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스테이지 파이터’ 최고령 발레리노 이원국, 도전의 끝은? [주말엔]
입력 2024.11.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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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춤추는 남자들, 이렇게 멋질수가!?
'발레리노'.
발레리나를 번쩍 들어주거나, 보기에 살짝 민망한 쫙 달라붙는 타이즈를 입은 남자들인줄로만 알고 계시는 분들, 많으실 겁니다.
발레리노들의 민망한 모습은 개그콘서트의 소재로 쓰이기도 했었죠.
하지만 최근에 김기민, 전민철처럼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무대에 서는 발레리노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들의 인기는 유명 아이돌 못지 않습니다.
이들이 현재 누리는 인기의 배경에는 '남자가 무슨 춤이냐?'는 소리를 들어가며, 불모지 같은 한국 발레 환경에서 뿌리를 내린 선배 발레리노들의 눈물과 땀방울이 있었습니다.
국내 스타 발레리노 1세대이자, 국내 최초로 발레의 본고장 러시아 키로프(현 마린스키) 발레단의 공연에서 주역을 맡아 춤을 췄던 발레리노 이원국.
20여 년간 국내 최정상을 지키고, 은퇴 나이를 훌쩍 넘긴 57세임에도 국내 최고령 발레리노로 여전히 무대에 서고 있는 그를 만나 발레와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나를 잡아준 발레
학교와 집을 떠나 마음을 잡지 못하고 수 년간 방황했던 이원국은 어머니의 권유로 발레를 시작했습니다.
"3개월만 해보자"며 시작한 발레는 어느덧 그의 인생이자 철학이 되었습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만큼 하루하루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고, 마치 사랑에 빠진 것 같았다"는 그는 밥 먹고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악착같이 연습했던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그리고 발레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그는 1987년 제5회 KBS 부산 무용 콩쿠르에서 대상을 타면서 국내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 클래식 발레 본고장에 서다
국내에서 최고라는 칭찬을 들으며 무용과에 다니던 시절, 우연히 연습하러 들른 국립발레단에서 그는 러시아 안무가의 눈에 들어 학생 신분으로 프로의 무대에 서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1995년, 발레의 본고장 러시아에서 동양인 최초로 주역 무용수로 공연할 기회를 잡게 되었습니다.
'걷기 시작하면 발레한다'는 러시아 관객들에게 박수갈채를 받으며 성공적인 무대를 장식했던 그는 20여 년간 국내 최정상급 발레리노로 활약을 해왔습니다.
공연마다 매진을 기록하는 스타 발레리노 1세대이자, 팬클럽까지 있던 '발레계의 황태자' 이원국.
세월이 흘러 그에게도 어느덧 은퇴를 고민할 시기가 다가왔습니다.
■ "내 발레단을 만들자"
아름답지만 극한으로 몸을 사용하는 발레, 발레리노에게 마흔살이 된다는 건 직업을 잃는다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그는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은퇴하지 않고 본인의 발레단을 만들었습니다.
큰 후원자가 없었던 그는 무대에 내려와 대학로 거리로 나섰습니다.
월요일에는 공연이 없는 대학로 소극장을 빌려 시작한 발레 공연.
그는 8년 동안, 매주 월요일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공연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문턱이 높은 발레의 대중화를 이끈 그는 무대를 가리지 않고 찾아다니며 친절한 발레 공연을 해왔습니다.
■ 그리고 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공연계가 힘겨웠던 시기도 버텨냈던 그에게, 2022년 어느 날 식도암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2년간의 투병 생활.
병상에 누워서도 발레만을 생각했고, 설 수 있게 된 후부터는 다시 발레 연습을 하며 무대에 설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몸을 만들었습니다.
■최고령 발레리노의 꿈
올해 57세인 그는 여전히 바(bar)를 잡고, 안무를 하며, 학생을 지도하고, 공연을 합니다.
여전히 발레에 대한 배움에 목이 마르다는 그는 "러시아 바가노바 메소드와 같은 본인만의 메소드를 만드는 게 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환갑잔치 대신 동료들과 발레 팬들에게 선보일 공연을 할 예정이라는 그를 계속 무대에서 볼 수 있길 희망해봅니다.
'발레리노'.
발레리나를 번쩍 들어주거나, 보기에 살짝 민망한 쫙 달라붙는 타이즈를 입은 남자들인줄로만 알고 계시는 분들, 많으실 겁니다.
발레리노들의 민망한 모습은 개그콘서트의 소재로 쓰이기도 했었죠.
하지만 최근에 김기민, 전민철처럼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무대에 서는 발레리노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들의 인기는 유명 아이돌 못지 않습니다.
이들이 현재 누리는 인기의 배경에는 '남자가 무슨 춤이냐?'는 소리를 들어가며, 불모지 같은 한국 발레 환경에서 뿌리를 내린 선배 발레리노들의 눈물과 땀방울이 있었습니다.
국내 스타 발레리노 1세대이자, 국내 최초로 발레의 본고장 러시아 키로프(현 마린스키) 발레단의 공연에서 주역을 맡아 춤을 췄던 발레리노 이원국.
20여 년간 국내 최정상을 지키고, 은퇴 나이를 훌쩍 넘긴 57세임에도 국내 최고령 발레리노로 여전히 무대에 서고 있는 그를 만나 발레와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나를 잡아준 발레
학교와 집을 떠나 마음을 잡지 못하고 수 년간 방황했던 이원국은 어머니의 권유로 발레를 시작했습니다.
"3개월만 해보자"며 시작한 발레는 어느덧 그의 인생이자 철학이 되었습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만큼 하루하루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고, 마치 사랑에 빠진 것 같았다"는 그는 밥 먹고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악착같이 연습했던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그리고 발레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그는 1987년 제5회 KBS 부산 무용 콩쿠르에서 대상을 타면서 국내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 클래식 발레 본고장에 서다
국내에서 최고라는 칭찬을 들으며 무용과에 다니던 시절, 우연히 연습하러 들른 국립발레단에서 그는 러시아 안무가의 눈에 들어 학생 신분으로 프로의 무대에 서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1995년, 발레의 본고장 러시아에서 동양인 최초로 주역 무용수로 공연할 기회를 잡게 되었습니다.
'걷기 시작하면 발레한다'는 러시아 관객들에게 박수갈채를 받으며 성공적인 무대를 장식했던 그는 20여 년간 국내 최정상급 발레리노로 활약을 해왔습니다.
공연마다 매진을 기록하는 스타 발레리노 1세대이자, 팬클럽까지 있던 '발레계의 황태자' 이원국.
세월이 흘러 그에게도 어느덧 은퇴를 고민할 시기가 다가왔습니다.
■ "내 발레단을 만들자"
아름답지만 극한으로 몸을 사용하는 발레, 발레리노에게 마흔살이 된다는 건 직업을 잃는다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그는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은퇴하지 않고 본인의 발레단을 만들었습니다.
큰 후원자가 없었던 그는 무대에 내려와 대학로 거리로 나섰습니다.
월요일에는 공연이 없는 대학로 소극장을 빌려 시작한 발레 공연.
그는 8년 동안, 매주 월요일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공연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문턱이 높은 발레의 대중화를 이끈 그는 무대를 가리지 않고 찾아다니며 친절한 발레 공연을 해왔습니다.
■ 그리고 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공연계가 힘겨웠던 시기도 버텨냈던 그에게, 2022년 어느 날 식도암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2년간의 투병 생활.
병상에 누워서도 발레만을 생각했고, 설 수 있게 된 후부터는 다시 발레 연습을 하며 무대에 설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몸을 만들었습니다.
■최고령 발레리노의 꿈
올해 57세인 그는 여전히 바(bar)를 잡고, 안무를 하며, 학생을 지도하고, 공연을 합니다.
여전히 발레에 대한 배움에 목이 마르다는 그는 "러시아 바가노바 메소드와 같은 본인만의 메소드를 만드는 게 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환갑잔치 대신 동료들과 발레 팬들에게 선보일 공연을 할 예정이라는 그를 계속 무대에서 볼 수 있길 희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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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4-11-10 09:00:45
■ 춤추는 남자들, 이렇게 멋질수가!?
'발레리노'.
발레리나를 번쩍 들어주거나, 보기에 살짝 민망한 쫙 달라붙는 타이즈를 입은 남자들인줄로만 알고 계시는 분들, 많으실 겁니다.
발레리노들의 민망한 모습은 개그콘서트의 소재로 쓰이기도 했었죠.
하지만 최근에 김기민, 전민철처럼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무대에 서는 발레리노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들의 인기는 유명 아이돌 못지 않습니다.
이들이 현재 누리는 인기의 배경에는 '남자가 무슨 춤이냐?'는 소리를 들어가며, 불모지 같은 한국 발레 환경에서 뿌리를 내린 선배 발레리노들의 눈물과 땀방울이 있었습니다.
국내 스타 발레리노 1세대이자, 국내 최초로 발레의 본고장 러시아 키로프(현 마린스키) 발레단의 공연에서 주역을 맡아 춤을 췄던 발레리노 이원국.
20여 년간 국내 최정상을 지키고, 은퇴 나이를 훌쩍 넘긴 57세임에도 국내 최고령 발레리노로 여전히 무대에 서고 있는 그를 만나 발레와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나를 잡아준 발레
학교와 집을 떠나 마음을 잡지 못하고 수 년간 방황했던 이원국은 어머니의 권유로 발레를 시작했습니다.
"3개월만 해보자"며 시작한 발레는 어느덧 그의 인생이자 철학이 되었습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만큼 하루하루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고, 마치 사랑에 빠진 것 같았다"는 그는 밥 먹고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악착같이 연습했던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그리고 발레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그는 1987년 제5회 KBS 부산 무용 콩쿠르에서 대상을 타면서 국내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 클래식 발레 본고장에 서다
국내에서 최고라는 칭찬을 들으며 무용과에 다니던 시절, 우연히 연습하러 들른 국립발레단에서 그는 러시아 안무가의 눈에 들어 학생 신분으로 프로의 무대에 서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1995년, 발레의 본고장 러시아에서 동양인 최초로 주역 무용수로 공연할 기회를 잡게 되었습니다.
'걷기 시작하면 발레한다'는 러시아 관객들에게 박수갈채를 받으며 성공적인 무대를 장식했던 그는 20여 년간 국내 최정상급 발레리노로 활약을 해왔습니다.
공연마다 매진을 기록하는 스타 발레리노 1세대이자, 팬클럽까지 있던 '발레계의 황태자' 이원국.
세월이 흘러 그에게도 어느덧 은퇴를 고민할 시기가 다가왔습니다.
■ "내 발레단을 만들자"
아름답지만 극한으로 몸을 사용하는 발레, 발레리노에게 마흔살이 된다는 건 직업을 잃는다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그는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은퇴하지 않고 본인의 발레단을 만들었습니다.
큰 후원자가 없었던 그는 무대에 내려와 대학로 거리로 나섰습니다.
월요일에는 공연이 없는 대학로 소극장을 빌려 시작한 발레 공연.
그는 8년 동안, 매주 월요일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공연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문턱이 높은 발레의 대중화를 이끈 그는 무대를 가리지 않고 찾아다니며 친절한 발레 공연을 해왔습니다.
■ 그리고 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공연계가 힘겨웠던 시기도 버텨냈던 그에게, 2022년 어느 날 식도암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2년간의 투병 생활.
병상에 누워서도 발레만을 생각했고, 설 수 있게 된 후부터는 다시 발레 연습을 하며 무대에 설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몸을 만들었습니다.
■최고령 발레리노의 꿈
올해 57세인 그는 여전히 바(bar)를 잡고, 안무를 하며, 학생을 지도하고, 공연을 합니다.
여전히 발레에 대한 배움에 목이 마르다는 그는 "러시아 바가노바 메소드와 같은 본인만의 메소드를 만드는 게 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환갑잔치 대신 동료들과 발레 팬들에게 선보일 공연을 할 예정이라는 그를 계속 무대에서 볼 수 있길 희망해봅니다.
'발레리노'.
발레리나를 번쩍 들어주거나, 보기에 살짝 민망한 쫙 달라붙는 타이즈를 입은 남자들인줄로만 알고 계시는 분들, 많으실 겁니다.
발레리노들의 민망한 모습은 개그콘서트의 소재로 쓰이기도 했었죠.
하지만 최근에 김기민, 전민철처럼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무대에 서는 발레리노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들의 인기는 유명 아이돌 못지 않습니다.
이들이 현재 누리는 인기의 배경에는 '남자가 무슨 춤이냐?'는 소리를 들어가며, 불모지 같은 한국 발레 환경에서 뿌리를 내린 선배 발레리노들의 눈물과 땀방울이 있었습니다.
국내 스타 발레리노 1세대이자, 국내 최초로 발레의 본고장 러시아 키로프(현 마린스키) 발레단의 공연에서 주역을 맡아 춤을 췄던 발레리노 이원국.
20여 년간 국내 최정상을 지키고, 은퇴 나이를 훌쩍 넘긴 57세임에도 국내 최고령 발레리노로 여전히 무대에 서고 있는 그를 만나 발레와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나를 잡아준 발레
학교와 집을 떠나 마음을 잡지 못하고 수 년간 방황했던 이원국은 어머니의 권유로 발레를 시작했습니다.
"3개월만 해보자"며 시작한 발레는 어느덧 그의 인생이자 철학이 되었습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만큼 하루하루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고, 마치 사랑에 빠진 것 같았다"는 그는 밥 먹고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악착같이 연습했던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그리고 발레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그는 1987년 제5회 KBS 부산 무용 콩쿠르에서 대상을 타면서 국내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 클래식 발레 본고장에 서다
국내에서 최고라는 칭찬을 들으며 무용과에 다니던 시절, 우연히 연습하러 들른 국립발레단에서 그는 러시아 안무가의 눈에 들어 학생 신분으로 프로의 무대에 서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1995년, 발레의 본고장 러시아에서 동양인 최초로 주역 무용수로 공연할 기회를 잡게 되었습니다.
'걷기 시작하면 발레한다'는 러시아 관객들에게 박수갈채를 받으며 성공적인 무대를 장식했던 그는 20여 년간 국내 최정상급 발레리노로 활약을 해왔습니다.
공연마다 매진을 기록하는 스타 발레리노 1세대이자, 팬클럽까지 있던 '발레계의 황태자' 이원국.
세월이 흘러 그에게도 어느덧 은퇴를 고민할 시기가 다가왔습니다.
■ "내 발레단을 만들자"
아름답지만 극한으로 몸을 사용하는 발레, 발레리노에게 마흔살이 된다는 건 직업을 잃는다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그는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은퇴하지 않고 본인의 발레단을 만들었습니다.
큰 후원자가 없었던 그는 무대에 내려와 대학로 거리로 나섰습니다.
월요일에는 공연이 없는 대학로 소극장을 빌려 시작한 발레 공연.
그는 8년 동안, 매주 월요일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공연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문턱이 높은 발레의 대중화를 이끈 그는 무대를 가리지 않고 찾아다니며 친절한 발레 공연을 해왔습니다.
■ 그리고 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공연계가 힘겨웠던 시기도 버텨냈던 그에게, 2022년 어느 날 식도암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2년간의 투병 생활.
병상에 누워서도 발레만을 생각했고, 설 수 있게 된 후부터는 다시 발레 연습을 하며 무대에 설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몸을 만들었습니다.
■최고령 발레리노의 꿈
올해 57세인 그는 여전히 바(bar)를 잡고, 안무를 하며, 학생을 지도하고, 공연을 합니다.
여전히 발레에 대한 배움에 목이 마르다는 그는 "러시아 바가노바 메소드와 같은 본인만의 메소드를 만드는 게 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환갑잔치 대신 동료들과 발레 팬들에게 선보일 공연을 할 예정이라는 그를 계속 무대에서 볼 수 있길 희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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