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터뷰] ‘치유농업사’ 변신…박향 전 공공보건정책관을 만나다

입력 2024.10.17 (19:54) 수정 2024.10.17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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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코로나 관련 브리핑 하시는 모습만 이렇게 뵙다가 지금 이렇게 또 낯선 장소에 있으니까 또 좀 다르게 느껴져요.

지금 최근에는 이곳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십니까?

[답변]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후배들한테 교육하는 게 있어서 강의 한 번 정도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주로 여기 일주일에 한 서너 번 정도는 와서 여기 나무들 가꾸어 보고 뭐 이렇게 풀 같은 것도 메고 또 잔디도 깎고 뭐 이렇게 하고있어요.

[기자]

지난해까지 보건복지부에서 공공보건정책관으로 계셨잖아요.

그러면 30년 공직생활을 마무리 지으셨어요.

시원 섭섭한 마음, 소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답변]

한마디로 하기는 굉장히 어려워요.

그러니까 저 같은 경우는 이제 일단 의사가 공무원의 길을 선택하는 것 자체도 흔한 일은 아니었고 또 대개 이제 의사들이 공무원 할 때는 보건소에서 되게 정년을 해요.

근데 이제 저 같은 경우에도 또 시로 이제 행정 일반, 일반 행정을 할 수 있는 여건으로 옮겼고 그다음에 이제 지방공무원을 오랫동안 하다가 이제 중앙정부에 가는 거 자체도 흔한 일은 아닌 거죠.

그때는 이제 워낙에 코로나 정국이었고 또 복지부에서도 좀 현장에 지역 현장에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라고 요청도 있었고 해서 이제 갔긴 했는데 근데 이제 막상 코로나가 정리되고 나서 보니까 이제 이제 일반, 일상적인 정책으로 오는 거잖아요.

현재 요즘으로 말하는 필수의료 정책이나 이런 것들도 개념이 완전히 바뀌어버리고 그런 것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더라도 이게 논의될 수 있는 여건이 아닌 그런 상황들, 그리고 이제 거기다가 개인적으로는 이제 부모님 건강이 좀 안 좋아지시고 하면서 명퇴를 갑자기 결정했죠.

[기자]

코로나19 때 얘기 한번 해볼게요.

그때 현장에서 방역 사령탑으로서 정말 저는 도대체 몇 시간 주무시지?

그때 당시 제가 취재기자였기 때문에, 생각이 들 정도로 항상 현장에 계시고 거의 매일 브리핑이 있고 그랬어요.

[답변]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잠을 잘 수는 없죠.

언제 어떤 상황이 발생될지 몰랐고 또 초기는, 한번 되짚어봐요.

우리가 진짜 코로나에 걸리면 죽을 수 있다 이런 위기감이 있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건 뭔가 우리 역할이 정말 긴박하게 돌아가야 되고 정말 최선을 다해서 해야 한다 이런 게 좀 있었어요.

[기자]

좀 남다른 길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해서 공직에 입문하시게 된 거예요?

[답변]

그때 이제 제 예방의학 하셨던 교수님께서 좀 외골수셨어요.

고지식하시고 그래서 이제 1차 의료 현장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거 영향도 좀 컸던 것 같고 저도 이제 아무래도 이 지역에서 안에 뿌리박고 있으면서 또 보건소에서 일을 하면서 좀 매력적이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그때 보건소 업무를 막 시작했을 때 지금 진료나 이런 업무 결핵만 보고 이런 게 한 게 아니라 그때부터 이제 건강 증진 사업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있었고 지역 보건의료계획도 수립하고 이제 사업을 추진하고 하는데 이제 재미도 있었고요.

[기자]

왜 치유농업사인가, 그리고 치유농업사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 이것도 조금 설명을 듣고 싶어요.

[답변]

제가 왜 이렇게 식물들을 키우면서 뭔가 좀 내 스스로가 좀 치유된다는 느낌을 받았나 이런 걸 해보면은 옛날에도 보면 우리가 보건소에 있을 때 정신 건강 프로그램이라든지 아니면 건강증진 프로그램을 할 때 보면 원예 치료나 이런 것들이 굉장히 프로그램이 다양했어요.

그래서 그런 거에 대해서 좀 정보도 좀 있었고, 식물이나 자원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그런 성격 이런 것들이 우리 인간들에게 그런 교감을 느끼게 해주고 그것이 인간 사람들이 일상에서는 자기 스스로를 여기에다가 투사할 수 있고 또 그것이 나를 좀 치유할 수 있는 그런 역할을 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이제 좀 관심 갖고 공부를 한 거죠.

[기자]

공직생활하실 때도 현장 중심으로 하셨는데 퇴직하시고 나서도 그건 변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가 현장 현장 현장 지금 그 느낌.

[답변]

그냥 딱 갔었을 때 그 느낌.

[기자]

치유농업사로는 이제 새롭게 출발하시는 거니까 나는 이런 치유농업사가 되고 싶다.

어떤 이미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답변]

지금 치유농업을 공부해 보니까 1차 시험하고 2차 보는데 거기에 굉장히 현재 농진청에서 하는 치유농업사 정책은 프로그램을 어떻게 하면 잘 만들어서 여기 오는 사람들에게 그 프로그램을 통해서 뭔가 치유의 과정이나 결과를 얻어낼까 이거에 굉장히 집중돼 있더라고요.

[기자]

그게 중요한 거 아닌가요?

[답변]

핵심이죠.

그게 핵심인데 일단 그 과정에서 제가 이제 여기 커피 농사를 우리 딸이랑 하는 걸 도우면서도 아 이게 이 자연이나 지구나 이런 기후 위기나 이런 게 좀 있잖아요.

특히 이제 이게 하우스에서 이걸 키우다 보니까 약간 뭐랄까 내가 지구한테 미안한 일을 하고 있는 거 아닌가 에너지를 막 써서 온도를 겨울에 막 높여서 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미안함이 좀 있었어요.

이걸 좀 최소화로 하고 뭔가 상쇄할 게 없을까 막 찾아봤던 것 중에 이제 자연순환농법.

나머지 밭이나 이런 데서는 우리가 막 비료를 하거나 막 이렇게 퇴비나 이걸 억지로 주는 게 아니고 자연 스스로 이렇게 컬 클 수 있는 그런 텃밭 환경을 조성해서 그 공간이 치유하러 오는 그 프로그램에 활용하는 방법.

이제 이걸 자연순환 농법으로 하기 위해서는 어떤 작업이 필요한가 이제 이런 거 공부도 같이 하고 있죠.

[기자]

치유농업사로서의 앞날도 저희가 많이 응원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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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터뷰] ‘치유농업사’ 변신…박향 전 공공보건정책관을 만나다
    • 입력 2024-10-17 19:54:35
    • 수정2024-10-17 20:51:56
    뉴스7(광주)
[기자]

코로나 관련 브리핑 하시는 모습만 이렇게 뵙다가 지금 이렇게 또 낯선 장소에 있으니까 또 좀 다르게 느껴져요.

지금 최근에는 이곳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십니까?

[답변]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후배들한테 교육하는 게 있어서 강의 한 번 정도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주로 여기 일주일에 한 서너 번 정도는 와서 여기 나무들 가꾸어 보고 뭐 이렇게 풀 같은 것도 메고 또 잔디도 깎고 뭐 이렇게 하고있어요.

[기자]

지난해까지 보건복지부에서 공공보건정책관으로 계셨잖아요.

그러면 30년 공직생활을 마무리 지으셨어요.

시원 섭섭한 마음, 소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답변]

한마디로 하기는 굉장히 어려워요.

그러니까 저 같은 경우는 이제 일단 의사가 공무원의 길을 선택하는 것 자체도 흔한 일은 아니었고 또 대개 이제 의사들이 공무원 할 때는 보건소에서 되게 정년을 해요.

근데 이제 저 같은 경우에도 또 시로 이제 행정 일반, 일반 행정을 할 수 있는 여건으로 옮겼고 그다음에 이제 지방공무원을 오랫동안 하다가 이제 중앙정부에 가는 거 자체도 흔한 일은 아닌 거죠.

그때는 이제 워낙에 코로나 정국이었고 또 복지부에서도 좀 현장에 지역 현장에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라고 요청도 있었고 해서 이제 갔긴 했는데 근데 이제 막상 코로나가 정리되고 나서 보니까 이제 이제 일반, 일상적인 정책으로 오는 거잖아요.

현재 요즘으로 말하는 필수의료 정책이나 이런 것들도 개념이 완전히 바뀌어버리고 그런 것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더라도 이게 논의될 수 있는 여건이 아닌 그런 상황들, 그리고 이제 거기다가 개인적으로는 이제 부모님 건강이 좀 안 좋아지시고 하면서 명퇴를 갑자기 결정했죠.

[기자]

코로나19 때 얘기 한번 해볼게요.

그때 현장에서 방역 사령탑으로서 정말 저는 도대체 몇 시간 주무시지?

그때 당시 제가 취재기자였기 때문에, 생각이 들 정도로 항상 현장에 계시고 거의 매일 브리핑이 있고 그랬어요.

[답변]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잠을 잘 수는 없죠.

언제 어떤 상황이 발생될지 몰랐고 또 초기는, 한번 되짚어봐요.

우리가 진짜 코로나에 걸리면 죽을 수 있다 이런 위기감이 있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건 뭔가 우리 역할이 정말 긴박하게 돌아가야 되고 정말 최선을 다해서 해야 한다 이런 게 좀 있었어요.

[기자]

좀 남다른 길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해서 공직에 입문하시게 된 거예요?

[답변]

그때 이제 제 예방의학 하셨던 교수님께서 좀 외골수셨어요.

고지식하시고 그래서 이제 1차 의료 현장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거 영향도 좀 컸던 것 같고 저도 이제 아무래도 이 지역에서 안에 뿌리박고 있으면서 또 보건소에서 일을 하면서 좀 매력적이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그때 보건소 업무를 막 시작했을 때 지금 진료나 이런 업무 결핵만 보고 이런 게 한 게 아니라 그때부터 이제 건강 증진 사업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있었고 지역 보건의료계획도 수립하고 이제 사업을 추진하고 하는데 이제 재미도 있었고요.

[기자]

왜 치유농업사인가, 그리고 치유농업사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 이것도 조금 설명을 듣고 싶어요.

[답변]

제가 왜 이렇게 식물들을 키우면서 뭔가 좀 내 스스로가 좀 치유된다는 느낌을 받았나 이런 걸 해보면은 옛날에도 보면 우리가 보건소에 있을 때 정신 건강 프로그램이라든지 아니면 건강증진 프로그램을 할 때 보면 원예 치료나 이런 것들이 굉장히 프로그램이 다양했어요.

그래서 그런 거에 대해서 좀 정보도 좀 있었고, 식물이나 자원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그런 성격 이런 것들이 우리 인간들에게 그런 교감을 느끼게 해주고 그것이 인간 사람들이 일상에서는 자기 스스로를 여기에다가 투사할 수 있고 또 그것이 나를 좀 치유할 수 있는 그런 역할을 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이제 좀 관심 갖고 공부를 한 거죠.

[기자]

공직생활하실 때도 현장 중심으로 하셨는데 퇴직하시고 나서도 그건 변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가 현장 현장 현장 지금 그 느낌.

[답변]

그냥 딱 갔었을 때 그 느낌.

[기자]

치유농업사로는 이제 새롭게 출발하시는 거니까 나는 이런 치유농업사가 되고 싶다.

어떤 이미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답변]

지금 치유농업을 공부해 보니까 1차 시험하고 2차 보는데 거기에 굉장히 현재 농진청에서 하는 치유농업사 정책은 프로그램을 어떻게 하면 잘 만들어서 여기 오는 사람들에게 그 프로그램을 통해서 뭔가 치유의 과정이나 결과를 얻어낼까 이거에 굉장히 집중돼 있더라고요.

[기자]

그게 중요한 거 아닌가요?

[답변]

핵심이죠.

그게 핵심인데 일단 그 과정에서 제가 이제 여기 커피 농사를 우리 딸이랑 하는 걸 도우면서도 아 이게 이 자연이나 지구나 이런 기후 위기나 이런 게 좀 있잖아요.

특히 이제 이게 하우스에서 이걸 키우다 보니까 약간 뭐랄까 내가 지구한테 미안한 일을 하고 있는 거 아닌가 에너지를 막 써서 온도를 겨울에 막 높여서 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미안함이 좀 있었어요.

이걸 좀 최소화로 하고 뭔가 상쇄할 게 없을까 막 찾아봤던 것 중에 이제 자연순환농법.

나머지 밭이나 이런 데서는 우리가 막 비료를 하거나 막 이렇게 퇴비나 이걸 억지로 주는 게 아니고 자연 스스로 이렇게 컬 클 수 있는 그런 텃밭 환경을 조성해서 그 공간이 치유하러 오는 그 프로그램에 활용하는 방법.

이제 이걸 자연순환 농법으로 하기 위해서는 어떤 작업이 필요한가 이제 이런 거 공부도 같이 하고 있죠.

[기자]

치유농업사로서의 앞날도 저희가 많이 응원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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