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채식주의자’ 폐기에…경기교육청 “지시 안 해” vs “학교에 압박 사실”
입력 2024.10.11 (16:33)
수정 2024.10.11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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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그의 대표작 『채식주의자』가 지난해 경기도 학교 도서관에서 '청소년에게 유해한 성교육 도서'로 분류돼 폐기된 사실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KBS는 5월에 경기도교육청이 더불어민주당 강민정 의원실에 제출한 '성교육 도서 폐기 현황' 자료를 분석해, 『채식주의자』를 포함해 517종의 책 2,500여 권이 경기도 초중고 341개 학교 도서관에서 폐기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연관기사] 학교도서관에 유해 성교육 책이 500여 종? 폐기된 책 목록 봤더니(2024. 5.15)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63860
■ 경기도교육청 "폐기 지시한 적이 없어"…학교별 폐기량도 파악 안 해
학교 도서관에서 한강 작가의 작품이 폐기된 사실이 알려지자, 경기도교육청 홈페이지에는 "경기도 교육청이 어떠한 근거로 청소년 유해도서라고 지정했는지 소명하라"는 내용의 민원이 접수됐습니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내가 경기도 출신이라는 게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도 지나친 성적 표현물이라고 청소년 접근을 금지할 거냐"고 개탄하는 글이 이어졌습니다.
11일 경기도교육청 홈페이지에 올라온 『채식주의자』 폐기 항의 민원
이에 대해 경기도교육청은 오늘 "특정 도서를 유해 도서로 지정하고 폐기를 지시한 적이 없다"는 내용의 입장을 내놨습니다. 경기도교육청은 "도서 관리는 각 학교에서 학부모가 포함된 학교 도서관 운영위원회 판단을 통해 이루어진다"면서, 도서 폐기 결정은 각 학교가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한 학교당 1권 정도인 약 2,500권이 학교 도서관에서 폐기됐다"면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작품은 1개 학교에서 2권만 폐기됐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해명으로 경기도교육청이 폐기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 드러났습니다. 경기도교육청은 강민정 의원실에 엑셀파일 형태로 폐기 도서 목록을 제출하면서, 몇 개 학교에서 각각 몇 권의 도서가 폐기됐는지 집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고서 경기도 초중고가 2,490개 교임을 감안해 "한 학교당 1권 정도가 폐기됐다"고 발표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기자가 교육청이 제출한 자료를 분석해 보니 폐기 도서 목록을 제출한 학교는 341개 학교였습니다. 경기도 전체 학교의 13.7%였고, 초등학교 208개교, 중학교 96개교, 고등학교 37개교입니다. 폐기된 도서량은 한 학교당 7.4권이고, 50권이 넘는 책을 폐기했다고 보고한 학교도 있었습니다.
경기도교육청이 더불어민주당 강민정 의원실에 제출한 성교육 도서 폐기 현황 자료
■ 교원단체 "교육청, 공문으로 학교에 폐기 압박"…"한강 작품 폐기 학교 더 있다" 진술도
교원단체들은 "폐기를 지시하지 않았다"는 교육청의 해명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습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경기지부는 "도 교육청이 예전에 성교육 도서 폐기 현황을 보고하라는 식의 조사를 한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학교 현장에서는 폐기하라는 압박으로 받아들였다"고 주장했습니다.
경기도교육청이 성교육 도서를 폐기하란 지시를 직접 하지는 않았지만 "교육청이 보수단체가 성교육 도서를 문제 삼는 기자회견 기사 목록을 공문으로 보내면서, 사서 교사들이 압박으로 받아들였다"고 전했습니다. 학교 관리자로부터 "교육청에서 계속 공문이 올 테니까 한 권이라도 폐기해주면 안 되겠냐"는 얘기를 들은 교사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심사에서 폐기된 도서 가운데 청소년 유해도서로 판단된 책은 없었습니다. 유해도서로 판단된 1권도 재심의를 통해 유해도서 결정이 번복됐습니다. 전교조 경기지부는 경기도 교육청에 '폐기된 책들이 유해한 성교육 도서가 아님을 안내하는 공문을 발송하고, 도서관에 복구하도록 조치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고 밝혔습니다.
현직 학교 사서 모임인 한국학교사서협회(한학사) 관계자는『채식주의자』가 한 학교에서만 폐기되었다는 교육청 설명에 대해 "일선 사서 교사들의 증언과 다르다"며 "의아하다"고 했습니다. 한학사는 "학교도서관 이용시스템인 '독서로'의 관리 주체가 시도 교육청에서 교육부로 넘어가면서 폐기 현황이 일부 누락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성교육 도서 폐기 사태에서 『채식주의자』가 폐기되었다는 얘기를 한 사서 교사들이 경기도교육청의 집계보다 많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도서관에서 지적 자유의 중요성에 대해 환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한학사는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으로 많은 독자들이 『채식주의자』를 포함한 작품을 찾고 있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이미 많은 도서관에서 해당 작품이 폐기된 상황을 고려할 때 특정 단체의 무분별한 도서 낙인찍기 및 도서 폐기와 열람 제한 요청은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 "임태희 교육감 사과해야" 경기도 더불어민주당 촉구
경기도의회 더불어민주당은 『채식주의자』를 포함한 성교육 도서 폐기 사태에 대해 임태희 교육감의 사과를 촉구했습니다.
민주당은 대변인단 논평을 통해 " 우수도서로 평가받은 도서 폐기는 임태희 교육감의 편향된 교육 철학에서 초래됐다"면서 "지금이라도 성 관련 유해 도서 기준을 명확히 마련하고, 문화에 정치가 간섭하지 말라"고 요구했습니다.
한편, 일선 학교가 자의적으로 성교육 도서를 폐기하는 사태가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경기도의회는 지난 6월 학교 도서관 운영위원회가 객관적이고 독립적으로 운영되도록 규정을 마련하고, 열람 제한의 경우에도 위원회가 심의하도록 관련 조례를 개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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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 ‘채식주의자’ 폐기에…경기교육청 “지시 안 해” vs “학교에 압박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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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4-10-11 16:3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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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그의 대표작 『채식주의자』가 지난해 경기도 학교 도서관에서 '청소년에게 유해한 성교육 도서'로 분류돼 폐기된 사실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KBS는 5월에 경기도교육청이 더불어민주당 강민정 의원실에 제출한 '성교육 도서 폐기 현황' 자료를 분석해, 『채식주의자』를 포함해 517종의 책 2,500여 권이 경기도 초중고 341개 학교 도서관에서 폐기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연관기사] 학교도서관에 유해 성교육 책이 500여 종? 폐기된 책 목록 봤더니(2024. 5.15)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63860
■ 경기도교육청 "폐기 지시한 적이 없어"…학교별 폐기량도 파악 안 해
학교 도서관에서 한강 작가의 작품이 폐기된 사실이 알려지자, 경기도교육청 홈페이지에는 "경기도 교육청이 어떠한 근거로 청소년 유해도서라고 지정했는지 소명하라"는 내용의 민원이 접수됐습니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내가 경기도 출신이라는 게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도 지나친 성적 표현물이라고 청소년 접근을 금지할 거냐"고 개탄하는 글이 이어졌습니다.
이에 대해 경기도교육청은 오늘 "특정 도서를 유해 도서로 지정하고 폐기를 지시한 적이 없다"는 내용의 입장을 내놨습니다. 경기도교육청은 "도서 관리는 각 학교에서 학부모가 포함된 학교 도서관 운영위원회 판단을 통해 이루어진다"면서, 도서 폐기 결정은 각 학교가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한 학교당 1권 정도인 약 2,500권이 학교 도서관에서 폐기됐다"면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작품은 1개 학교에서 2권만 폐기됐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해명으로 경기도교육청이 폐기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 드러났습니다. 경기도교육청은 강민정 의원실에 엑셀파일 형태로 폐기 도서 목록을 제출하면서, 몇 개 학교에서 각각 몇 권의 도서가 폐기됐는지 집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고서 경기도 초중고가 2,490개 교임을 감안해 "한 학교당 1권 정도가 폐기됐다"고 발표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기자가 교육청이 제출한 자료를 분석해 보니 폐기 도서 목록을 제출한 학교는 341개 학교였습니다. 경기도 전체 학교의 13.7%였고, 초등학교 208개교, 중학교 96개교, 고등학교 37개교입니다. 폐기된 도서량은 한 학교당 7.4권이고, 50권이 넘는 책을 폐기했다고 보고한 학교도 있었습니다.
■ 교원단체 "교육청, 공문으로 학교에 폐기 압박"…"한강 작품 폐기 학교 더 있다" 진술도
교원단체들은 "폐기를 지시하지 않았다"는 교육청의 해명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습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경기지부는 "도 교육청이 예전에 성교육 도서 폐기 현황을 보고하라는 식의 조사를 한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학교 현장에서는 폐기하라는 압박으로 받아들였다"고 주장했습니다.
경기도교육청이 성교육 도서를 폐기하란 지시를 직접 하지는 않았지만 "교육청이 보수단체가 성교육 도서를 문제 삼는 기자회견 기사 목록을 공문으로 보내면서, 사서 교사들이 압박으로 받아들였다"고 전했습니다. 학교 관리자로부터 "교육청에서 계속 공문이 올 테니까 한 권이라도 폐기해주면 안 되겠냐"는 얘기를 들은 교사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심사에서 폐기된 도서 가운데 청소년 유해도서로 판단된 책은 없었습니다. 유해도서로 판단된 1권도 재심의를 통해 유해도서 결정이 번복됐습니다. 전교조 경기지부는 경기도 교육청에 '폐기된 책들이 유해한 성교육 도서가 아님을 안내하는 공문을 발송하고, 도서관에 복구하도록 조치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고 밝혔습니다.
현직 학교 사서 모임인 한국학교사서협회(한학사) 관계자는『채식주의자』가 한 학교에서만 폐기되었다는 교육청 설명에 대해 "일선 사서 교사들의 증언과 다르다"며 "의아하다"고 했습니다. 한학사는 "학교도서관 이용시스템인 '독서로'의 관리 주체가 시도 교육청에서 교육부로 넘어가면서 폐기 현황이 일부 누락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성교육 도서 폐기 사태에서 『채식주의자』가 폐기되었다는 얘기를 한 사서 교사들이 경기도교육청의 집계보다 많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도서관에서 지적 자유의 중요성에 대해 환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한학사는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으로 많은 독자들이 『채식주의자』를 포함한 작품을 찾고 있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이미 많은 도서관에서 해당 작품이 폐기된 상황을 고려할 때 특정 단체의 무분별한 도서 낙인찍기 및 도서 폐기와 열람 제한 요청은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 "임태희 교육감 사과해야" 경기도 더불어민주당 촉구
경기도의회 더불어민주당은 『채식주의자』를 포함한 성교육 도서 폐기 사태에 대해 임태희 교육감의 사과를 촉구했습니다.
민주당은 대변인단 논평을 통해 " 우수도서로 평가받은 도서 폐기는 임태희 교육감의 편향된 교육 철학에서 초래됐다"면서 "지금이라도 성 관련 유해 도서 기준을 명확히 마련하고, 문화에 정치가 간섭하지 말라"고 요구했습니다.
한편, 일선 학교가 자의적으로 성교육 도서를 폐기하는 사태가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경기도의회는 지난 6월 학교 도서관 운영위원회가 객관적이고 독립적으로 운영되도록 규정을 마련하고, 열람 제한의 경우에도 위원회가 심의하도록 관련 조례를 개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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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하 기자 isegoria@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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