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는 처음부터 독립적이었을까? [특파원 리포트]

입력 2024.08.21 (07:34) 수정 2024.08.21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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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을 오는 11월 대선 후보로 지명하기 위한 최종 절차인 민주당의 전당대회가 미국 시카고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에서 사퇴하고, 해리스 부통령이 후보가 된 이후 민주당과 공화당 대선 후보 간의 지지율은 오차범위 내에 있습니다. 다만 여러 여론조사에 가중치를 두는 등의 방식으로 당선 가능성을 예측하는 곳들을 보면 해리스 부통령이 당선될 확률이 공화당 후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조금 앞서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해리스 부통령보다 더 높게 평가되는 부문이 있습니다. '경제 분야'가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 트럼프 "난 사업에 성공했다…금리 더 잘 안다"

트럼프는 자신의 '부'를 정치적 능력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에 대한 개입 의지도 같은 맥락에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현지 시각으로 8일, "대통령은 (금리에 대해) 최소한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많은 돈을 벌었고 성공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연준에 대한 개입 의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트럼프는 대통령으로 재임 당시 현재 미 연준 의장인 제롬 파월을 2018년 4년 임기의 의장에 임명했습니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2018년 의장 취임 선서를 하는 모습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2018년 의장 취임 선서를 하는 모습

그런데 이후 의견이 갈렸습니다. 트럼프는 기준 금리를 낮게 유지하고 싶어 했지만(심지어 마이너스 금리), 미 연준은 회복되고 있는 경기 상황을 반영해 코로나19 대유행이 오기 전인 2018년 말까지 금리를 꾸준히 올렸습니다.

그때 트럼프는 파월을 연준 의장에서 내리려고 했고, 파월 의장은 "임기를 지키겠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트럼프의 뜻은 이뤄지지 않았고, 파월 의장은 바이든 대통령이 재임명하면서 지금도 의장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 연준 위원들, 대통령에 소환되다.

파월 의장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독립적인 통화 정책에 대한 광범위한 지지가 있다" "그게 더 성과가 좋다"는 말을 반복해 왔습니다.

또 시장에서 대선을 앞두고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나 트럼프의 "대선 전에 금리를 내리지 말라"는 요구에도 "데이터에 따라 결정을 내릴 것"이라며 "정치적인 건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정치권이 미 연준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려 했던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연방 정부가 빚을 많이 내려 하거나(재정 확장), 아니면 경기를 인위적으로 띄우고 싶을 땐 정부 입장에선 금리가 낮은 게 좋습니다. 정치가 금리 결정에 개입하고 싶어지는 순간입니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연방준비제도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연방준비제도

전쟁 상황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2차 세계 대전과 그 여파 동안 미 연준은 통화정책 권한이 사실상 없었습니다. 전쟁 자금으로 연방정부가 많은 빚을 내야 했고, 세계 대전 전에 있었던 대공황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때문에 물가상승률이 10%가 넘는데도 미 재무부의 반대로 금리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전쟁까지 발발하자 물가상승률이 20%를 넘었습니다. 결국 연준은 기존 정책을 유지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자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미 연준의 공개시장위원회 위원들 모두가 백악관으로 불려가 대통령을 만난 겁니다. 갈등은 극에 달했지만, 미 연준의 독립 근거가 만들어진 계기가 됐습니다.

얼마 뒤 미 재무부와 연준은 합의에 도달하는데, 그 내용이 연준이 일정 기간 미 국채의 금리가 낮게 유지되도록 지원하지만, 그 이후엔 시장에 맡길 것이며, 연준은 금리 결정을 더 자유롭게 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얘기되고 있는 중앙은행 '독립'의 시작입니다.

■ 금리에 대한 '정치인'의 유혹

트루먼 대통령은 위에 언급한 합의가 이뤄질 때 토머스 매케이브 당시 의장의 사임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재무부 쪽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 주니어를 연준 의장으로 지명했습니다.

트루먼은 연준이 이제 자기 뜻대로 될 줄 알았지만, 마틴은 연준의 '독립투사'가 됩니다. 트루먼으로부터 '배신자'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마틴은 1951년부터 1970년까지 무려 20년 동안 의장 자리를 지켰습니다.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 주니어가 연방준비제도 의장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사진 AP. 미 연방준비제도 홈페이지 갈무리)윌리엄 맥체스니 마틴 주니어가 연방준비제도 의장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사진 AP. 미 연방준비제도 홈페이지 갈무리)

그렇다고 마틴의 임기가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미국의 또 한 번의 전쟁, 베트남 전쟁이 일어나면서입니다. 린든 존슨 당시 대통령은 사회 지출 예산을 위해 연준에 금리를 낮게 유지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금리 인상은 월가의 이익을 위해 미국 근로자의 피를 짜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고도 전해집니다.

이에 따르지 않았던 마틴은 존슨의 텍사스 농장으로 불려갔습니다.

마틴 이후 연준을 맡게 된 아서 번스는 인플레이션 대응에 실패한 대표적인 연준 의장으로 꼽힙니다. 대통령에게 잘 보이려 했다는 얘기가 남아 있습니다.

아서 번스의 후임이자, 8년간 자리를 지키며 고금리 정책을 통해 물가 잡기에 성공한 인물로 꼽히는 폴 볼커는 40년대, 연준의 독립을 반대했던 재무부 출신입니다.

■ 우리나라 금융통화위원회에도 정부의 '열석발언권'이 있다

한국은행은 과거 정부 재정정책 담당 부처의 '남대문 출장소'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과거 한은이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습을, 한국은행이 있는 남대문에 빗대어 부른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별칭은 이제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역대 정부들이 한은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데 부담을 느껴왔기 때문입니다.

다만 법률상으로는 여전히 금리를 결정하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에 기획재정부 차관이 참석해 발언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60년대 만들어진 구 한은법에 있는 '열석발언권'입니다.

이 권한은 외환위기 당시이던 1999년과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10년에 행사된 바 있습니다.

서울 남대문로에 있는 한국은행 본관. 한국은행 홍보영상에서 갈무리서울 남대문로에 있는 한국은행 본관. 한국은행 홍보영상에서 갈무리

정부는 "발언만 할 뿐 금리 결정 때는 자리를 비우기 때문에 금통위를 압박하려는 의도는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한은의 독립성 훼손이라는 비판은 있었고, 이를 폐지하려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습니다.

세계 각국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물가 관리는 '신뢰'가 기본인데, 정치적 요인이 개입되면 그 '신뢰'를 유지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저소득층은 물가가 많이 올라도 걱정, 금리가 높아도 걱정입니다. 생활비, 이자 부담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가 예측하기 힘들면 소득이 낮을수록 더 힘듭니다.

중앙은행과 정치권의 관계가 어땠을 때 이 부담을 줄일 수 있는지는 역사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미 연방준비제도를 함부로 흔들 수 없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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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는 처음부터 독립적이었을까? [특파원 리포트]
    • 입력 2024-08-21 07:34:23
    • 수정2024-08-21 07:3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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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을 오는 11월 대선 후보로 지명하기 위한 최종 절차인 민주당의 전당대회가 미국 시카고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에서 사퇴하고, 해리스 부통령이 후보가 된 이후 민주당과 공화당 대선 후보 간의 지지율은 오차범위 내에 있습니다. 다만 여러 여론조사에 가중치를 두는 등의 방식으로 당선 가능성을 예측하는 곳들을 보면 해리스 부통령이 당선될 확률이 공화당 후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조금 앞서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해리스 부통령보다 더 높게 평가되는 부문이 있습니다. '경제 분야'가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 트럼프 "난 사업에 성공했다…금리 더 잘 안다"

트럼프는 자신의 '부'를 정치적 능력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에 대한 개입 의지도 같은 맥락에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현지 시각으로 8일, "대통령은 (금리에 대해) 최소한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많은 돈을 벌었고 성공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연준에 대한 개입 의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트럼프는 대통령으로 재임 당시 현재 미 연준 의장인 제롬 파월을 2018년 4년 임기의 의장에 임명했습니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2018년 의장 취임 선서를 하는 모습
그런데 이후 의견이 갈렸습니다. 트럼프는 기준 금리를 낮게 유지하고 싶어 했지만(심지어 마이너스 금리), 미 연준은 회복되고 있는 경기 상황을 반영해 코로나19 대유행이 오기 전인 2018년 말까지 금리를 꾸준히 올렸습니다.

그때 트럼프는 파월을 연준 의장에서 내리려고 했고, 파월 의장은 "임기를 지키겠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트럼프의 뜻은 이뤄지지 않았고, 파월 의장은 바이든 대통령이 재임명하면서 지금도 의장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 연준 위원들, 대통령에 소환되다.

파월 의장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독립적인 통화 정책에 대한 광범위한 지지가 있다" "그게 더 성과가 좋다"는 말을 반복해 왔습니다.

또 시장에서 대선을 앞두고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나 트럼프의 "대선 전에 금리를 내리지 말라"는 요구에도 "데이터에 따라 결정을 내릴 것"이라며 "정치적인 건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정치권이 미 연준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려 했던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연방 정부가 빚을 많이 내려 하거나(재정 확장), 아니면 경기를 인위적으로 띄우고 싶을 땐 정부 입장에선 금리가 낮은 게 좋습니다. 정치가 금리 결정에 개입하고 싶어지는 순간입니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연방준비제도
전쟁 상황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2차 세계 대전과 그 여파 동안 미 연준은 통화정책 권한이 사실상 없었습니다. 전쟁 자금으로 연방정부가 많은 빚을 내야 했고, 세계 대전 전에 있었던 대공황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때문에 물가상승률이 10%가 넘는데도 미 재무부의 반대로 금리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전쟁까지 발발하자 물가상승률이 20%를 넘었습니다. 결국 연준은 기존 정책을 유지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자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미 연준의 공개시장위원회 위원들 모두가 백악관으로 불려가 대통령을 만난 겁니다. 갈등은 극에 달했지만, 미 연준의 독립 근거가 만들어진 계기가 됐습니다.

얼마 뒤 미 재무부와 연준은 합의에 도달하는데, 그 내용이 연준이 일정 기간 미 국채의 금리가 낮게 유지되도록 지원하지만, 그 이후엔 시장에 맡길 것이며, 연준은 금리 결정을 더 자유롭게 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얘기되고 있는 중앙은행 '독립'의 시작입니다.

■ 금리에 대한 '정치인'의 유혹

트루먼 대통령은 위에 언급한 합의가 이뤄질 때 토머스 매케이브 당시 의장의 사임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재무부 쪽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 주니어를 연준 의장으로 지명했습니다.

트루먼은 연준이 이제 자기 뜻대로 될 줄 알았지만, 마틴은 연준의 '독립투사'가 됩니다. 트루먼으로부터 '배신자'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마틴은 1951년부터 1970년까지 무려 20년 동안 의장 자리를 지켰습니다.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 주니어가 연방준비제도 의장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사진 AP. 미 연방준비제도 홈페이지 갈무리)
그렇다고 마틴의 임기가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미국의 또 한 번의 전쟁, 베트남 전쟁이 일어나면서입니다. 린든 존슨 당시 대통령은 사회 지출 예산을 위해 연준에 금리를 낮게 유지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금리 인상은 월가의 이익을 위해 미국 근로자의 피를 짜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고도 전해집니다.

이에 따르지 않았던 마틴은 존슨의 텍사스 농장으로 불려갔습니다.

마틴 이후 연준을 맡게 된 아서 번스는 인플레이션 대응에 실패한 대표적인 연준 의장으로 꼽힙니다. 대통령에게 잘 보이려 했다는 얘기가 남아 있습니다.

아서 번스의 후임이자, 8년간 자리를 지키며 고금리 정책을 통해 물가 잡기에 성공한 인물로 꼽히는 폴 볼커는 40년대, 연준의 독립을 반대했던 재무부 출신입니다.

■ 우리나라 금융통화위원회에도 정부의 '열석발언권'이 있다

한국은행은 과거 정부 재정정책 담당 부처의 '남대문 출장소'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과거 한은이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습을, 한국은행이 있는 남대문에 빗대어 부른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별칭은 이제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역대 정부들이 한은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데 부담을 느껴왔기 때문입니다.

다만 법률상으로는 여전히 금리를 결정하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에 기획재정부 차관이 참석해 발언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60년대 만들어진 구 한은법에 있는 '열석발언권'입니다.

이 권한은 외환위기 당시이던 1999년과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10년에 행사된 바 있습니다.

서울 남대문로에 있는 한국은행 본관. 한국은행 홍보영상에서 갈무리
정부는 "발언만 할 뿐 금리 결정 때는 자리를 비우기 때문에 금통위를 압박하려는 의도는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한은의 독립성 훼손이라는 비판은 있었고, 이를 폐지하려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습니다.

세계 각국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물가 관리는 '신뢰'가 기본인데, 정치적 요인이 개입되면 그 '신뢰'를 유지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저소득층은 물가가 많이 올라도 걱정, 금리가 높아도 걱정입니다. 생활비, 이자 부담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가 예측하기 힘들면 소득이 낮을수록 더 힘듭니다.

중앙은행과 정치권의 관계가 어땠을 때 이 부담을 줄일 수 있는지는 역사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미 연방준비제도를 함부로 흔들 수 없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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