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역사 구덕운동장 재개발 두고 구청장 ‘주민소환’ 추진…왜?

입력 2024.08.20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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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구덕운동장 모습1970년대 구덕운동장 모습

100년 역사 '구덕운동장'…항일 운동 거점이자 국내 스포츠 역사 상징

1928년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구덕운동장". 부산시민들에겐 남다른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1940년 구덕운동장에서 열린 '제2회 경남학도 전력증강 국방경기대회'. 일본 심판들은 일본인 학교 우승을 위해 차별은 물론 편파 판정을 일삼았고, 당시 동래중학교 등에 다니던 한국 학생들은 분노하며 항일 의거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 시위는 천여 명의 시가 행진으로 이어졌고, 오늘날에도 항일 학생 운동의 지표로 남았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부산공설운동장'으로 탈바꿈해 1973년엔 전국체육대회를 치르기도 했고, 88 서울올림픽에선 축구 예선 경기장으로, 2002년 부산 아시아게임에선 축구 경기장으로 사용됐습니다.

한때 긴 머리를 휘날리며 'K-리그 테리우스'로 불리던 안정환 선수가 뛰었던 프로축구 대우 로얄즈(현, 부산 아이파크)가 구덕운동장을 홈구장으로 썼습니다. 올해로 지어진지 97년 째를 맞이한 구덕운동장은 하루 3천 명의 시민들이 찾는 만남의 장소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런데 노후한 시설로 재개발이 필요한 상황에서, 부산시가 대규모 재개발 계획을 발표하며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부산 서구 구덕운동장부산 서구 구덕운동장

3천억 원 이상이 아파트 건립?…주민·의회까지 반발

부산시는 8천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해 구덕운동장 일대 7만여 제곱미터 터에 축구 전용구장과 문화·체육시설을 조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습니다. 그런데 전체 예산 가운데 3천억 원 이상이 공동주택, 그러니까 아파트 단지 조성에 들어가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부산시는 지난해 말 국토부에 도시재생 혁신지구 예비후보지로 신청해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는데요.

이를 알게 된 주민들이 아파트 난개발 문제를 지적하며 구덕운동장 재개발 사업에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이들은 "부산시가 졸속으로 주민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부실한 의견 청취로 주민들을 우롱했다" 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구덕운동장 재개발에 반대하는 주민협의회가 구성됐고, 부산시의회도 고층 아파트 개발에 반대하며 사업 추진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여기에다 지역구 국회의원도 국회에서 기자회견까지 열며 반대 의견을 표명하며 반발은 더 거세졌습니다.

주민들이 이용하는 생활 체육시설주민들이 이용하는 생활 체육시설

■'주민소환제'까지 추진…이달 말 결과 발표

이런 반대 움직임에도 부산시는 사업 추진을 이어갔습니다. 지난 6월 국토교통부 도시재생 혁신지구 공모를 정식으로 신청한 건데요. 이후 열린 주민설명회는 개발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거세게 항의하며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결국 부산시는 기존 계획한 850여 가구의 고층아파트 계획안을 600가구 수준으로 낮추며 주민들 진정에 나섭니다.

하지만 주민들은 "아파트 1가구도 들어오면 안된다"며 공한수 부산 서구청장에 대한 주민소환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부산시가 주도하는 사업에 구청장이 충분한 조율을 하긴커녕 주민 의견을 무시했다는 이유에 섭니다. 공한수 구청장은 주민소환까지 추진되자, 아파트 건립에 대한 기존의 입장을 번복했는데요. "구덕운동장 재개발이 필요하지만, 아파트 건립에는 반대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주민들은 주민소환제 서명 절차를 밟기 시작했습니다. 60일 동안 유권자 15% 서명을 받으면 주민소환 투표를 할 수 있습니다.

구덕운동장 재개발 사업은 이르면 다음 주 국토교통부가 발표하는 '도시재생 혁신지구' 공모 선정 여부에 따라 큰 가닥이 다시 잡힐 것으로 보이는데요. 부산시는 혁신지구에 선정돼 국비가 확보되면 주민들과의 협의체 구성 등 대화 창구를 더 확대하고, 부산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표본 여론조사도 실시한다는 계획입니다.

반면 공모에서 탈락할 경우, 사업비 확보에 어려움이 예상되는 만큼 구덕운동장 재개발 사업은 계속 추진될지도 불투명합니다.

주민소환에 직면한 공한수 구청장은 혁신지구에 선정되기를 바랄까요? 아니면 탈락하기를 바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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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구덕운동장 모습
100년 역사 '구덕운동장'…항일 운동 거점이자 국내 스포츠 역사 상징

1928년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구덕운동장". 부산시민들에겐 남다른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1940년 구덕운동장에서 열린 '제2회 경남학도 전력증강 국방경기대회'. 일본 심판들은 일본인 학교 우승을 위해 차별은 물론 편파 판정을 일삼았고, 당시 동래중학교 등에 다니던 한국 학생들은 분노하며 항일 의거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 시위는 천여 명의 시가 행진으로 이어졌고, 오늘날에도 항일 학생 운동의 지표로 남았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부산공설운동장'으로 탈바꿈해 1973년엔 전국체육대회를 치르기도 했고, 88 서울올림픽에선 축구 예선 경기장으로, 2002년 부산 아시아게임에선 축구 경기장으로 사용됐습니다.

한때 긴 머리를 휘날리며 'K-리그 테리우스'로 불리던 안정환 선수가 뛰었던 프로축구 대우 로얄즈(현, 부산 아이파크)가 구덕운동장을 홈구장으로 썼습니다. 올해로 지어진지 97년 째를 맞이한 구덕운동장은 하루 3천 명의 시민들이 찾는 만남의 장소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런데 노후한 시설로 재개발이 필요한 상황에서, 부산시가 대규모 재개발 계획을 발표하며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부산 서구 구덕운동장
3천억 원 이상이 아파트 건립?…주민·의회까지 반발

부산시는 8천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해 구덕운동장 일대 7만여 제곱미터 터에 축구 전용구장과 문화·체육시설을 조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습니다. 그런데 전체 예산 가운데 3천억 원 이상이 공동주택, 그러니까 아파트 단지 조성에 들어가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부산시는 지난해 말 국토부에 도시재생 혁신지구 예비후보지로 신청해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는데요.

이를 알게 된 주민들이 아파트 난개발 문제를 지적하며 구덕운동장 재개발 사업에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이들은 "부산시가 졸속으로 주민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부실한 의견 청취로 주민들을 우롱했다" 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구덕운동장 재개발에 반대하는 주민협의회가 구성됐고, 부산시의회도 고층 아파트 개발에 반대하며 사업 추진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여기에다 지역구 국회의원도 국회에서 기자회견까지 열며 반대 의견을 표명하며 반발은 더 거세졌습니다.

주민들이 이용하는 생활 체육시설
■'주민소환제'까지 추진…이달 말 결과 발표

이런 반대 움직임에도 부산시는 사업 추진을 이어갔습니다. 지난 6월 국토교통부 도시재생 혁신지구 공모를 정식으로 신청한 건데요. 이후 열린 주민설명회는 개발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거세게 항의하며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결국 부산시는 기존 계획한 850여 가구의 고층아파트 계획안을 600가구 수준으로 낮추며 주민들 진정에 나섭니다.

하지만 주민들은 "아파트 1가구도 들어오면 안된다"며 공한수 부산 서구청장에 대한 주민소환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부산시가 주도하는 사업에 구청장이 충분한 조율을 하긴커녕 주민 의견을 무시했다는 이유에 섭니다. 공한수 구청장은 주민소환까지 추진되자, 아파트 건립에 대한 기존의 입장을 번복했는데요. "구덕운동장 재개발이 필요하지만, 아파트 건립에는 반대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주민들은 주민소환제 서명 절차를 밟기 시작했습니다. 60일 동안 유권자 15% 서명을 받으면 주민소환 투표를 할 수 있습니다.

구덕운동장 재개발 사업은 이르면 다음 주 국토교통부가 발표하는 '도시재생 혁신지구' 공모 선정 여부에 따라 큰 가닥이 다시 잡힐 것으로 보이는데요. 부산시는 혁신지구에 선정돼 국비가 확보되면 주민들과의 협의체 구성 등 대화 창구를 더 확대하고, 부산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표본 여론조사도 실시한다는 계획입니다.

반면 공모에서 탈락할 경우, 사업비 확보에 어려움이 예상되는 만큼 구덕운동장 재개발 사업은 계속 추진될지도 불투명합니다.

주민소환에 직면한 공한수 구청장은 혁신지구에 선정되기를 바랄까요? 아니면 탈락하기를 바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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