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구르카 용병, 그러나 현실은…

입력 2005.12.16 (11:56) 수정 2005.12.16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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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영국군 용병 구르카가 되기 위해서 젊음을 바치는 네팔 청년들의 애환, 지난주에 소개해드렸는데요.

오늘은 그 두 번째 편으로 약소국 국민으로 태어나서 돈 때문에 강대국의 전쟁터에 나서야 하는 구르카 용병들의 고달픈 삶을 살펴보겠습니다.

또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영국군에 의한 차별대우의 문제점도 짚어봅니다.

이승철 순회특파원입니다.

<리포트>

네팔 젊은이들의 꿈 구르카 용병.

그 용병의 고향인 구르카 시까지 10여 차례 검문을 통과해 4시간 넘게 차를 달렸습니다.

갈 수록 높아가는 고도. 마을이 있으리라곤 생각할 수 없는 산 중턱에서 홀연히 구르카시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1768년 네팔을 최초로 통일한 구르카 왕조가 시작된 곳으로 구르카란 말이 유래한 곳입니다.

1814년 통일 구르카 왕국과 전쟁을 벌인 영국군은 단검 구크릴 휘두르며 산을 바람처럼 달리는 구르카 병사들 앞에서 공포에 떨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직후, 구르카 병사들에게 혼쭐이 난 영국은 이들을 자기네 군대로 뽑기 시작합니다.

옛 구르카 왕조의 전사들은 전장에 나가기 전 이곳 왕궁에 와 제물을 바쳤습니다.

가족의 안녕과 조국의 무사함을 비는 마음으로 나선 싸움터에서 그들은 물러날 줄 몰랐습니다.

1.2차 세계 대전 동안 24만명이나 되는 구르카 병사들이 영국군으로 싸웠고 4만 3000명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인터뷰> 얌 대위(구르카 부대) : "전투에서 총알이 떨어져도 우리는 단검 구크리로 싸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크리가 중요합니다."

영국군 최고 영예인 빅토리아 훈장을 받은 구르카 용병만 13명에 이를 정도로 이들은 영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시르 부라사드 구릉씨는 지난 49년부터 23년 동안 구르카 용병으로 복무했습니다.

50년대 말 치열했던 말레이시아 공산반군 소탕 작전, 그리고 인도네시아와의 보르네오 전쟁 등 100회 이상의 실전에 참가했고 수 많은 전우들이 쓰러져 가는 것을 목겼했습니다.

당시 사용했던 정글용 칼은 아직도 날이 서 있는 것 같습니다.

<인터뷰> 시르 부라사드 구릉(퇴역 용병) : "전투가 끝나면 이 칼로 적의 목을 쳤습니다."

군 복무 기간 탄 훈장만 3개.

하지만 무서움을 모르는 용병도 전투가 끝난 뒤 돌아오면 살아왔다는 안도감과 함께 전장을 떠도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녹취> "용병의 인생은 풀었다 쌌다하는 가방 같은 것. 지금 이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군인을 충원하는데 혈안이었던 영국은 60년대 까지 어린 소년들을 입대시켜 전쟁 기계로 키워냈습니다.

릴 바하우드 씨가 용병이 된 것은 13살.

친구들을 따라 아무 생각없이 갔던 영국군 캠프에서 그의 인생이 결정됐습니다.

<인터뷰> 릴 바하우드(퇴역 용병) : "어떻게 되는 건지 몰랐습니다. 영국군으로 선발됐다는 것도 알지 못했죠."

16살부터 전선에 나섰고 48살까지 영국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찰스 왕세자에게 직접 훈장까지 받고 지금은 군 경력을 살려 홍콩에서 경호업체를 운영하고 있지만 자녀들에게 같은 길을 걷게 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인터뷰> "아들들이 나처럼 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던 영국.

세계 곳곳에서 벌인 전쟁의 최전선엔 늘 구르카 용병이 있었습니다.

갈수록 영국 젊은이들이 군을 기피하는 상황에서 우수한 자원들이 몰리는 용병의 전략적 가치는 그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힐 소령(구르카 용병 모병 담당) : "영국 젊은이들은 군에 별로 가고 싶어하지 않지만 네팔엔 수 많은 지원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남의 나라 국민인 용병에 대한 영국의 대우는 지금까지도 차별적이기 그지 없습니다.

최근까지도 영국군 병사에 비해 적은 월급을 받아왔고 15년 간 군 복무를 하는 동안 불과 3년 만 가족과 같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연금문제는 퇴직 용병들의 삶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지만 차별이 더욱 심합니다.

네팔의 관련 시민단체들은 영국군이 병장으로 제대하면 매달 700파운드.

우리 돈으로 130만원 정도를 받지만 구르카 용병은 5분의 1 정도인 150파운드를 받을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인터뷰> 디팍 마스키(구르카 전역회) : "동일한 수준의 연금과 대우를 계속 요구하고 있지만 영국 정부는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차별대우가 상존하지만 피폐한 경제 상황 속에서 탈출구가 없는 네팔 젊은이들에게 용병은 최고의 직업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인터뷰> 용병 지원자(17살) : "가족과 친척들을 모두 돌봐야 합니다."

복무 기간 동안 돈을 송금해 가족을 부양하고, 또 퇴직과 함께 상당한 목돈을 가져와 네팔 경제에도 기여 해왔습니다.

제 뒤로 보이는 곳이 자크라밧이라는 카트만두에서 손꼽히는 부촌입니다.

15~6년 전부터 퇴역 용병들이 많이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새롭게 거주지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약 3만 명의 퇴역 용병들이 네팔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들어 용병들의 전역후 선택에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영국 정부가 97년 이후 입대한 구르카 부대원들에게 시민권 신청 자격을 부여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생활여건이 나쁜 네팔로 돌아와 정착하기 보단 영국에 남아 보안 관련 업체등에 취업하려는 전역자들의 숫자가 크게 늘어난 것입니다.

<인터뷰> 선지 바하드 구릉(현역 구르카 용병) :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데 왜 돌아오냐는 겁니다. 자녀들의 장래도 생각해야 하고..."

<인터뷰> 칼렘 타파(퇴역 용병(기업인) : "옛날엔 구르카 용병들이 모두 돌아와 네팔에 투자를 했습니다만 미래엔 네팔 보단 영국에 투자를 할 겁니다."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갖은 불평등에도 불구하고 잘사는 나라의 군인이 되고자 했던 네팔의 구르카 용병들.

그들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의 댓가로 많은 네팔인들은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국주의 시대의 잔재랄 수 있는 네팔 용병들은 오랜 기간 약소국의 설움을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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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팔, 구르카 용병, 그러나 현실은…
    • 입력 2005-12-16 11:04:00
    • 수정2005-12-16 13:47:55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영국군 용병 구르카가 되기 위해서 젊음을 바치는 네팔 청년들의 애환, 지난주에 소개해드렸는데요. 오늘은 그 두 번째 편으로 약소국 국민으로 태어나서 돈 때문에 강대국의 전쟁터에 나서야 하는 구르카 용병들의 고달픈 삶을 살펴보겠습니다. 또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영국군에 의한 차별대우의 문제점도 짚어봅니다. 이승철 순회특파원입니다. <리포트> 네팔 젊은이들의 꿈 구르카 용병. 그 용병의 고향인 구르카 시까지 10여 차례 검문을 통과해 4시간 넘게 차를 달렸습니다. 갈 수록 높아가는 고도. 마을이 있으리라곤 생각할 수 없는 산 중턱에서 홀연히 구르카시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1768년 네팔을 최초로 통일한 구르카 왕조가 시작된 곳으로 구르카란 말이 유래한 곳입니다. 1814년 통일 구르카 왕국과 전쟁을 벌인 영국군은 단검 구크릴 휘두르며 산을 바람처럼 달리는 구르카 병사들 앞에서 공포에 떨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직후, 구르카 병사들에게 혼쭐이 난 영국은 이들을 자기네 군대로 뽑기 시작합니다. 옛 구르카 왕조의 전사들은 전장에 나가기 전 이곳 왕궁에 와 제물을 바쳤습니다. 가족의 안녕과 조국의 무사함을 비는 마음으로 나선 싸움터에서 그들은 물러날 줄 몰랐습니다. 1.2차 세계 대전 동안 24만명이나 되는 구르카 병사들이 영국군으로 싸웠고 4만 3000명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인터뷰> 얌 대위(구르카 부대) : "전투에서 총알이 떨어져도 우리는 단검 구크리로 싸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크리가 중요합니다." 영국군 최고 영예인 빅토리아 훈장을 받은 구르카 용병만 13명에 이를 정도로 이들은 영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시르 부라사드 구릉씨는 지난 49년부터 23년 동안 구르카 용병으로 복무했습니다. 50년대 말 치열했던 말레이시아 공산반군 소탕 작전, 그리고 인도네시아와의 보르네오 전쟁 등 100회 이상의 실전에 참가했고 수 많은 전우들이 쓰러져 가는 것을 목겼했습니다. 당시 사용했던 정글용 칼은 아직도 날이 서 있는 것 같습니다. <인터뷰> 시르 부라사드 구릉(퇴역 용병) : "전투가 끝나면 이 칼로 적의 목을 쳤습니다." 군 복무 기간 탄 훈장만 3개. 하지만 무서움을 모르는 용병도 전투가 끝난 뒤 돌아오면 살아왔다는 안도감과 함께 전장을 떠도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녹취> "용병의 인생은 풀었다 쌌다하는 가방 같은 것. 지금 이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군인을 충원하는데 혈안이었던 영국은 60년대 까지 어린 소년들을 입대시켜 전쟁 기계로 키워냈습니다. 릴 바하우드 씨가 용병이 된 것은 13살. 친구들을 따라 아무 생각없이 갔던 영국군 캠프에서 그의 인생이 결정됐습니다. <인터뷰> 릴 바하우드(퇴역 용병) : "어떻게 되는 건지 몰랐습니다. 영국군으로 선발됐다는 것도 알지 못했죠." 16살부터 전선에 나섰고 48살까지 영국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찰스 왕세자에게 직접 훈장까지 받고 지금은 군 경력을 살려 홍콩에서 경호업체를 운영하고 있지만 자녀들에게 같은 길을 걷게 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인터뷰> "아들들이 나처럼 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던 영국. 세계 곳곳에서 벌인 전쟁의 최전선엔 늘 구르카 용병이 있었습니다. 갈수록 영국 젊은이들이 군을 기피하는 상황에서 우수한 자원들이 몰리는 용병의 전략적 가치는 그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힐 소령(구르카 용병 모병 담당) : "영국 젊은이들은 군에 별로 가고 싶어하지 않지만 네팔엔 수 많은 지원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남의 나라 국민인 용병에 대한 영국의 대우는 지금까지도 차별적이기 그지 없습니다. 최근까지도 영국군 병사에 비해 적은 월급을 받아왔고 15년 간 군 복무를 하는 동안 불과 3년 만 가족과 같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연금문제는 퇴직 용병들의 삶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지만 차별이 더욱 심합니다. 네팔의 관련 시민단체들은 영국군이 병장으로 제대하면 매달 700파운드. 우리 돈으로 130만원 정도를 받지만 구르카 용병은 5분의 1 정도인 150파운드를 받을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인터뷰> 디팍 마스키(구르카 전역회) : "동일한 수준의 연금과 대우를 계속 요구하고 있지만 영국 정부는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차별대우가 상존하지만 피폐한 경제 상황 속에서 탈출구가 없는 네팔 젊은이들에게 용병은 최고의 직업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인터뷰> 용병 지원자(17살) : "가족과 친척들을 모두 돌봐야 합니다." 복무 기간 동안 돈을 송금해 가족을 부양하고, 또 퇴직과 함께 상당한 목돈을 가져와 네팔 경제에도 기여 해왔습니다. 제 뒤로 보이는 곳이 자크라밧이라는 카트만두에서 손꼽히는 부촌입니다. 15~6년 전부터 퇴역 용병들이 많이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새롭게 거주지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약 3만 명의 퇴역 용병들이 네팔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들어 용병들의 전역후 선택에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영국 정부가 97년 이후 입대한 구르카 부대원들에게 시민권 신청 자격을 부여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생활여건이 나쁜 네팔로 돌아와 정착하기 보단 영국에 남아 보안 관련 업체등에 취업하려는 전역자들의 숫자가 크게 늘어난 것입니다. <인터뷰> 선지 바하드 구릉(현역 구르카 용병) :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데 왜 돌아오냐는 겁니다. 자녀들의 장래도 생각해야 하고..." <인터뷰> 칼렘 타파(퇴역 용병(기업인) : "옛날엔 구르카 용병들이 모두 돌아와 네팔에 투자를 했습니다만 미래엔 네팔 보단 영국에 투자를 할 겁니다."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갖은 불평등에도 불구하고 잘사는 나라의 군인이 되고자 했던 네팔의 구르카 용병들. 그들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의 댓가로 많은 네팔인들은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국주의 시대의 잔재랄 수 있는 네팔 용병들은 오랜 기간 약소국의 설움을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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