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투식량은 개고기’ 이거 믿어도 될까?…SNS는 또 다른 ‘전장’ [뒷北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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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는 북한 관련 소식을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는 [뒷北뉴스]를 연재합니다. 한주 가장 화제가 됐던 북한 관련 소식을 '앞면'이 아닌 '뒷면', 즉 이면까지 들여다 봄으로써 북한발 보도의 숨은 의도를 짚고, 쏟아지는 북한 뉴스를 팩트체크해 보다 깊이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최근 휴대전화가 시도때도 없이 알림음을 쏟아냅니다. 북한군이 러시아에 파병됐다는 소식을 접한 이후 우크라이나 관련 SNS 계정을 대거 팔로우한 결과입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정도가 아니라 '1시간이 멀다 하고' SNS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소식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북한군 관련 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달 말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이 우크라이나군과 이미 교전을 치렀고, 1명만 생존했다는 주장이 나왔는데, 생존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영상이 친우크라이나 텔레그램 채널 'ExileNova'를 통해 공개됐습니다.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동양계 남성은 피투성이로 머리에 붕대를 감고 병상에 누워 힘겹게 말을 이어갔는데, 북한 억양을 쓰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이 영상 속 남성은 "전우들의 시체 밑에 숨어 살아남았다", "러시아는 무기를 주지 않았다", "푸틴은 이 전쟁에서 패할 것이다" 등등 우크라이나에 유리한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그러나 이 영상의 진위는 확인되지 않았고, 정황상 '가짜'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습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KBS와의 인터뷰에서 '북한군이 우크라이나군과 교전을 벌여 사망자가 나왔다'는 이른바 '교전설'을 부인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젤렌스키 대통령은 "현재까지 북한 병력은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고 러시아 쿠르스크에서 전투에 참여할 준비를 하고 있다"며 "며칠 내로 교전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우크라이나 당국은 닷새가 지난 지난4일에야 '북한군과의 첫 교전'을 공식 인정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X(옛 트위터) 등을 통해 북한군이 러시아군 동료에게 준 전투 식량이라며 소개하는 영상이 퍼졌는데, 통조림 겉면에는 '누렁이 개고기'라는 문구가 선명합니다. 러시아군이 뭔지도 모르고 서양에서는 금기시되는 개고기를 북한군에게 받아 먹었다고 희화화한 겁니다.
이 영상 역시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우선 북한에선 '개고기' 대신에 '단고기'라는 표현을 쓴다"며 "북한에 개고기로 된 통조림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건 전투식량 용도가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개고기 통조림은 운동선수나 상류층을 위한 보양식으로, 고급 음식이자 선물용"이라고 덧붙였습니다.
SNS를 통해 빠르게 퍼졌던 '북한군의 군인 신분증' 사진도 조작됐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탈북민들은 "사진 속 신분증과 같은 걸 본 적이 없다"면서, "군인에겐 '군인 신분증'이 아닌 '군인증'이 지급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또, 해당 군인 신분증에 사용된 글꼴이 북한에서는 쓰이지 않는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심지어, 우크라이나 전장에 도착한 북한군이 소고기와 라면을 먹는다며, 이른바 '먹방' 영상도 등장했는데, 이 군인은 중국어를 쓰고 있습니다. 영상 속 남성이 우크라이나나 주변 전선에 있다는 주장은 사실일 수 있지만,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은 아닌 거로 보입니다. 우크라이나 일간 '키이우포스트'는 "러시아군에 소속된 중국 출신 용병 일부는 자신의 경험을 담은 영상을 업로드하는 경우가 잦다"고 전했습니다.
이처럼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 관련 정보는 상당수 허위인 거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베일에 싸인 북한이라는 나라에서 해외로 파병된 군인의 존재는 관심의 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무분별하게 미확인 정보가 퍼지는 건 그저 관심 탓이라고 보기엔 뭔가 석연치 않아 보입니다.
일각에선 우크라이나 군의 심리전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합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국제사회의 관심과 지원을 얻기 위해 북한군 파병 소식을 전파하는 데 주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한범 석좌연구위원은 "지금 나오는 북한군 정보들은 상당히 치밀한 계획의 일환으로 보인다"며 "우크라이나 군의 심리전 일환이거나, 우크라이나 심리전 부대와 연관이 돼 있는 걸로 추정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렇다 보니 '진짜 뉴스'일 가능성이 상당해 보이는 정보들도 신뢰하기가 어려워지는 게 현실입니다. 러시아군 장갑차가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군인들을 전장에 내버려둔 채 철수하는 영상이 SNS에 퍼졌는데, 이는 우크라이나 군이 직접 올린 겁니다. 별다른 설명은 없었지만, 러시아군과 북한군 간 의사소통 문제가 심각하다는 추측이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신중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군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어 보이지만, 심증적인 것일 뿐 명백한 증거가 있다고 하기 어렵다"며 "러시아군에는 이미 용병 부대가 존재한다. 용병은 이런 식으로 주된 역할이 일회성 소모"라고 말했습니다. 영상 속 우왕좌왕하는 군인들이 북한군이 아닌 다른 국가 용병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해당 영상을 분석했던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영상 속 좌표가 북한군이 투입된 거로 알려진 러시아 제11공수여단이 작전하고 있는 지역이고, 우크라이나 군사정보국장이 언급한 북한군 주둔지가 이번에 식별됐던 그 좌표의 후방이었다"며 "이 두 가지 사실에 근거해 봤을 때 북한군이 들어갔을 개연성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일우 사무국장도 "이 영상에 등장하는 군인들이 북한군인지 여부에 대해선 해당 영상을 올린 우크라이나 부대 측에 사실 확인 요청을 했다"며 "영상 자체는 조작된 건 아니지만, 해석의 영역이 존재한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 관련 '가짜 뉴스'가 판치면서, 이것이 우크라이나 측의 의도이든 아니든, 정작 '진짜 뉴스'마저도 신뢰를 받지 못하는 상황마저 우려됩니다. 러시아군 활동을 감시해 온 국제시민단체 '인폼네이팜'도 이런 우려를 담아 북한군 관련 허위 정보가 난무하는 상황이 우크라이나에 해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 단체는 "과장된 선전은 도움이 되지 않는 걸 넘어 방해가 된다"면서 "허위 정보를 만드는 이들은 이런 짓이 어떤 피해를 끼칠지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후 진짜 사실이 제시됐을 때 진실을 흐릴 목적으로 계획적으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일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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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전투식량은 개고기’ 이거 믿어도 될까?…SNS는 또 다른 ‘전장’ [뒷北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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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4-11-09 07:01:02
최근 휴대전화가 시도때도 없이 알림음을 쏟아냅니다. 북한군이 러시아에 파병됐다는 소식을 접한 이후 우크라이나 관련 SNS 계정을 대거 팔로우한 결과입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정도가 아니라 '1시간이 멀다 하고' SNS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소식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북한군 관련 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달 말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이 우크라이나군과 이미 교전을 치렀고, 1명만 생존했다는 주장이 나왔는데, 생존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영상이 친우크라이나 텔레그램 채널 'ExileNova'를 통해 공개됐습니다.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동양계 남성은 피투성이로 머리에 붕대를 감고 병상에 누워 힘겹게 말을 이어갔는데, 북한 억양을 쓰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이 영상 속 남성은 "전우들의 시체 밑에 숨어 살아남았다", "러시아는 무기를 주지 않았다", "푸틴은 이 전쟁에서 패할 것이다" 등등 우크라이나에 유리한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그러나 이 영상의 진위는 확인되지 않았고, 정황상 '가짜'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습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KBS와의 인터뷰에서 '북한군이 우크라이나군과 교전을 벌여 사망자가 나왔다'는 이른바 '교전설'을 부인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젤렌스키 대통령은 "현재까지 북한 병력은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고 러시아 쿠르스크에서 전투에 참여할 준비를 하고 있다"며 "며칠 내로 교전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우크라이나 당국은 닷새가 지난 지난4일에야 '북한군과의 첫 교전'을 공식 인정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X(옛 트위터) 등을 통해 북한군이 러시아군 동료에게 준 전투 식량이라며 소개하는 영상이 퍼졌는데, 통조림 겉면에는 '누렁이 개고기'라는 문구가 선명합니다. 러시아군이 뭔지도 모르고 서양에서는 금기시되는 개고기를 북한군에게 받아 먹었다고 희화화한 겁니다.
이 영상 역시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우선 북한에선 '개고기' 대신에 '단고기'라는 표현을 쓴다"며 "북한에 개고기로 된 통조림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건 전투식량 용도가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개고기 통조림은 운동선수나 상류층을 위한 보양식으로, 고급 음식이자 선물용"이라고 덧붙였습니다.
SNS를 통해 빠르게 퍼졌던 '북한군의 군인 신분증' 사진도 조작됐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탈북민들은 "사진 속 신분증과 같은 걸 본 적이 없다"면서, "군인에겐 '군인 신분증'이 아닌 '군인증'이 지급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또, 해당 군인 신분증에 사용된 글꼴이 북한에서는 쓰이지 않는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심지어, 우크라이나 전장에 도착한 북한군이 소고기와 라면을 먹는다며, 이른바 '먹방' 영상도 등장했는데, 이 군인은 중국어를 쓰고 있습니다. 영상 속 남성이 우크라이나나 주변 전선에 있다는 주장은 사실일 수 있지만,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은 아닌 거로 보입니다. 우크라이나 일간 '키이우포스트'는 "러시아군에 소속된 중국 출신 용병 일부는 자신의 경험을 담은 영상을 업로드하는 경우가 잦다"고 전했습니다.
이처럼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 관련 정보는 상당수 허위인 거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베일에 싸인 북한이라는 나라에서 해외로 파병된 군인의 존재는 관심의 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무분별하게 미확인 정보가 퍼지는 건 그저 관심 탓이라고 보기엔 뭔가 석연치 않아 보입니다.
일각에선 우크라이나 군의 심리전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합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국제사회의 관심과 지원을 얻기 위해 북한군 파병 소식을 전파하는 데 주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한범 석좌연구위원은 "지금 나오는 북한군 정보들은 상당히 치밀한 계획의 일환으로 보인다"며 "우크라이나 군의 심리전 일환이거나, 우크라이나 심리전 부대와 연관이 돼 있는 걸로 추정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렇다 보니 '진짜 뉴스'일 가능성이 상당해 보이는 정보들도 신뢰하기가 어려워지는 게 현실입니다. 러시아군 장갑차가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군인들을 전장에 내버려둔 채 철수하는 영상이 SNS에 퍼졌는데, 이는 우크라이나 군이 직접 올린 겁니다. 별다른 설명은 없었지만, 러시아군과 북한군 간 의사소통 문제가 심각하다는 추측이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신중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군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어 보이지만, 심증적인 것일 뿐 명백한 증거가 있다고 하기 어렵다"며 "러시아군에는 이미 용병 부대가 존재한다. 용병은 이런 식으로 주된 역할이 일회성 소모"라고 말했습니다. 영상 속 우왕좌왕하는 군인들이 북한군이 아닌 다른 국가 용병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해당 영상을 분석했던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영상 속 좌표가 북한군이 투입된 거로 알려진 러시아 제11공수여단이 작전하고 있는 지역이고, 우크라이나 군사정보국장이 언급한 북한군 주둔지가 이번에 식별됐던 그 좌표의 후방이었다"며 "이 두 가지 사실에 근거해 봤을 때 북한군이 들어갔을 개연성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일우 사무국장도 "이 영상에 등장하는 군인들이 북한군인지 여부에 대해선 해당 영상을 올린 우크라이나 부대 측에 사실 확인 요청을 했다"며 "영상 자체는 조작된 건 아니지만, 해석의 영역이 존재한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 관련 '가짜 뉴스'가 판치면서, 이것이 우크라이나 측의 의도이든 아니든, 정작 '진짜 뉴스'마저도 신뢰를 받지 못하는 상황마저 우려됩니다. 러시아군 활동을 감시해 온 국제시민단체 '인폼네이팜'도 이런 우려를 담아 북한군 관련 허위 정보가 난무하는 상황이 우크라이나에 해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 단체는 "과장된 선전은 도움이 되지 않는 걸 넘어 방해가 된다"면서 "허위 정보를 만드는 이들은 이런 짓이 어떤 피해를 끼칠지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후 진짜 사실이 제시됐을 때 진실을 흐릴 목적으로 계획적으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일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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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희 기자 ginge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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