1인당 하루 쌀 소비량을 보여주는 예시로 맞춤하다.편의점에서 파는 150g짜리 소포장 쌀. 1인당 하루 쌀 소비량을 보여주는 예시로 맞춤하다.

1~2인 가구나 캠핑족을 겨냥해 한 번에 다 먹도록 고안한 초소형 진공포장 쌀인데, 이 제품을 기획한 CU 담당자는 1인당 하루 쌀 소비량을 감안해서 용량을 정했다고 말합니다.

업체 측은 이 쌀 150g에 물을 부어 밥을 지으면 밥공기로 한그릇 반에서 두 그릇 정도 나온다고 설명했습니다.

■ “나는 하루 두 공기 못 먹는데?”…농가 소비량이 더 많습니다

아침에 밥을 먹는 대신 과일이나 견과류를 먹고 점심 식사로 김치찌개에 밥을 먹고, 저녁에 샐러드나 국수를 먹었다면 오늘 당신이 먹은 쌀은 100g 정도. 1년에 쌀 50kg을 소비하기 힘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1인당 56kg이라는 통계보다 덜 먹는 거 아닌가요?

통계를 들여다 보면, 비농가와 농가의 쌀 소비량에서 차이가 납니다.

통계청은 농가의 쌀 소비량이 1인당 85.2kg이라고 발표했는데, 비농가의 소비량은 55kg이었습니다.

직접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도시민 등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보다 쌀을 50% 넘게 더 먹는다는 걸 보여줍니다.

■ 식생활 서구화…육류 소비가 쌀 소비 앞질러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아침을 거르는 국민이 많아지고, 식생활이 서구화되면서 밥을 먹는 인구가 줄어 쌀 소비가 줄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돼지고기와 쇠고기, 닭고기를 더한 1인당 육류 소비량이 60.6kg입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쌀보다 고기를 더 많이 먹는 나라가 됐습니다. 주식은 쌀이지만 말입니다.

30년 전인 1993년에 1인당 쌀 소비량이 110.2kg에 달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놀라울 정도입니다.

■ “쌀 자급률 104%”…하락하는 산지 쌀값

‘보릿고개’는 옛 이야기 속에서나 등장하는 말이 됐고, 우리나라는 1990년 이미 쌀 자급률 100%를 넘어섰습니다.

전쟁을 겪은 뒤 극심한 빈곤을 겪었던 나라가 주식을 자급하게 되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쌀 재고를 걱정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2022년 쌀 자급률은 104.8%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한 쌀만 갖고도 4%가 남았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해마다 관세를 조금만 물고 의무수입하는 물량(TRQ)이 40만 9천 톤씩 들어옵니다.

1995년 WTO 가입 당시 농산물 시장을 개방하면서 쌀에 대한 관세화를 유예한 대가로 5%의 저율 관세만 매겨 수입하는 의무 수입 물량을 40만 9천 톤까지 늘려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가 WTO 체제 안에 있는 한 이 의무수입물량은 해마다 들어옵니다. 그러니 우리나라의 쌀 자급률이 100%라면 실질적으로는 공급 과잉 상태라고 봐야 합니다.

■ ‘산지 쌀값 18만 원’ 깨져…쌀값 보장 요구하는 농민들

이런 상황들이 겹치면서 2023 양곡 연도 쌀 재고는 144만 톤까지 늘었습니다.

2023년 이미 15만 톤이 초과 생산된 상태였기 때문에 쌀값 하락에 대한 우려가 나왔는데, 실제로 수확기가 아닌 이른바 ‘단경기’에도 산지 쌀값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달 초순 산지 쌀값은 80kg에 17만 8,500원으로 지난해 이맘때보다 7%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농민들이 ‘심리적 마지노선’이라 부르는 18만 원이 깨졌습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8개 농민단체로 구성된 ‘국민과 함께 하는 농민의 길’은 6일 서울역 앞에서 ‘쌀값 보장 농민대회’를 열어 대책 마련을 촉구했습니다. 또 9일에는 경남 의령군에서 논을 갈아엎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습니다.

“정부가 쌀값 20만 원을 보장한다고 해놓고 뒷짐 지고 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들이 쌀값 인상을 요구하며 9일 경남 의령군의 한 논을 갈아엎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들이 쌀값 인상을 요구하며 9일 경남 의령군의 한 논을 갈아엎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아침밥 먹기 캠페인’으로 쌀 소비가 얼마나 늘까?

정부는 민간에 보유하고 있는 쌀 일부를 사들이겠다고 발표하면서, 농협 등을 통한 쌀 소비 촉진을 강조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이 나서서 서울 여의도 금융가에서 아침밥 먹기 홍보행사를 하고, 농협 임직원들은 ‘구내식당 아침밥 먹기’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와 함께 GS25 편의점에서 도시락이나 김밥 등을 구매하면 할인해주는 ‘모두의 아침밥’ 행사를 다음 달까지 이어갈 예정입니다.

하지만 이런 캠페인으로 쌀 소비가 얼마나 늘어날지, 내려가는 쌀값을 지지할 수 있을지 효과가 의문스럽습니다.

이보다는 탄수화물을 많이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거나 쌀 밥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식의 인식을 바꿀 방법을 찾는 것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른 먹을 것도 많은데 왜 쌀을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근거가 필요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 “밥도 간편하게”…밥 짓는 가정이 줄어든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집에서 직접 밥을 해 먹는 가정이 줄어드는 겁니다.

쌀을 사다가 직접 밥을 해 먹기보다는 햇반 등 가공 밥을 데워먹거나 도시락을 사다 먹는 경우도 늘고 있습니다.

1인 가구뿐 아니라 일반 가정에서도 햇반을 보관하고 있다가 간편하게 먹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식료품이나 떡, 술이나 주정, 음료 등을 망라해 제조업체들이 쓴 쌀 소비량이 크게 증가했습니다.

통계청은 쌀 소비량을 가구 부문과 사업체 부문으로 나눠 조사한다. 즉 식료품과 음료, 주류용 주정 등에 사용되는 쌀 소비량은 ‘사업체 부문’으로 발표한다.통계청은 쌀 소비량을 가구 부문과 사업체 부문으로 나눠 조사한다. 즉 식료품과 음료, 주류용 주정 등에 사용되는 쌀 소비량은 ‘사업체 부문’으로 발표한다.

연간 쌀 생산량 370만 톤과 의무 도입분 40만 톤에 비해, 가공용으로 사용한 쌀이 80만 톤 규모라는 것은 아직도 밥쌀용 쌀이 주력이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쌀 소비가 줄어들고 있는 데 비해 가공용 쌀 소비가 늘어나고 있는 점은 눈여겨봐야 합니다.

소비자 수요가 즉석밥이나 도시락 등 간편식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밥쌀에만 초점을 맞춰 대책을 수립하다 보면 수요가 가리키는 방향과는 다른 쪽으로 내달리는 결과가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맛있고 좋은 밥을 좀 더 간편하게 먹을 수 있으면 소비자들에게도 좋은 일이 되겠지요. 집에서 밥해 먹는 게 시간이 오래 걸리고 번거롭다면 더더욱 밥을 안 먹게 될 테니까요.

■ 해외에서 더 ‘건강식품’ 대우…K 푸드 인기 이어가야

해외에서 냉동 김밥이 열풍을 일으키고 각종 볶음밥류 등이 인기를 끌면서 쌀 가공식품 수출이 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합니다.

지금의 낮은 출생률로 볼 때 국내 시장만 보고 식품산업의 승부를 겨루긴 힘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12일 농협 미래전략연구소가 연 쌀 가공산업 활성화 모색 심포지엄에 참가한 전문가들도 국내 쌀 소비가 줄고 있지만, 쌀 가공식품의 소비와 수출이 늘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쌀 소비 촉진을 위한 쌀 가공산업 활성화를 주제로 한 심포지엄이 농협 미래전략연구소 주최로 12일 열렸다.쌀 소비 촉진을 위한 쌀 가공산업 활성화를 주제로 한 심포지엄이 농협 미래전략연구소 주최로 12일 열렸다.

올해 상반기 쌀 가공식품 수출은 1억 3천6백만 달러를 기록해, 지난해 9천6백만 달러보다 41.4% 가 늘었습니다. K푸드가 인기라지만 쌀 가공식품 수출은 괄목할만한 증가세입니다.

식품업계와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국내에서는 쌀밥이 건강식이라는 인식이 낮지만, 밀을 주식으로 해온 서양에서는 글루텐이 들어있지 않은 대표적인 ‘글루텐 프리’ 식품으로서 쌀을 건강한 탄수화물 공급원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에 따라 쌀 가공식품을 수출할 때 국산 쌀을 이용할 때 유인책을 강화하고, 쌀 품종도 가공식품을 만드는 데 유리한 품종을 개발하는 방안도 제시했습니다.

농민들은 고령화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소비가 줄어들어 공급 과잉 상태에 놓인 쌀. ‘쌀의 날’을 제정한 것도 2015년 쌀 시장 개방이 계기였던 것처럼, 쌀의 날을 맞아 쌀의 의미에 대해 한번 생각해봄 직합니다.

인포그래픽 : 권세라

[연관 기사] 8월 18일 ‘쌀의 날’…빵지순례·모두의 아침밥 등 행사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32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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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줄어드는 소비…속내 복잡한 ‘쌀의 날’
    • 입력 2024-08-18 07:00:11
    • 수정2024-08-18 07:5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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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쌀의 날입니다. 한자 쌀 미(米)자를 풀면 팔, 십, 팔(八, 十, 八)이 나온다 해서 8(八)월 18(十八)일을 쌀의 날로 정했습니다.

지난 2015년 쌀 시장을 개방하게 되자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중앙회가 우리 쌀의 중요성과 가치를 되새기자는 의미로 정해 10주년을 맞았습니다.

농협중앙회는 ‘八, 十, 八’ 이라는 숫자에는 쌀 한 톨을 얻기 위해 농민의 손길이 88(팔십팔)번 간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합니다.

14일 서울 한국의 집에서 열린 쌀의 날 10주년 기념식. 전국 8도를 상징하는 8색 김밥을 말며 쌀소비 촉진을 다짐했다.
올해도 쌀의 날을 앞두고 쌀의 날 10주년 기념식이 14일 열렸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농협중앙회와 농림축산식품부, 쌀전업농중앙연합회와 소비자단체 관계자 등 50여 명이 참석해 쌀 소비 촉진을 다짐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쌀 소비 촉진’이 간절한 쌀의 날. 쌀의 날을 맞는 마음이 그리 가볍지 않습니다.

■ 줄어드는 쌀 소비…“하루 평균 쌀 154g 먹어”

통계청은 지난해 우리나라의 쌀 생산량이 370만 2천 톤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정부가 지속적으로 펴고 있는 쌀 생산 감축 정책에 따라 벼 재배면적이 한 해 전보다 2.6% 줄고, 생산량도 1.6% 줄었습니다.

하지만 생산이 줄어드는 것보다 쌀 소비 감소가 더 빠른 게 문제입니다.

우리 국민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지난 30년 동안 연평균 2.3%씩 감소했습니다.


지난해 우리 국민의 1인당 쌀 소비량은 56.4kg입니다. 이 소비량을 일 단위로 환산하면 하루 154.6g입니다.

쌀 150g은 햇반 150g 과는 다르죠. 그럼 대체 얼마큼 먹고 있는 걸까요?

편의점 CU가 올해 출시한 초소형 포장 쌀이 마침 150g 이어서 사진을 가져와 봤습니다.

편의점에서 파는 150g짜리 소포장 쌀.  1인당 하루 쌀 소비량을 보여주는 예시로 맞춤하다.
1~2인 가구나 캠핑족을 겨냥해 한 번에 다 먹도록 고안한 초소형 진공포장 쌀인데, 이 제품을 기획한 CU 담당자는 1인당 하루 쌀 소비량을 감안해서 용량을 정했다고 말합니다.

업체 측은 이 쌀 150g에 물을 부어 밥을 지으면 밥공기로 한그릇 반에서 두 그릇 정도 나온다고 설명했습니다.

■ “나는 하루 두 공기 못 먹는데?”…농가 소비량이 더 많습니다

아침에 밥을 먹는 대신 과일이나 견과류를 먹고 점심 식사로 김치찌개에 밥을 먹고, 저녁에 샐러드나 국수를 먹었다면 오늘 당신이 먹은 쌀은 100g 정도. 1년에 쌀 50kg을 소비하기 힘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1인당 56kg이라는 통계보다 덜 먹는 거 아닌가요?

통계를 들여다 보면, 비농가와 농가의 쌀 소비량에서 차이가 납니다.

통계청은 농가의 쌀 소비량이 1인당 85.2kg이라고 발표했는데, 비농가의 소비량은 55kg이었습니다.

직접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도시민 등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보다 쌀을 50% 넘게 더 먹는다는 걸 보여줍니다.

■ 식생활 서구화…육류 소비가 쌀 소비 앞질러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아침을 거르는 국민이 많아지고, 식생활이 서구화되면서 밥을 먹는 인구가 줄어 쌀 소비가 줄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돼지고기와 쇠고기, 닭고기를 더한 1인당 육류 소비량이 60.6kg입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쌀보다 고기를 더 많이 먹는 나라가 됐습니다. 주식은 쌀이지만 말입니다.

30년 전인 1993년에 1인당 쌀 소비량이 110.2kg에 달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놀라울 정도입니다.

■ “쌀 자급률 104%”…하락하는 산지 쌀값

‘보릿고개’는 옛 이야기 속에서나 등장하는 말이 됐고, 우리나라는 1990년 이미 쌀 자급률 100%를 넘어섰습니다.

전쟁을 겪은 뒤 극심한 빈곤을 겪었던 나라가 주식을 자급하게 되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쌀 재고를 걱정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2022년 쌀 자급률은 104.8%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한 쌀만 갖고도 4%가 남았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해마다 관세를 조금만 물고 의무수입하는 물량(TRQ)이 40만 9천 톤씩 들어옵니다.

1995년 WTO 가입 당시 농산물 시장을 개방하면서 쌀에 대한 관세화를 유예한 대가로 5%의 저율 관세만 매겨 수입하는 의무 수입 물량을 40만 9천 톤까지 늘려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가 WTO 체제 안에 있는 한 이 의무수입물량은 해마다 들어옵니다. 그러니 우리나라의 쌀 자급률이 100%라면 실질적으로는 공급 과잉 상태라고 봐야 합니다.

■ ‘산지 쌀값 18만 원’ 깨져…쌀값 보장 요구하는 농민들

이런 상황들이 겹치면서 2023 양곡 연도 쌀 재고는 144만 톤까지 늘었습니다.

2023년 이미 15만 톤이 초과 생산된 상태였기 때문에 쌀값 하락에 대한 우려가 나왔는데, 실제로 수확기가 아닌 이른바 ‘단경기’에도 산지 쌀값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달 초순 산지 쌀값은 80kg에 17만 8,500원으로 지난해 이맘때보다 7%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농민들이 ‘심리적 마지노선’이라 부르는 18만 원이 깨졌습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8개 농민단체로 구성된 ‘국민과 함께 하는 농민의 길’은 6일 서울역 앞에서 ‘쌀값 보장 농민대회’를 열어 대책 마련을 촉구했습니다. 또 9일에는 경남 의령군에서 논을 갈아엎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습니다.

“정부가 쌀값 20만 원을 보장한다고 해놓고 뒷짐 지고 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들이 쌀값 인상을 요구하며 9일 경남 의령군의 한 논을 갈아엎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아침밥 먹기 캠페인’으로 쌀 소비가 얼마나 늘까?

정부는 민간에 보유하고 있는 쌀 일부를 사들이겠다고 발표하면서, 농협 등을 통한 쌀 소비 촉진을 강조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이 나서서 서울 여의도 금융가에서 아침밥 먹기 홍보행사를 하고, 농협 임직원들은 ‘구내식당 아침밥 먹기’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와 함께 GS25 편의점에서 도시락이나 김밥 등을 구매하면 할인해주는 ‘모두의 아침밥’ 행사를 다음 달까지 이어갈 예정입니다.

하지만 이런 캠페인으로 쌀 소비가 얼마나 늘어날지, 내려가는 쌀값을 지지할 수 있을지 효과가 의문스럽습니다.

이보다는 탄수화물을 많이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거나 쌀 밥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식의 인식을 바꿀 방법을 찾는 것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른 먹을 것도 많은데 왜 쌀을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근거가 필요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 “밥도 간편하게”…밥 짓는 가정이 줄어든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집에서 직접 밥을 해 먹는 가정이 줄어드는 겁니다.

쌀을 사다가 직접 밥을 해 먹기보다는 햇반 등 가공 밥을 데워먹거나 도시락을 사다 먹는 경우도 늘고 있습니다.

1인 가구뿐 아니라 일반 가정에서도 햇반을 보관하고 있다가 간편하게 먹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식료품이나 떡, 술이나 주정, 음료 등을 망라해 제조업체들이 쓴 쌀 소비량이 크게 증가했습니다.

통계청은 쌀 소비량을 가구 부문과 사업체 부문으로 나눠 조사한다. 즉 식료품과 음료, 주류용 주정 등에 사용되는 쌀 소비량은 ‘사업체 부문’으로 발표한다.
연간 쌀 생산량 370만 톤과 의무 도입분 40만 톤에 비해, 가공용으로 사용한 쌀이 80만 톤 규모라는 것은 아직도 밥쌀용 쌀이 주력이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쌀 소비가 줄어들고 있는 데 비해 가공용 쌀 소비가 늘어나고 있는 점은 눈여겨봐야 합니다.

소비자 수요가 즉석밥이나 도시락 등 간편식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밥쌀에만 초점을 맞춰 대책을 수립하다 보면 수요가 가리키는 방향과는 다른 쪽으로 내달리는 결과가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맛있고 좋은 밥을 좀 더 간편하게 먹을 수 있으면 소비자들에게도 좋은 일이 되겠지요. 집에서 밥해 먹는 게 시간이 오래 걸리고 번거롭다면 더더욱 밥을 안 먹게 될 테니까요.

■ 해외에서 더 ‘건강식품’ 대우…K 푸드 인기 이어가야

해외에서 냉동 김밥이 열풍을 일으키고 각종 볶음밥류 등이 인기를 끌면서 쌀 가공식품 수출이 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합니다.

지금의 낮은 출생률로 볼 때 국내 시장만 보고 식품산업의 승부를 겨루긴 힘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12일 농협 미래전략연구소가 연 쌀 가공산업 활성화 모색 심포지엄에 참가한 전문가들도 국내 쌀 소비가 줄고 있지만, 쌀 가공식품의 소비와 수출이 늘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쌀 소비 촉진을 위한 쌀 가공산업 활성화를 주제로 한 심포지엄이 농협 미래전략연구소 주최로 12일 열렸다.
올해 상반기 쌀 가공식품 수출은 1억 3천6백만 달러를 기록해, 지난해 9천6백만 달러보다 41.4% 가 늘었습니다. K푸드가 인기라지만 쌀 가공식품 수출은 괄목할만한 증가세입니다.

식품업계와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국내에서는 쌀밥이 건강식이라는 인식이 낮지만, 밀을 주식으로 해온 서양에서는 글루텐이 들어있지 않은 대표적인 ‘글루텐 프리’ 식품으로서 쌀을 건강한 탄수화물 공급원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에 따라 쌀 가공식품을 수출할 때 국산 쌀을 이용할 때 유인책을 강화하고, 쌀 품종도 가공식품을 만드는 데 유리한 품종을 개발하는 방안도 제시했습니다.

농민들은 고령화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소비가 줄어들어 공급 과잉 상태에 놓인 쌀. ‘쌀의 날’을 제정한 것도 2015년 쌀 시장 개방이 계기였던 것처럼, 쌀의 날을 맞아 쌀의 의미에 대해 한번 생각해봄 직합니다.

인포그래픽 : 권세라

[연관 기사] 8월 18일 ‘쌀의 날’…빵지순례·모두의 아침밥 등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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