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9일, 충북 진천군에서 상가로 돌진한 차량.
■ 20대 남녀 탄 렌터카 상가 돌진..."남성이 운전"
지난 4월 29일 새벽 5시 45분쯤, 충북 진천군 덕산읍의 한 도로에서 렌터카 차량이 상가로 돌진하는 사고가 났습니다.
당시 차에 타고 있던 건 술에 취한 20대 남녀. 두 사람 모두 출동한 경찰에게 "남성이 운전했다"고 진술했습니다. 경찰관이 동승자인 여성에게 진술을 들으려 하자 남성은 갑자기 화를 내며 난동을 부리기까지 했습니다.
이후에도 이들은 "남성이 운전했다"는 진술을 일관되게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사고 사흘 뒤, 남성의 '취중 진담'으로 반전이 시작됐습니다.
지난 4월 29일, 충북 진천군에서 20대 남녀가 렌터카에 타는 모습.
■ 실제 운전자는 여성..."보험사 속이려 운전자 바꿔치기"
이 남성은 5월 2일 새벽, 사고를 조사하던 충북 진천경찰서에 갑자기 전화를 걸어 "사실 제가 운전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경찰은 술에 취한 남성의 이 말을 흘려듣지 않고 사고를 원점부터 다시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동선이 찍힌 CCTV 화면과 운전석에 남아 있던 여성의 신발 등 추가 증거를 확보해 '진범'을 확인했습니다. 사고 당시 운전대를 잡은 사람은 여성이었던 겁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남성이 본인 명의로 빌린 렌터카의 보험 처리 등을 위해 '운전자 바꿔치기'를 시도한 것으로 보고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위반과 범인도피, 음주 운전,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적용해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실제 렌터카를 빌린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운전했다가 사고가 났을 경우 피해 보상 등 보험 처리가 되지 않는 점을 우려해 거짓 진술을 했다고 본 겁니다.
사고 당시 실제 차를 몰았던 여성은 음주 운전과 범인도피 방조 혐의로 불구속기소 됐습니다.
재판에 넘겨진 이들은 렌터카 회사나 보험사를 속이기 위해 허위 진술을 한 것이 아니라면서 고의성을 부인했습니다.
■ 나란히 실형 선고...여성은 법정 구속 면해
청주지방법원 형사2단독 안재훈 부장판사는 어제(12일) 남성에게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위반 등 모든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안 부장판사는 법정에서 "피고인이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누범기간에 출동한 경찰관에게 난동을 부리거나 운전자 바꿔치기로 혼동을 주고, 보험금까지 청구하는 등 도무지 법질서를 준수하려는 의지를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 온 여성에 대해서도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허위 진술로 남성의 범행을 도왔다"면서 범인도피 방조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다만 여성을 법정 구속하지는 않았습니다. 피고인에 대한 '처벌'보다 피해자 '구제'에 더 무게를 뒀기 때문입니다.
안 부장판사는 "법정 구속을 할지 많이 고민했지만, 그럴 경우 피해자들이 보상받기 더 어려워질 것 같아 변제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4월 29일, 충북 진천군에서 상가로 돌진한 차량.
■ 여성 '음주 운전' 혐의 무죄...재발 방지 대책 시급
이번 사건에서 '운전자 바꿔치기'를 시도한 20대 남녀가 나란히 실형을 선고받은 것 말고도, 주목할 점은 또 있습니다.
재판부는 이들의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했지만, 실제 운전하다 사고를 낸 여성의 '음주 운전'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사고 당시 경찰은 남성에 대해서만 음주 측정을 했습니다. 이들이 일관되게 "남성이 운전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뒤늦게 실제 운전자가 여성으로 밝혀지면서, 혼선이 생겼습니다.
검찰은 이들이 술을 마신 업소의 CCTV 화면 등을 분석해 여성이 소주 11잔, 과일소주 1잔을 마신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위드마크 공식을 적용해, 당시 여성의 혈중알코올농도를 0.121%로 추정했습니다.
재판부도 검찰이 제시한 증거 등을 근거로 여성이 술을 마신 것 자체는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여성이 음주를 마친 시점부터, 사고가 날 때까지 약 1시간 36분의 시간 차가 있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체내에서 알코올이 분해되는데, 이런 점이 충분히 확인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결국 사고 당시 여성의 혈중알코올농도가 음주 운전 처벌 기준을 넘었는지는 명확하게 증명되지 않았다면서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보험사기까지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운전자 바꿔치기'로 음주 측정을 피해 간 덕에 더 큰 처벌은 피한 셈입니다.
이런 모방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처벌 규정 신설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운전자 바꿔치기’ 남녀 실형 받았지만…음주운전은 ‘무죄’
-
- 입력 2024-11-13 08:01:11
■ 20대 남녀 탄 렌터카 상가 돌진..."남성이 운전"
지난 4월 29일 새벽 5시 45분쯤, 충북 진천군 덕산읍의 한 도로에서 렌터카 차량이 상가로 돌진하는 사고가 났습니다.
당시 차에 타고 있던 건 술에 취한 20대 남녀. 두 사람 모두 출동한 경찰에게 "남성이 운전했다"고 진술했습니다. 경찰관이 동승자인 여성에게 진술을 들으려 하자 남성은 갑자기 화를 내며 난동을 부리기까지 했습니다.
이후에도 이들은 "남성이 운전했다"는 진술을 일관되게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사고 사흘 뒤, 남성의 '취중 진담'으로 반전이 시작됐습니다.
■ 실제 운전자는 여성..."보험사 속이려 운전자 바꿔치기"
이 남성은 5월 2일 새벽, 사고를 조사하던 충북 진천경찰서에 갑자기 전화를 걸어 "사실 제가 운전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경찰은 술에 취한 남성의 이 말을 흘려듣지 않고 사고를 원점부터 다시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동선이 찍힌 CCTV 화면과 운전석에 남아 있던 여성의 신발 등 추가 증거를 확보해 '진범'을 확인했습니다. 사고 당시 운전대를 잡은 사람은 여성이었던 겁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남성이 본인 명의로 빌린 렌터카의 보험 처리 등을 위해 '운전자 바꿔치기'를 시도한 것으로 보고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위반과 범인도피, 음주 운전,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적용해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실제 렌터카를 빌린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운전했다가 사고가 났을 경우 피해 보상 등 보험 처리가 되지 않는 점을 우려해 거짓 진술을 했다고 본 겁니다.
사고 당시 실제 차를 몰았던 여성은 음주 운전과 범인도피 방조 혐의로 불구속기소 됐습니다.
재판에 넘겨진 이들은 렌터카 회사나 보험사를 속이기 위해 허위 진술을 한 것이 아니라면서 고의성을 부인했습니다.
■ 나란히 실형 선고...여성은 법정 구속 면해
청주지방법원 형사2단독 안재훈 부장판사는 어제(12일) 남성에게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위반 등 모든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안 부장판사는 법정에서 "피고인이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누범기간에 출동한 경찰관에게 난동을 부리거나 운전자 바꿔치기로 혼동을 주고, 보험금까지 청구하는 등 도무지 법질서를 준수하려는 의지를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 온 여성에 대해서도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허위 진술로 남성의 범행을 도왔다"면서 범인도피 방조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다만 여성을 법정 구속하지는 않았습니다. 피고인에 대한 '처벌'보다 피해자 '구제'에 더 무게를 뒀기 때문입니다.
안 부장판사는 "법정 구속을 할지 많이 고민했지만, 그럴 경우 피해자들이 보상받기 더 어려워질 것 같아 변제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 여성 '음주 운전' 혐의 무죄...재발 방지 대책 시급
이번 사건에서 '운전자 바꿔치기'를 시도한 20대 남녀가 나란히 실형을 선고받은 것 말고도, 주목할 점은 또 있습니다.
재판부는 이들의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했지만, 실제 운전하다 사고를 낸 여성의 '음주 운전'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사고 당시 경찰은 남성에 대해서만 음주 측정을 했습니다. 이들이 일관되게 "남성이 운전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뒤늦게 실제 운전자가 여성으로 밝혀지면서, 혼선이 생겼습니다.
검찰은 이들이 술을 마신 업소의 CCTV 화면 등을 분석해 여성이 소주 11잔, 과일소주 1잔을 마신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위드마크 공식을 적용해, 당시 여성의 혈중알코올농도를 0.121%로 추정했습니다.
재판부도 검찰이 제시한 증거 등을 근거로 여성이 술을 마신 것 자체는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여성이 음주를 마친 시점부터, 사고가 날 때까지 약 1시간 36분의 시간 차가 있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체내에서 알코올이 분해되는데, 이런 점이 충분히 확인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결국 사고 당시 여성의 혈중알코올농도가 음주 운전 처벌 기준을 넘었는지는 명확하게 증명되지 않았다면서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보험사기까지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운전자 바꿔치기'로 음주 측정을 피해 간 덕에 더 큰 처벌은 피한 셈입니다.
이런 모방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처벌 규정 신설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입니다.
-
-
송근섭 기자 sks85@kbs.co.kr
송근섭 기자의 기사 모음
-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