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를 잡아라”…제주 무인도서 때아닌 소탕 작전, 왜?

입력 2024.10.10 (15:52) 수정 2024.10.10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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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보호구역인 제주 서귀포시 범섬에서 서식하는 굴토끼. 땅굴을 파고 각종 식물을 갉아먹는 습성 탓에 범섬 내 식생을 크게 훼손한 주범으로 지목됐다. 제주대학교 오홍식 교수 연구팀 제공천연보호구역인 제주 서귀포시 범섬에서 서식하는 굴토끼. 땅굴을 파고 각종 식물을 갉아먹는 습성 탓에 범섬 내 식생을 크게 훼손한 주범으로 지목됐다. 제주대학교 오홍식 교수 연구팀 제공

제주도 남쪽, 서귀포항 인근 해상엔 유명한 섬 3개가 있습니다. 서쪽에서부터 각각 범섬, 문섬, 그리고 섶섬입니다.

이 가운데 무인도인 문섬·범섬(천연기념물 제421호)은 2000년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돼, 국가유산청 허가 없이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신종·미기록종 등 다양한 바다 생물이 서식하는 섬 주변 해역도 출입제한 지역이어서, 제주도 허가를 받은 업체를 통한 갯바위 낚시나 스쿠버다이빙 등 레저와 어로 활동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살지 않는 범섬에서 최근 '토끼 소탕 작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서, 아닌 밤중에 웬 토끼잡이냐고요? 섬에서 자라는 자생식물을 갉아먹는 '생태계 파괴범'으로 지목됐기 때문입니다.

서귀포시 범섬. 비짓제주서귀포시 범섬. 비짓제주

■ 작전명 '토끼를 잡아라'…천연기념물 갉아 먹는 굴토끼에 '몸살'

제주도 세계유산본부와 제주대학교 오홍식(생물교육) 교수 연구팀은 지난 8일 기준 천연보호구역인 서귀포시 범섬에서 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으로 지목된 토끼 21마리를 붙잡았다고 밝혔습니다.

이 중 4마리는 사체였고 17마리는 산채로 포획했는데, 생포한 토끼는 중성화 수술을 거쳐 제주 자연생태공원에서 보호·관리를 받고 있습니다.

제주도가 예산 1억 원을 들여 본격적인 토끼잡이에 나선 이유는 토끼들이 천연보호구역 '범섬 파괴왕'으로 군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950년대 섬에 살던 주민들이 가축으로 반입했다고 전해지는 이들 토끼는 수십 년간 번식하며 범섬 자생식물을 갉아 먹어, 식생을 크게 훼손하는 골칫덩이가 됐습니다.

굴토끼로 황폐해진 범섬 육지부. 제주대학교 오홍식 교수 연구팀 제공굴토끼로 황폐해진 범섬 육지부. 제주대학교 오홍식 교수 연구팀 제공

제주도 세계유산본부가 제주대학교 오홍식(생물교육) 연구팀에 의뢰해 지난해 여름 조사한 범섬 식생은 심각할 정도로 훼손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섬 북서쪽 평지 대부분 식생은 굴토끼 먹이 활동으로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범섬 곳곳에서 토끼 굴과 배설물이 발견되고 악취가 진동했습니다.

범섬에 있는 각종 풀과 나무에도 종류를 가리지 않고 갉아먹은 흔적을 여기저기 남겼습니다. 토끼의 주 먹이 대상인 참으아리, 개머루 등 초본(풀)에서부터 우묵사스레피나무, 예덕나무 등 키가 작은 나무까지 굴토끼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토끼들이 잎을 갉아 먹을 뿐만 아니라 뿌리까지 파헤치면서, 풀이 다시 자라나지 않아 섬 곳곳이 초토화 되기도 했습니다.

연구팀 관계자는 "토끼가 굴을 파면서 교목 아래 뿌리를 파괴해 나무가 고사하기도 하고, 땅굴로 지반이 약해져 쉽게 무너지는 등 지형도 변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굴토끼가 만든 토끼굴과 주변 배설물. 초목이 자라지 않아 황폐한 모습이다. 제주대학교 오홍식 교수 연구팀 제공굴토끼가 만든 토끼굴과 주변 배설물. 초목이 자라지 않아 황폐한 모습이다. 제주대학교 오홍식 교수 연구팀 제공

범섬은 한라산국립공원, 곶자왈과 함께 유네스코 지정 생물권보전지역 핵심구역입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국립공원 엄정 보호지역으로도 지정‧보호되고 있습니다.

각종 자생식물에서부터 후박나무와 생달나무, 소기나무 등 희귀종을 비롯해 천연기념물도 자라고 있어, 토끼가 이들 식물 생태계에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오홍식 교수는 KBS와의 통화에서 "토끼로 인해 범섬 내 식생이 황폐화 수준으로 훼손됐다"며 "토끼 소탕 작전이 끝나고도 한동안 식생이 회복되기를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가축에서 골칫덩이로…제주 부속 섬 곳곳에서 포획 작업

범섬에서 출몰하는 토끼 떼는 굴을 파고 사는 '굴토끼'입니다. 범섬에는 1950년대 일부 주민이 살았는데, 이때 토끼와 염소 등 가축이 유입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처음 토끼가 범섬에 들어왔을 때 몇 마리였는지는 몰라도, 수십 년 새 범섬에 사는 토끼 개체 수는 수백 마리로 급격히 불어났습니다. 이때도 풀과 나무뿌리를 갉아 먹는 습성 탓에 생물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커지자, 2000년대 초반 몇 차례에 걸쳐 토끼 포획 작업이 이뤄졌습니다.

범섬 토끼는 자연사 등 개체 수가 늘다 줄기를 반복해, 지난해 말 기준 37~45마리 정도가 섬에 남아있는 것으로 연구조사팀은 추정했습니다.

천연보호구역인 제주 서귀포시 범섬에서 서식하는 굴토끼. 땅굴을 파고 각종 식물을 갉아먹는 습성 탓에 범섬 내 식생을 크게 훼손한 주범으로 지목됐다. 제주대학교 오홍식 교수 연구팀 제공천연보호구역인 제주 서귀포시 범섬에서 서식하는 굴토끼. 땅굴을 파고 각종 식물을 갉아먹는 습성 탓에 범섬 내 식생을 크게 훼손한 주범으로 지목됐다. 제주대학교 오홍식 교수 연구팀 제공

오홍식 교수는 "11월까지 (섬에 남아있는 개체) 절반 수준인 토끼 25마리를 포획하는 게 목표"라면서 "최소 3년간 포획하고 꾸준히 생태계를 지켜봐야, 범섬 내 토끼 소탕 여부를 알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앞서 문섬에서는 90년대 한 어민이 키우다 방사한 애완용 토끼 한 쌍이 화근이 됐습니다. 특별한 천적도 없던 탓에, 개체 수는 금세 수백 마리로 불어났습니다.

이 때문에 서귀포시는 문섬과 범섬에서 2002~2004년 3개년에 걸쳐 토끼와 염소 포획 작업을 벌였습니다. 범섬에 살던 염소는 완전히 사라졌지만, 토끼는 완전 소탕에 실패하면서 지금까지도 포획 작업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제주에서는 범섬·문섬 토끼뿐만 아니라 차귀도 토끼, 비양도 염소 등 다른 부속 도서에서도 가축이 급증해 식생 파괴 등 문제가 발생하자, 대대적인 포획이 이뤄진 바 있습니다.

굴토끼가 만든 토끼굴과 그 주변 모습. 뿌리까지 파헤쳐 초목이 자라지 못해 황폐한 모습이다. 제주대학교 오홍식 교수 연구팀 제공굴토끼가 만든 토끼굴과 그 주변 모습. 뿌리까지 파헤쳐 초목이 자라지 못해 황폐한 모습이다. 제주대학교 오홍식 교수 연구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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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남쪽, 서귀포항 인근 해상엔 유명한 섬 3개가 있습니다. 서쪽에서부터 각각 범섬, 문섬, 그리고 섶섬입니다.

이 가운데 무인도인 문섬·범섬(천연기념물 제421호)은 2000년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돼, 국가유산청 허가 없이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신종·미기록종 등 다양한 바다 생물이 서식하는 섬 주변 해역도 출입제한 지역이어서, 제주도 허가를 받은 업체를 통한 갯바위 낚시나 스쿠버다이빙 등 레저와 어로 활동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살지 않는 범섬에서 최근 '토끼 소탕 작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서, 아닌 밤중에 웬 토끼잡이냐고요? 섬에서 자라는 자생식물을 갉아먹는 '생태계 파괴범'으로 지목됐기 때문입니다.

서귀포시 범섬. 비짓제주
■ 작전명 '토끼를 잡아라'…천연기념물 갉아 먹는 굴토끼에 '몸살'

제주도 세계유산본부와 제주대학교 오홍식(생물교육) 교수 연구팀은 지난 8일 기준 천연보호구역인 서귀포시 범섬에서 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으로 지목된 토끼 21마리를 붙잡았다고 밝혔습니다.

이 중 4마리는 사체였고 17마리는 산채로 포획했는데, 생포한 토끼는 중성화 수술을 거쳐 제주 자연생태공원에서 보호·관리를 받고 있습니다.

제주도가 예산 1억 원을 들여 본격적인 토끼잡이에 나선 이유는 토끼들이 천연보호구역 '범섬 파괴왕'으로 군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950년대 섬에 살던 주민들이 가축으로 반입했다고 전해지는 이들 토끼는 수십 년간 번식하며 범섬 자생식물을 갉아 먹어, 식생을 크게 훼손하는 골칫덩이가 됐습니다.

굴토끼로 황폐해진 범섬 육지부. 제주대학교 오홍식 교수 연구팀 제공
제주도 세계유산본부가 제주대학교 오홍식(생물교육) 연구팀에 의뢰해 지난해 여름 조사한 범섬 식생은 심각할 정도로 훼손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섬 북서쪽 평지 대부분 식생은 굴토끼 먹이 활동으로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범섬 곳곳에서 토끼 굴과 배설물이 발견되고 악취가 진동했습니다.

범섬에 있는 각종 풀과 나무에도 종류를 가리지 않고 갉아먹은 흔적을 여기저기 남겼습니다. 토끼의 주 먹이 대상인 참으아리, 개머루 등 초본(풀)에서부터 우묵사스레피나무, 예덕나무 등 키가 작은 나무까지 굴토끼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토끼들이 잎을 갉아 먹을 뿐만 아니라 뿌리까지 파헤치면서, 풀이 다시 자라나지 않아 섬 곳곳이 초토화 되기도 했습니다.

연구팀 관계자는 "토끼가 굴을 파면서 교목 아래 뿌리를 파괴해 나무가 고사하기도 하고, 땅굴로 지반이 약해져 쉽게 무너지는 등 지형도 변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굴토끼가 만든 토끼굴과 주변 배설물. 초목이 자라지 않아 황폐한 모습이다. 제주대학교 오홍식 교수 연구팀 제공
범섬은 한라산국립공원, 곶자왈과 함께 유네스코 지정 생물권보전지역 핵심구역입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국립공원 엄정 보호지역으로도 지정‧보호되고 있습니다.

각종 자생식물에서부터 후박나무와 생달나무, 소기나무 등 희귀종을 비롯해 천연기념물도 자라고 있어, 토끼가 이들 식물 생태계에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오홍식 교수는 KBS와의 통화에서 "토끼로 인해 범섬 내 식생이 황폐화 수준으로 훼손됐다"며 "토끼 소탕 작전이 끝나고도 한동안 식생이 회복되기를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가축에서 골칫덩이로…제주 부속 섬 곳곳에서 포획 작업

범섬에서 출몰하는 토끼 떼는 굴을 파고 사는 '굴토끼'입니다. 범섬에는 1950년대 일부 주민이 살았는데, 이때 토끼와 염소 등 가축이 유입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처음 토끼가 범섬에 들어왔을 때 몇 마리였는지는 몰라도, 수십 년 새 범섬에 사는 토끼 개체 수는 수백 마리로 급격히 불어났습니다. 이때도 풀과 나무뿌리를 갉아 먹는 습성 탓에 생물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커지자, 2000년대 초반 몇 차례에 걸쳐 토끼 포획 작업이 이뤄졌습니다.

범섬 토끼는 자연사 등 개체 수가 늘다 줄기를 반복해, 지난해 말 기준 37~45마리 정도가 섬에 남아있는 것으로 연구조사팀은 추정했습니다.

천연보호구역인 제주 서귀포시 범섬에서 서식하는 굴토끼. 땅굴을 파고 각종 식물을 갉아먹는 습성 탓에 범섬 내 식생을 크게 훼손한 주범으로 지목됐다. 제주대학교 오홍식 교수 연구팀 제공
오홍식 교수는 "11월까지 (섬에 남아있는 개체) 절반 수준인 토끼 25마리를 포획하는 게 목표"라면서 "최소 3년간 포획하고 꾸준히 생태계를 지켜봐야, 범섬 내 토끼 소탕 여부를 알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앞서 문섬에서는 90년대 한 어민이 키우다 방사한 애완용 토끼 한 쌍이 화근이 됐습니다. 특별한 천적도 없던 탓에, 개체 수는 금세 수백 마리로 불어났습니다.

이 때문에 서귀포시는 문섬과 범섬에서 2002~2004년 3개년에 걸쳐 토끼와 염소 포획 작업을 벌였습니다. 범섬에 살던 염소는 완전히 사라졌지만, 토끼는 완전 소탕에 실패하면서 지금까지도 포획 작업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제주에서는 범섬·문섬 토끼뿐만 아니라 차귀도 토끼, 비양도 염소 등 다른 부속 도서에서도 가축이 급증해 식생 파괴 등 문제가 발생하자, 대대적인 포획이 이뤄진 바 있습니다.

굴토끼가 만든 토끼굴과 그 주변 모습. 뿌리까지 파헤쳐 초목이 자라지 못해 황폐한 모습이다. 제주대학교 오홍식 교수 연구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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