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천만 원짜리 약혼반지는 누구 거? 미국 주 대법원까지 간 소송 [특파원 리포트]

입력 2024.09.11 (07:00) 수정 2024.09.11 (10:08)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파혼을 했다면, 남자가 여자에게 건넨 약혼반지는 누구의 소유일까요? 일단 줬으니 여자의 것일까요? 아니면 약속이 깨졌으니 남자의 소유일까요? 그 반지 가격이 7만 달러, 우리 돈 9천만 원이 넘고, 고가의 유명 상표 매장에서 산 반지라면요?

미국에서 이 반지를 두고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전이 벌어졌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자기 소유라고 주장하고 있고, 1심과 2심의 결론도 달랐습니다. 대법원은 심리에 들어갔습니다.

이 반지는 7년 전, 브루스 존슨이라는 남성이 캐럴라인 세티노라는 여성에게 청혼하면서 준 약혼 반지입니다. 식당에서 청혼을 할 땐 주변 사람들로부터 박수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둘 사이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석 달 만에 브루스 존슨이 파혼을 선언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줬던 약혼 반지를 되돌려 달라 했지만 캐럴라인 세티노가 거부하자 소송을 낸 겁니다.

■그들의 사랑과 파혼...그리고 소송

시작은 이렇습니다. 브루스와 캐럴라인은 다퉜고, 이후 브루스는 캐럴라인의 휴대전화를 뒤졌습니다. 거기에서 "브루스가 3일 동안 코네티컷에 간다. 좀 놀아야겠다"는 한 남성에게 보낸 문자를 발견합니다.

브루스는 캐럴라인이 불륜을 저질렀다고 의심했습니다. 또 언어적인 학대도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파혼의 책임은 자신이 아닌 캐럴라인에 있고, 그래서 반지를 돌려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브루스가 캐럴라인에가 선물한 것과 유사한 반지. CNN 방송 갈무리브루스가 캐럴라인에가 선물한 것과 유사한 반지. CNN 방송 갈무리

브루스가 캐럴라인에게 잘못이 있다고 주장한 건 매사추세츠주의 판례 때문입니다. 1959년 매사추세츠주 대법원은 '약혼 반지를 준 사람이 약혼을 파기했을 때 자신의 잘못이 없다면 반지를 돌려받아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자신에게 잘못이 없음을 주장하기 위해 캐럴라인의 잘못을 지적한 겁니다.

■ 엇갈린 1, 2심 판결...판례가 어떻길래?

1심은 브루스가 아닌 캐럴라인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캐럴라인은 문자를 보냈던 상대 남성은 수십 년간 친하게 지낸 '남자 사람 친구'라며 불륜은 없었다고 주장했는데 이 주장이 받아들여졌습니다. 파혼을 한 브루스가 잘못된 판단을 한 책임이 있다는 판결입니다.

이에 브루스는 항소했습니다. 2심은 브루스의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불륜이 있었느냐가 중요 쟁점이 아니라 브루스가 파혼을 선언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느냐가 중요하다는 판결이었습니다. 아울러 약혼이 깨졌을 때 잘못 여부와 관계 없이 반지를 돌려주도록 한 다른 주의 판례를 따라야 하는지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여기에서 '다른 주의 판례'가 나오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미국은 연방법으로 정해진 것도 있지만, 연방 국가인 만큼 각 주의 법률에 따라 법률 행위가 이뤄지는 게 많습니다. 공화당 대선후보인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낙태와 관련해 '각 주에서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러면 다른 주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1959년 매사추세츠주 법원의 판결 이후 많은 주에서 이 판례를 따랐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뉴저지주와 뉴욕주, 펜실베이니아주 등 대부분 주에서 약혼이 끝나면 잘못 여부와 관계없이 준 사람에게 반환해야 하는 '조건부 선물'로 간주합니다.

하지만 몬태나주 대법원은 2002년, 약혼반지도 다른 선물과 다름없고, 그러니 돌려줄 필요가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 약혼반지 소유권에 성차별적 요소가?

브루스와 캐럴라인 양쪽 모두 매사추세츠주의 판례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변경되기를 원합니다. 브루스는 다른 많은 주에서 '무과실 접근 방식'을 택하고 있으니, 파혼에 대한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돌려달라고 주장합니다.

브루스와 캐럴라인의 변호인이 미국 매사추세츠주 대법원에서 각각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CNN 갈무리브루스와 캐럴라인의 변호인이 미국 매사추세츠주 대법원에서 각각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CNN 갈무리

이에 반해 캐럴라인 세티노는 몬태나주의 판례를 따르기를 원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주장합니다. 약혼반지가 사랑과 존중의 아닌 '나와의 관계 성립'을 전제로 한 '조건부 선물'이라면 여기엔 '성차별적 요소'가 들어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다른 선물과 다르게 약혼반지만 별도로 취급할 이유가 없다고 법원에 제출한 문서에서 밝혔습니다.

■ 시민들 반응은?

미 방송사 CNN은 이 사건을 두고 시민 4명의 인터뷰를 방송했습니다.

한 남성은 "남자가 결혼을 취소했다고요? 저라면 돌려줄 겁니다. 비싸잖아요"라고 답했고, 두 여성은 "그녀가 돌려줘야죠. 그녀 것이 아니잖아요. 결혼이 자체가 없어요" "반지는 남자 것이죠. 결혼이 취소됐으니까요. 모든 게 끝났어요"라고 각각 답했습니다.

다른 한 여성은 "그 반지는 여자 거라고 생각해요. 남자가 그녀에게 선물로 줬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9천만 원짜리 약혼반지가 누구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매사추세츠주 대법원은 변론만 들었고, 아직 판결 날짜는 정하지 않았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9천만 원짜리 약혼반지는 누구 거? 미국 주 대법원까지 간 소송 [특파원 리포트]
    • 입력 2024-09-11 07:00:18
    • 수정2024-09-11 10:08:25
    글로벌K

파혼을 했다면, 남자가 여자에게 건넨 약혼반지는 누구의 소유일까요? 일단 줬으니 여자의 것일까요? 아니면 약속이 깨졌으니 남자의 소유일까요? 그 반지 가격이 7만 달러, 우리 돈 9천만 원이 넘고, 고가의 유명 상표 매장에서 산 반지라면요?

미국에서 이 반지를 두고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전이 벌어졌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자기 소유라고 주장하고 있고, 1심과 2심의 결론도 달랐습니다. 대법원은 심리에 들어갔습니다.

이 반지는 7년 전, 브루스 존슨이라는 남성이 캐럴라인 세티노라는 여성에게 청혼하면서 준 약혼 반지입니다. 식당에서 청혼을 할 땐 주변 사람들로부터 박수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둘 사이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석 달 만에 브루스 존슨이 파혼을 선언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줬던 약혼 반지를 되돌려 달라 했지만 캐럴라인 세티노가 거부하자 소송을 낸 겁니다.

■그들의 사랑과 파혼...그리고 소송

시작은 이렇습니다. 브루스와 캐럴라인은 다퉜고, 이후 브루스는 캐럴라인의 휴대전화를 뒤졌습니다. 거기에서 "브루스가 3일 동안 코네티컷에 간다. 좀 놀아야겠다"는 한 남성에게 보낸 문자를 발견합니다.

브루스는 캐럴라인이 불륜을 저질렀다고 의심했습니다. 또 언어적인 학대도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파혼의 책임은 자신이 아닌 캐럴라인에 있고, 그래서 반지를 돌려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브루스가 캐럴라인에가 선물한 것과 유사한 반지. CNN 방송 갈무리
브루스가 캐럴라인에게 잘못이 있다고 주장한 건 매사추세츠주의 판례 때문입니다. 1959년 매사추세츠주 대법원은 '약혼 반지를 준 사람이 약혼을 파기했을 때 자신의 잘못이 없다면 반지를 돌려받아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자신에게 잘못이 없음을 주장하기 위해 캐럴라인의 잘못을 지적한 겁니다.

■ 엇갈린 1, 2심 판결...판례가 어떻길래?

1심은 브루스가 아닌 캐럴라인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캐럴라인은 문자를 보냈던 상대 남성은 수십 년간 친하게 지낸 '남자 사람 친구'라며 불륜은 없었다고 주장했는데 이 주장이 받아들여졌습니다. 파혼을 한 브루스가 잘못된 판단을 한 책임이 있다는 판결입니다.

이에 브루스는 항소했습니다. 2심은 브루스의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불륜이 있었느냐가 중요 쟁점이 아니라 브루스가 파혼을 선언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느냐가 중요하다는 판결이었습니다. 아울러 약혼이 깨졌을 때 잘못 여부와 관계 없이 반지를 돌려주도록 한 다른 주의 판례를 따라야 하는지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여기에서 '다른 주의 판례'가 나오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미국은 연방법으로 정해진 것도 있지만, 연방 국가인 만큼 각 주의 법률에 따라 법률 행위가 이뤄지는 게 많습니다. 공화당 대선후보인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낙태와 관련해 '각 주에서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러면 다른 주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1959년 매사추세츠주 법원의 판결 이후 많은 주에서 이 판례를 따랐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뉴저지주와 뉴욕주, 펜실베이니아주 등 대부분 주에서 약혼이 끝나면 잘못 여부와 관계없이 준 사람에게 반환해야 하는 '조건부 선물'로 간주합니다.

하지만 몬태나주 대법원은 2002년, 약혼반지도 다른 선물과 다름없고, 그러니 돌려줄 필요가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 약혼반지 소유권에 성차별적 요소가?

브루스와 캐럴라인 양쪽 모두 매사추세츠주의 판례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변경되기를 원합니다. 브루스는 다른 많은 주에서 '무과실 접근 방식'을 택하고 있으니, 파혼에 대한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돌려달라고 주장합니다.

브루스와 캐럴라인의 변호인이 미국 매사추세츠주 대법원에서 각각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CNN 갈무리
이에 반해 캐럴라인 세티노는 몬태나주의 판례를 따르기를 원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주장합니다. 약혼반지가 사랑과 존중의 아닌 '나와의 관계 성립'을 전제로 한 '조건부 선물'이라면 여기엔 '성차별적 요소'가 들어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다른 선물과 다르게 약혼반지만 별도로 취급할 이유가 없다고 법원에 제출한 문서에서 밝혔습니다.

■ 시민들 반응은?

미 방송사 CNN은 이 사건을 두고 시민 4명의 인터뷰를 방송했습니다.

한 남성은 "남자가 결혼을 취소했다고요? 저라면 돌려줄 겁니다. 비싸잖아요"라고 답했고, 두 여성은 "그녀가 돌려줘야죠. 그녀 것이 아니잖아요. 결혼이 자체가 없어요" "반지는 남자 것이죠. 결혼이 취소됐으니까요. 모든 게 끝났어요"라고 각각 답했습니다.

다른 한 여성은 "그 반지는 여자 거라고 생각해요. 남자가 그녀에게 선물로 줬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9천만 원짜리 약혼반지가 누구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매사추세츠주 대법원은 변론만 들었고, 아직 판결 날짜는 정하지 않았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