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대담] ‘부마민주항쟁’ 45주년과 민주주의 현주소

입력 2024.10.16 (20:34) 수정 2024.10.16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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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늘은 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난 지 45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부마민주항쟁의 역사적 의미와 앞으로의 과제 K-민주주의연구소 정성기 소장 모시고 짚어 보겠습니다.

소장님도 45년 전 부마민주항쟁에 참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어떤 계기로 항쟁의 현장에 있으셨나요?

[답변]

그 당시에 박정희 유신 체제에 대해서 이런저런 평가가 많습니다만 한편으로 국가 안보라든지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를 했다는 그런 면도 인정이 되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그 당시에 오일 쇼크로 인한 경제적인 어려움 또 YH 사태 노동자 탄압, 김영삼 총재 제명 이런 걸로 해서 젊은 사람들이 특히 우리 지역의 부산 마산 학생들이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다 이런 감정이 막 쌓여 있었죠.

그러면서 저도 같이 참여했습니다.

[앵커]

오늘 부산에서 열린 45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셨죠?

분위기 어땠습니까?

[답변]

작년에 마산에서 할 때는 한때 대통령이 왔는데 차관이 와서 기념사를 한다고 이렇게 돼서 막 해프닝이 좀 있었거든요.

반발한다고 그랬는데 이번에는 차관이 오시고 행안부 장관 오시고 부산시장, 경남지사 두 분 다 오시고 비교적 원만하게 진행이 되었습니다.

됐는데 처음에 시작할 때 의례를 할 때 애국가를 사절이나 불러서 그것도 이제 부마항쟁 관련된 사진을 배경으로 넣고 하면서 이례적으로 애국가를 사절까지 했는데 조금 울컥했습니다.

[앵커]

부마민주항쟁 진상 조사와 관련자 명예 회복 작업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까?

[답변]

상당히 잘 원만하게 진행되어 왔는데요.

박근혜 정부 때 이제 항쟁 관련 특별법이 처음 만들어지고 부마항쟁 위원회, 재단 이런 게 만들어져서 부마사태라고 불리던 게 부마항쟁을 민주항쟁으로 그것도 공인되고 개인적으로도 또 이제 불순 폭도, 난동자로 찍혔던 사람들이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이 되고 또 보상도 더러 받고 특별한 문제 없이 잘 진행돼 왔습니다.

한가지 안타깝다면 그 당시에 이제 관련자로 고생했던 사람 중에서 아직도 내가 관련자다.

이렇게 선뜻 나서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 여전히 꽤 있습니다.

[앵커]

3·15 의거와 부마 민주항쟁의 역사를 품고 있는 창원에 내년 1월 민주주의 전당이 들어섭니다.

이름에 '자유'를 넣을지 말지, 여부를 두고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요.

최종적으로는 자유는 넣지 않고 '한국민주주의전당'으로 확정됐습니다.

이런 논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변]

이름이 그렇게 한국민주주의전당으로 된 거는 최종 확정된 건 아니지만 단일안으로 그렇게 된 거는 잘 됐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을 합니다.

자유와 관련된 논란은 사실은 이게 만만치 않은데요.

3·15의거 당시에 우리 경남대학의 학생회가 나서서 제기한 구호가 피로서 찾은 자유 총칼로 빼앗을쏘냐.

이런 거였거든요.

자유를 정면으로 내세웠는데 이후에 이제 70년대 80년대 운동 거치면서 자유를 좀 소홀히 하는 그런 민주화 운동 내부의 경향이 좀 있죠.

그런데 좀 진보 좌파 이런 쪽에서 인민민주주의도 민주주의 행태가 아니냐 이런 경향도 없지 않고 그에 대한 반발 이런 것들이 좀 혼재돼 있어서 그거는 좀 학문적으로나 또 사회 정치적으로나 좀 정리를 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최근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3·15 의거'라는 단어는 빠지고 부정선거 날짜만 기록돼 또 논란입니다.

이 문제는 어떻게 보십니까?

[답변]

상당히 좀 유감스럽고 좀 안타까운데요.

한때 교과서에 4·19의거가 들어가고 3·15는 그냥 부정선거 이렇게만 묘사된 적이 있었거든요.

그 이후에 민주화되고 난 이후 4·19 혁명 그다음에 3·15 부정선거에 대응한 3·15 의거가 들어가 있었거든요.

근데 그게 조금 더 풍부하게 조금 더 발전적으로 기술돼야 하는데, 최근에 오히려 3·15 부정선거 그다음에 3·15 의거는 아예 빠졌다 이러니까 굉장히 좀 퇴행적으로 보이고 좀 잘못된 걸로 좀 유감스럽게 생각하는데 그것도 앞에서 말씀 잠깐 드린 자유민주주의와 관련된 논란 이런 거 하고 또 연관된 그런 것 같습니다.

이러나저러나 같이 좀 노력해서 좀 바로잡아야 할 그런 대목입니다.

[앵커]

이런 측면에서 지난해 설립하신 K-민주주의연구소, 앞으로 역할이 클 것 같습니다.

[답변]

저희 연구소는 최근에 이제 민주주의 위기 얘기를 많이 하지 않습니까?

세계적인 민주주의 수준의 나라로 됐는데 오히려 최근에는 검찰 독재다 의회 독재다.

이런 식으로 되면서 갈등이 굉장히 심한데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빚어졌냐?

앞으로 어떤 민주주의 위기 이후의 대안을 마련할 거냐 그런 것까지 고민하면서 만들어진 전국에서 좀 유례가 드문 그런 취지를 가진 연구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앵커]

부마민주항쟁 45주년을 맞아서 민주주의의 현 주소까지 짚어봤습니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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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슈대담] ‘부마민주항쟁’ 45주년과 민주주의 현주소
    • 입력 2024-10-16 20:34:03
    • 수정2024-10-16 20:53:36
    뉴스7(창원)
[앵커]

오늘은 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난 지 45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부마민주항쟁의 역사적 의미와 앞으로의 과제 K-민주주의연구소 정성기 소장 모시고 짚어 보겠습니다.

소장님도 45년 전 부마민주항쟁에 참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어떤 계기로 항쟁의 현장에 있으셨나요?

[답변]

그 당시에 박정희 유신 체제에 대해서 이런저런 평가가 많습니다만 한편으로 국가 안보라든지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를 했다는 그런 면도 인정이 되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그 당시에 오일 쇼크로 인한 경제적인 어려움 또 YH 사태 노동자 탄압, 김영삼 총재 제명 이런 걸로 해서 젊은 사람들이 특히 우리 지역의 부산 마산 학생들이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다 이런 감정이 막 쌓여 있었죠.

그러면서 저도 같이 참여했습니다.

[앵커]

오늘 부산에서 열린 45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셨죠?

분위기 어땠습니까?

[답변]

작년에 마산에서 할 때는 한때 대통령이 왔는데 차관이 와서 기념사를 한다고 이렇게 돼서 막 해프닝이 좀 있었거든요.

반발한다고 그랬는데 이번에는 차관이 오시고 행안부 장관 오시고 부산시장, 경남지사 두 분 다 오시고 비교적 원만하게 진행이 되었습니다.

됐는데 처음에 시작할 때 의례를 할 때 애국가를 사절이나 불러서 그것도 이제 부마항쟁 관련된 사진을 배경으로 넣고 하면서 이례적으로 애국가를 사절까지 했는데 조금 울컥했습니다.

[앵커]

부마민주항쟁 진상 조사와 관련자 명예 회복 작업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까?

[답변]

상당히 잘 원만하게 진행되어 왔는데요.

박근혜 정부 때 이제 항쟁 관련 특별법이 처음 만들어지고 부마항쟁 위원회, 재단 이런 게 만들어져서 부마사태라고 불리던 게 부마항쟁을 민주항쟁으로 그것도 공인되고 개인적으로도 또 이제 불순 폭도, 난동자로 찍혔던 사람들이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이 되고 또 보상도 더러 받고 특별한 문제 없이 잘 진행돼 왔습니다.

한가지 안타깝다면 그 당시에 이제 관련자로 고생했던 사람 중에서 아직도 내가 관련자다.

이렇게 선뜻 나서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 여전히 꽤 있습니다.

[앵커]

3·15 의거와 부마 민주항쟁의 역사를 품고 있는 창원에 내년 1월 민주주의 전당이 들어섭니다.

이름에 '자유'를 넣을지 말지, 여부를 두고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요.

최종적으로는 자유는 넣지 않고 '한국민주주의전당'으로 확정됐습니다.

이런 논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변]

이름이 그렇게 한국민주주의전당으로 된 거는 최종 확정된 건 아니지만 단일안으로 그렇게 된 거는 잘 됐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을 합니다.

자유와 관련된 논란은 사실은 이게 만만치 않은데요.

3·15의거 당시에 우리 경남대학의 학생회가 나서서 제기한 구호가 피로서 찾은 자유 총칼로 빼앗을쏘냐.

이런 거였거든요.

자유를 정면으로 내세웠는데 이후에 이제 70년대 80년대 운동 거치면서 자유를 좀 소홀히 하는 그런 민주화 운동 내부의 경향이 좀 있죠.

그런데 좀 진보 좌파 이런 쪽에서 인민민주주의도 민주주의 행태가 아니냐 이런 경향도 없지 않고 그에 대한 반발 이런 것들이 좀 혼재돼 있어서 그거는 좀 학문적으로나 또 사회 정치적으로나 좀 정리를 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최근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3·15 의거'라는 단어는 빠지고 부정선거 날짜만 기록돼 또 논란입니다.

이 문제는 어떻게 보십니까?

[답변]

상당히 좀 유감스럽고 좀 안타까운데요.

한때 교과서에 4·19의거가 들어가고 3·15는 그냥 부정선거 이렇게만 묘사된 적이 있었거든요.

그 이후에 민주화되고 난 이후 4·19 혁명 그다음에 3·15 부정선거에 대응한 3·15 의거가 들어가 있었거든요.

근데 그게 조금 더 풍부하게 조금 더 발전적으로 기술돼야 하는데, 최근에 오히려 3·15 부정선거 그다음에 3·15 의거는 아예 빠졌다 이러니까 굉장히 좀 퇴행적으로 보이고 좀 잘못된 걸로 좀 유감스럽게 생각하는데 그것도 앞에서 말씀 잠깐 드린 자유민주주의와 관련된 논란 이런 거 하고 또 연관된 그런 것 같습니다.

이러나저러나 같이 좀 노력해서 좀 바로잡아야 할 그런 대목입니다.

[앵커]

이런 측면에서 지난해 설립하신 K-민주주의연구소, 앞으로 역할이 클 것 같습니다.

[답변]

저희 연구소는 최근에 이제 민주주의 위기 얘기를 많이 하지 않습니까?

세계적인 민주주의 수준의 나라로 됐는데 오히려 최근에는 검찰 독재다 의회 독재다.

이런 식으로 되면서 갈등이 굉장히 심한데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빚어졌냐?

앞으로 어떤 민주주의 위기 이후의 대안을 마련할 거냐 그런 것까지 고민하면서 만들어진 전국에서 좀 유례가 드문 그런 취지를 가진 연구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앵커]

부마민주항쟁 45주년을 맞아서 민주주의의 현 주소까지 짚어봤습니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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