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이후 45년 만의 비상계엄…“오판의 역사 되풀이”
입력 2024.12.05 (10:06)
수정 2024.12.05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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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44년 전 5·18 민주화운동의 기억이 각인된 광주 시민들은 누구보다 큰 충격 속에 비상계엄 사태를 예의 주시했습니다.
오판의 역사가 되풀이됐지만 유혈사태로 이어지지 않은 데는 5·18의 교훈이 컸다는 분석입니다.
곽선정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무장을 하고 국회를 에워싼 계엄군.
창문을 깨고 진입하기도 하고, 일부에서는 몸싸움도 벌어집니다.
1979년 10·26 사태로 시작된 비상계엄이 이듬해 5월 17일을 기해 확대되던 당시를 떠올리게 합니다.
포고령 내용도 비슷합니다.
정치 활동과 집회, 시위 금지, 언론과 출판 통제, 태업과 파업 금지 등 44년 전과 판박이입니다.
이에 항의하며 일어난 광주 시민들에 대해 신군부는 잔혹한 진압을 하며 비극으로 치달았습니다.
[김형미/오월어머니집 관장 : "한숨도 못 잤고요, 또 피를 부르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5·18 가족을 두 번, 세 번 죽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안을 가결했고,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서 6시간 만에 해제됐습니다.
여기에는 5·18의 교훈이 있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실제 대법원은 1997년 5·18 관련 판결에서 민주적 절차에 의하지 않고, 폭력에 의해 헌법기관의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정권을 장악하는 행위를 내란죄로 봤습니다.
이에 동조한 군 관계자들도 내란죄 공범으로 판단했습니다.
실제 이번 계엄에서는 군이 강경 진압 작전을 펼치지 않았고, 국회의 결의안이 통과되자 2시간여 만에 해산하기도 했습니다.
또 SNS 등을 통해 급박한 상황이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등 다양해진 미디어 환경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노영기/조선대 교수 :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이 어떻게, 그리고 일상이 어떻게 파괴되고 위협받는가를 5·18을 통해 경험해 본 그러한 것들 그리고 5·18에 대한 광주에 대한 부채 의식이..."]
광주의 아픔 속에 피어난 민주주의는 오판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준엄한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곽선정입니다.
촬영기자:박석수·안재훈/영상편집:이성훈
44년 전 5·18 민주화운동의 기억이 각인된 광주 시민들은 누구보다 큰 충격 속에 비상계엄 사태를 예의 주시했습니다.
오판의 역사가 되풀이됐지만 유혈사태로 이어지지 않은 데는 5·18의 교훈이 컸다는 분석입니다.
곽선정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무장을 하고 국회를 에워싼 계엄군.
창문을 깨고 진입하기도 하고, 일부에서는 몸싸움도 벌어집니다.
1979년 10·26 사태로 시작된 비상계엄이 이듬해 5월 17일을 기해 확대되던 당시를 떠올리게 합니다.
포고령 내용도 비슷합니다.
정치 활동과 집회, 시위 금지, 언론과 출판 통제, 태업과 파업 금지 등 44년 전과 판박이입니다.
이에 항의하며 일어난 광주 시민들에 대해 신군부는 잔혹한 진압을 하며 비극으로 치달았습니다.
[김형미/오월어머니집 관장 : "한숨도 못 잤고요, 또 피를 부르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5·18 가족을 두 번, 세 번 죽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안을 가결했고,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서 6시간 만에 해제됐습니다.
여기에는 5·18의 교훈이 있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실제 대법원은 1997년 5·18 관련 판결에서 민주적 절차에 의하지 않고, 폭력에 의해 헌법기관의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정권을 장악하는 행위를 내란죄로 봤습니다.
이에 동조한 군 관계자들도 내란죄 공범으로 판단했습니다.
실제 이번 계엄에서는 군이 강경 진압 작전을 펼치지 않았고, 국회의 결의안이 통과되자 2시간여 만에 해산하기도 했습니다.
또 SNS 등을 통해 급박한 상황이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등 다양해진 미디어 환경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노영기/조선대 교수 :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이 어떻게, 그리고 일상이 어떻게 파괴되고 위협받는가를 5·18을 통해 경험해 본 그러한 것들 그리고 5·18에 대한 광주에 대한 부채 의식이..."]
광주의 아픔 속에 피어난 민주주의는 오판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준엄한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곽선정입니다.
촬영기자:박석수·안재훈/영상편집:이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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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4-12-05 10: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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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년 전 5·18 민주화운동의 기억이 각인된 광주 시민들은 누구보다 큰 충격 속에 비상계엄 사태를 예의 주시했습니다.
오판의 역사가 되풀이됐지만 유혈사태로 이어지지 않은 데는 5·18의 교훈이 컸다는 분석입니다.
곽선정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무장을 하고 국회를 에워싼 계엄군.
창문을 깨고 진입하기도 하고, 일부에서는 몸싸움도 벌어집니다.
1979년 10·26 사태로 시작된 비상계엄이 이듬해 5월 17일을 기해 확대되던 당시를 떠올리게 합니다.
포고령 내용도 비슷합니다.
정치 활동과 집회, 시위 금지, 언론과 출판 통제, 태업과 파업 금지 등 44년 전과 판박이입니다.
이에 항의하며 일어난 광주 시민들에 대해 신군부는 잔혹한 진압을 하며 비극으로 치달았습니다.
[김형미/오월어머니집 관장 : "한숨도 못 잤고요, 또 피를 부르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5·18 가족을 두 번, 세 번 죽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안을 가결했고,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서 6시간 만에 해제됐습니다.
여기에는 5·18의 교훈이 있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실제 대법원은 1997년 5·18 관련 판결에서 민주적 절차에 의하지 않고, 폭력에 의해 헌법기관의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정권을 장악하는 행위를 내란죄로 봤습니다.
이에 동조한 군 관계자들도 내란죄 공범으로 판단했습니다.
실제 이번 계엄에서는 군이 강경 진압 작전을 펼치지 않았고, 국회의 결의안이 통과되자 2시간여 만에 해산하기도 했습니다.
또 SNS 등을 통해 급박한 상황이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등 다양해진 미디어 환경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노영기/조선대 교수 :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이 어떻게, 그리고 일상이 어떻게 파괴되고 위협받는가를 5·18을 통해 경험해 본 그러한 것들 그리고 5·18에 대한 광주에 대한 부채 의식이..."]
광주의 아픔 속에 피어난 민주주의는 오판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준엄한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곽선정입니다.
촬영기자:박석수·안재훈/영상편집:이성훈
44년 전 5·18 민주화운동의 기억이 각인된 광주 시민들은 누구보다 큰 충격 속에 비상계엄 사태를 예의 주시했습니다.
오판의 역사가 되풀이됐지만 유혈사태로 이어지지 않은 데는 5·18의 교훈이 컸다는 분석입니다.
곽선정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무장을 하고 국회를 에워싼 계엄군.
창문을 깨고 진입하기도 하고, 일부에서는 몸싸움도 벌어집니다.
1979년 10·26 사태로 시작된 비상계엄이 이듬해 5월 17일을 기해 확대되던 당시를 떠올리게 합니다.
포고령 내용도 비슷합니다.
정치 활동과 집회, 시위 금지, 언론과 출판 통제, 태업과 파업 금지 등 44년 전과 판박이입니다.
이에 항의하며 일어난 광주 시민들에 대해 신군부는 잔혹한 진압을 하며 비극으로 치달았습니다.
[김형미/오월어머니집 관장 : "한숨도 못 잤고요, 또 피를 부르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5·18 가족을 두 번, 세 번 죽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안을 가결했고,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서 6시간 만에 해제됐습니다.
여기에는 5·18의 교훈이 있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실제 대법원은 1997년 5·18 관련 판결에서 민주적 절차에 의하지 않고, 폭력에 의해 헌법기관의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정권을 장악하는 행위를 내란죄로 봤습니다.
이에 동조한 군 관계자들도 내란죄 공범으로 판단했습니다.
실제 이번 계엄에서는 군이 강경 진압 작전을 펼치지 않았고, 국회의 결의안이 통과되자 2시간여 만에 해산하기도 했습니다.
또 SNS 등을 통해 급박한 상황이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등 다양해진 미디어 환경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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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선정 기자 coolsu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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