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베이비” 첫 출근한 ‘필리핀 가사관리사’…직접 만나보니

입력 2024.09.0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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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6일, 필리핀 국적의 여성 100명이 동시에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정부와 서울시의 저출생 대안으로 투입된 ' 필리핀 가사관리사'입니다. 필리핀 정부가 공인한 돌봄 자격증을 소지한 이들은 입국 후, 우리 정부가 주도하는 특화 교육을 4주간 이수했습니다.

지난 3일, 준비된 교육을 모두 수료한 이들이 개별 가정에 처음 투입됐습니다. 문화도, 언어도, 모든 것이 낯선 가사관리사가 돌봄 현장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던 필리핀 가사관리사의 첫 출근 현장에 KBS 취재진이 함께 했습니다.

■ "하이 베이비" 낯선 '가사관리사'…엄마는 '만족'

지난 4일, 취재진은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 사업에 참여하는 30대 송아람 씨의 노원구 자택을 방문했습니다.

송 씨에게는 석 달 전 태어난 첫딸 지유가 있습니다. 남편이 출근한 낮 동안 지유를 돌보는 일은 육아휴직 중인 송 씨 몫입니다.

송 씨는 "아이가 있다 보니 공공기관이나 관공서 방문에도 제약이 있었다"며 "아이를 돌보는 쪽에 주안점을 두고 가사관리사 사업을 신청했다"고 말했습니다.

취재진이 방문했던 오전 10시, 송 씨 가족의 가사관리사 A 씨는 지유를 품에 안고 있었습니다. 한국말을 하지 못하는 A 씨는 지유에게 모빌을 보여주며 "하이 베이비(안녕 아가), 엘리펀트(코끼리), 벌룬(풍선)" 같은 간단한 영어 단어를 읊었습니다.

지유가 울음을 터뜨릴 땐, 능숙하게 영어 동요를 부르며 달래주기도 했습니다. 아이는 신기한 듯 A 씨의 노래를 듣다 금세 울음을 그쳤고 이내 잠이 들었습니다.

A 씨의 업무 시간은 주 5일, 일 4시간입니다. 시급은 13,700원인데, 내국인과 동일한 최저임금인 시급 9,860원에 4대 사회보험료 등을 합한 급액입니다. A씨가 하루 4시간 기준 빠짐없이 근무할 경우 송 씨는 한 달에 119만 원 정도를 부담하게 됩니다.

8시간 전일제로 계약한 경우에는 월 238만 원으로 급여가 책정됩니다. 송 씨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내국인)산후 도우미의 시급은 만9천 원에서 2만 원 정도였다"며 "이 정도 수준이면 부담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 사업에 투입된 필리핀 가사관리사 A 씨의 업무 모습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 사업에 투입된 필리핀 가사관리사 A 씨의 업무 모습

■ "영어 교육 특장점"…업무 지침은 '모호'

A 씨는 필리핀에서 두 아이를 길러 본, 육아 유경험자입니다. 송 씨는 "본인의 아기를 봐온 경험이 있다 보니 아기랑 놀아주는 데 능숙하고 아주 다정하다"며 만족감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면서 "아직 지유는 어려서 해당되지 않지만, 영어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는 부분이 특장점인 것 같다"며 "3~5살 아이를 대상으로 '영어 동화책 읽기' 등을 교육을 중점으로 한다면 수요가 더 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지유가 잠이 든 사이, A 씨는 지유의 빨랫감을 들고 와 정리했습니다. 거실이나 소파 등에 널브러진 장난감을 치우는 등 가벼운 청소도 했습니다. 고용노동부와 서울시의 업무 지침을 보면, 필리핀 가사관리사는 주로 육아와 관련된 일을 전담하지만, 육아와 관련된 집안일까지 수행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 육아와 육아가 아닌 일을 엄격히 구분하기란 어렵습니다. 특히 아이 식사는 준비해도 되지만 어른 음식을 조리하거나 장 보는 일은 불가하다거나, 어른 식기 설거지는 원칙적으로 불가하지만 아이 식기와 섞여 있다면 가능한 점 등이 담긴 지침이 혼란스럽단 반응입니다.

송 씨는 "가사관리사도 아이 업무만 하는 게 눈치가 보일 것 같다"며 " 육아 업무를 구분하는 식이 아니라 세탁, 청소 등 업무별로 나눈 지침을 만드는 게 더 실효성 있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 첫 주 취소율 10%…넘어야 할 과제는?

당초 필리핀 가사관리사 모집 당시, 신청가구는 모두 731가구로 5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습니다. 아이의 연령 등을 고려해 최종 157가구가 시범 사업 가구로 선정됐는데, 시행 첫 주 이들 중 약 10%에 달하는 15가구가 신청을 취소했습니다.

정부와 서울시는 구체적인 취소 사유를 밝히지 않았지만, 높은 이용료와 영어 의사소통 문제 등이 취소 사유로 꼽히고 있습니다. 실제 가사관리사 이용 가구의 56%는 비교적 경제적 여유가 있는 '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와 ' 마용성(마포·용산·성동)'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사업이 중산층이나 저소득층의 돌봄 대안이 되기보다는, 특정 지역에 한정된 특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 이유입니다.

일각에선 홍콩이나 타이완처럼 가사관리사를 최저임금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개별 가정이 가사관리사를 직접 고용해 급여를 유연하게 지급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김현철 홍콩과기대 교수는 지난 달 열린 국회 세미나에서 " 처음에는 임금이 좀 낮더라도 이 외국인들이 들어와서 점차 본인의 생산성에 맞도록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대안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접근에서 비롯됐단 지적도 나옵니다. 이주노동자와 여성단체 등으로 구성된 '이주 가사·돌봄 노동자 시범사업 저지 공동행동'은 필리핀 가사관리사에 대한 임금 차등 적용 논의에 대해 " 저임금으로 동남 아시아 여성을 이용하는 성·인종차별이며, 돌봄 노동의 가치를 낮게 보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기대와 걱정이 공존한채 시범 사업은 일단 시작됐습니다. 정부는 6개월간 시범 사업 성과를 평가한 뒤, 필리핀 가사관리사를 1,200명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방침입니다.

(그래픽 : 반윤미 이재희 유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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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6일, 필리핀 국적의 여성 100명이 동시에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정부와 서울시의 저출생 대안으로 투입된 ' 필리핀 가사관리사'입니다. 필리핀 정부가 공인한 돌봄 자격증을 소지한 이들은 입국 후, 우리 정부가 주도하는 특화 교육을 4주간 이수했습니다.

지난 3일, 준비된 교육을 모두 수료한 이들이 개별 가정에 처음 투입됐습니다. 문화도, 언어도, 모든 것이 낯선 가사관리사가 돌봄 현장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던 필리핀 가사관리사의 첫 출근 현장에 KBS 취재진이 함께 했습니다.

■ "하이 베이비" 낯선 '가사관리사'…엄마는 '만족'

지난 4일, 취재진은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 사업에 참여하는 30대 송아람 씨의 노원구 자택을 방문했습니다.

송 씨에게는 석 달 전 태어난 첫딸 지유가 있습니다. 남편이 출근한 낮 동안 지유를 돌보는 일은 육아휴직 중인 송 씨 몫입니다.

송 씨는 "아이가 있다 보니 공공기관이나 관공서 방문에도 제약이 있었다"며 "아이를 돌보는 쪽에 주안점을 두고 가사관리사 사업을 신청했다"고 말했습니다.

취재진이 방문했던 오전 10시, 송 씨 가족의 가사관리사 A 씨는 지유를 품에 안고 있었습니다. 한국말을 하지 못하는 A 씨는 지유에게 모빌을 보여주며 "하이 베이비(안녕 아가), 엘리펀트(코끼리), 벌룬(풍선)" 같은 간단한 영어 단어를 읊었습니다.

지유가 울음을 터뜨릴 땐, 능숙하게 영어 동요를 부르며 달래주기도 했습니다. 아이는 신기한 듯 A 씨의 노래를 듣다 금세 울음을 그쳤고 이내 잠이 들었습니다.

A 씨의 업무 시간은 주 5일, 일 4시간입니다. 시급은 13,700원인데, 내국인과 동일한 최저임금인 시급 9,860원에 4대 사회보험료 등을 합한 급액입니다. A씨가 하루 4시간 기준 빠짐없이 근무할 경우 송 씨는 한 달에 119만 원 정도를 부담하게 됩니다.

8시간 전일제로 계약한 경우에는 월 238만 원으로 급여가 책정됩니다. 송 씨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내국인)산후 도우미의 시급은 만9천 원에서 2만 원 정도였다"며 "이 정도 수준이면 부담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 사업에 투입된 필리핀 가사관리사 A 씨의 업무 모습
■ "영어 교육 특장점"…업무 지침은 '모호'

A 씨는 필리핀에서 두 아이를 길러 본, 육아 유경험자입니다. 송 씨는 "본인의 아기를 봐온 경험이 있다 보니 아기랑 놀아주는 데 능숙하고 아주 다정하다"며 만족감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면서 "아직 지유는 어려서 해당되지 않지만, 영어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는 부분이 특장점인 것 같다"며 "3~5살 아이를 대상으로 '영어 동화책 읽기' 등을 교육을 중점으로 한다면 수요가 더 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지유가 잠이 든 사이, A 씨는 지유의 빨랫감을 들고 와 정리했습니다. 거실이나 소파 등에 널브러진 장난감을 치우는 등 가벼운 청소도 했습니다. 고용노동부와 서울시의 업무 지침을 보면, 필리핀 가사관리사는 주로 육아와 관련된 일을 전담하지만, 육아와 관련된 집안일까지 수행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 육아와 육아가 아닌 일을 엄격히 구분하기란 어렵습니다. 특히 아이 식사는 준비해도 되지만 어른 음식을 조리하거나 장 보는 일은 불가하다거나, 어른 식기 설거지는 원칙적으로 불가하지만 아이 식기와 섞여 있다면 가능한 점 등이 담긴 지침이 혼란스럽단 반응입니다.

송 씨는 "가사관리사도 아이 업무만 하는 게 눈치가 보일 것 같다"며 " 육아 업무를 구분하는 식이 아니라 세탁, 청소 등 업무별로 나눈 지침을 만드는 게 더 실효성 있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 첫 주 취소율 10%…넘어야 할 과제는?

당초 필리핀 가사관리사 모집 당시, 신청가구는 모두 731가구로 5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습니다. 아이의 연령 등을 고려해 최종 157가구가 시범 사업 가구로 선정됐는데, 시행 첫 주 이들 중 약 10%에 달하는 15가구가 신청을 취소했습니다.

정부와 서울시는 구체적인 취소 사유를 밝히지 않았지만, 높은 이용료와 영어 의사소통 문제 등이 취소 사유로 꼽히고 있습니다. 실제 가사관리사 이용 가구의 56%는 비교적 경제적 여유가 있는 '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와 ' 마용성(마포·용산·성동)'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사업이 중산층이나 저소득층의 돌봄 대안이 되기보다는, 특정 지역에 한정된 특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 이유입니다.

일각에선 홍콩이나 타이완처럼 가사관리사를 최저임금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개별 가정이 가사관리사를 직접 고용해 급여를 유연하게 지급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김현철 홍콩과기대 교수는 지난 달 열린 국회 세미나에서 " 처음에는 임금이 좀 낮더라도 이 외국인들이 들어와서 점차 본인의 생산성에 맞도록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대안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접근에서 비롯됐단 지적도 나옵니다. 이주노동자와 여성단체 등으로 구성된 '이주 가사·돌봄 노동자 시범사업 저지 공동행동'은 필리핀 가사관리사에 대한 임금 차등 적용 논의에 대해 " 저임금으로 동남 아시아 여성을 이용하는 성·인종차별이며, 돌봄 노동의 가치를 낮게 보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기대와 걱정이 공존한채 시범 사업은 일단 시작됐습니다. 정부는 6개월간 시범 사업 성과를 평가한 뒤, 필리핀 가사관리사를 1,200명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방침입니다.

(그래픽 : 반윤미 이재희 유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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