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아지는 홍수에 집단 이주 추진 퀴놀트족…“언제 끝날지 몰라”

입력 2024.09.28 (22:27) 수정 2024.09.28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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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세계 곳곳이 기후 변화로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미국에 사는 인디언 원주민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특히 해안가에 살던 퀴놀트 부족은 해수면 상승으로 좀 더 높은 곳으로의 집단 이주를 추진하고 있는데, 종합 계획을 세운 지 6년 만에 기반 시설은 마련했지만, 실제 이주는 언제 이뤄질지 장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일중 특파원이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우리 부족 태초에 창조주 처즈 하일레마스가 세계를 여행하다 이곳에 왔습니다. 그리고 연어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태평양과 퀴놀트 강이 만나는 곳.

미국 원주민 퀴놀트 족이 대대로 연어를 잡으며 살아온 곳입니다.

중요한 소득원인데, 갈수록 연어잡이가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미카 마스텐/어부 경력 12년 : "워싱턴대학에서 물리치료를 공부하려고 해요. 연어잡이는 더이상 할 수 없으니까요. 큰 소득이 안 돼요."]

강 상류에서 차가운 물을 흘려보내던 빙하가 기후 온난화로 녹아버리면서 강 수온이 오른 탓입니다.

더 걱정인 건 높아지는 해수면 탓에 잦아진 홍수입니다.

마을 안 비교적 높은 곳에 살다 15년 전 해안가로 이사 온 소니 씨에겐 충격이었습니다.

[소니 컬리/주민 : "비가 엄청나게 왔어요. 동시에 큰 조수가 밀려왔죠. 그리고 바람, 바람이 셌어요. 바람이 바다를 날렸어요."]

가장 심각했던 건 3년 전.

네댓 시간 만에 차오른 물에 주민들은 오도 가도 못하게 됐고, 한겨울에 전기와 물이 끊어진 채 일주일 이상 버텨야 했습니다.

[리아 프렌치먼/주민 : "처음엔 그냥 길만 찼어요. 바로 다음엔 차가 물에 잠겼죠. 정말 빨리 일어났어요. 진짜 무서웠어요."]

2014년에도 이 마을은 큰 침수 피해를 입었습니다.

당시 미군 공병대가 4천5백 톤의 바위를 이용해 제방 높이를 1미터 이상 높였지만 그 이후에도 홍수에 대한 위협은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겁니다.

해마다 겨울만 되면 바닷물이 제방을 넘어오고, 2년에 한 번은 대피령이 내려질 정돕니다.

[리아 프렌치먼/주민 : "여기 다른 곳을 보면, 파도가 그냥 넘어오는 곳인데 식물들이 자라는 모습을 바꿔놨어요."]

21세기 말엔 해수면이 최대 1미터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

결국 퀴놀트 족은 집단 이주를 결정했습니다.

대상지는 마을에서 800미터가량 떨어진, 약 40미터 높은 지대.

7년 전 최종 계획을 마련했고, 기반 시설까지 설치했습니다.

주택 부지 공사가 마무리된 지는 이제 1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이 멈춤 표지판처럼 집을 짓는 공사는 시작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연방 정부 자금 2천5백만 달러를 확보했지만, 4억 달러 이상의 전체 이주 비용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앨리사 존스턴/이주지 개발 계획 담당자 : "(언제 끝날지) 몰라요. 10년 정도나 그 안에 모두 이주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하고 싶어요."]

특히 한 채에 4억에서 5억 원에 이르는 집값은 큰 부담입니다.

[제임스 델라 크루즈/주민/76살 : "전 사회보장기금으로 살고 있어요. 충분히 길게 살지도 못할 집에 돈을 쓰고 싶지 않아요. 지금도 간신히 버티고 있어요."]

문제는 퀴놀트 족과 같은 원주민 부족이 한둘이 아니라는 겁니다.

퀴놀트 부족 남쪽에 사는 쇼울워터 부족 역시 같은 처집니다.

마을 앞에 세운 3km 제방은 지난 10여 년 새 서너 차례 무너져 다시 복구해야 했습니다.

[라리사 플리저/토크랜드 천연자원 담당 국장 : "우리는 점점 더 자주, 더 심각한 조수와 폭풍 피해를 입을 겁니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기후 변화 때문이죠."]

그나마 옮겨 갈 부지는 확보했지만 진척은 없습니다.

역시 예산 확보가 문젭니다.

[톰 카니/미 주택도시개발부 원주민 프로그램 북서부 담당국장 : "산불이든 해수면 상승이든 거의 모든 부족이 어느 정도 기후변화에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예산을 두고) 전국의 모든 부족과 경쟁해야 하는 거죠."]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상기하고 있습니다.

[가이 캐포만/퀴놀트 부족 대표 : "우리가 엄청난 땅을 내줬고, 우리 고향이 보호돼야 한다고 약속받았죠. 연방 정부는 제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 누구보다 자연과 교감하며 살아온 원주민들, 이젠 기후 변화로 그 정체성마저 잃을 처지에 놓였습니다.

워싱턴주 타홀라에서 박일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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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잦아지는 홍수에 집단 이주 추진 퀴놀트족…“언제 끝날지 몰라”
    • 입력 2024-09-28 22:27:57
    • 수정2024-09-28 22:38:30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앵커]

세계 곳곳이 기후 변화로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미국에 사는 인디언 원주민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특히 해안가에 살던 퀴놀트 부족은 해수면 상승으로 좀 더 높은 곳으로의 집단 이주를 추진하고 있는데, 종합 계획을 세운 지 6년 만에 기반 시설은 마련했지만, 실제 이주는 언제 이뤄질지 장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일중 특파원이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우리 부족 태초에 창조주 처즈 하일레마스가 세계를 여행하다 이곳에 왔습니다. 그리고 연어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태평양과 퀴놀트 강이 만나는 곳.

미국 원주민 퀴놀트 족이 대대로 연어를 잡으며 살아온 곳입니다.

중요한 소득원인데, 갈수록 연어잡이가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미카 마스텐/어부 경력 12년 : "워싱턴대학에서 물리치료를 공부하려고 해요. 연어잡이는 더이상 할 수 없으니까요. 큰 소득이 안 돼요."]

강 상류에서 차가운 물을 흘려보내던 빙하가 기후 온난화로 녹아버리면서 강 수온이 오른 탓입니다.

더 걱정인 건 높아지는 해수면 탓에 잦아진 홍수입니다.

마을 안 비교적 높은 곳에 살다 15년 전 해안가로 이사 온 소니 씨에겐 충격이었습니다.

[소니 컬리/주민 : "비가 엄청나게 왔어요. 동시에 큰 조수가 밀려왔죠. 그리고 바람, 바람이 셌어요. 바람이 바다를 날렸어요."]

가장 심각했던 건 3년 전.

네댓 시간 만에 차오른 물에 주민들은 오도 가도 못하게 됐고, 한겨울에 전기와 물이 끊어진 채 일주일 이상 버텨야 했습니다.

[리아 프렌치먼/주민 : "처음엔 그냥 길만 찼어요. 바로 다음엔 차가 물에 잠겼죠. 정말 빨리 일어났어요. 진짜 무서웠어요."]

2014년에도 이 마을은 큰 침수 피해를 입었습니다.

당시 미군 공병대가 4천5백 톤의 바위를 이용해 제방 높이를 1미터 이상 높였지만 그 이후에도 홍수에 대한 위협은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겁니다.

해마다 겨울만 되면 바닷물이 제방을 넘어오고, 2년에 한 번은 대피령이 내려질 정돕니다.

[리아 프렌치먼/주민 : "여기 다른 곳을 보면, 파도가 그냥 넘어오는 곳인데 식물들이 자라는 모습을 바꿔놨어요."]

21세기 말엔 해수면이 최대 1미터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

결국 퀴놀트 족은 집단 이주를 결정했습니다.

대상지는 마을에서 800미터가량 떨어진, 약 40미터 높은 지대.

7년 전 최종 계획을 마련했고, 기반 시설까지 설치했습니다.

주택 부지 공사가 마무리된 지는 이제 1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이 멈춤 표지판처럼 집을 짓는 공사는 시작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연방 정부 자금 2천5백만 달러를 확보했지만, 4억 달러 이상의 전체 이주 비용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앨리사 존스턴/이주지 개발 계획 담당자 : "(언제 끝날지) 몰라요. 10년 정도나 그 안에 모두 이주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하고 싶어요."]

특히 한 채에 4억에서 5억 원에 이르는 집값은 큰 부담입니다.

[제임스 델라 크루즈/주민/76살 : "전 사회보장기금으로 살고 있어요. 충분히 길게 살지도 못할 집에 돈을 쓰고 싶지 않아요. 지금도 간신히 버티고 있어요."]

문제는 퀴놀트 족과 같은 원주민 부족이 한둘이 아니라는 겁니다.

퀴놀트 부족 남쪽에 사는 쇼울워터 부족 역시 같은 처집니다.

마을 앞에 세운 3km 제방은 지난 10여 년 새 서너 차례 무너져 다시 복구해야 했습니다.

[라리사 플리저/토크랜드 천연자원 담당 국장 : "우리는 점점 더 자주, 더 심각한 조수와 폭풍 피해를 입을 겁니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기후 변화 때문이죠."]

그나마 옮겨 갈 부지는 확보했지만 진척은 없습니다.

역시 예산 확보가 문젭니다.

[톰 카니/미 주택도시개발부 원주민 프로그램 북서부 담당국장 : "산불이든 해수면 상승이든 거의 모든 부족이 어느 정도 기후변화에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예산을 두고) 전국의 모든 부족과 경쟁해야 하는 거죠."]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상기하고 있습니다.

[가이 캐포만/퀴놀트 부족 대표 : "우리가 엄청난 땅을 내줬고, 우리 고향이 보호돼야 한다고 약속받았죠. 연방 정부는 제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 누구보다 자연과 교감하며 살아온 원주민들, 이젠 기후 변화로 그 정체성마저 잃을 처지에 놓였습니다.

워싱턴주 타홀라에서 박일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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