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버린 대가, 모두에게 돌아오다 [창+]
입력 2024.09.20 (07:00)
수정 2024.09.2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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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기획창 '죽음의바당1, 숨' 중에서]
대가는 반드시 따라옵니다.
인간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지난 겨울, 하도리에 31톤급 어선이 암초에 걸렸습니다.
인양에 실패했고, 어선은 파도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났습니다.
부서진 잔해와 어구들은 파도에 밀려 마을 어장으로 500m 넘게 떠밀려 왔습니다.
엉망이 되어버린 바다.
해녀들을 따라 바닷속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바닥에는 부서진 엔진, 유압 장치와 배터리, 긴 밧줄과 쇠붙이가 가득합니다.
가까이 다가가 손으로 툭툭 건드리자 주황색 녹물이 묻어나옵니다.
더 무서운 건, 낚싯줄과 폐어구입니다.
선체 인근엔 바늘이 크고 줄이 질긴 주낙이 곳곳에 감겨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무언가를 감을 듯합니다.
해녀들이 조업하러 가는 길목이 말 그대로 '지뢰밭'이 된 겁니다.
<인터뷰> 강금연/제주 하도어촌계
배 엔진들 막 그냥 박살 나서 두 군데로 나누어져 있고. 저 배... 아까 들어가서 봤지요? 막 여기서 여기까지 다 부서져서 여기저기 있지.
(기자) 그거 보면 어떠셨어요?
겁나지. 그거 발에 걸리면 끊어지지도 않아. 호미로도 안 끊어진다고. 낚싯줄이 질겨서
(기자) 아까 들어갈 때 냄새가 엄청나던데
네. 기름 냄새
(기자) 어떠셨어요? 작업할 때 머리 아프시다고
속이 울렁거려. 그 냄새 맡으면 속이 막 울렁거려.
사고 발생 석 달 만에 인양선이 도착했습니다.
잠수부가 투입돼 부서진 선체를 수거합니다.
잔해를 묶고 로프를 매달아 하나하나 끄집어 올립니다.
<인터뷰> 김영길/수거선 업체 대표
폐어구들, 통발 이게 물속에 워낙 많이 있으니까 그 장비들이 그런 물건들이 있음으로써 고기들이 죽고 그런 현상이 해녀들한테 위험해서 주낙(어구) 제거 작업을 1차로 하고 있습니다.
일일이 손으로 옮겨야 하는 번거로운 작업.
치우고 치워도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침몰한 배에서 기름이 유출되고, 해조류도 잔해에 쓸려나가 채취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인터뷰> 고윤자/ 제주 하도어촌계
수거가 다 될 줄 알았는데, 안 돼서 너무 속상하고 지금 바다에 들어가 보니까 너무 진짜 말 못 할 정도로 완전 황폐화되고. 해초가 하나도 없이 다 쓸어버렸어요. 바다가 1~2년 안에 회복될 것 같지 않아요. 진짜 너무 속상합니다.
또다시 석 달이 흘렀습니다.
이번엔 기름띠가 하도 바다를 뒤덮었습니다.
이를 알 리 없는 돌고래들은 평소처럼 헤엄칩니다.
한 번 호흡할 때 많은 양의 숨을 들이마시는 돌고래
숨구멍인 분수공이 넓게 열리며 공기를 흡입합니다.
바다에 둥둥 뜬 기름은 돌고래의 폐와 신장에 치명적입니다.
주변에 좌초된 선박도 없었고, 해경도 원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제주 연안에서 살아가는 남방큰돌고래는 120여 마리.
유일한 안식처가 황폐해져 갑니다.
지난해 3월부터 제주에서 죽은 채 발견된 새끼 돌고래는 10마리가 넘습니다.
한 해 태어나는 수와 비슷합니다.
태어나는 수만큼 채 다 자라지 못하고 죽는 겁니다.
숨을 쉬라며 죽은 새끼를 수면으로 올리는 어미
바다에 들리지 않는 비명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서너 살로 추정되는 국제 멸종위기종 새끼 푸른바다거북
버려진 그물에 걸려 있다가 죽기 직전 구조됐습니다.
<인터뷰> 이정준/다큐멘터리 감독
(잠수부가) 수심 16m 정도에서 그물에 엉켜 있는 거북이를 발견하신 거예요. 칼로 줄을 끊어서 수면으로 올라와 봤더니 그냥 그게 끝이 아니고 항문 쪽으로 낚싯줄이 이렇게 길게 나와 있던 거예요. 낚싯줄을 이렇게 살짝살짝 당기니까 목 쪽에서 약간 이렇게 움찔움찔하는. 그러니까 이게 연결되어 있고, 낚싯바늘이 어딘가에 걸려 있는 그런 위급한 상황이라고 판단이 되어서 구조치료센터 수의사님께 요청을 해서 인계를 해드리게 됐습니다.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를 먹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인터뷰> 홍원희/아쿠아플라넷 제주 수의사
낚싯바늘이 식도에 걸려 있었고요. 식도가 돌기들이 나 있어서 그 돌기에 걸려서 이 바늘은 밑으로 못 내려가고 있고. 낚싯바늘이 있는 상태에서 먹이 활동을 또 스스로 한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소화를 시키면서 나머지 줄들은 쭉 내려간 거죠.
손을 쓰기엔 이미 늦었습니다.
부검 결과 기도에 동전만 한 낚싯바늘이 걸려 있었습니다.
1m가 넘는 낚싯줄은 장기를 관통했습니다.
온몸이 찢기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마지막 헤엄을 치던 새끼 거북이는 결국 숨을 멈췄습니다.
<인터뷰> 홍원희/아쿠아플라넷 제주 수의사
장이 줄을 주축으로 서로 꼬이기 시작하면서 전체적으로 다 괴사가 나 있더라고요. 그 혈관이 막히면서 일부 부위가 찢어지면서 장 파열이 있었던 거죠.
관련 방영 일자 : 2024년 9월 10일 (화) 밤 10시 KBS 1TV <시사기획 창 – 죽음의 바당 1부 숨>
#제주 #바다 #폐어구 #그물 #낚싯줄 #바다거북 #남방큰돌고래 #갈매기 #가마우지 #연산호 #죽음의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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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4-09-20 07:00:07
- 수정2024-09-20 14:00:43
[시사기획창 '죽음의바당1, 숨' 중에서]
대가는 반드시 따라옵니다.
인간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지난 겨울, 하도리에 31톤급 어선이 암초에 걸렸습니다.
인양에 실패했고, 어선은 파도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났습니다.
부서진 잔해와 어구들은 파도에 밀려 마을 어장으로 500m 넘게 떠밀려 왔습니다.
엉망이 되어버린 바다.
해녀들을 따라 바닷속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바닥에는 부서진 엔진, 유압 장치와 배터리, 긴 밧줄과 쇠붙이가 가득합니다.
가까이 다가가 손으로 툭툭 건드리자 주황색 녹물이 묻어나옵니다.
더 무서운 건, 낚싯줄과 폐어구입니다.
선체 인근엔 바늘이 크고 줄이 질긴 주낙이 곳곳에 감겨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무언가를 감을 듯합니다.
해녀들이 조업하러 가는 길목이 말 그대로 '지뢰밭'이 된 겁니다.
<인터뷰> 강금연/제주 하도어촌계
배 엔진들 막 그냥 박살 나서 두 군데로 나누어져 있고. 저 배... 아까 들어가서 봤지요? 막 여기서 여기까지 다 부서져서 여기저기 있지.
(기자) 그거 보면 어떠셨어요?
겁나지. 그거 발에 걸리면 끊어지지도 않아. 호미로도 안 끊어진다고. 낚싯줄이 질겨서
(기자) 아까 들어갈 때 냄새가 엄청나던데
네. 기름 냄새
(기자) 어떠셨어요? 작업할 때 머리 아프시다고
속이 울렁거려. 그 냄새 맡으면 속이 막 울렁거려.
사고 발생 석 달 만에 인양선이 도착했습니다.
잠수부가 투입돼 부서진 선체를 수거합니다.
잔해를 묶고 로프를 매달아 하나하나 끄집어 올립니다.
<인터뷰> 김영길/수거선 업체 대표
폐어구들, 통발 이게 물속에 워낙 많이 있으니까 그 장비들이 그런 물건들이 있음으로써 고기들이 죽고 그런 현상이 해녀들한테 위험해서 주낙(어구) 제거 작업을 1차로 하고 있습니다.
일일이 손으로 옮겨야 하는 번거로운 작업.
치우고 치워도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침몰한 배에서 기름이 유출되고, 해조류도 잔해에 쓸려나가 채취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인터뷰> 고윤자/ 제주 하도어촌계
수거가 다 될 줄 알았는데, 안 돼서 너무 속상하고 지금 바다에 들어가 보니까 너무 진짜 말 못 할 정도로 완전 황폐화되고. 해초가 하나도 없이 다 쓸어버렸어요. 바다가 1~2년 안에 회복될 것 같지 않아요. 진짜 너무 속상합니다.
또다시 석 달이 흘렀습니다.
이번엔 기름띠가 하도 바다를 뒤덮었습니다.
이를 알 리 없는 돌고래들은 평소처럼 헤엄칩니다.
한 번 호흡할 때 많은 양의 숨을 들이마시는 돌고래
숨구멍인 분수공이 넓게 열리며 공기를 흡입합니다.
바다에 둥둥 뜬 기름은 돌고래의 폐와 신장에 치명적입니다.
주변에 좌초된 선박도 없었고, 해경도 원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제주 연안에서 살아가는 남방큰돌고래는 120여 마리.
유일한 안식처가 황폐해져 갑니다.
지난해 3월부터 제주에서 죽은 채 발견된 새끼 돌고래는 10마리가 넘습니다.
한 해 태어나는 수와 비슷합니다.
태어나는 수만큼 채 다 자라지 못하고 죽는 겁니다.
숨을 쉬라며 죽은 새끼를 수면으로 올리는 어미
바다에 들리지 않는 비명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서너 살로 추정되는 국제 멸종위기종 새끼 푸른바다거북
버려진 그물에 걸려 있다가 죽기 직전 구조됐습니다.
<인터뷰> 이정준/다큐멘터리 감독
(잠수부가) 수심 16m 정도에서 그물에 엉켜 있는 거북이를 발견하신 거예요. 칼로 줄을 끊어서 수면으로 올라와 봤더니 그냥 그게 끝이 아니고 항문 쪽으로 낚싯줄이 이렇게 길게 나와 있던 거예요. 낚싯줄을 이렇게 살짝살짝 당기니까 목 쪽에서 약간 이렇게 움찔움찔하는. 그러니까 이게 연결되어 있고, 낚싯바늘이 어딘가에 걸려 있는 그런 위급한 상황이라고 판단이 되어서 구조치료센터 수의사님께 요청을 해서 인계를 해드리게 됐습니다.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를 먹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인터뷰> 홍원희/아쿠아플라넷 제주 수의사
낚싯바늘이 식도에 걸려 있었고요. 식도가 돌기들이 나 있어서 그 돌기에 걸려서 이 바늘은 밑으로 못 내려가고 있고. 낚싯바늘이 있는 상태에서 먹이 활동을 또 스스로 한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소화를 시키면서 나머지 줄들은 쭉 내려간 거죠.
손을 쓰기엔 이미 늦었습니다.
부검 결과 기도에 동전만 한 낚싯바늘이 걸려 있었습니다.
1m가 넘는 낚싯줄은 장기를 관통했습니다.
온몸이 찢기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마지막 헤엄을 치던 새끼 거북이는 결국 숨을 멈췄습니다.
<인터뷰> 홍원희/아쿠아플라넷 제주 수의사
장이 줄을 주축으로 서로 꼬이기 시작하면서 전체적으로 다 괴사가 나 있더라고요. 그 혈관이 막히면서 일부 부위가 찢어지면서 장 파열이 있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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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바다 #폐어구 #그물 #낚싯줄 #바다거북 #남방큰돌고래 #갈매기 #가마우지 #연산호 #죽음의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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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준영 기자 mj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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