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체육연맹 임원 ‘갑질’ 신고했더니 ‘역징계’? [취재후]

입력 2024.08.23 (07:01) 수정 2024.08.23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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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애인육상연맹 선수들이 임원의 '갑질'을 못 참겠다며 스포츠윤리센터에 신고했습니다.

윤리센터는 신고 내용을 사실로 보고 해당 임원에게 징계를 주라고 요청했지만, 징계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연맹은 신고한 선수들을 역으로 '징계위원회'에 회부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취재진이 선수들을 만나봤습니다.

■ 부상 당했는데 '출전 강요' … "청각장애인은 꾀병 많아"

2022년 브라질에서 열린 청각장애인 올림픽(데플림픽) 멀리뛰기 부문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동메달을 땄습니다.

2022년 브라질 데플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선수2022년 브라질 데플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선수

이에 앞서 열린 2021년 전국장애인체육대회는 데플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선수는 주종목인 멀리뛰기에서 국가대표 선발 기준을 넘긴 했지만, 무리해서 뛴 탓에 정강이 부상이 심해졌습니다.

이튿날엔 부종목으로 신청한 200m 달리기 경기도 참여를 해야 하는 상황. 하지만 선수는 부상 부위가 다시 아파져 온 상황에서 "이듬해 있을 데플림픽 준비를 제대로 못 할 것 같았다"며 기권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습니다.

그런데 선수가 소속된 서울시장애인육상연맹의 임원 A 씨가 출전을 강요했다고 합니다.

"(A 씨가) 아파도 무조건 뛰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못하겠다고, 만약 뛰다가 부상 와서 데플림픽 준비를 못 하게 되면 어떡하냐고 했더니, 자기 일 아닌 듯이 그런 식으로 협박하더라고요."

"(A 씨가) 비하 발언도 했어요. '청각 장애인은 꾀병을 많이 부린다. 안 들리니까 자기만 생각한다.'"

- 청각장애인 육상 선수 인터뷰 중

취재진과 인터뷰하는 청각장애인 육상 선수취재진과 인터뷰하는 청각장애인 육상 선수

왜 그런 일이 생긴건지 묻자, "제가 뛰면 메달권이긴 하니까, (연맹에서도) 욕심이 나서 출전 강요를 시킨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선수의 요청이 받아들여져 기권했지만, 선수는 당시 아픈 걸 증명하는 '진단서'를 끊어오라는 요구까지 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 "전국 체전은 안 나갈 거에요?" … 선수 선발권으로 '갑질'?

같은 연맹 소속이었던 한 시각장애인 선수는 2023년 외부 기관 주최로 열린 이벤트성 대회에 참가 신청서를 냈습니다.

그러자, A 씨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절차에 맞게 신청했는데, "왜 (A 씨) 허락 없이 멋대로 신청하냐"는 거였습니다.

A 씨는 선수에게 "이 대회만 나가고 전국체전 안 나갈거냐"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결국, A 씨는 더 중요한 경기였던 전국 체전을 위해 이벤트 경기 신청을 포기했고, 함께 나가기로 했던 계주팀 4명의 참가가 무산됐습니다.

"전국 체전이 제게 있어서는 생계가 유지되냐 마냐가 왔다 갔다 하는 갈림길인데. 그런 협박을 받고 나서 정신과 상담 치료도 받게 됐어요."

- 시각장애인 육상 선수 인터뷰 중

KBS와 인터뷰하는 시각장애인 육상 선수KBS와 인터뷰하는 시각장애인 육상 선수

■ 윤리센터에 신고했지만, 돌아온 건 '역징계'

참다 못한 선수들이 지난해 4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스포츠윤리센터에 A 임원을 신고했습니다.

그러자, 연맹에서는 신고한 선수들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했습니다.

1~2년 전 경기를 다시 꺼내왔는데, 당시 선수들이 참가 신청을 해놓고 뛰지 않았다는 이유였습니다.

선수들은 그 경기마저 "A 씨의 요청으로 기권했던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A 씨는 "징계위원회가 갑작스럽게 열린 건 아니며, 선수들 사이에 이미 오래전부터 대회 참가신청을 하고 뛰지 않는 일이 빈번해서 이런 징계 조치를 예고한 바 있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선수들에 대한 징계위원회 출석요구서선수들에 대한 징계위원회 출석요구서

■ 문체부는 "징계하라"는데, 연맹은 '징계 없음' 결정

1년 넘는 조사 끝에, 윤리센터는 선수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신고 내용이 사실로 보이니, A 씨에게 징계를 내리라고 연맹에 요구한겁니다.

이 과정에서 조사관의 연락을 피한 A 씨에 대해 조사 거부·방해·기피 항목이 징계 요청 사유에 추가됐습니다.

(A 씨에게) 충분히 진술하고 해명할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본 사건과 관련하여 답변하는 것이 판단이 서지 않는다'고 하는 등 피신고인(A 씨)이 피해자가 주장하는 대회출전 관련 강요와 폭언을 하고 진단서를 요구하였다는 피해자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인정하는 반증이라 할 수 있고 …… 권한을 남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 스포츠윤리센터 A 씨 '징계요구' 결정 이유 중


하지만 실제 징계는 없었습니다. 지난달 연맹에서 열었던 상벌위원회 결과는 '징계 없음'. 정확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A 씨는 선수들에게 협박과 폭언 등을 한 사실이 없다며, '선수들의 거짓 증언에 스포츠윤리센터도 속은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A 씨에 대해 ‘징계 없음’ 결정을 내린 서울시장애인육상연맹A 씨에 대해 ‘징계 없음’ 결정을 내린 서울시장애인육상연맹

■ 상위 기관인 체육회는 '방관' … 보호조치도 없어

연맹을 관리 감독할 상위 기관인 서울시장애인체육회도 피해 선수들로부터 이 사실을 전달받았지만, 자체 조사는 없었습니다.

체육회는 당시 상벌위가 열릴 당시 누가 위원으로 들어갔는지 명단조차 파악하지 않았습니다.

KBS 취재가 시작되고 나서야 "다음 주에 A 씨에 대한 상벌위를 직접 열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징계 심의가 이뤄지는 사이, 선수들에 대한 보호조치도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A 씨는 임원 자격으로 대회에 계속 나갔고, 선수들은 "A 씨와 마주치는 불편한 상황을 견뎌야 했다"고 말합니다.

훈련 중인 장애인 육상 선수들훈련 중인 장애인 육상 선수들

스포츠윤리센터는 기관에 '징계 요청'만 할 뿐, 이를 강제할 방법이 없어서 발생한 상황입니다.
국민체육진흥법은 정당한 사유가 없다면, 징계 요구를 받은 체육 단체는 이에 따라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 징계 요구를 따르지 않더라도 징계를 강제할 처벌 규정은 없는 겁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각 체육 단체가 스포츠윤리센터의 징계 요구를 따르지 않을 경우, 재정 지원을 중단하는 등 제재조치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선수들에게 바라는 걸 물었습니다.

"자꾸 이런 일을 겪으니까 운동에 집중하기가 힘들더라고요. 2년 넘게 지났는데 같은 상황이잖아요. 억울하고 속상하죠."

- 청각장애인 육상 선수 인터뷰 중


"아직은 장애인 선수들이 많은 힘이 없어서 이런 상황에서도 뭘 못 하고 있어요.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게끔 체육회나 문체부 같은 기관들이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시각장애인 육상 선수 인터뷰 중

선수들의 소소한 바람이 이뤄질 수 있을지 모두의 관심이 필요해 보입니다.

선수들의 목소리, 영상을 통해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연관 기사] [단독] 장애인연맹 임원 ‘갑질’ 신고하자 오히려 ‘역징계’? (2024.08.21 뉴스9)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40651

영상편집: 유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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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애인체육연맹 임원 ‘갑질’ 신고했더니 ‘역징계’? [취재후]
    • 입력 2024-08-23 07:01:40
    • 수정2024-08-23 07:03:47
    취재후·사건후

서울시장애인육상연맹 선수들이 임원의 '갑질'을 못 참겠다며 스포츠윤리센터에 신고했습니다.

윤리센터는 신고 내용을 사실로 보고 해당 임원에게 징계를 주라고 요청했지만, 징계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연맹은 신고한 선수들을 역으로 '징계위원회'에 회부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취재진이 선수들을 만나봤습니다.

■ 부상 당했는데 '출전 강요' … "청각장애인은 꾀병 많아"

2022년 브라질에서 열린 청각장애인 올림픽(데플림픽) 멀리뛰기 부문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동메달을 땄습니다.

2022년 브라질 데플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선수
이에 앞서 열린 2021년 전국장애인체육대회는 데플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선수는 주종목인 멀리뛰기에서 국가대표 선발 기준을 넘긴 했지만, 무리해서 뛴 탓에 정강이 부상이 심해졌습니다.

이튿날엔 부종목으로 신청한 200m 달리기 경기도 참여를 해야 하는 상황. 하지만 선수는 부상 부위가 다시 아파져 온 상황에서 "이듬해 있을 데플림픽 준비를 제대로 못 할 것 같았다"며 기권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습니다.

그런데 선수가 소속된 서울시장애인육상연맹의 임원 A 씨가 출전을 강요했다고 합니다.

"(A 씨가) 아파도 무조건 뛰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못하겠다고, 만약 뛰다가 부상 와서 데플림픽 준비를 못 하게 되면 어떡하냐고 했더니, 자기 일 아닌 듯이 그런 식으로 협박하더라고요."

"(A 씨가) 비하 발언도 했어요. '청각 장애인은 꾀병을 많이 부린다. 안 들리니까 자기만 생각한다.'"

- 청각장애인 육상 선수 인터뷰 중

취재진과 인터뷰하는 청각장애인 육상 선수
왜 그런 일이 생긴건지 묻자, "제가 뛰면 메달권이긴 하니까, (연맹에서도) 욕심이 나서 출전 강요를 시킨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선수의 요청이 받아들여져 기권했지만, 선수는 당시 아픈 걸 증명하는 '진단서'를 끊어오라는 요구까지 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 "전국 체전은 안 나갈 거에요?" … 선수 선발권으로 '갑질'?

같은 연맹 소속이었던 한 시각장애인 선수는 2023년 외부 기관 주최로 열린 이벤트성 대회에 참가 신청서를 냈습니다.

그러자, A 씨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절차에 맞게 신청했는데, "왜 (A 씨) 허락 없이 멋대로 신청하냐"는 거였습니다.

A 씨는 선수에게 "이 대회만 나가고 전국체전 안 나갈거냐"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결국, A 씨는 더 중요한 경기였던 전국 체전을 위해 이벤트 경기 신청을 포기했고, 함께 나가기로 했던 계주팀 4명의 참가가 무산됐습니다.

"전국 체전이 제게 있어서는 생계가 유지되냐 마냐가 왔다 갔다 하는 갈림길인데. 그런 협박을 받고 나서 정신과 상담 치료도 받게 됐어요."

- 시각장애인 육상 선수 인터뷰 중

KBS와 인터뷰하는 시각장애인 육상 선수
■ 윤리센터에 신고했지만, 돌아온 건 '역징계'

참다 못한 선수들이 지난해 4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스포츠윤리센터에 A 임원을 신고했습니다.

그러자, 연맹에서는 신고한 선수들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했습니다.

1~2년 전 경기를 다시 꺼내왔는데, 당시 선수들이 참가 신청을 해놓고 뛰지 않았다는 이유였습니다.

선수들은 그 경기마저 "A 씨의 요청으로 기권했던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A 씨는 "징계위원회가 갑작스럽게 열린 건 아니며, 선수들 사이에 이미 오래전부터 대회 참가신청을 하고 뛰지 않는 일이 빈번해서 이런 징계 조치를 예고한 바 있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선수들에 대한 징계위원회 출석요구서
■ 문체부는 "징계하라"는데, 연맹은 '징계 없음' 결정

1년 넘는 조사 끝에, 윤리센터는 선수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신고 내용이 사실로 보이니, A 씨에게 징계를 내리라고 연맹에 요구한겁니다.

이 과정에서 조사관의 연락을 피한 A 씨에 대해 조사 거부·방해·기피 항목이 징계 요청 사유에 추가됐습니다.

(A 씨에게) 충분히 진술하고 해명할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본 사건과 관련하여 답변하는 것이 판단이 서지 않는다'고 하는 등 피신고인(A 씨)이 피해자가 주장하는 대회출전 관련 강요와 폭언을 하고 진단서를 요구하였다는 피해자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인정하는 반증이라 할 수 있고 …… 권한을 남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 스포츠윤리센터 A 씨 '징계요구' 결정 이유 중


하지만 실제 징계는 없었습니다. 지난달 연맹에서 열었던 상벌위원회 결과는 '징계 없음'. 정확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A 씨는 선수들에게 협박과 폭언 등을 한 사실이 없다며, '선수들의 거짓 증언에 스포츠윤리센터도 속은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A 씨에 대해 ‘징계 없음’ 결정을 내린 서울시장애인육상연맹
■ 상위 기관인 체육회는 '방관' … 보호조치도 없어

연맹을 관리 감독할 상위 기관인 서울시장애인체육회도 피해 선수들로부터 이 사실을 전달받았지만, 자체 조사는 없었습니다.

체육회는 당시 상벌위가 열릴 당시 누가 위원으로 들어갔는지 명단조차 파악하지 않았습니다.

KBS 취재가 시작되고 나서야 "다음 주에 A 씨에 대한 상벌위를 직접 열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징계 심의가 이뤄지는 사이, 선수들에 대한 보호조치도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A 씨는 임원 자격으로 대회에 계속 나갔고, 선수들은 "A 씨와 마주치는 불편한 상황을 견뎌야 했다"고 말합니다.

훈련 중인 장애인 육상 선수들
스포츠윤리센터는 기관에 '징계 요청'만 할 뿐, 이를 강제할 방법이 없어서 발생한 상황입니다.
국민체육진흥법은 정당한 사유가 없다면, 징계 요구를 받은 체육 단체는 이에 따라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 징계 요구를 따르지 않더라도 징계를 강제할 처벌 규정은 없는 겁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각 체육 단체가 스포츠윤리센터의 징계 요구를 따르지 않을 경우, 재정 지원을 중단하는 등 제재조치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선수들에게 바라는 걸 물었습니다.

"자꾸 이런 일을 겪으니까 운동에 집중하기가 힘들더라고요. 2년 넘게 지났는데 같은 상황이잖아요. 억울하고 속상하죠."

- 청각장애인 육상 선수 인터뷰 중


"아직은 장애인 선수들이 많은 힘이 없어서 이런 상황에서도 뭘 못 하고 있어요.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게끔 체육회나 문체부 같은 기관들이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시각장애인 육상 선수 인터뷰 중

선수들의 소소한 바람이 이뤄질 수 있을지 모두의 관심이 필요해 보입니다.

선수들의 목소리, 영상을 통해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연관 기사] [단독] 장애인연맹 임원 ‘갑질’ 신고하자 오히려 ‘역징계’? (2024.08.21 뉴스9)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40651

영상편집: 유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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