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 차량에 불 나 170여 대 피해…보험사 “배상 불가” 이유는?

입력 2024.11.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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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30일, 충북 청주시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주차돼 있던 승용차 화재 장면 (화면 제공: 충청북도소방본부)지난 8월 30일, 충북 청주시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주차돼 있던 승용차 화재 장면 (화면 제공: 충청북도소방본부)

지난 8월 1일, 인천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주차된 전기차에서 불이 나, 차량 140여 대가 불이 타고 주민 수백 명이 대피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지하 주차장 화재', '전기차 화재'에 대한 경각심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소방 당국 집계 결과, 2013년부터 2022년까지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화재는 1,399건. 이 가운데 자동차에서 불이 난 게 611건으로 44%를 차지했습니다.

지하 주차장은 천장이 낮아 소방차가 진입하기 어렵고, 차량이 모여 있어 불이 금세 번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난 8월 30일, 충북 청주시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 현장 (화면 제공:  충청북도소방본부)지난 8월 30일, 충북 청주시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 현장 (화면 제공: 충청북도소방본부)

■ 새벽에 지하 주차장에서 난 불… 170여 대 피해

인천 주차장 화재 후 한 달도 안 된 지난 8월 30일 새벽. 충북 청주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도 불이 났습니다.

불이 시작된 차는 전기차가 아닌 내연차로, 주차 중에 갑자기 불이 붙은 거였습니다.

진화 작업에 걸린 시간은 20여 분. 그 사이 불이 다른 차량으로 빠르게 옮겨붙으면서 170여 대(아파트 자체 집계)가 불에 타거나 그을리는 등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화재 원인을 조사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자동차 엔진룸에 있는 브레이크 관련 부품인 'ABS 모듈'에서 불이 시작됐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ABS 모듈 기판 여러 곳에서 전기적 발열에 의한 용융흔, 즉 '녹은 흔적'이 발견됐다는 겁니다.

소방 당국은 국과수 감정 결과와 현장 감식 등을 토대로 기판이 녹는 과정에서 생긴 전기적 발열로 화재가 발생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 보험사, "차주 과실 아냐… 배상 못 해"

아파트를 발칵 뒤집어 놓은 주차장 화재가 발생한 지 이제 3개월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피해 주민들은 지금까지 아무런 배상도 받지 못했습니다.

불이 난 차량 측 보험사가 "차주 과실로 불이 난 게 아니기 때문에 배상할 수 없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보험사 측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1. 화재 차량은 30분 정도 운행 후 주차한 지 2시간이 지나 불이 났기 때문에 엔진 과열로 인한 화재라고 보기 어렵다.
2. ABS 모듈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보아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해 불이 났을 개연성이 있다.

그런데 정작 화재 차량 주인은 차주 과실이 있었다는 입장입니다. "차량이 리콜 대상이었는데도 리콜을 받지 않았다"며 "그럼에도 보험사 측이 과실이 없다며 배상을 못 하겠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난 8월, 충북 청주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로 그을린 피해 승용차 (화면제공:  피해 주민)지난 8월, 충북 청주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로 그을린 피해 승용차 (화면제공: 피해 주민)

■ 피해 주민들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남아… 어디서 보상받나?"

화재 차량 보험사 측 주장대로 차량 결함 때문에 불이 났다고 하더라도, 피해 주민들이 제조사로부터 배상을 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 보입니다.

새카맣게 타버린 차량에서 차량 결함을 입증하는 건 전문가들로서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거기다 불이 난 승용차는 제조한 지 15년이 넘은 차량이어서 제조물 책임법상 소멸시효도 완성됐습니다.

결국 민법을 근거로 차량 제조사에 손해배상 소송을 내는 방법뿐인데, 이 경우 제조사의 책임을 입증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한 변호사는 "제조물책임법은 소비자가 하자가 발생한 과정만 입증해 주면 된다"면서 "하지만 민법상 불법행위책임은 소비자가 기계 어느 부분에서 문제가 생겨 불이 났는지까지 입증해야 해 더 까다롭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화재 피해 주민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파트 측에서 가입한 단체 화재 보험을 알아봤지만,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16층 이상 아파트나 부속 건물이 아니라, 입주민 소유 차량에서 불이 났기 때문에 보험 특약상 보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겁니다.

자연 재해나 예상치 못한 사고로 피해를 봤을 때 일정 금액을 지원받는 청주시의 '시민 안전 보험' 도 해당 사항이 없었습니다. 화재로 사람이 다치거나 사망했을 경우만 보험금을 지급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피해 주민들은 자차 보험으로 처리하거나 직접 수리비를 내고 차를 수리해야 했습니다.

이제 남은 방법은 화재 차량 보험사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뿐입니다.

주차장에 곱게 주차해 놓은 차가 새벽에 홀라당 타버렸는데, 피해자들은 배상은커녕 소송 부담을 떠안을 처지에 몰린 겁니다. 한 피해 주민은 "늘 그랬듯 정해진 자리에 주차했을 뿐인데 갑자기 불이 나서 피해를 떠안게 됐다"면서 "그걸 다 피해자들에게 스스로 복구하라고 하니,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는 상황"이라면서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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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차 차량에 불 나 170여 대 피해…보험사 “배상 불가” 이유는?
    • 입력 2024-11-25 18: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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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30일, 충북 청주시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주차돼 있던 승용차 화재 장면 (화면 제공: 충청북도소방본부)
지난 8월 1일, 인천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주차된 전기차에서 불이 나, 차량 140여 대가 불이 타고 주민 수백 명이 대피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지하 주차장 화재', '전기차 화재'에 대한 경각심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소방 당국 집계 결과, 2013년부터 2022년까지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화재는 1,399건. 이 가운데 자동차에서 불이 난 게 611건으로 44%를 차지했습니다.

지하 주차장은 천장이 낮아 소방차가 진입하기 어렵고, 차량이 모여 있어 불이 금세 번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난 8월 30일, 충북 청주시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 현장 (화면 제공:  충청북도소방본부)
■ 새벽에 지하 주차장에서 난 불… 170여 대 피해

인천 주차장 화재 후 한 달도 안 된 지난 8월 30일 새벽. 충북 청주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도 불이 났습니다.

불이 시작된 차는 전기차가 아닌 내연차로, 주차 중에 갑자기 불이 붙은 거였습니다.

진화 작업에 걸린 시간은 20여 분. 그 사이 불이 다른 차량으로 빠르게 옮겨붙으면서 170여 대(아파트 자체 집계)가 불에 타거나 그을리는 등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화재 원인을 조사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자동차 엔진룸에 있는 브레이크 관련 부품인 'ABS 모듈'에서 불이 시작됐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ABS 모듈 기판 여러 곳에서 전기적 발열에 의한 용융흔, 즉 '녹은 흔적'이 발견됐다는 겁니다.

소방 당국은 국과수 감정 결과와 현장 감식 등을 토대로 기판이 녹는 과정에서 생긴 전기적 발열로 화재가 발생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 보험사, "차주 과실 아냐… 배상 못 해"

아파트를 발칵 뒤집어 놓은 주차장 화재가 발생한 지 이제 3개월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피해 주민들은 지금까지 아무런 배상도 받지 못했습니다.

불이 난 차량 측 보험사가 "차주 과실로 불이 난 게 아니기 때문에 배상할 수 없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보험사 측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1. 화재 차량은 30분 정도 운행 후 주차한 지 2시간이 지나 불이 났기 때문에 엔진 과열로 인한 화재라고 보기 어렵다.
2. ABS 모듈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보아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해 불이 났을 개연성이 있다.

그런데 정작 화재 차량 주인은 차주 과실이 있었다는 입장입니다. "차량이 리콜 대상이었는데도 리콜을 받지 않았다"며 "그럼에도 보험사 측이 과실이 없다며 배상을 못 하겠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난 8월, 충북 청주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로 그을린 피해 승용차 (화면제공:  피해 주민)
■ 피해 주민들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남아… 어디서 보상받나?"

화재 차량 보험사 측 주장대로 차량 결함 때문에 불이 났다고 하더라도, 피해 주민들이 제조사로부터 배상을 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 보입니다.

새카맣게 타버린 차량에서 차량 결함을 입증하는 건 전문가들로서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거기다 불이 난 승용차는 제조한 지 15년이 넘은 차량이어서 제조물 책임법상 소멸시효도 완성됐습니다.

결국 민법을 근거로 차량 제조사에 손해배상 소송을 내는 방법뿐인데, 이 경우 제조사의 책임을 입증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한 변호사는 "제조물책임법은 소비자가 하자가 발생한 과정만 입증해 주면 된다"면서 "하지만 민법상 불법행위책임은 소비자가 기계 어느 부분에서 문제가 생겨 불이 났는지까지 입증해야 해 더 까다롭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화재 피해 주민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파트 측에서 가입한 단체 화재 보험을 알아봤지만,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16층 이상 아파트나 부속 건물이 아니라, 입주민 소유 차량에서 불이 났기 때문에 보험 특약상 보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겁니다.

자연 재해나 예상치 못한 사고로 피해를 봤을 때 일정 금액을 지원받는 청주시의 '시민 안전 보험' 도 해당 사항이 없었습니다. 화재로 사람이 다치거나 사망했을 경우만 보험금을 지급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피해 주민들은 자차 보험으로 처리하거나 직접 수리비를 내고 차를 수리해야 했습니다.

이제 남은 방법은 화재 차량 보험사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뿐입니다.

주차장에 곱게 주차해 놓은 차가 새벽에 홀라당 타버렸는데, 피해자들은 배상은커녕 소송 부담을 떠안을 처지에 몰린 겁니다. 한 피해 주민은 "늘 그랬듯 정해진 자리에 주차했을 뿐인데 갑자기 불이 나서 피해를 떠안게 됐다"면서 "그걸 다 피해자들에게 스스로 복구하라고 하니,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는 상황"이라면서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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