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찾기 힘든 정부의 ‘기피 신청’…‘중대한 사정’ 있어야 인용

입력 2024.08.29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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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위원회가 KBS 현 이사들이 방통위가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 신임 이사들에 대한 임명 처분 효력을 중단해달라고 낸 집행정지 사건과 관련, 해당 재판부에 대해 기피신청을 냈습니다.

행정소송에서 처분을 당한 당사자(원고)가 재판부 기피신청을 내는 게 아니라, 처분을 한 정부 쪽에서 재판부 기피신청을 낸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 전례 없는 정부의 재판부 기피신청, 왜?

방통위는 KBS 현 이사들의 집행정지 사건이 배당된 재판부가 앞서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신임 이사 임명 집행정지 건을 인용한 재판부여서 불공정한 재판이 우려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앞서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강재원 부장판사)는 지난 27일 권태선 현 방문진 이사 등이 낸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로 방통위 2인 체제(이진숙·김태규)에서의 의결을 문제 삼았습니다.

이에 김찬태 등 KBS 현 이사 5명도 방통위의 KBS 신임 이사 추천과 대통령의 임명이 무효라며 같은 집행정지 신청을 냈는데, 이 신청이 전산 배당 결과 공교롭게도 앞서 재판을 맡았던 재판부에 배당됐습니다.

방통위는 방문진 이사 집행정지 인용에 대해 즉시 항고하고, "정부가 법과 원칙에 따라 공영방송 이사 선임을 의결했다는 점을 소명할 것"이라고 밝힌 상태입니다.

구조적으로 유사한 사건에 대해 불과 며칠 전 판단을 내린 재판부에 사건이 배당됐으니, KBS 이사 사건에서도 같은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는 게 방통위 측이 제시한 기피신청 이유입니다.

방통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방문진 이사 집행정지 사건에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거나 그 손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처분의 효력을 정지할 긴급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기 부족함에도 인용 결정을 했다"며 "본 사건에서도 그와 같은 예단을 가지고 판단할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이유로 기피신청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 형사재판 전례 있어…행정소송에선 처음

형사재판에서는 이미 정부 측(검찰)이 재판부 기피 신청을 낸 전례가 있습니다.

2022년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자녀 입시비리 및 감찰무마 혐의 사건에서, 재판부가 조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전 교수가 썼던 동양대 강사휴게실 PC 등을 증거로 채택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하자 검찰이 기피 신청을 냈습니다.

그러나 행정소송에서는 통상 처분에 불만을 가진 원고 측이 기피신청을 내는데, 피고가 되는 정부가 법관 기피신청을 하는 경우는 지금까지 알려진 사례가 없습니다.

정부를 비롯한 행정청은 공익을 대표하는 지위에 있고, 법원의 공정성을 신뢰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행정소송에 정통한 한 판사는 "최소한 2000년 이후엔 그런 거(정부의 재판부 기피신청)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검찰이 냈던 기피신청도 기각됐습니다.

■ 법관 기피신청이란?…인용되려면 '중대한 사정' 있어야

법관 기피제도는 △법관에게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 때 △당사자의 신청에 의해 △그 법관을 당해 사건에 관한 직무집행에서 배제함으로써 당사자로 하여금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입니다.

변론종결 전에는 재판 당사자 가운데 누구나, 언제든 신청할 수 있습니다. 기피 신청서를 내면 기피 신청 이유가 합당한지 판단하게 되며 결정이 날 때까지 재판은 중단됩니다.

법관에 대한 기피신청은 그 법관 소속 법원의 합의부에서 결정하는데, 만약 기피 신청이 받아들여지게 되면 해당 재판부가 아닌 다른 재판부가 재판을 맡게 됩니다.

다만, 재판 지연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명백한 경우에는 재판부가 곧바로 기피신청을 기각할 수도 있습니다.

기피신청을 내는 것은 자유지만, 이러한 기피 신청이 인용되기 위해서는 '법관의 불공정성을 객관적으로 의심할 만한 구체적이고 중대한 사정'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불공정을 의심할 수 있는 사정은 단순한 의심에 그쳐서는 안 되고,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게 대법원의 입장입니다.

'법관의 불공정성을 객관적으로 의심할 만한 구체적이고 중대한 사정'이란, 우리 사회의 평균적 일반인의 관점에서 볼 때 법관과 사건과의 관계, 즉 법관과 당사자 사이의 특수한 사적 관계 또는 법관과 해당 사건 사이의 특별한 이해관계 등으로 인하여 법관이 불공정한 재판을 할 수 있다는 의심을 할 만한 객관적인 사정이 있고, 그러한 의심이 단순한 주관적 우려나 추측을 넘어 합리적인 것이라고 인정될 만한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 대법원 2019. 1. 4. 선고 2018스563 결정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기피 신청은 누구나 낼 수 있는 만큼 당연히 정부도 낼 수 있다"면서도 "다만 법관의 법률상 판단이 정당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는 기피 사유가 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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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8-29 15: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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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위원회가 KBS 현 이사들이 방통위가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 신임 이사들에 대한 임명 처분 효력을 중단해달라고 낸 집행정지 사건과 관련, 해당 재판부에 대해 기피신청을 냈습니다.

행정소송에서 처분을 당한 당사자(원고)가 재판부 기피신청을 내는 게 아니라, 처분을 한 정부 쪽에서 재판부 기피신청을 낸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 전례 없는 정부의 재판부 기피신청, 왜?

방통위는 KBS 현 이사들의 집행정지 사건이 배당된 재판부가 앞서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신임 이사 임명 집행정지 건을 인용한 재판부여서 불공정한 재판이 우려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앞서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강재원 부장판사)는 지난 27일 권태선 현 방문진 이사 등이 낸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로 방통위 2인 체제(이진숙·김태규)에서의 의결을 문제 삼았습니다.

이에 김찬태 등 KBS 현 이사 5명도 방통위의 KBS 신임 이사 추천과 대통령의 임명이 무효라며 같은 집행정지 신청을 냈는데, 이 신청이 전산 배당 결과 공교롭게도 앞서 재판을 맡았던 재판부에 배당됐습니다.

방통위는 방문진 이사 집행정지 인용에 대해 즉시 항고하고, "정부가 법과 원칙에 따라 공영방송 이사 선임을 의결했다는 점을 소명할 것"이라고 밝힌 상태입니다.

구조적으로 유사한 사건에 대해 불과 며칠 전 판단을 내린 재판부에 사건이 배당됐으니, KBS 이사 사건에서도 같은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는 게 방통위 측이 제시한 기피신청 이유입니다.

방통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방문진 이사 집행정지 사건에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거나 그 손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처분의 효력을 정지할 긴급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기 부족함에도 인용 결정을 했다"며 "본 사건에서도 그와 같은 예단을 가지고 판단할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이유로 기피신청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 형사재판 전례 있어…행정소송에선 처음

형사재판에서는 이미 정부 측(검찰)이 재판부 기피 신청을 낸 전례가 있습니다.

2022년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자녀 입시비리 및 감찰무마 혐의 사건에서, 재판부가 조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전 교수가 썼던 동양대 강사휴게실 PC 등을 증거로 채택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하자 검찰이 기피 신청을 냈습니다.

그러나 행정소송에서는 통상 처분에 불만을 가진 원고 측이 기피신청을 내는데, 피고가 되는 정부가 법관 기피신청을 하는 경우는 지금까지 알려진 사례가 없습니다.

정부를 비롯한 행정청은 공익을 대표하는 지위에 있고, 법원의 공정성을 신뢰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행정소송에 정통한 한 판사는 "최소한 2000년 이후엔 그런 거(정부의 재판부 기피신청)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검찰이 냈던 기피신청도 기각됐습니다.

■ 법관 기피신청이란?…인용되려면 '중대한 사정' 있어야

법관 기피제도는 △법관에게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 때 △당사자의 신청에 의해 △그 법관을 당해 사건에 관한 직무집행에서 배제함으로써 당사자로 하여금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입니다.

변론종결 전에는 재판 당사자 가운데 누구나, 언제든 신청할 수 있습니다. 기피 신청서를 내면 기피 신청 이유가 합당한지 판단하게 되며 결정이 날 때까지 재판은 중단됩니다.

법관에 대한 기피신청은 그 법관 소속 법원의 합의부에서 결정하는데, 만약 기피 신청이 받아들여지게 되면 해당 재판부가 아닌 다른 재판부가 재판을 맡게 됩니다.

다만, 재판 지연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명백한 경우에는 재판부가 곧바로 기피신청을 기각할 수도 있습니다.

기피신청을 내는 것은 자유지만, 이러한 기피 신청이 인용되기 위해서는 '법관의 불공정성을 객관적으로 의심할 만한 구체적이고 중대한 사정'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불공정을 의심할 수 있는 사정은 단순한 의심에 그쳐서는 안 되고,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게 대법원의 입장입니다.

'법관의 불공정성을 객관적으로 의심할 만한 구체적이고 중대한 사정'이란, 우리 사회의 평균적 일반인의 관점에서 볼 때 법관과 사건과의 관계, 즉 법관과 당사자 사이의 특수한 사적 관계 또는 법관과 해당 사건 사이의 특별한 이해관계 등으로 인하여 법관이 불공정한 재판을 할 수 있다는 의심을 할 만한 객관적인 사정이 있고, 그러한 의심이 단순한 주관적 우려나 추측을 넘어 합리적인 것이라고 인정될 만한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 대법원 2019. 1. 4. 선고 2018스563 결정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기피 신청은 누구나 낼 수 있는 만큼 당연히 정부도 낼 수 있다"면서도 "다만 법관의 법률상 판단이 정당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는 기피 사유가 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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