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진행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현안 질의에서 정몽규 축구협회장이나 홍명보 대표팀 감독 못지않게 주목을 받은 건 이임생 축구협회 기술이사였습니다. 홍 감독 선임 과정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해서는 '내 명예가 달린 일'이라며 강하게 부인했지만, 정작 마지막으로 할 말을 묻자 갑자기 '잔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지금 한국 대표 선수들이 한국에 와서 제일 힘든 게 잔디가 너무 뛰기가 힘들다는 얘기들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위원님들이 한국 축구를 위해서 우리 선수들한테 좋은 잔디에서 좋은 경기를 보여줄 수 있게 도와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
기존 현안 질의의 흐름과는 동떨어진 발언에 '생뚱맞다'는 시선이 지배적이었는데, 사퇴까지 선언한 마당에 마지막까지 잔디 이야기를 하는 모습에 '잔디 열사'라는 별칭도 붙었습니다.
이를 들은 전재수 국회 문체위원장은 "제가 듣기에는 진짜 도와주셔야 될 분들은 거기에 계신 분들 같다"고 말했습니다. 잔디 관리의 근본적인 책임은 축구계에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수입에 비해 잔디 관리 지출은 소극적"
실제로 잔디 관리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따져볼까요. 사실 우선적인 관리 책임은 '지방자치단체'에 있습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처럼 각 구단이 경기장을 소유하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 프로 구단이 쓰는 경기장은 대부분 지자체가 소유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다 세부적인 경기장의 운영 및 관리는 지자체 산하 시설공단이 맡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소유 구조 아래서는 지역 연고 프로 구단의 축구 경기가 우선순위는 될 수 있지만, 유일한 행사가 되지는 못한다는 겁니다. 구장 운영을 위한 부가 수입이 필요하기 때문인데, 이를 위해 다른 행사를 대관하면서 잔디 훼손은 일부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생깁니다.
쾌적한 축구 경기 운영을 위한 잔디 보호와 수익 확대를 위한 행사용 대관 사이 균형점을 찾는 게 중요한 상황. 하지만 최근 '논두렁 잔디'라는 오명을 얻게 된 서울월드컵경기장은 그렇지 못한 듯합니다.
이곳을 관리하는 서울시설공단이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지난달까지 잔디 관리에 사용된 비용은 약 2억 5천만 원 수준이었습니다. 반면, 같은 기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A매치와 FC서울의 경기, 콘서트 등 문화 행사로 벌어들인 수입은 82억 원에 달했습니다. 물론 잔디를 관리하는 사람들의 인건비 등이 '잔디 관리 지출액'에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수입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겁니다.
문화 행사 주요 수입을 보면, 지난 4월 열렸던 세븐틴 콘서트로 9억 7천만 원, 5월에 열렸던 임영웅 콘서트로 14억 3천만 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반행사 수입은 이보다 더 규모가 큽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선 전용 사용료뿐만 아니라, 축구 경기나 콘서트 등 티켓을 파는 행사에 일정 비율로 관람 사용료를 추가로 받기 때문입니다. (체육 경기·연고 구단 주최 프로 경기 및 문화예술 행사는 관람 수입 총액의 8%, 기타 프로축구 포함 일반행사는 관람 수입 총액의 15%)
여기에 더해 서울월드컵경기장은 대형 마트나 예식장 등으로부터 고정적으로 받는 임대료까지 있습니다. 2020년과 2021년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행사 개최에 직접적인 타격이 있었음을 감안하더라도, 매해 적자를 피해 높은 사업수지율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경기장 잔디의 특성과 올해 유난히 남달랐던 폭염 등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사업수지율을 반영해 보다 적극적으로 잔디 관리를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잔디 관리 위한 적극적 대책 마련 필요"
물론 직접적으로 경기장의 잔디를 심고 기르는 일련의 과정에 대한 책임이 지자체 시설공단에 있다 하더라도, 축구계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순 없습니다. 경기장을 가장 자주 이용하는 게 결국 프로 축구 선수들이고, 돈을 내고 경기를 보러 오는 팬들에게 양질의 경기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K리그를 주관하는 프로축구연맹은 삼성물산 잔디관리연구소와 협약을 맺고, 현장 실사를 통해 각 경기장 잔디 관리 책임자에게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7월엔 천연 잔디 경기장 설계·시공 업체와 업무협약을 맺고 장기적 관점에서 잔디 품질 개선을 위한 연구 등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앞서 말했던 것처럼 소유·관리 주체가 지자체에 있기 때문에, 현재까지는 연맹에서도 구속력 있는 무언갈 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만약 이임생 이사의 당부대로 '정치권의 도움'이 개입되어야 한다면,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제도와 '경기장 잔디 관리'라는 구체적인 용처의 예산이 마련되는 것이겠죠.
하지만 그 전에 축구계에서부터 보다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 축구계 관계자는 "구단과 지자체를 움직일 수 있는 인센티브 혹은 징계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 잔디 관리에 대한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짚었습니다.
(그래픽: 이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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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디 열사’ 이임생이 쏘아올린 공…상암 잔디, 투자는 적절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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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4-09-25 17:25:34
어제 진행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현안 질의에서 정몽규 축구협회장이나 홍명보 대표팀 감독 못지않게 주목을 받은 건 이임생 축구협회 기술이사였습니다. 홍 감독 선임 과정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해서는 '내 명예가 달린 일'이라며 강하게 부인했지만, 정작 마지막으로 할 말을 묻자 갑자기 '잔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지금 한국 대표 선수들이 한국에 와서 제일 힘든 게 잔디가 너무 뛰기가 힘들다는 얘기들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위원님들이 한국 축구를 위해서 우리 선수들한테 좋은 잔디에서 좋은 경기를 보여줄 수 있게 도와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
기존 현안 질의의 흐름과는 동떨어진 발언에 '생뚱맞다'는 시선이 지배적이었는데, 사퇴까지 선언한 마당에 마지막까지 잔디 이야기를 하는 모습에 '잔디 열사'라는 별칭도 붙었습니다.
이를 들은 전재수 국회 문체위원장은 "제가 듣기에는 진짜 도와주셔야 될 분들은 거기에 계신 분들 같다"고 말했습니다. 잔디 관리의 근본적인 책임은 축구계에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수입에 비해 잔디 관리 지출은 소극적"
실제로 잔디 관리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따져볼까요. 사실 우선적인 관리 책임은 '지방자치단체'에 있습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처럼 각 구단이 경기장을 소유하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 프로 구단이 쓰는 경기장은 대부분 지자체가 소유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다 세부적인 경기장의 운영 및 관리는 지자체 산하 시설공단이 맡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소유 구조 아래서는 지역 연고 프로 구단의 축구 경기가 우선순위는 될 수 있지만, 유일한 행사가 되지는 못한다는 겁니다. 구장 운영을 위한 부가 수입이 필요하기 때문인데, 이를 위해 다른 행사를 대관하면서 잔디 훼손은 일부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생깁니다.
쾌적한 축구 경기 운영을 위한 잔디 보호와 수익 확대를 위한 행사용 대관 사이 균형점을 찾는 게 중요한 상황. 하지만 최근 '논두렁 잔디'라는 오명을 얻게 된 서울월드컵경기장은 그렇지 못한 듯합니다.
이곳을 관리하는 서울시설공단이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지난달까지 잔디 관리에 사용된 비용은 약 2억 5천만 원 수준이었습니다. 반면, 같은 기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A매치와 FC서울의 경기, 콘서트 등 문화 행사로 벌어들인 수입은 82억 원에 달했습니다. 물론 잔디를 관리하는 사람들의 인건비 등이 '잔디 관리 지출액'에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수입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겁니다.
문화 행사 주요 수입을 보면, 지난 4월 열렸던 세븐틴 콘서트로 9억 7천만 원, 5월에 열렸던 임영웅 콘서트로 14억 3천만 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반행사 수입은 이보다 더 규모가 큽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선 전용 사용료뿐만 아니라, 축구 경기나 콘서트 등 티켓을 파는 행사에 일정 비율로 관람 사용료를 추가로 받기 때문입니다. (체육 경기·연고 구단 주최 프로 경기 및 문화예술 행사는 관람 수입 총액의 8%, 기타 프로축구 포함 일반행사는 관람 수입 총액의 15%)
여기에 더해 서울월드컵경기장은 대형 마트나 예식장 등으로부터 고정적으로 받는 임대료까지 있습니다. 2020년과 2021년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행사 개최에 직접적인 타격이 있었음을 감안하더라도, 매해 적자를 피해 높은 사업수지율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경기장 잔디의 특성과 올해 유난히 남달랐던 폭염 등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사업수지율을 반영해 보다 적극적으로 잔디 관리를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잔디 관리 위한 적극적 대책 마련 필요"
물론 직접적으로 경기장의 잔디를 심고 기르는 일련의 과정에 대한 책임이 지자체 시설공단에 있다 하더라도, 축구계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순 없습니다. 경기장을 가장 자주 이용하는 게 결국 프로 축구 선수들이고, 돈을 내고 경기를 보러 오는 팬들에게 양질의 경기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K리그를 주관하는 프로축구연맹은 삼성물산 잔디관리연구소와 협약을 맺고, 현장 실사를 통해 각 경기장 잔디 관리 책임자에게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7월엔 천연 잔디 경기장 설계·시공 업체와 업무협약을 맺고 장기적 관점에서 잔디 품질 개선을 위한 연구 등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앞서 말했던 것처럼 소유·관리 주체가 지자체에 있기 때문에, 현재까지는 연맹에서도 구속력 있는 무언갈 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만약 이임생 이사의 당부대로 '정치권의 도움'이 개입되어야 한다면,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제도와 '경기장 잔디 관리'라는 구체적인 용처의 예산이 마련되는 것이겠죠.
하지만 그 전에 축구계에서부터 보다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 축구계 관계자는 "구단과 지자체를 움직일 수 있는 인센티브 혹은 징계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 잔디 관리에 대한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짚었습니다.
(그래픽: 이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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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영 기자 hwa0@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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