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예감] “자네, 이장할 생각 없나?” 완도 어르신들한테 캐스팅 당한 20대 이장 – 김유솔 이장 (완도 용암리)
입력 2024.12.17 (13:51)
수정 2024.12.18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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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료의 저작권은 KBS라디오에 있습니다.
전문 게재나 인터뷰 인용 보도 시,
‘KBS 1라디오 성공예감 이대호입니다’와 같이
채널명과 정확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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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서 일하다 완도로 귀향 "완도가 이렇게 예뻤구나"
- 24살에 시작한 4년차 이장, 사진관과 도시재생활동도 병행
- 이장의 역할은? 지자체와 마을을 엮어주는 소통 창구
- 월급은 10만원 인상돼 月40만원..."매년 보너스도 나와요"
- 젊은 이장, 리더십 비결은? 어르신들의 따뜻한 격려 덕분
- 완도의 매력, 한적한 바다와 커피 한 잔..해양치유센터도 개설
- 폐가 리모델링, 손주학교 운영 등 '완망진창' 활동도
- 지역 소멸?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 모집..."위기가 기회다"
■ 프로그램명 : 성공예감 이대호입니다
■ 방송시간 : 12월 17일(화) 09:05-10:53 KBS1R FM 97.3MHz
■ 진행 : 이대호
■ 출연 : 김유솔 이장 (완도 용암리)
◇이대호> 성공예감 이대호입니다. 2부의 문을 열겠습니다. 전라남도 완도군의 주민 평균 연령이 68세라고 합니다. 물론 다리가 연결되어 있긴 한데 예전에 섬마을이라고 불렀었죠. 그런데 그곳에 전국 최연소 이장이 부임했습니다. 24살에 이장이 된 분. 아니, 어떻게 20대 중반에 이장이 될 수 있지? 의아하기도 한데요. 청년 이장의 하루는 어떨까요? 그리고 또 지방 소멸 시대에 어떻게 이 지역을 되살릴 수 있을지 같이 한번 고민해 보시죠. 전남 완도군 용암리 이장님입니다. 김유솔 이장님, 안녕하세요.
◆김유솔> 안녕하세요.
◇이대호> ‘제가 이 마을 이장인디요’ 이게 책 이름. 죄송합니다만 지금 나이가?
◆김유솔> 만 나이로 27살입니다.
◇이대호> 현재 27이고 24살에 이장이 되었고. 직업이 많더라고요. 사진관을 운영하고 계시고 그리고 완도군의 그 청년 단체 ‘완망진창’의 대표이시고 가장 중요한 건 완도읍 용암리 이장.
◆김유솔> 네. 완도군 완도읍 용암리 이장입니다.
◇이대호> 아마 이 질문 수백 번 들으셨겠습니다만 어떻게 하다가 이장이 되신 거예요?
◆김유솔> 네, 저는 완도에서 나고 자랐고요. 그러다 보니까 당연하게 일을 하려면 서울로 가야 된다 이렇게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한 6~7년 정도 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완도에 내려오게 됐는데 한 번씩 이렇게 오니까 완도가 예쁜 줄 몰랐었어요. 그런데 제가 서울에 있을 때 막 제주도고 어디 다른 데 여행을 다녀보니까 저는 바다가 그렇게 예쁜가 생각을 못하고 있었는데 완도에 다시 돌아와 보니까, 이게 그 바다나 이 바다나 이렇게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이렇게 예쁜 데를 맨날 보고 자랐으니까 그렇게 예쁜 줄 몰랐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사실이 되게 기뻐서 어떻게 하면 완도에 살 수 있을까 고민을 했었는데 그때 친구들이랑 얘기를 하다가 친구들이 얘기를 해 줘서 사진관을 운영을 하려고 생각을 하게 됐고. 사진관이 완도에 하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할아버지가 운영을 하셨는데 보정을 되게 달덩이처럼 해 주셨거든요. 여자애들의 미의 기준과 조금 달랐었는데.
◇이대호> 아, 그러니까 옛날 방식으로.
◆김유솔> 네. 그래서 친구들한테 내가 그냥 찍어줄게, 내가 보정해 줄게 하다가 친구들이 너 같은 애가 사진을 찍어줬으면 좋겠다 해서 사진관 한번 해볼까? 생각을 하고 내려오게 됐었어요.
◇이대호> 원래 서울에서는 디자인 일도 좀 하셨었다고 하고 약간 그쪽으로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데 또 어떻게 보면 20년 가까이 살아왔었던 같은 고향이고 같은 지역이고. 10대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게 20대 때는 보인 거네요. 그런데 원래는 고향을 떠나고 싶었다면서요. 그래서 실제로 떠난 거였잖아요.
◆김유솔> 네. 일단은 서울에서 진짜 먼 곳이거든요. 서울에서 있을 때는 그 회사 분들이 그 정도면 여권 들고 다녀야 되는 거 아니냐 할 정도로, 농담으로 그런 얘기를 하셨는데 사실 저는 학창 시절까지 완도를 좋아한 적이 진짜 없었어요. 너무 좁고 조금만 나가도 아는 사람들이 있다 보니까 저한테 너무 관심도 많이 가져주시고 그러다 보니까 그게 또 싫고 무엇보다 제일 중요했던 게 제 꿈이 디자이너였는데 디자인을 배울 수가 없는 거예요, 완도에서는. 그래서 나는 디자인을 배우고 싶은데 완도에서는 미술 학원도 없다 보니까 조금 막연하게 꿈을 갖고 있다가 이제 서울에 와서 좀 디자인학원도 다니고 준비를 해서 이제 중소기업에 디자이너로 취직을 하게 됐었어요.
◇이대호> 그렇죠. 어릴 때는 동네만 나가도 그 지역사회라고 하지 않습니까? 어느 집 누구 뭐 이런 게 다 나오니까, 누구 동생 누구. 근데 어린 마음에는 좀 싫을 수 있겠다. 완도 분들 많이 듣고 계시나 봅니다. 4*** 님이 ‘용암리 이장이어라’가 원어민 발음입니다. 알려주셨어요. 저도 완도 사람입니다. 젊은 이장님 부럽습니다. 이렇게 보내주셨고. 이** 님은 완도 한번 놀러 가야겠네요. 이렇게. 완도가 그 전남 중에서도 거의 끝에 있죠? 해남 밑에.
◆김유솔> 네. 저희는 육지가 아니라서 땅 끝 밑에 붙어 있는 섬들인 거죠.
◇이대호> 그런데 해남에서부터 다리로는 연결이 되어 있잖아요. 거기 섬들끼리는.
◆김유솔> 네. 다리로 연결이 돼 있어서, 그래서 육지로 쳐주신다면 땅 끝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대호> 그런데 그렇게 해서 서울로 떠났어요. 그런데 서울에서 한 4년 동안 생활을 해 본 거죠. 당연히 서울 생활 쉽지는 않았을 거고 어떻게 하다가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게 된 거예요? 그 마음을 먹은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
◆김유솔> 네. 서울에서 너무 멀다 보니까 전 명절에도 잘 안 내려갔었거든요. 그런데 휴가 때 자꾸 제가 완도에서 살았다고 하니까 저 빼고 다 완도에 놀러 가시더라고요. 볼 게 하나도 없는데 대체 왜 놀러 가시냐 여쭤보니까 막 너무 좋다고 하니까 또 소문에 소문을 타서 또 옆 회사 사람도 갔다 오고 이러시는데 그게 점점 저도 궁금해지는 거예요. 아니, 뭐가 좋아서 저렇게 가는 걸까 해서 저도 생각을 해보니까 완도에 한 번도 놀러 가본 적이 없다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대호> 그냥 평생 살았으니까.
◆김유솔> 네. 살아만 봤는데 그래서 한번 놀러 가보는 완도는 어떨까 생각을 하고 처음에 내려갔었어요.
◇이대호> 완도에 돌김이 유명한가요?
◆김유솔> 네. 김도 맛있죠.
◇이대호> 김** 님이 돌김에 참기름 발라 먹어야 된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남들은 그렇게 놀러 가고 아름다움을 찾아서 가는 곳이었는데 정작 그곳에 살던 사람은 떠나고 싶어 했고. 물론 어린 마음에 그럴 수 있겠죠. 그래서 다시 완도로 돌아가니까 보이지 않던 게 보였고, 어떻던가요? 처음에. 20살 가까이 살던 그 완도의 모습 다시 봤을 때.
◆김유솔> 저는 이렇게 예쁜 곳이 저희 제 고향이었나, 되게 기분이 좋았어요. 서울 사람들이 모든 것을 약간 내려놓고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하려고 제주도에 내려가시는 분들이 많아졌잖아요. 그런데 저는 이렇게 북적거리지 않는, 되게 꽁꽁 숨겨놓은 보물이 알고 보니 내 고향이었다. 이런 느낌이라서 되게 기분이 좋았고 뭔가 제가 구계등이나 완도에 있는 많은 곳들을 놀러 다녔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뭔가 몽돌이 부딪혀서 파도 소리가 나는 것도 너무 좋고 또 이렇게 숲도 가득한 것도 너무 좋고. 그런데 그 좋은 걸 되게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한적하게 즐길 수 있는 것도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좋은 곳에서 더 살고 싶다 생각을 하다 보니까 서울에서 완도로 내려올 준비를 계속하게 됐던 것 같아요.
◇이대호> 멀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새로운 게 또 보였던 거네요. 새로운 건 아니었는데, 그렇죠, 사실은. 안** 님이 완도가 외갓집이에요. 이렇게 보내주셨어요. 완도라는 말이 너무 반갑네요. 공기 맑고 바닷가 좋고 사람들도 다 좋아요. 이렇게 보내주셨어요. 다시 고향에 내려와서 사진관을 열었어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처음에 사진관 가서 찍으니까 너무 달덩이로 보정을 해 주셨고. 어떻게 하다가 사진관을 여셨는지는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장사가 잘 됐습니까, 초반에?
◆김유솔> 저도 걱정을 좀 많이 했는데요. 그런데 제가 생각했던 게 저 같은 여고생이 좀 없길 바라는 마음에서 달덩이들을 조금 더 홀쭉하게 찍어주자 생각을 했었어서 열심히 또 기술을 갈고 닦아가지고 보정을 해 줬었는데 하고 보니까 이게 보정도 중요하지만 좀 아쉬운 것들이 눈에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막 여자애들 앞머리도 잘라주고 막 고데기도 해주고 막 이렇게 세팅도 해주고 막 오지랖을 부리다 보니까 좀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좀 많이 나서 요새 중고등학생 친구들은 다 저희 가게에 와 주시는 것 같아요.
◇이대호> 이야, 그래서 어떻게 보면 더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신세대 사진관, 약간 이런 느낌이네요. 그런데 사진관을 하고 있는데 “자네 이장할 생각 없나?” 이런 제안을 받았다는 거예요?
◆김유솔> 네. 저희 가게 앞에 빈집이 원래 있었어요. 그 빈집을 되게 탐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뭐가 들어가더라고요. 그래서 아쉬워하고 있다가. 도시재생 센터라고 약간 공공기관 같아 보이는 게 들어왔는데 말 그대로 이렇게 도시를 재생시키는 일들을 하시더라고요. 궁금해서 저도 몇 번 참여를 하고 저희끼리 관련 프로그램도 하고 하다 보니까 거기에서 이장님을 뵙게 됐어요. 전 이장님을.
◇이대호> 네. 혹시 전 이장님의 연세는 어떻게 되셨나요?
◆김유솔> 아마 52년생, 그 정도 되셨던 것 같아요. 환갑이 넘으셨는데 사실 전 이장님도 이장님 치고는 굉장히 어린 축에 속하시는 편이셨거든요.
◇이대호> 잠시만요. 4년 전이면 거의 칠순에 가까운 연세셨을 텐데 이장님 중에서도 젊으신 편이었던 거예요, 그분이?
◆김유솔> 네. 52년생이시니까 칠순은 아직 안 되셨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젊으신 편이셨어요.
◇이대호> 그런데 그 제안을 받은 거예요?
◆김유솔> 네. 갑자기 저한테 차 한 잔 하자고 하셔가지고 좀, 사실 좀 겁을 엄청 먹었었어요. 약간 옆 반 담임 선생님이 갑자기 차 한 잔 하자고 하는 상황이었던 것 같은데.
◇이대호> 교무실로 오라고 하면.
◆김유솔> 네, 네. 그래서 내가 뭐 잘못했나? 이렇게 좀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이장을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 주셔 가지고 감사하게 또 그런 제안을 받게 됐었어요.
◇이대호> 아니, 그 전 이장님도 상당히 진취적인 분이셨네요. 24살, 어떻게 보면 청년에게 마을 이장을 맡길 그런 생각을 하셨다는 게. 어떤 면에서 본인이 그런 제안을 받은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지금 이것도 캐스팅인데.
◆김유솔> 일단은 제가 진짜 24살 정도 될 거라고 생각을 못 하셨을 것 같아요. 이게 가게를 하고 있으니까 그 정도로 어리진 않겠지, 생각을 하셨던 것도 있으신 것 같고. 무엇보다 활동을 해오면서 이렇게 마을에 관심을 가지는 모습을 좀 좋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여기저기 좀 물어보셨대요. 저 친구 어떠냐.
◇이대호> 평판 조회를 먼저 하셨구나.
◆김유솔> 네. 그래서 이런 일을 열심히 하는 친구다. 다행히 또 좋은 분들이 말씀을 해 주셔 가지고 그렇게 해서 좀 말을 하기까지 오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대호> 그러게, 어르신들은 다 계획이 있으십니다. 그냥 충동적으로 제안한 게 아니라 사전에 사진관 저 친구 어때, 이런 식으로 다 평판 조회를 하고 오신 거고. 완도 용암리 김유솔 이장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전원일기 같은 드라마 보면 저도 어릴 적에는 이제 시골에 있었어서 마을 회관으로 모여달라는, 혹은 이장님의 방송도 저는 어릴 적에 많이 들었었거든요. 지금도 그거 있나요? 혹시 이렇게 마이크 툭툭 치면서 아, 아, 아, 이렇게. 주민 여러분, 이렇게.
◆김유솔> 네. 저희 경로당에 방송을 할 수 있는 기계가 비치돼 있어요.
◇이대호> 혹시 직접 방송하세요, 그래서?
◆김유솔> 네. 그래서 마을 행사나 아니면 회의를 해야 되면 항상 마을 방송을 먼저 해요. 이따가 몇 시에 마을 회관에서 뭐를 진행할 예정인데 마을에 계신 모든 분들은 지금 경로당으로 오셔라, 이런 방송을 하고 있어요.
◇이대호> 보통 이장의 역할이라는 게 어떤 것이 있어요? 주요 업무라고 하면.
◆김유솔> 한마디로 정리하면 약간 지자체하고 마을을 엮어주는 소통 창구거든요. 그래서 마을에 민원이 생기면 제가 그걸 취합해서 지자체로 올려 보내고요. 지자체에서 하고 계시는 사업들을 마을 분이 이렇게 활용하실 수 있게 제가 좀 전달을 해드리는 역할을 하고 또 마을에 있는 크고 작은 일들을 처리해요. 그래서 가로등이라든지 아니면 폐가가 주변에 영향을 끼칠 것 같다 이러면 제가 지자체랑 연결을 해서 안전사고 없이 문제가 생기지 않게 미리 처리를 한다든지 이런 일들을 하고 있어요.
◇이대호> 어떻게 보면 연결고리고 육지와 섬을 이어주는 다리 같은 존재를 본인이 하고 있는 거네요. 지자체와 주민들을 연결해 주는 그런 다리 같은 존재. 혹시 이장은 임기제입니까? 임기가 어떻게 돼요?
◆김유솔> 임기는 1년이고요.
◇이대호> 짧은데요?
◆김유솔> 네. 그래서 해년마다 연말에 다시 회의를 해요. 그래서 1년씩 연장을 하고 있는 시스템으로 이렇게 매일매일 되게 쫄깃하게 벌써 3년 차 이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대호> 혹시 그러면 이번 임기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김유솔> 저번 주에 마을 회의를 했고 다행히 또 내년까지 해달라고 하셔가지고 4년 차가 될 예정입니다.
◇이대호> 임기 연장 축하드립니다.
◆김유솔> 감사합니다.
◇이대호> 그러면 3연임 되는 거네요. 1년씩 해서. 그러면 4년 차가 되는 거고. 혹시 이게 무슨 이장 후보 추천위원회나 무슨 위원회에서 추대를 하고 이런 과정이 있어요? 어떻게 돼요?
◆김유솔> 저희 마을은 워낙 사람이 많질 않아서요. 약간, 사실 새로운 후보가 생기면 미리 좀 분위기를 알 수가 있어요. 누가 어디 한번 나가봐라 이런 추천들을 서로 하시기도 하시고요. 그렇지만 뭔가 저도 그래서 긴장을 하고 있었어요. 저도 모르는 후보가 나오지 않을까. 그래서 마을 회의할 때 혹시 이장 하고 싶으신 분 계세요? 그러면 잠잠하고. 마을 분께서 계속 하지 뭐, 더 새롭게 할 사람이 있나, 얘기를 하셔가지고 이렇게 또 별 무리 없이 이렇게 쿨 하게 거수로 하거든요, 저희는. 이장해도 괜찮은 사람 손들어, 이러면 다 손 드시고.
◇이대호> 그렇게 해서 3연임에 성공하신 거고.
◆김유솔> 네, 하게 됐습니다.
◇이대호> 축하드립니다. 저희가 경제 방송이어서 그런데, 이런 거 여쭤봐야 되는지 모르겠는데 궁금하긴 하지 않습니까? 이장님의 급여는 얼마나 됩니까?
◆김유솔> 이장의 월급은 작년까지는 30만 원이었는데요.
◇이대호> 월급이?
◆김유솔> 네. 월급이 30만 원이었는데 올해 10만 원이 인상돼서 40만 원씩 받고 있고요. 또 명절에는 보너스가 나와서 그래서 이제 월급을 한 번 더 받습니다. 그래서 명절에는 80만 원씩.
◇이대호> 80만 원씩 나와요? 설과 추석 때 각각?
◆김유솔> 네. 보너스가 40만 원이라 80만 원의 보너스를 받아요, 1년에.
◇이대호> 이게 업무추진비 개념이에요? 아니면 별도로 또 뭐가 나와요? 활동비가?
◆김유솔> 이거는 순수 이장 월급이고요. 이제 마을별로 마을에 돈이 있긴 한데 이제 경로당 같은 경우에도 그 노인회에서 나오는 자금이 있어서 그걸로 경로당 운영을 하고 대부분은 좀 자체적으로 이렇게 모으시던지 뭐 이런 식으로 마을 사업을 하든지 해서 마을 돈을 만들어요. 그래서 이렇게 따로 나라에서 활동비를 받지는 않습니다.
◇이대호> 그거는 따로 이제 그 목적에 맞는 운영비가 따로따로 다른 항목들이 있는 거고 순수하게 급여는 월 40만 원. 이것도 올라서. 그런데 사실 이장하시는 분들이 또 다른 생업이 대부분 있으시잖아요. 뭐 농업이나 어업이나 다른 거 종사하시면서 이장을 또 하시다 보니까 되게 또 바쁘실 것 같아요. 신경 쓸 일도 많을 것 같고, 지역에서.
◆김유솔> 처음에는 그 비율을 맞추는 데 조금 시간이 많이 들었는데요. 그래도 이제 1, 2년 차 때 그래서 조금 많이 힘들었었어요. 이장 일도 중요한데 또 이장 일은 월급이 그렇게 크지 않다 보니까 제 본업을 해야 하기도 하고. 그런데 다행히 또 제가 하는 일들이 이장 일과 더불어서 할 수 있는 일이더라고요.
◇이대호> 사람 만나는 일이니까, 사진관도.
◆김유솔> 네. 대부분 마을 어르신들이 소개시켜 주시기도 하시고요. 무엇보다 사진관도 예약제로 지금 운영을 하고 있어서 시간 조율을 할 수 있게끔 이제 운영을 하고 있고 또 운영하고 있는 단체 같은 경우에도 이렇게 도시재생 활동을 하다 보니까 생각보다 더불어서 같이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장이다 보니까 주변 이장님들한테 이렇게 연락드리기도 되게 편하고 같이 마을에서 뭔가를 하기도 되게 좋고 해서 지금은 적응이 좀 많이 된 상태입니다.
◇이대호> 그리고 또 그 사진관을 하시니까 사진기 들고 다니시면서 그 지역에서 또 나름대로 활동도 하시고요. 다른 방송 보니까 사진기 들고 다니시면서 동네 어르신들도 사진 찍어드리고 하시더라고요. 되게 좋은 활동가 같고. 혹시 김유솔 이장님 같은 또래 청년들이 완도 특히 용암리에 많이 있나요?
◆김유솔> 저희 마을에는 없어요. 저희 마을에는 20대 친구들이 저 포함 3명 정도 있는 상황이고요. 10대 친구들이 한 집, 한 두 집 정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대호> 두 집밖에 없어요?
◆김유솔> 네. 10대, 20대 포함해서 10명이 넘지 않는 상황이고요. 이제 근처 마을들도 조금 비슷한데 여기저기 섬에서 친구들을 모아서 같이 놀고 어울리고 이러고 있는 상황이에요.
◇이대호> 용암리 전체 100가구가 안 된다고요?
◆김유솔> 네. 저희가 67세대 정도 살고 있고요. 총 105명 정도 살고 있어요, 저희 마을에.
◇이대호> 105분 정도? 그러니까 용암리만?
◆김유솔> 네. 용암리만.
◇이대호> 완도군으로 따지면 훨씬 더 이제 많으실 테고. 그런데 사실 20대 중반에 이장이 돼서 뭔가 이제 리더십을 발휘를 해야 되는데 주변 분들은 다 어르신들이고 어르신들 사이에서 리더십을 발휘한다는 게 되게 쉽지 않았을 거 아니에요.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김유솔> 처음에는 이제 어르신들도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이렇게 어린데 잘 운영을 할 수 있을까 해서. 아니나 다를까 첫 해에 조금 실수가 있었지만 어르신들이 엄청 개방적이시거든요. 그래서 저한테 이제 실수하는 거는 어려도 나이가 많아도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다. 뭐 이렇게 배우는 시간이 있어야 나중에 더 잘하는 시간도 있다. 이렇게 전 전 이장님이 말씀을 해 주셔서 또 그거에 힘입어서 마을 분위기가 좀 이장한테 많이 알려주자, 이렇게 많이 알려주시고 도와주시고 하다 보니까.
◇이대호> 오히려 어르신들이 더 도와주시는.
◆김유솔> 네. 다행히 또 마을 어르신들이 저한테 편하게 부르질 않으세요. 꼭 이장님 이렇게 불러주시거든요. 너무 감사하게 제가 조금 불리할 때는 또 젊어서 그런다 이렇게 말씀해 주시고 제가 잘한 거 있으면 역시 우리 이장이다 이렇게 높여 주시거든요.
◇이대호> 좋으신 분들이네요.
◆김유솔> 그래서 열심히 이렇게 어부바 받으면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대호> 격려도 많이 받으시는 거고. 혹시 혼난 적은 없어요?
◆김유솔> 혼난 적도 있긴 한데요. 그게 많지 않아서. 꼭 혼나면서 다음에는 어떻게 해라 이렇게 알려주세요.
◇이대호> 그냥 혼만 내는 게 아니라 따뜻한 조언까지. 좋은 어르신분들과 함께 살고 계시네요. 그런데 아까 그 20대 청년이 3명, 그리고 10대까지 해도 두 집 정도밖에 안 된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또래 친구들하고 어울리고 또 어디 나가서 놀고 싶고 약간 그런 생각은 안 들어요? 또 이제 완도로 간 지 지금 한 4년?
◆김유솔> 한 6년 차 됐는데요. 처음에는 좀 걱정을 많이 했어요. 놀 것도 없고 내가 완도에 내려가서 잘 버틸 수 있을까. 이미 맛을 한번 봐버렸는데.
◇이대호> 서울에서 4년 살고 내려갔으니까.
◆김유솔> 네. 그래서 그렇게 괜찮을까 또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또 완도에 저 같은 토박이 친구들이 있어서 그 친구들이랑 어울려서 놀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기대감이 많이 줄었던 것 같아요. 서울에서는 워낙 정보도 많고 놀 것도 너무 많다 보니까 기대를 조금 했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좀 더 재미있게 놀까, 더 멋있는 곳을 갈까 했는데 완도에서는 그런 부담이 전혀 없다 보니까 뭘 해도 되게 바다 보면서 커피 한 잔 마시는 것도 즐겁고 약간 되게 별거 아닌 것도 행복함을 많이 느끼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좀 더 마음이 홀가분해진 상태로 지내게 되는 것 같아요.
◇이대호> 왜 그런 얘기 있잖아요. 가장 행복해지는 방법은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다. 약간 그거를 젊은 나이에 벌써 깨달은 거네요.
◆김유솔> 그런가 봐요.
◇이대호> 혹시 아까 1*** 님도 그렇고 완도 용암리를 관광단지로 개발해 보면 어떨까요 이런 이야기도 해 주셨는데. 완도에서 가볼 만한 곳, 추천하는 곳 어디 있으세요?
◆김유솔> 저는 이게 명사십리나 이런 좋은 바다들도 있지만 이름 없는 공원들이, 유명해지지 않은 공원들이 꽤 있거든요. 그래서 뭐 갯바람공원이라든지 일몰공원이라고 바다에 맞붙어 있는 공원들이 있는데 거기에 가보시면 뭔가 좀 한적하게 바다를 즐기실 수 있어서 또 좋기도 하고 완도 자체를 또 휴식으로 많이 오시잖아요. 그래서 완도에 최근에 해양치유센터라고 생겼거든요. 완도에 있는 해조류나 아니면 완도에 있는 자원들로 센터를 운영을 하시는데 저희 온수풀도 있고 해서 휴식을 즐기기에 되게 좋은 곳이거든요. 그래서 완도에 오시면 그렇게 좀 휴식을 즐기시는 시간을 많이 가지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대호> 해양과 함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센터. 좋네요. 온수풀도 나오고. 여기에도 왜 그 빈집들은 좀 있지 않나요? 그런 거 어떻게 개조해서 요즘에 한달살이하고 막 이런 것도 있다던데. 그 지역에는 어때요?
◆김유솔> 일단은 빈집 비율이 되게 높은 편이고요. 저희 완망진창이라고 팀을 운영하고 있는데 저희 팀에서 최근에도 폐가를 리모델링을 해서 한달살기 숙소로 개조해서 지금 프로그램을 운영을 했어요. 그래서 외지에 있는 청년들한테 제공을 하면서 완도에서 좀 사실 수 있게 제공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활용할 수 있는 폐가도 있지만 완도에는 빈집 비율이 높지만 사용할 수 없는 빈집도 굉장히 많거든요.
◇이대호> 당장은 쓰기 힘들고 뭔가 좀 돈 들여서 고쳐야만 하는 상태.
◆김유솔> 그래서 저희 마을도 빈집 비율이 높지만 그중에 폐가가 굉장히 많은 비율로 있는 상황이에요.
◇이대호> 그러니까 지금 청년공동체 완망진창을 이끌고 있는 대표이기도 한데. 이게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지역 사회적인 일을 하는 거네요. 그런데 아까 20대 청년이 3명이라고 했는데 청년공동체면 3명에서 하시는 거예요? 아니면 청년이 거의 한 50대까지 올라가나요?
◆김유솔> 완도는 청년 기준이 49세까지긴 한데요. 그런데 사실 완도읍에 있는 친구들뿐만 아니라 뭐 어디 신지에 있는 친구들이라든지 저희가 싹싹 긁어 모았거든요. 그래서 그 완도 토박이라는 공통점으로 이제 5명 정도가 모여서 지금 팀을 운영하고 있고.
◇이대호> 싹싹 모아서 5명이다. 또 어떤 일을 하는 거예요? 완망진창이라는 단체가?
◆김유솔> 저희 팀에서는 처음에는 너무 친구들이 없으니까 어떻게 하면 좀 친구들을 완도에 데려올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이 친구들이 다시 완도에 내려올 생각을 할까 고민을 하면서 놀 게 없다, 우리가 만들어야겠다 이 생각을 하고 시작을 하게 됐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플리마켓을 운영을 한다든지.
◇이대호> 벼룩시장 같은 거.
◆김유솔> 약간 문제점을 해결하다 보니까 좀 운영을 하게 됐는 뭐 완도에 놀 거 없다고 하도 많이 말을 하니까 그거를 정리한 웹 지도를 만들기도 하고요. 또 주말만 되면 다들 수도권으로 놀러 가느라 완도가 주말에 텅텅 비는데 그걸 좀 해결하고 싶어서 주말에 플리마켓을 운영을 한다든지. 또 제가 생각해 보니까 완도에 좀 정착을 하려면 지역을 잘 아는 사람들을 만나야 되는데 그런 걸 할 수가 없으니까 만날 기회가 없어서 좀 정착을 제대로 못하는 거 아닐까 생각을 하게 돼서 저희가 손주학교라는 프로그램을 운영을 해서.
◇이대호> 손주학교요?
◆김유솔> 네. 그래서 손주 같은 친구들이 어르신들한테 핸드폰 사용 방법을 알려드리는 프로그램이에요. 이게 좀 봉사 프로그램 같아 보이긴 하는데 이 프로그램 끝나면 아는 할머니, 아는 할아버지가 생기게 돼서 뭐 집을 구해도 조금 조언을 해 주실 수도 있고 또 완도 같은 경우에는 아는 집을 챙겨주지 모르는 사람을 잘 챙겨주기는 조금 부담스럽다 보니까 뭐 부동산도 제대로 없는 상황이 많거든요.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고. 하다못해 가을철에는 저희 마을만 걸어가도 감을 막 선물 받기도 한다든지 이렇게 손에 이렇게 음식이 가득해지는 상황들이 생기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이런 손주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하고. 또 경력이 있지만 주부 생활을 하다 보니까 안 되신 분들이랑 또 지역 소상공인 분들이랑 같이 클래스를 운영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하기도 하고 또 청년 마을 운영하기도 하고 있습니다.
◇이대호> 하는 일이 되게 많네요. 이거를 다른 생업도 하면서. 사진관도 하고 이장 생활도 하면서 지역 청년공동체도 운영을 하고 계시는 거고. 그런데 그 아까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청년들까지 싹싹 긁어 모으고 계시다고 했는데 사실 청년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려면 일자리가 있어야 되잖아요. 이 측면은 물론 이제 이거는 한두 명이 어떻게 바꿀 수 있는 거는 아닙니다만 일자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유솔> 저는 사실 일자리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청년 친구들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완도에 많은 친구들이 없는 이유가 일자리는 생각보다 좀 더 있거든요. 그런데 의외로 일자리가 없어서 안 오신다기보다는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뚜렷하지만 그걸 완도에서 할 수 없어서 못 오는 친구들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뭔가 하다못해 일자리를 구해도 제가 하고 있는 전공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런데 그게 완도에서는 어업과 수산업이 너무 집중되어 있다 보니까 좀 다양한 친구들이 완도에 오기가 힘든 거죠. 그러다 보니까 생기는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이대호> 그런데 우리 김유솔 이장님은 서울에서 웹 디자인 같은 거 하셨다고 하는데 사실 이런 거는 서울에서 온라인으로 외주 같은 걸로 받아서 컴퓨터로 일하고 온라인으로 보내주고 화상으로 회의하고 이런 것도 가능하잖아요. 물론 이제 업종에 따라서.
◆김유솔> 그래서 저희도 완도에 이렇게 청년분들을 모셔올 때 제일 이렇게 초점을 뒀던 게 완도에 조금 오시기 쉬운 직종을 가지신 분들을 초대를 해보자 생각을 해서 예술이나 이렇게 예체능 쪽에 종사하시는 분들을 대부분 모셔왔어요. 그러다 보니까 저희가 세 분 정도 완도에 정착을 하시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그런 분들을 시작으로 이렇게 다양한 직업군들이 모여야 좀 완도에 그 사람들이랑 같이 살 수 있는 다양한 생활권의 사람들도 올 수 있는 것 같아요.
◇이대호> 계속 또 새로운 사람들이 모여들어야 더 많은 사람들이 또 모이게 되고 이런 식으로. 그러면서 그 공동체가 커져 나가는 거죠.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제 시작인 거고. 좋은 일도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아까 봤더니 이런 얘기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코가 좀 반짝거리십니다. 피어싱을 하셨는데 이게 섬마을 어르신들한테 더 눈에 띄었다면서요?
◆김유솔> 네. 오히려 제가 좀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은데요. 하필 이장 임기 되자마자 코로나가 운영되는 바람에 오히려 어르신들께 한 1~2년간은 제가 열심히 피어싱을 좀 숨겼어요.
◇이대호> 마스크 쓰면서.
◆김유솔> 네. 놀라실까 봐. 무엇보다 저도 어르신들이 당연히 이런 피어싱을 안 좋아하실 거다. 이렇게 생각을 해서. 그래서 마스크를 쓰고 좀 한 1~2년은 숨기고 다녔었는데요. 어느 날 이제 어머니들이 입에 약과를 넣어 주시겠다고 이장 아, 해 봐 이래서 저도 마스크를 확 내리고 받아먹었는데 아차 싶더라고요. 그런데 그 순간 되게 정적이 있었는데 어르신들이 이장 코걸이 했냐고 이렇게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네 이랬는데 그렇게 이제 어머니가 말씀 안 해 주시길래 놀라셔서 별 말씀을 못 하셨나 보다 이랬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다른 분들이 와서 이장이 코 피어싱 하면 어때요 이렇게 물어보시는 거예요. 그래서 어머니들이 모르실 텐데 이거를 어떡하지? 무엇보다 이거를 되게 안 좋게 보실 것 같은데 뭐라고 대답하실지 굉장히 저도 긴장을 했는데 이게 젊은이들만의 멋이 있는 것 같다고 예쁘게 하고 다니면 너무 좋지 이러면서 되게 좋게 봐주시더라고요. 그래서 다행히. 그때 이후로는 오히려 알 크기를 좀 더 키워 가지고 다니기도 하고 좀 당당하게 하고 다니고 있습니다.
◇이대호> 그래도 우리 어르신들 만나면 특히 이제 지역에서는 이제 스물여덟 되시는 건데 요즘에는 이런 조언을 하는 게 좀 금기어라고는 하는데 어르신분들 중에서는 그래도 꼭 결혼이나 이런 거 걱정하시는 분들 계시지 않으세요?
◆김유솔> 네. 많으시죠. 그런데 약간 제가 아무나 만날까 봐 걱정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이대호> 오히려 좋은 사람 만나야 된다.
◆김유솔> 제가 이제 제일 걱정을 하셨던 것도 이장 일을 할 때 미혼인 거를 걱정을 하셨어요. 미혼이면 결혼하면서 마을을 떠날 확률이 높다 이렇게 생각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결혼해도 여기 있을 거다 했지만 안 믿으셨었어요. 그런데 지금 임기도 조금 길어지고 하다 보니까 이제 결혼 얘기가 조금씩 나오고 있는데. 그래서 어르신들한테 최근에 이제 남자친구를 소개하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처음 본 날 하신 말씀에 어디 데리고 가버리면 안 된다고. 마을에서 떠나면 안 된다고.
◇이대호> 데리고 육지로 갈까 봐.
◆김유솔> 네. 그러니까 시집을 가는 게 아니라 장가를 와야 한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요새는 맛있는 거 하면 이렇게 꼭 같이 와서 먹으라고 말씀을 많이 하기도 하세요.
◇이대호> 그 이장 생활하면서 위기도 있었다면서요. 이장에서 쫓겨날 뻔했다고도. 어떤 일이었어요?
◆김유솔> 제가 첫 이장 일을 부임을 했을 때 뭘 어떻게 하는지 모르다 보니까 작년에 한 걸 그대로 하면 되는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이장이 바뀌었다는 건 약간 정권이 바뀌었다는 것과 같은 내용이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이제 기존에 진행됐던 일들도 다시 공지를 하고 다시 했었어야 하는데 저희가 마을 사업을 운영을 하고 있는데 제가 마을에 허락도 안 받고 진행을 해버렸던 거죠. 그래서 마을이 뒤집어졌었어요. 그래서 이거 어떻게 된 일인 거냐. 그러면서 마을회의가 갑자기 열리게 됐고 그때 이제 피바람이 불더니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냐 그래서 죄송합니다. 저는 작년에 하던 걸 그대로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이래서 이거는 꼭 허락을 받고 진행을 해야 한다. 또 다행히 알려주셨고 그때 되게 진지하게 물어보시더라고요. 이장이 하고 싶냐. 사실 제가 좀 겁을 먹고 어르신들께 말씀을 드렸어요. 제가 너무 실수하는 것 같아서 이장 일을 제가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말씀을 드렸는데 그때 이제 어르신들이 말씀을 많이 해 주셨죠. 처음에 못하는 게 되게 당연하고 하면서 배우는 거니까 한번 하겠다고 해봐라. 나는 이장이 이장을 하겠다고 해서, 손녀가 이렇게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너무 편해서 되게 편하게 말할 수 있었는데. 그래서 이장이 이장을 해서 좋았다. 이렇게 말씀을 해 주시다 보니까 다행히 고비를 넘겨서 하게 됐던 것 같아요.
◇이대호> 그렇죠. 24살에 이장은 처음이라. 그랬었던 것 같고 또 많은 어르신들이 또 이해를 해 주셨고 잘 넘겼고. 이게 이장도 권력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왜 우리가 권한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게 권력과 한도, 한계라는 뜻을 갖고 있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디까지 이 힘을 또는 권력을 써야 하는지는 지역 주민들과 또 국민들과 또 함께 의견을 나눠야 되는 거고요. 아무래도 그 최연소 이장 또 여성 이장이라는 타이틀이 또 화제가 되다 보니까 전국적으로 지금 이장되는 방법을 많이 또 물어본다면서요?
◆김유솔> 네. 되게 신기한 게 이장이 왜 하고 싶으신지 저도 이장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는데요. 이 이장 일을 하면서 어르신들한테 사랑받는 걸 조금 다들 좋게 봐주셨는지 이장이 되고 싶은 분들이 연락이 오시기도 하고 또 어떻게 해야 뭐 이렇게 연임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시는 분도 생기시더라고요.
◇이대호> 연임하는 방법. 장기 집권하는 방법.
◆김유솔> 네. 저도 아직 장기까지는 아니라서 뭐 나름의. 이장 일이라는 게 저도 처음엔 아예 모르다 보니까 막 인터넷 검색을 해봤어요. 이장 일 잘하는 방법 하면 요새는 조금 영화가 나오면서 내용이 달라지긴 했는데 그 전까지만 해도 묘지 이장하는 방법 이런 게 되게 많이 떴었는데 지금은 영화가 나와서 막 파묘 막 이러면서 되게 그런 내용이 많아져서 아직도 이렇게 관련 정보는 검색을 해도 알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생각을 해 보니까 그래도 요새는 젊은 분들이 많이 늘어나다 보니까 어린 사람도 입장을 충분히 해도 괜찮겠다 이런 인식이 많이 생긴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마을에 아직 이런 분위기가 좀 조성이 안 된 분들은 오히려 약간 이런 사례를 많이 보여주시는 게 되게 좋겠다 생각이 듭니다.
◇이대호> 마지막으로 그 지방 이야기하면 지역 소멸 이런 이야기 많이 하지 않습니까? 젊은 사람들은 다 이제 일자리를 찾아서 도시로 나가게 되고. 그런데 이제 거꾸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서 이장이 되시는 입장에서 이 지역 소멸 혹은 또 이제 지역을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 한마디 부탁드릴게요.
◆김유솔> 저는 되게 지금 인식이 많이 바뀌면서 오히려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하는 때가 되게 많은데요. 제가 처음 완도에 내려왔을 때만 해도 실패해서 완도에 내려오는 거 아니냐 이런 인식을 되게 많이 받았었어요. 그런데 오히려 요새는 이렇게 지역에서 사업을 하거나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오히려 기회가 많이 생기고 있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완도 밖에 또는 지역 밖에 계신 분들한테는 조금 더 늦게 오시면 기회가 너무 늦지 않으실까.
◇이대호> 지금이 기회다.
◆김유솔> 네. 지금이 기회다. 나중에 오시면 조금 더 그땐 이미 늦은 거 아닐까 이렇게 이제 말씀을 드리고 싶고. 또 지역 내에서는 되게 좋은 방향을 못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지역에 있는 분들끼리 열심히 힘을 합쳐서 이제 지역의 특색을 좀 살려서 지역을 가꿔 나가는 걸 좀 중요하게 생각하시면서 다 같이 생활을 해 나가면 어떨까 생각을 합니다.
◇이대호> 3*** 님이 서울 생활 접고 완도읍 용암리로 이사 가야겠습니다. 귀향도 계획이 필요합니다. 준비가 필요합니다. 3*** 님은 이장님 말씀도 참 예쁘게 하시네요. 섬을 사랑하는 이장님이 있어서 완도 이장님 동네는 계속 새파란 마을로 쭉 계속될 것 같아요. 파이팅. 이렇게 보내주셨습니다. 김유솔 청년 이장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김유솔> 감사합니다.
인터뷰 자료의 저작권은 KBS라디오에 있습니다.
전문 게재나 인터뷰 인용 보도 시,
‘KBS 1라디오 성공예감 이대호입니다’와 같이
채널명과 정확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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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서 일하다 완도로 귀향 "완도가 이렇게 예뻤구나"
- 24살에 시작한 4년차 이장, 사진관과 도시재생활동도 병행
- 이장의 역할은? 지자체와 마을을 엮어주는 소통 창구
- 월급은 10만원 인상돼 月40만원..."매년 보너스도 나와요"
- 젊은 이장, 리더십 비결은? 어르신들의 따뜻한 격려 덕분
- 완도의 매력, 한적한 바다와 커피 한 잔..해양치유센터도 개설
- 폐가 리모델링, 손주학교 운영 등 '완망진창' 활동도
- 지역 소멸?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 모집..."위기가 기회다"
■ 프로그램명 : 성공예감 이대호입니다
■ 방송시간 : 12월 17일(화) 09:05-10:53 KBS1R FM 97.3MHz
■ 진행 : 이대호
■ 출연 : 김유솔 이장 (완도 용암리)
◇이대호> 성공예감 이대호입니다. 2부의 문을 열겠습니다. 전라남도 완도군의 주민 평균 연령이 68세라고 합니다. 물론 다리가 연결되어 있긴 한데 예전에 섬마을이라고 불렀었죠. 그런데 그곳에 전국 최연소 이장이 부임했습니다. 24살에 이장이 된 분. 아니, 어떻게 20대 중반에 이장이 될 수 있지? 의아하기도 한데요. 청년 이장의 하루는 어떨까요? 그리고 또 지방 소멸 시대에 어떻게 이 지역을 되살릴 수 있을지 같이 한번 고민해 보시죠. 전남 완도군 용암리 이장님입니다. 김유솔 이장님, 안녕하세요.
◆김유솔> 안녕하세요.
◇이대호> ‘제가 이 마을 이장인디요’ 이게 책 이름. 죄송합니다만 지금 나이가?
◆김유솔> 만 나이로 27살입니다.
◇이대호> 현재 27이고 24살에 이장이 되었고. 직업이 많더라고요. 사진관을 운영하고 계시고 그리고 완도군의 그 청년 단체 ‘완망진창’의 대표이시고 가장 중요한 건 완도읍 용암리 이장.
◆김유솔> 네. 완도군 완도읍 용암리 이장입니다.
◇이대호> 아마 이 질문 수백 번 들으셨겠습니다만 어떻게 하다가 이장이 되신 거예요?
◆김유솔> 네, 저는 완도에서 나고 자랐고요. 그러다 보니까 당연하게 일을 하려면 서울로 가야 된다 이렇게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한 6~7년 정도 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완도에 내려오게 됐는데 한 번씩 이렇게 오니까 완도가 예쁜 줄 몰랐었어요. 그런데 제가 서울에 있을 때 막 제주도고 어디 다른 데 여행을 다녀보니까 저는 바다가 그렇게 예쁜가 생각을 못하고 있었는데 완도에 다시 돌아와 보니까, 이게 그 바다나 이 바다나 이렇게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이렇게 예쁜 데를 맨날 보고 자랐으니까 그렇게 예쁜 줄 몰랐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사실이 되게 기뻐서 어떻게 하면 완도에 살 수 있을까 고민을 했었는데 그때 친구들이랑 얘기를 하다가 친구들이 얘기를 해 줘서 사진관을 운영을 하려고 생각을 하게 됐고. 사진관이 완도에 하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할아버지가 운영을 하셨는데 보정을 되게 달덩이처럼 해 주셨거든요. 여자애들의 미의 기준과 조금 달랐었는데.
◇이대호> 아, 그러니까 옛날 방식으로.
◆김유솔> 네. 그래서 친구들한테 내가 그냥 찍어줄게, 내가 보정해 줄게 하다가 친구들이 너 같은 애가 사진을 찍어줬으면 좋겠다 해서 사진관 한번 해볼까? 생각을 하고 내려오게 됐었어요.
◇이대호> 원래 서울에서는 디자인 일도 좀 하셨었다고 하고 약간 그쪽으로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데 또 어떻게 보면 20년 가까이 살아왔었던 같은 고향이고 같은 지역이고. 10대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게 20대 때는 보인 거네요. 그런데 원래는 고향을 떠나고 싶었다면서요. 그래서 실제로 떠난 거였잖아요.
◆김유솔> 네. 일단은 서울에서 진짜 먼 곳이거든요. 서울에서 있을 때는 그 회사 분들이 그 정도면 여권 들고 다녀야 되는 거 아니냐 할 정도로, 농담으로 그런 얘기를 하셨는데 사실 저는 학창 시절까지 완도를 좋아한 적이 진짜 없었어요. 너무 좁고 조금만 나가도 아는 사람들이 있다 보니까 저한테 너무 관심도 많이 가져주시고 그러다 보니까 그게 또 싫고 무엇보다 제일 중요했던 게 제 꿈이 디자이너였는데 디자인을 배울 수가 없는 거예요, 완도에서는. 그래서 나는 디자인을 배우고 싶은데 완도에서는 미술 학원도 없다 보니까 조금 막연하게 꿈을 갖고 있다가 이제 서울에 와서 좀 디자인학원도 다니고 준비를 해서 이제 중소기업에 디자이너로 취직을 하게 됐었어요.
◇이대호> 그렇죠. 어릴 때는 동네만 나가도 그 지역사회라고 하지 않습니까? 어느 집 누구 뭐 이런 게 다 나오니까, 누구 동생 누구. 근데 어린 마음에는 좀 싫을 수 있겠다. 완도 분들 많이 듣고 계시나 봅니다. 4*** 님이 ‘용암리 이장이어라’가 원어민 발음입니다. 알려주셨어요. 저도 완도 사람입니다. 젊은 이장님 부럽습니다. 이렇게 보내주셨고. 이** 님은 완도 한번 놀러 가야겠네요. 이렇게. 완도가 그 전남 중에서도 거의 끝에 있죠? 해남 밑에.
◆김유솔> 네. 저희는 육지가 아니라서 땅 끝 밑에 붙어 있는 섬들인 거죠.
◇이대호> 그런데 해남에서부터 다리로는 연결이 되어 있잖아요. 거기 섬들끼리는.
◆김유솔> 네. 다리로 연결이 돼 있어서, 그래서 육지로 쳐주신다면 땅 끝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대호> 그런데 그렇게 해서 서울로 떠났어요. 그런데 서울에서 한 4년 동안 생활을 해 본 거죠. 당연히 서울 생활 쉽지는 않았을 거고 어떻게 하다가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게 된 거예요? 그 마음을 먹은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
◆김유솔> 네. 서울에서 너무 멀다 보니까 전 명절에도 잘 안 내려갔었거든요. 그런데 휴가 때 자꾸 제가 완도에서 살았다고 하니까 저 빼고 다 완도에 놀러 가시더라고요. 볼 게 하나도 없는데 대체 왜 놀러 가시냐 여쭤보니까 막 너무 좋다고 하니까 또 소문에 소문을 타서 또 옆 회사 사람도 갔다 오고 이러시는데 그게 점점 저도 궁금해지는 거예요. 아니, 뭐가 좋아서 저렇게 가는 걸까 해서 저도 생각을 해보니까 완도에 한 번도 놀러 가본 적이 없다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대호> 그냥 평생 살았으니까.
◆김유솔> 네. 살아만 봤는데 그래서 한번 놀러 가보는 완도는 어떨까 생각을 하고 처음에 내려갔었어요.
◇이대호> 완도에 돌김이 유명한가요?
◆김유솔> 네. 김도 맛있죠.
◇이대호> 김** 님이 돌김에 참기름 발라 먹어야 된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남들은 그렇게 놀러 가고 아름다움을 찾아서 가는 곳이었는데 정작 그곳에 살던 사람은 떠나고 싶어 했고. 물론 어린 마음에 그럴 수 있겠죠. 그래서 다시 완도로 돌아가니까 보이지 않던 게 보였고, 어떻던가요? 처음에. 20살 가까이 살던 그 완도의 모습 다시 봤을 때.
◆김유솔> 저는 이렇게 예쁜 곳이 저희 제 고향이었나, 되게 기분이 좋았어요. 서울 사람들이 모든 것을 약간 내려놓고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하려고 제주도에 내려가시는 분들이 많아졌잖아요. 그런데 저는 이렇게 북적거리지 않는, 되게 꽁꽁 숨겨놓은 보물이 알고 보니 내 고향이었다. 이런 느낌이라서 되게 기분이 좋았고 뭔가 제가 구계등이나 완도에 있는 많은 곳들을 놀러 다녔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뭔가 몽돌이 부딪혀서 파도 소리가 나는 것도 너무 좋고 또 이렇게 숲도 가득한 것도 너무 좋고. 그런데 그 좋은 걸 되게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한적하게 즐길 수 있는 것도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좋은 곳에서 더 살고 싶다 생각을 하다 보니까 서울에서 완도로 내려올 준비를 계속하게 됐던 것 같아요.
◇이대호> 멀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새로운 게 또 보였던 거네요. 새로운 건 아니었는데, 그렇죠, 사실은. 안** 님이 완도가 외갓집이에요. 이렇게 보내주셨어요. 완도라는 말이 너무 반갑네요. 공기 맑고 바닷가 좋고 사람들도 다 좋아요. 이렇게 보내주셨어요. 다시 고향에 내려와서 사진관을 열었어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처음에 사진관 가서 찍으니까 너무 달덩이로 보정을 해 주셨고. 어떻게 하다가 사진관을 여셨는지는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장사가 잘 됐습니까, 초반에?
◆김유솔> 저도 걱정을 좀 많이 했는데요. 그런데 제가 생각했던 게 저 같은 여고생이 좀 없길 바라는 마음에서 달덩이들을 조금 더 홀쭉하게 찍어주자 생각을 했었어서 열심히 또 기술을 갈고 닦아가지고 보정을 해 줬었는데 하고 보니까 이게 보정도 중요하지만 좀 아쉬운 것들이 눈에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막 여자애들 앞머리도 잘라주고 막 고데기도 해주고 막 이렇게 세팅도 해주고 막 오지랖을 부리다 보니까 좀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좀 많이 나서 요새 중고등학생 친구들은 다 저희 가게에 와 주시는 것 같아요.
◇이대호> 이야, 그래서 어떻게 보면 더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신세대 사진관, 약간 이런 느낌이네요. 그런데 사진관을 하고 있는데 “자네 이장할 생각 없나?” 이런 제안을 받았다는 거예요?
◆김유솔> 네. 저희 가게 앞에 빈집이 원래 있었어요. 그 빈집을 되게 탐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뭐가 들어가더라고요. 그래서 아쉬워하고 있다가. 도시재생 센터라고 약간 공공기관 같아 보이는 게 들어왔는데 말 그대로 이렇게 도시를 재생시키는 일들을 하시더라고요. 궁금해서 저도 몇 번 참여를 하고 저희끼리 관련 프로그램도 하고 하다 보니까 거기에서 이장님을 뵙게 됐어요. 전 이장님을.
◇이대호> 네. 혹시 전 이장님의 연세는 어떻게 되셨나요?
◆김유솔> 아마 52년생, 그 정도 되셨던 것 같아요. 환갑이 넘으셨는데 사실 전 이장님도 이장님 치고는 굉장히 어린 축에 속하시는 편이셨거든요.
◇이대호> 잠시만요. 4년 전이면 거의 칠순에 가까운 연세셨을 텐데 이장님 중에서도 젊으신 편이었던 거예요, 그분이?
◆김유솔> 네. 52년생이시니까 칠순은 아직 안 되셨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젊으신 편이셨어요.
◇이대호> 그런데 그 제안을 받은 거예요?
◆김유솔> 네. 갑자기 저한테 차 한 잔 하자고 하셔가지고 좀, 사실 좀 겁을 엄청 먹었었어요. 약간 옆 반 담임 선생님이 갑자기 차 한 잔 하자고 하는 상황이었던 것 같은데.
◇이대호> 교무실로 오라고 하면.
◆김유솔> 네, 네. 그래서 내가 뭐 잘못했나? 이렇게 좀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이장을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 주셔 가지고 감사하게 또 그런 제안을 받게 됐었어요.
◇이대호> 아니, 그 전 이장님도 상당히 진취적인 분이셨네요. 24살, 어떻게 보면 청년에게 마을 이장을 맡길 그런 생각을 하셨다는 게. 어떤 면에서 본인이 그런 제안을 받은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지금 이것도 캐스팅인데.
◆김유솔> 일단은 제가 진짜 24살 정도 될 거라고 생각을 못 하셨을 것 같아요. 이게 가게를 하고 있으니까 그 정도로 어리진 않겠지, 생각을 하셨던 것도 있으신 것 같고. 무엇보다 활동을 해오면서 이렇게 마을에 관심을 가지는 모습을 좀 좋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여기저기 좀 물어보셨대요. 저 친구 어떠냐.
◇이대호> 평판 조회를 먼저 하셨구나.
◆김유솔> 네. 그래서 이런 일을 열심히 하는 친구다. 다행히 또 좋은 분들이 말씀을 해 주셔 가지고 그렇게 해서 좀 말을 하기까지 오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대호> 그러게, 어르신들은 다 계획이 있으십니다. 그냥 충동적으로 제안한 게 아니라 사전에 사진관 저 친구 어때, 이런 식으로 다 평판 조회를 하고 오신 거고. 완도 용암리 김유솔 이장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전원일기 같은 드라마 보면 저도 어릴 적에는 이제 시골에 있었어서 마을 회관으로 모여달라는, 혹은 이장님의 방송도 저는 어릴 적에 많이 들었었거든요. 지금도 그거 있나요? 혹시 이렇게 마이크 툭툭 치면서 아, 아, 아, 이렇게. 주민 여러분, 이렇게.
◆김유솔> 네. 저희 경로당에 방송을 할 수 있는 기계가 비치돼 있어요.
◇이대호> 혹시 직접 방송하세요, 그래서?
◆김유솔> 네. 그래서 마을 행사나 아니면 회의를 해야 되면 항상 마을 방송을 먼저 해요. 이따가 몇 시에 마을 회관에서 뭐를 진행할 예정인데 마을에 계신 모든 분들은 지금 경로당으로 오셔라, 이런 방송을 하고 있어요.
◇이대호> 보통 이장의 역할이라는 게 어떤 것이 있어요? 주요 업무라고 하면.
◆김유솔> 한마디로 정리하면 약간 지자체하고 마을을 엮어주는 소통 창구거든요. 그래서 마을에 민원이 생기면 제가 그걸 취합해서 지자체로 올려 보내고요. 지자체에서 하고 계시는 사업들을 마을 분이 이렇게 활용하실 수 있게 제가 좀 전달을 해드리는 역할을 하고 또 마을에 있는 크고 작은 일들을 처리해요. 그래서 가로등이라든지 아니면 폐가가 주변에 영향을 끼칠 것 같다 이러면 제가 지자체랑 연결을 해서 안전사고 없이 문제가 생기지 않게 미리 처리를 한다든지 이런 일들을 하고 있어요.
◇이대호> 어떻게 보면 연결고리고 육지와 섬을 이어주는 다리 같은 존재를 본인이 하고 있는 거네요. 지자체와 주민들을 연결해 주는 그런 다리 같은 존재. 혹시 이장은 임기제입니까? 임기가 어떻게 돼요?
◆김유솔> 임기는 1년이고요.
◇이대호> 짧은데요?
◆김유솔> 네. 그래서 해년마다 연말에 다시 회의를 해요. 그래서 1년씩 연장을 하고 있는 시스템으로 이렇게 매일매일 되게 쫄깃하게 벌써 3년 차 이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대호> 혹시 그러면 이번 임기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김유솔> 저번 주에 마을 회의를 했고 다행히 또 내년까지 해달라고 하셔가지고 4년 차가 될 예정입니다.
◇이대호> 임기 연장 축하드립니다.
◆김유솔> 감사합니다.
◇이대호> 그러면 3연임 되는 거네요. 1년씩 해서. 그러면 4년 차가 되는 거고. 혹시 이게 무슨 이장 후보 추천위원회나 무슨 위원회에서 추대를 하고 이런 과정이 있어요? 어떻게 돼요?
◆김유솔> 저희 마을은 워낙 사람이 많질 않아서요. 약간, 사실 새로운 후보가 생기면 미리 좀 분위기를 알 수가 있어요. 누가 어디 한번 나가봐라 이런 추천들을 서로 하시기도 하시고요. 그렇지만 뭔가 저도 그래서 긴장을 하고 있었어요. 저도 모르는 후보가 나오지 않을까. 그래서 마을 회의할 때 혹시 이장 하고 싶으신 분 계세요? 그러면 잠잠하고. 마을 분께서 계속 하지 뭐, 더 새롭게 할 사람이 있나, 얘기를 하셔가지고 이렇게 또 별 무리 없이 이렇게 쿨 하게 거수로 하거든요, 저희는. 이장해도 괜찮은 사람 손들어, 이러면 다 손 드시고.
◇이대호> 그렇게 해서 3연임에 성공하신 거고.
◆김유솔> 네, 하게 됐습니다.
◇이대호> 축하드립니다. 저희가 경제 방송이어서 그런데, 이런 거 여쭤봐야 되는지 모르겠는데 궁금하긴 하지 않습니까? 이장님의 급여는 얼마나 됩니까?
◆김유솔> 이장의 월급은 작년까지는 30만 원이었는데요.
◇이대호> 월급이?
◆김유솔> 네. 월급이 30만 원이었는데 올해 10만 원이 인상돼서 40만 원씩 받고 있고요. 또 명절에는 보너스가 나와서 그래서 이제 월급을 한 번 더 받습니다. 그래서 명절에는 80만 원씩.
◇이대호> 80만 원씩 나와요? 설과 추석 때 각각?
◆김유솔> 네. 보너스가 40만 원이라 80만 원의 보너스를 받아요, 1년에.
◇이대호> 이게 업무추진비 개념이에요? 아니면 별도로 또 뭐가 나와요? 활동비가?
◆김유솔> 이거는 순수 이장 월급이고요. 이제 마을별로 마을에 돈이 있긴 한데 이제 경로당 같은 경우에도 그 노인회에서 나오는 자금이 있어서 그걸로 경로당 운영을 하고 대부분은 좀 자체적으로 이렇게 모으시던지 뭐 이런 식으로 마을 사업을 하든지 해서 마을 돈을 만들어요. 그래서 이렇게 따로 나라에서 활동비를 받지는 않습니다.
◇이대호> 그거는 따로 이제 그 목적에 맞는 운영비가 따로따로 다른 항목들이 있는 거고 순수하게 급여는 월 40만 원. 이것도 올라서. 그런데 사실 이장하시는 분들이 또 다른 생업이 대부분 있으시잖아요. 뭐 농업이나 어업이나 다른 거 종사하시면서 이장을 또 하시다 보니까 되게 또 바쁘실 것 같아요. 신경 쓸 일도 많을 것 같고, 지역에서.
◆김유솔> 처음에는 그 비율을 맞추는 데 조금 시간이 많이 들었는데요. 그래도 이제 1, 2년 차 때 그래서 조금 많이 힘들었었어요. 이장 일도 중요한데 또 이장 일은 월급이 그렇게 크지 않다 보니까 제 본업을 해야 하기도 하고. 그런데 다행히 또 제가 하는 일들이 이장 일과 더불어서 할 수 있는 일이더라고요.
◇이대호> 사람 만나는 일이니까, 사진관도.
◆김유솔> 네. 대부분 마을 어르신들이 소개시켜 주시기도 하시고요. 무엇보다 사진관도 예약제로 지금 운영을 하고 있어서 시간 조율을 할 수 있게끔 이제 운영을 하고 있고 또 운영하고 있는 단체 같은 경우에도 이렇게 도시재생 활동을 하다 보니까 생각보다 더불어서 같이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장이다 보니까 주변 이장님들한테 이렇게 연락드리기도 되게 편하고 같이 마을에서 뭔가를 하기도 되게 좋고 해서 지금은 적응이 좀 많이 된 상태입니다.
◇이대호> 그리고 또 그 사진관을 하시니까 사진기 들고 다니시면서 그 지역에서 또 나름대로 활동도 하시고요. 다른 방송 보니까 사진기 들고 다니시면서 동네 어르신들도 사진 찍어드리고 하시더라고요. 되게 좋은 활동가 같고. 혹시 김유솔 이장님 같은 또래 청년들이 완도 특히 용암리에 많이 있나요?
◆김유솔> 저희 마을에는 없어요. 저희 마을에는 20대 친구들이 저 포함 3명 정도 있는 상황이고요. 10대 친구들이 한 집, 한 두 집 정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대호> 두 집밖에 없어요?
◆김유솔> 네. 10대, 20대 포함해서 10명이 넘지 않는 상황이고요. 이제 근처 마을들도 조금 비슷한데 여기저기 섬에서 친구들을 모아서 같이 놀고 어울리고 이러고 있는 상황이에요.
◇이대호> 용암리 전체 100가구가 안 된다고요?
◆김유솔> 네. 저희가 67세대 정도 살고 있고요. 총 105명 정도 살고 있어요, 저희 마을에.
◇이대호> 105분 정도? 그러니까 용암리만?
◆김유솔> 네. 용암리만.
◇이대호> 완도군으로 따지면 훨씬 더 이제 많으실 테고. 그런데 사실 20대 중반에 이장이 돼서 뭔가 이제 리더십을 발휘를 해야 되는데 주변 분들은 다 어르신들이고 어르신들 사이에서 리더십을 발휘한다는 게 되게 쉽지 않았을 거 아니에요.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김유솔> 처음에는 이제 어르신들도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이렇게 어린데 잘 운영을 할 수 있을까 해서. 아니나 다를까 첫 해에 조금 실수가 있었지만 어르신들이 엄청 개방적이시거든요. 그래서 저한테 이제 실수하는 거는 어려도 나이가 많아도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다. 뭐 이렇게 배우는 시간이 있어야 나중에 더 잘하는 시간도 있다. 이렇게 전 전 이장님이 말씀을 해 주셔서 또 그거에 힘입어서 마을 분위기가 좀 이장한테 많이 알려주자, 이렇게 많이 알려주시고 도와주시고 하다 보니까.
◇이대호> 오히려 어르신들이 더 도와주시는.
◆김유솔> 네. 다행히 또 마을 어르신들이 저한테 편하게 부르질 않으세요. 꼭 이장님 이렇게 불러주시거든요. 너무 감사하게 제가 조금 불리할 때는 또 젊어서 그런다 이렇게 말씀해 주시고 제가 잘한 거 있으면 역시 우리 이장이다 이렇게 높여 주시거든요.
◇이대호> 좋으신 분들이네요.
◆김유솔> 그래서 열심히 이렇게 어부바 받으면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대호> 격려도 많이 받으시는 거고. 혹시 혼난 적은 없어요?
◆김유솔> 혼난 적도 있긴 한데요. 그게 많지 않아서. 꼭 혼나면서 다음에는 어떻게 해라 이렇게 알려주세요.
◇이대호> 그냥 혼만 내는 게 아니라 따뜻한 조언까지. 좋은 어르신분들과 함께 살고 계시네요. 그런데 아까 그 20대 청년이 3명, 그리고 10대까지 해도 두 집 정도밖에 안 된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또래 친구들하고 어울리고 또 어디 나가서 놀고 싶고 약간 그런 생각은 안 들어요? 또 이제 완도로 간 지 지금 한 4년?
◆김유솔> 한 6년 차 됐는데요. 처음에는 좀 걱정을 많이 했어요. 놀 것도 없고 내가 완도에 내려가서 잘 버틸 수 있을까. 이미 맛을 한번 봐버렸는데.
◇이대호> 서울에서 4년 살고 내려갔으니까.
◆김유솔> 네. 그래서 그렇게 괜찮을까 또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또 완도에 저 같은 토박이 친구들이 있어서 그 친구들이랑 어울려서 놀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기대감이 많이 줄었던 것 같아요. 서울에서는 워낙 정보도 많고 놀 것도 너무 많다 보니까 기대를 조금 했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좀 더 재미있게 놀까, 더 멋있는 곳을 갈까 했는데 완도에서는 그런 부담이 전혀 없다 보니까 뭘 해도 되게 바다 보면서 커피 한 잔 마시는 것도 즐겁고 약간 되게 별거 아닌 것도 행복함을 많이 느끼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좀 더 마음이 홀가분해진 상태로 지내게 되는 것 같아요.
◇이대호> 왜 그런 얘기 있잖아요. 가장 행복해지는 방법은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다. 약간 그거를 젊은 나이에 벌써 깨달은 거네요.
◆김유솔> 그런가 봐요.
◇이대호> 혹시 아까 1*** 님도 그렇고 완도 용암리를 관광단지로 개발해 보면 어떨까요 이런 이야기도 해 주셨는데. 완도에서 가볼 만한 곳, 추천하는 곳 어디 있으세요?
◆김유솔> 저는 이게 명사십리나 이런 좋은 바다들도 있지만 이름 없는 공원들이, 유명해지지 않은 공원들이 꽤 있거든요. 그래서 뭐 갯바람공원이라든지 일몰공원이라고 바다에 맞붙어 있는 공원들이 있는데 거기에 가보시면 뭔가 좀 한적하게 바다를 즐기실 수 있어서 또 좋기도 하고 완도 자체를 또 휴식으로 많이 오시잖아요. 그래서 완도에 최근에 해양치유센터라고 생겼거든요. 완도에 있는 해조류나 아니면 완도에 있는 자원들로 센터를 운영을 하시는데 저희 온수풀도 있고 해서 휴식을 즐기기에 되게 좋은 곳이거든요. 그래서 완도에 오시면 그렇게 좀 휴식을 즐기시는 시간을 많이 가지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대호> 해양과 함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센터. 좋네요. 온수풀도 나오고. 여기에도 왜 그 빈집들은 좀 있지 않나요? 그런 거 어떻게 개조해서 요즘에 한달살이하고 막 이런 것도 있다던데. 그 지역에는 어때요?
◆김유솔> 일단은 빈집 비율이 되게 높은 편이고요. 저희 완망진창이라고 팀을 운영하고 있는데 저희 팀에서 최근에도 폐가를 리모델링을 해서 한달살기 숙소로 개조해서 지금 프로그램을 운영을 했어요. 그래서 외지에 있는 청년들한테 제공을 하면서 완도에서 좀 사실 수 있게 제공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활용할 수 있는 폐가도 있지만 완도에는 빈집 비율이 높지만 사용할 수 없는 빈집도 굉장히 많거든요.
◇이대호> 당장은 쓰기 힘들고 뭔가 좀 돈 들여서 고쳐야만 하는 상태.
◆김유솔> 그래서 저희 마을도 빈집 비율이 높지만 그중에 폐가가 굉장히 많은 비율로 있는 상황이에요.
◇이대호> 그러니까 지금 청년공동체 완망진창을 이끌고 있는 대표이기도 한데. 이게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지역 사회적인 일을 하는 거네요. 그런데 아까 20대 청년이 3명이라고 했는데 청년공동체면 3명에서 하시는 거예요? 아니면 청년이 거의 한 50대까지 올라가나요?
◆김유솔> 완도는 청년 기준이 49세까지긴 한데요. 그런데 사실 완도읍에 있는 친구들뿐만 아니라 뭐 어디 신지에 있는 친구들이라든지 저희가 싹싹 긁어 모았거든요. 그래서 그 완도 토박이라는 공통점으로 이제 5명 정도가 모여서 지금 팀을 운영하고 있고.
◇이대호> 싹싹 모아서 5명이다. 또 어떤 일을 하는 거예요? 완망진창이라는 단체가?
◆김유솔> 저희 팀에서는 처음에는 너무 친구들이 없으니까 어떻게 하면 좀 친구들을 완도에 데려올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이 친구들이 다시 완도에 내려올 생각을 할까 고민을 하면서 놀 게 없다, 우리가 만들어야겠다 이 생각을 하고 시작을 하게 됐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플리마켓을 운영을 한다든지.
◇이대호> 벼룩시장 같은 거.
◆김유솔> 약간 문제점을 해결하다 보니까 좀 운영을 하게 됐는 뭐 완도에 놀 거 없다고 하도 많이 말을 하니까 그거를 정리한 웹 지도를 만들기도 하고요. 또 주말만 되면 다들 수도권으로 놀러 가느라 완도가 주말에 텅텅 비는데 그걸 좀 해결하고 싶어서 주말에 플리마켓을 운영을 한다든지. 또 제가 생각해 보니까 완도에 좀 정착을 하려면 지역을 잘 아는 사람들을 만나야 되는데 그런 걸 할 수가 없으니까 만날 기회가 없어서 좀 정착을 제대로 못하는 거 아닐까 생각을 하게 돼서 저희가 손주학교라는 프로그램을 운영을 해서.
◇이대호> 손주학교요?
◆김유솔> 네. 그래서 손주 같은 친구들이 어르신들한테 핸드폰 사용 방법을 알려드리는 프로그램이에요. 이게 좀 봉사 프로그램 같아 보이긴 하는데 이 프로그램 끝나면 아는 할머니, 아는 할아버지가 생기게 돼서 뭐 집을 구해도 조금 조언을 해 주실 수도 있고 또 완도 같은 경우에는 아는 집을 챙겨주지 모르는 사람을 잘 챙겨주기는 조금 부담스럽다 보니까 뭐 부동산도 제대로 없는 상황이 많거든요.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고. 하다못해 가을철에는 저희 마을만 걸어가도 감을 막 선물 받기도 한다든지 이렇게 손에 이렇게 음식이 가득해지는 상황들이 생기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이런 손주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하고. 또 경력이 있지만 주부 생활을 하다 보니까 안 되신 분들이랑 또 지역 소상공인 분들이랑 같이 클래스를 운영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하기도 하고 또 청년 마을 운영하기도 하고 있습니다.
◇이대호> 하는 일이 되게 많네요. 이거를 다른 생업도 하면서. 사진관도 하고 이장 생활도 하면서 지역 청년공동체도 운영을 하고 계시는 거고. 그런데 그 아까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청년들까지 싹싹 긁어 모으고 계시다고 했는데 사실 청년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려면 일자리가 있어야 되잖아요. 이 측면은 물론 이제 이거는 한두 명이 어떻게 바꿀 수 있는 거는 아닙니다만 일자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유솔> 저는 사실 일자리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청년 친구들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완도에 많은 친구들이 없는 이유가 일자리는 생각보다 좀 더 있거든요. 그런데 의외로 일자리가 없어서 안 오신다기보다는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뚜렷하지만 그걸 완도에서 할 수 없어서 못 오는 친구들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뭔가 하다못해 일자리를 구해도 제가 하고 있는 전공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런데 그게 완도에서는 어업과 수산업이 너무 집중되어 있다 보니까 좀 다양한 친구들이 완도에 오기가 힘든 거죠. 그러다 보니까 생기는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이대호> 그런데 우리 김유솔 이장님은 서울에서 웹 디자인 같은 거 하셨다고 하는데 사실 이런 거는 서울에서 온라인으로 외주 같은 걸로 받아서 컴퓨터로 일하고 온라인으로 보내주고 화상으로 회의하고 이런 것도 가능하잖아요. 물론 이제 업종에 따라서.
◆김유솔> 그래서 저희도 완도에 이렇게 청년분들을 모셔올 때 제일 이렇게 초점을 뒀던 게 완도에 조금 오시기 쉬운 직종을 가지신 분들을 초대를 해보자 생각을 해서 예술이나 이렇게 예체능 쪽에 종사하시는 분들을 대부분 모셔왔어요. 그러다 보니까 저희가 세 분 정도 완도에 정착을 하시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그런 분들을 시작으로 이렇게 다양한 직업군들이 모여야 좀 완도에 그 사람들이랑 같이 살 수 있는 다양한 생활권의 사람들도 올 수 있는 것 같아요.
◇이대호> 계속 또 새로운 사람들이 모여들어야 더 많은 사람들이 또 모이게 되고 이런 식으로. 그러면서 그 공동체가 커져 나가는 거죠.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제 시작인 거고. 좋은 일도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아까 봤더니 이런 얘기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코가 좀 반짝거리십니다. 피어싱을 하셨는데 이게 섬마을 어르신들한테 더 눈에 띄었다면서요?
◆김유솔> 네. 오히려 제가 좀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은데요. 하필 이장 임기 되자마자 코로나가 운영되는 바람에 오히려 어르신들께 한 1~2년간은 제가 열심히 피어싱을 좀 숨겼어요.
◇이대호> 마스크 쓰면서.
◆김유솔> 네. 놀라실까 봐. 무엇보다 저도 어르신들이 당연히 이런 피어싱을 안 좋아하실 거다. 이렇게 생각을 해서. 그래서 마스크를 쓰고 좀 한 1~2년은 숨기고 다녔었는데요. 어느 날 이제 어머니들이 입에 약과를 넣어 주시겠다고 이장 아, 해 봐 이래서 저도 마스크를 확 내리고 받아먹었는데 아차 싶더라고요. 그런데 그 순간 되게 정적이 있었는데 어르신들이 이장 코걸이 했냐고 이렇게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네 이랬는데 그렇게 이제 어머니가 말씀 안 해 주시길래 놀라셔서 별 말씀을 못 하셨나 보다 이랬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다른 분들이 와서 이장이 코 피어싱 하면 어때요 이렇게 물어보시는 거예요. 그래서 어머니들이 모르실 텐데 이거를 어떡하지? 무엇보다 이거를 되게 안 좋게 보실 것 같은데 뭐라고 대답하실지 굉장히 저도 긴장을 했는데 이게 젊은이들만의 멋이 있는 것 같다고 예쁘게 하고 다니면 너무 좋지 이러면서 되게 좋게 봐주시더라고요. 그래서 다행히. 그때 이후로는 오히려 알 크기를 좀 더 키워 가지고 다니기도 하고 좀 당당하게 하고 다니고 있습니다.
◇이대호> 그래도 우리 어르신들 만나면 특히 이제 지역에서는 이제 스물여덟 되시는 건데 요즘에는 이런 조언을 하는 게 좀 금기어라고는 하는데 어르신분들 중에서는 그래도 꼭 결혼이나 이런 거 걱정하시는 분들 계시지 않으세요?
◆김유솔> 네. 많으시죠. 그런데 약간 제가 아무나 만날까 봐 걱정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이대호> 오히려 좋은 사람 만나야 된다.
◆김유솔> 제가 이제 제일 걱정을 하셨던 것도 이장 일을 할 때 미혼인 거를 걱정을 하셨어요. 미혼이면 결혼하면서 마을을 떠날 확률이 높다 이렇게 생각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결혼해도 여기 있을 거다 했지만 안 믿으셨었어요. 그런데 지금 임기도 조금 길어지고 하다 보니까 이제 결혼 얘기가 조금씩 나오고 있는데. 그래서 어르신들한테 최근에 이제 남자친구를 소개하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처음 본 날 하신 말씀에 어디 데리고 가버리면 안 된다고. 마을에서 떠나면 안 된다고.
◇이대호> 데리고 육지로 갈까 봐.
◆김유솔> 네. 그러니까 시집을 가는 게 아니라 장가를 와야 한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요새는 맛있는 거 하면 이렇게 꼭 같이 와서 먹으라고 말씀을 많이 하기도 하세요.
◇이대호> 그 이장 생활하면서 위기도 있었다면서요. 이장에서 쫓겨날 뻔했다고도. 어떤 일이었어요?
◆김유솔> 제가 첫 이장 일을 부임을 했을 때 뭘 어떻게 하는지 모르다 보니까 작년에 한 걸 그대로 하면 되는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이장이 바뀌었다는 건 약간 정권이 바뀌었다는 것과 같은 내용이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이제 기존에 진행됐던 일들도 다시 공지를 하고 다시 했었어야 하는데 저희가 마을 사업을 운영을 하고 있는데 제가 마을에 허락도 안 받고 진행을 해버렸던 거죠. 그래서 마을이 뒤집어졌었어요. 그래서 이거 어떻게 된 일인 거냐. 그러면서 마을회의가 갑자기 열리게 됐고 그때 이제 피바람이 불더니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냐 그래서 죄송합니다. 저는 작년에 하던 걸 그대로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이래서 이거는 꼭 허락을 받고 진행을 해야 한다. 또 다행히 알려주셨고 그때 되게 진지하게 물어보시더라고요. 이장이 하고 싶냐. 사실 제가 좀 겁을 먹고 어르신들께 말씀을 드렸어요. 제가 너무 실수하는 것 같아서 이장 일을 제가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말씀을 드렸는데 그때 이제 어르신들이 말씀을 많이 해 주셨죠. 처음에 못하는 게 되게 당연하고 하면서 배우는 거니까 한번 하겠다고 해봐라. 나는 이장이 이장을 하겠다고 해서, 손녀가 이렇게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너무 편해서 되게 편하게 말할 수 있었는데. 그래서 이장이 이장을 해서 좋았다. 이렇게 말씀을 해 주시다 보니까 다행히 고비를 넘겨서 하게 됐던 것 같아요.
◇이대호> 그렇죠. 24살에 이장은 처음이라. 그랬었던 것 같고 또 많은 어르신들이 또 이해를 해 주셨고 잘 넘겼고. 이게 이장도 권력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왜 우리가 권한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게 권력과 한도, 한계라는 뜻을 갖고 있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디까지 이 힘을 또는 권력을 써야 하는지는 지역 주민들과 또 국민들과 또 함께 의견을 나눠야 되는 거고요. 아무래도 그 최연소 이장 또 여성 이장이라는 타이틀이 또 화제가 되다 보니까 전국적으로 지금 이장되는 방법을 많이 또 물어본다면서요?
◆김유솔> 네. 되게 신기한 게 이장이 왜 하고 싶으신지 저도 이장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는데요. 이 이장 일을 하면서 어르신들한테 사랑받는 걸 조금 다들 좋게 봐주셨는지 이장이 되고 싶은 분들이 연락이 오시기도 하고 또 어떻게 해야 뭐 이렇게 연임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시는 분도 생기시더라고요.
◇이대호> 연임하는 방법. 장기 집권하는 방법.
◆김유솔> 네. 저도 아직 장기까지는 아니라서 뭐 나름의. 이장 일이라는 게 저도 처음엔 아예 모르다 보니까 막 인터넷 검색을 해봤어요. 이장 일 잘하는 방법 하면 요새는 조금 영화가 나오면서 내용이 달라지긴 했는데 그 전까지만 해도 묘지 이장하는 방법 이런 게 되게 많이 떴었는데 지금은 영화가 나와서 막 파묘 막 이러면서 되게 그런 내용이 많아져서 아직도 이렇게 관련 정보는 검색을 해도 알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생각을 해 보니까 그래도 요새는 젊은 분들이 많이 늘어나다 보니까 어린 사람도 입장을 충분히 해도 괜찮겠다 이런 인식이 많이 생긴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마을에 아직 이런 분위기가 좀 조성이 안 된 분들은 오히려 약간 이런 사례를 많이 보여주시는 게 되게 좋겠다 생각이 듭니다.
◇이대호> 마지막으로 그 지방 이야기하면 지역 소멸 이런 이야기 많이 하지 않습니까? 젊은 사람들은 다 이제 일자리를 찾아서 도시로 나가게 되고. 그런데 이제 거꾸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서 이장이 되시는 입장에서 이 지역 소멸 혹은 또 이제 지역을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 한마디 부탁드릴게요.
◆김유솔> 저는 되게 지금 인식이 많이 바뀌면서 오히려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하는 때가 되게 많은데요. 제가 처음 완도에 내려왔을 때만 해도 실패해서 완도에 내려오는 거 아니냐 이런 인식을 되게 많이 받았었어요. 그런데 오히려 요새는 이렇게 지역에서 사업을 하거나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오히려 기회가 많이 생기고 있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완도 밖에 또는 지역 밖에 계신 분들한테는 조금 더 늦게 오시면 기회가 너무 늦지 않으실까.
◇이대호> 지금이 기회다.
◆김유솔> 네. 지금이 기회다. 나중에 오시면 조금 더 그땐 이미 늦은 거 아닐까 이렇게 이제 말씀을 드리고 싶고. 또 지역 내에서는 되게 좋은 방향을 못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지역에 있는 분들끼리 열심히 힘을 합쳐서 이제 지역의 특색을 좀 살려서 지역을 가꿔 나가는 걸 좀 중요하게 생각하시면서 다 같이 생활을 해 나가면 어떨까 생각을 합니다.
◇이대호> 3*** 님이 서울 생활 접고 완도읍 용암리로 이사 가야겠습니다. 귀향도 계획이 필요합니다. 준비가 필요합니다. 3*** 님은 이장님 말씀도 참 예쁘게 하시네요. 섬을 사랑하는 이장님이 있어서 완도 이장님 동네는 계속 새파란 마을로 쭉 계속될 것 같아요. 파이팅. 이렇게 보내주셨습니다. 김유솔 청년 이장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김유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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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공예감] “자네, 이장할 생각 없나?” 완도 어르신들한테 캐스팅 당한 20대 이장 – 김유솔 이장 (완도 용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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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4-12-17 13:51:46
- 수정2024-12-18 17: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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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료의 저작권은 KBS라디오에 있습니다.
전문 게재나 인터뷰 인용 보도 시,
‘KBS 1라디오 성공예감 이대호입니다’와 같이
채널명과 정확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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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서 일하다 완도로 귀향 "완도가 이렇게 예뻤구나"
- 24살에 시작한 4년차 이장, 사진관과 도시재생활동도 병행
- 이장의 역할은? 지자체와 마을을 엮어주는 소통 창구
- 월급은 10만원 인상돼 月40만원..."매년 보너스도 나와요"
- 젊은 이장, 리더십 비결은? 어르신들의 따뜻한 격려 덕분
- 완도의 매력, 한적한 바다와 커피 한 잔..해양치유센터도 개설
- 폐가 리모델링, 손주학교 운영 등 '완망진창' 활동도
- 지역 소멸?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 모집..."위기가 기회다"
■ 프로그램명 : 성공예감 이대호입니다
■ 방송시간 : 12월 17일(화) 09:05-10:53 KBS1R FM 97.3MHz
■ 진행 : 이대호
■ 출연 : 김유솔 이장 (완도 용암리)
◇이대호> 성공예감 이대호입니다. 2부의 문을 열겠습니다. 전라남도 완도군의 주민 평균 연령이 68세라고 합니다. 물론 다리가 연결되어 있긴 한데 예전에 섬마을이라고 불렀었죠. 그런데 그곳에 전국 최연소 이장이 부임했습니다. 24살에 이장이 된 분. 아니, 어떻게 20대 중반에 이장이 될 수 있지? 의아하기도 한데요. 청년 이장의 하루는 어떨까요? 그리고 또 지방 소멸 시대에 어떻게 이 지역을 되살릴 수 있을지 같이 한번 고민해 보시죠. 전남 완도군 용암리 이장님입니다. 김유솔 이장님, 안녕하세요.
◆김유솔> 안녕하세요.
◇이대호> ‘제가 이 마을 이장인디요’ 이게 책 이름. 죄송합니다만 지금 나이가?
◆김유솔> 만 나이로 27살입니다.
◇이대호> 현재 27이고 24살에 이장이 되었고. 직업이 많더라고요. 사진관을 운영하고 계시고 그리고 완도군의 그 청년 단체 ‘완망진창’의 대표이시고 가장 중요한 건 완도읍 용암리 이장.
◆김유솔> 네. 완도군 완도읍 용암리 이장입니다.
◇이대호> 아마 이 질문 수백 번 들으셨겠습니다만 어떻게 하다가 이장이 되신 거예요?
◆김유솔> 네, 저는 완도에서 나고 자랐고요. 그러다 보니까 당연하게 일을 하려면 서울로 가야 된다 이렇게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한 6~7년 정도 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완도에 내려오게 됐는데 한 번씩 이렇게 오니까 완도가 예쁜 줄 몰랐었어요. 그런데 제가 서울에 있을 때 막 제주도고 어디 다른 데 여행을 다녀보니까 저는 바다가 그렇게 예쁜가 생각을 못하고 있었는데 완도에 다시 돌아와 보니까, 이게 그 바다나 이 바다나 이렇게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이렇게 예쁜 데를 맨날 보고 자랐으니까 그렇게 예쁜 줄 몰랐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사실이 되게 기뻐서 어떻게 하면 완도에 살 수 있을까 고민을 했었는데 그때 친구들이랑 얘기를 하다가 친구들이 얘기를 해 줘서 사진관을 운영을 하려고 생각을 하게 됐고. 사진관이 완도에 하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할아버지가 운영을 하셨는데 보정을 되게 달덩이처럼 해 주셨거든요. 여자애들의 미의 기준과 조금 달랐었는데.
◇이대호> 아, 그러니까 옛날 방식으로.
◆김유솔> 네. 그래서 친구들한테 내가 그냥 찍어줄게, 내가 보정해 줄게 하다가 친구들이 너 같은 애가 사진을 찍어줬으면 좋겠다 해서 사진관 한번 해볼까? 생각을 하고 내려오게 됐었어요.
◇이대호> 원래 서울에서는 디자인 일도 좀 하셨었다고 하고 약간 그쪽으로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데 또 어떻게 보면 20년 가까이 살아왔었던 같은 고향이고 같은 지역이고. 10대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게 20대 때는 보인 거네요. 그런데 원래는 고향을 떠나고 싶었다면서요. 그래서 실제로 떠난 거였잖아요.
◆김유솔> 네. 일단은 서울에서 진짜 먼 곳이거든요. 서울에서 있을 때는 그 회사 분들이 그 정도면 여권 들고 다녀야 되는 거 아니냐 할 정도로, 농담으로 그런 얘기를 하셨는데 사실 저는 학창 시절까지 완도를 좋아한 적이 진짜 없었어요. 너무 좁고 조금만 나가도 아는 사람들이 있다 보니까 저한테 너무 관심도 많이 가져주시고 그러다 보니까 그게 또 싫고 무엇보다 제일 중요했던 게 제 꿈이 디자이너였는데 디자인을 배울 수가 없는 거예요, 완도에서는. 그래서 나는 디자인을 배우고 싶은데 완도에서는 미술 학원도 없다 보니까 조금 막연하게 꿈을 갖고 있다가 이제 서울에 와서 좀 디자인학원도 다니고 준비를 해서 이제 중소기업에 디자이너로 취직을 하게 됐었어요.
◇이대호> 그렇죠. 어릴 때는 동네만 나가도 그 지역사회라고 하지 않습니까? 어느 집 누구 뭐 이런 게 다 나오니까, 누구 동생 누구. 근데 어린 마음에는 좀 싫을 수 있겠다. 완도 분들 많이 듣고 계시나 봅니다. 4*** 님이 ‘용암리 이장이어라’가 원어민 발음입니다. 알려주셨어요. 저도 완도 사람입니다. 젊은 이장님 부럽습니다. 이렇게 보내주셨고. 이** 님은 완도 한번 놀러 가야겠네요. 이렇게. 완도가 그 전남 중에서도 거의 끝에 있죠? 해남 밑에.
◆김유솔> 네. 저희는 육지가 아니라서 땅 끝 밑에 붙어 있는 섬들인 거죠.
◇이대호> 그런데 해남에서부터 다리로는 연결이 되어 있잖아요. 거기 섬들끼리는.
◆김유솔> 네. 다리로 연결이 돼 있어서, 그래서 육지로 쳐주신다면 땅 끝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대호> 그런데 그렇게 해서 서울로 떠났어요. 그런데 서울에서 한 4년 동안 생활을 해 본 거죠. 당연히 서울 생활 쉽지는 않았을 거고 어떻게 하다가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게 된 거예요? 그 마음을 먹은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
◆김유솔> 네. 서울에서 너무 멀다 보니까 전 명절에도 잘 안 내려갔었거든요. 그런데 휴가 때 자꾸 제가 완도에서 살았다고 하니까 저 빼고 다 완도에 놀러 가시더라고요. 볼 게 하나도 없는데 대체 왜 놀러 가시냐 여쭤보니까 막 너무 좋다고 하니까 또 소문에 소문을 타서 또 옆 회사 사람도 갔다 오고 이러시는데 그게 점점 저도 궁금해지는 거예요. 아니, 뭐가 좋아서 저렇게 가는 걸까 해서 저도 생각을 해보니까 완도에 한 번도 놀러 가본 적이 없다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대호> 그냥 평생 살았으니까.
◆김유솔> 네. 살아만 봤는데 그래서 한번 놀러 가보는 완도는 어떨까 생각을 하고 처음에 내려갔었어요.
◇이대호> 완도에 돌김이 유명한가요?
◆김유솔> 네. 김도 맛있죠.
◇이대호> 김** 님이 돌김에 참기름 발라 먹어야 된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남들은 그렇게 놀러 가고 아름다움을 찾아서 가는 곳이었는데 정작 그곳에 살던 사람은 떠나고 싶어 했고. 물론 어린 마음에 그럴 수 있겠죠. 그래서 다시 완도로 돌아가니까 보이지 않던 게 보였고, 어떻던가요? 처음에. 20살 가까이 살던 그 완도의 모습 다시 봤을 때.
◆김유솔> 저는 이렇게 예쁜 곳이 저희 제 고향이었나, 되게 기분이 좋았어요. 서울 사람들이 모든 것을 약간 내려놓고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하려고 제주도에 내려가시는 분들이 많아졌잖아요. 그런데 저는 이렇게 북적거리지 않는, 되게 꽁꽁 숨겨놓은 보물이 알고 보니 내 고향이었다. 이런 느낌이라서 되게 기분이 좋았고 뭔가 제가 구계등이나 완도에 있는 많은 곳들을 놀러 다녔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뭔가 몽돌이 부딪혀서 파도 소리가 나는 것도 너무 좋고 또 이렇게 숲도 가득한 것도 너무 좋고. 그런데 그 좋은 걸 되게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한적하게 즐길 수 있는 것도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좋은 곳에서 더 살고 싶다 생각을 하다 보니까 서울에서 완도로 내려올 준비를 계속하게 됐던 것 같아요.
◇이대호> 멀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새로운 게 또 보였던 거네요. 새로운 건 아니었는데, 그렇죠, 사실은. 안** 님이 완도가 외갓집이에요. 이렇게 보내주셨어요. 완도라는 말이 너무 반갑네요. 공기 맑고 바닷가 좋고 사람들도 다 좋아요. 이렇게 보내주셨어요. 다시 고향에 내려와서 사진관을 열었어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처음에 사진관 가서 찍으니까 너무 달덩이로 보정을 해 주셨고. 어떻게 하다가 사진관을 여셨는지는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장사가 잘 됐습니까, 초반에?
◆김유솔> 저도 걱정을 좀 많이 했는데요. 그런데 제가 생각했던 게 저 같은 여고생이 좀 없길 바라는 마음에서 달덩이들을 조금 더 홀쭉하게 찍어주자 생각을 했었어서 열심히 또 기술을 갈고 닦아가지고 보정을 해 줬었는데 하고 보니까 이게 보정도 중요하지만 좀 아쉬운 것들이 눈에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막 여자애들 앞머리도 잘라주고 막 고데기도 해주고 막 이렇게 세팅도 해주고 막 오지랖을 부리다 보니까 좀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좀 많이 나서 요새 중고등학생 친구들은 다 저희 가게에 와 주시는 것 같아요.
◇이대호> 이야, 그래서 어떻게 보면 더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신세대 사진관, 약간 이런 느낌이네요. 그런데 사진관을 하고 있는데 “자네 이장할 생각 없나?” 이런 제안을 받았다는 거예요?
◆김유솔> 네. 저희 가게 앞에 빈집이 원래 있었어요. 그 빈집을 되게 탐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뭐가 들어가더라고요. 그래서 아쉬워하고 있다가. 도시재생 센터라고 약간 공공기관 같아 보이는 게 들어왔는데 말 그대로 이렇게 도시를 재생시키는 일들을 하시더라고요. 궁금해서 저도 몇 번 참여를 하고 저희끼리 관련 프로그램도 하고 하다 보니까 거기에서 이장님을 뵙게 됐어요. 전 이장님을.
◇이대호> 네. 혹시 전 이장님의 연세는 어떻게 되셨나요?
◆김유솔> 아마 52년생, 그 정도 되셨던 것 같아요. 환갑이 넘으셨는데 사실 전 이장님도 이장님 치고는 굉장히 어린 축에 속하시는 편이셨거든요.
◇이대호> 잠시만요. 4년 전이면 거의 칠순에 가까운 연세셨을 텐데 이장님 중에서도 젊으신 편이었던 거예요, 그분이?
◆김유솔> 네. 52년생이시니까 칠순은 아직 안 되셨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젊으신 편이셨어요.
◇이대호> 그런데 그 제안을 받은 거예요?
◆김유솔> 네. 갑자기 저한테 차 한 잔 하자고 하셔가지고 좀, 사실 좀 겁을 엄청 먹었었어요. 약간 옆 반 담임 선생님이 갑자기 차 한 잔 하자고 하는 상황이었던 것 같은데.
◇이대호> 교무실로 오라고 하면.
◆김유솔> 네, 네. 그래서 내가 뭐 잘못했나? 이렇게 좀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이장을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 주셔 가지고 감사하게 또 그런 제안을 받게 됐었어요.
◇이대호> 아니, 그 전 이장님도 상당히 진취적인 분이셨네요. 24살, 어떻게 보면 청년에게 마을 이장을 맡길 그런 생각을 하셨다는 게. 어떤 면에서 본인이 그런 제안을 받은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지금 이것도 캐스팅인데.
◆김유솔> 일단은 제가 진짜 24살 정도 될 거라고 생각을 못 하셨을 것 같아요. 이게 가게를 하고 있으니까 그 정도로 어리진 않겠지, 생각을 하셨던 것도 있으신 것 같고. 무엇보다 활동을 해오면서 이렇게 마을에 관심을 가지는 모습을 좀 좋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여기저기 좀 물어보셨대요. 저 친구 어떠냐.
◇이대호> 평판 조회를 먼저 하셨구나.
◆김유솔> 네. 그래서 이런 일을 열심히 하는 친구다. 다행히 또 좋은 분들이 말씀을 해 주셔 가지고 그렇게 해서 좀 말을 하기까지 오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대호> 그러게, 어르신들은 다 계획이 있으십니다. 그냥 충동적으로 제안한 게 아니라 사전에 사진관 저 친구 어때, 이런 식으로 다 평판 조회를 하고 오신 거고. 완도 용암리 김유솔 이장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전원일기 같은 드라마 보면 저도 어릴 적에는 이제 시골에 있었어서 마을 회관으로 모여달라는, 혹은 이장님의 방송도 저는 어릴 적에 많이 들었었거든요. 지금도 그거 있나요? 혹시 이렇게 마이크 툭툭 치면서 아, 아, 아, 이렇게. 주민 여러분, 이렇게.
◆김유솔> 네. 저희 경로당에 방송을 할 수 있는 기계가 비치돼 있어요.
◇이대호> 혹시 직접 방송하세요, 그래서?
◆김유솔> 네. 그래서 마을 행사나 아니면 회의를 해야 되면 항상 마을 방송을 먼저 해요. 이따가 몇 시에 마을 회관에서 뭐를 진행할 예정인데 마을에 계신 모든 분들은 지금 경로당으로 오셔라, 이런 방송을 하고 있어요.
◇이대호> 보통 이장의 역할이라는 게 어떤 것이 있어요? 주요 업무라고 하면.
◆김유솔> 한마디로 정리하면 약간 지자체하고 마을을 엮어주는 소통 창구거든요. 그래서 마을에 민원이 생기면 제가 그걸 취합해서 지자체로 올려 보내고요. 지자체에서 하고 계시는 사업들을 마을 분이 이렇게 활용하실 수 있게 제가 좀 전달을 해드리는 역할을 하고 또 마을에 있는 크고 작은 일들을 처리해요. 그래서 가로등이라든지 아니면 폐가가 주변에 영향을 끼칠 것 같다 이러면 제가 지자체랑 연결을 해서 안전사고 없이 문제가 생기지 않게 미리 처리를 한다든지 이런 일들을 하고 있어요.
◇이대호> 어떻게 보면 연결고리고 육지와 섬을 이어주는 다리 같은 존재를 본인이 하고 있는 거네요. 지자체와 주민들을 연결해 주는 그런 다리 같은 존재. 혹시 이장은 임기제입니까? 임기가 어떻게 돼요?
◆김유솔> 임기는 1년이고요.
◇이대호> 짧은데요?
◆김유솔> 네. 그래서 해년마다 연말에 다시 회의를 해요. 그래서 1년씩 연장을 하고 있는 시스템으로 이렇게 매일매일 되게 쫄깃하게 벌써 3년 차 이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대호> 혹시 그러면 이번 임기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김유솔> 저번 주에 마을 회의를 했고 다행히 또 내년까지 해달라고 하셔가지고 4년 차가 될 예정입니다.
◇이대호> 임기 연장 축하드립니다.
◆김유솔> 감사합니다.
◇이대호> 그러면 3연임 되는 거네요. 1년씩 해서. 그러면 4년 차가 되는 거고. 혹시 이게 무슨 이장 후보 추천위원회나 무슨 위원회에서 추대를 하고 이런 과정이 있어요? 어떻게 돼요?
◆김유솔> 저희 마을은 워낙 사람이 많질 않아서요. 약간, 사실 새로운 후보가 생기면 미리 좀 분위기를 알 수가 있어요. 누가 어디 한번 나가봐라 이런 추천들을 서로 하시기도 하시고요. 그렇지만 뭔가 저도 그래서 긴장을 하고 있었어요. 저도 모르는 후보가 나오지 않을까. 그래서 마을 회의할 때 혹시 이장 하고 싶으신 분 계세요? 그러면 잠잠하고. 마을 분께서 계속 하지 뭐, 더 새롭게 할 사람이 있나, 얘기를 하셔가지고 이렇게 또 별 무리 없이 이렇게 쿨 하게 거수로 하거든요, 저희는. 이장해도 괜찮은 사람 손들어, 이러면 다 손 드시고.
◇이대호> 그렇게 해서 3연임에 성공하신 거고.
◆김유솔> 네, 하게 됐습니다.
◇이대호> 축하드립니다. 저희가 경제 방송이어서 그런데, 이런 거 여쭤봐야 되는지 모르겠는데 궁금하긴 하지 않습니까? 이장님의 급여는 얼마나 됩니까?
◆김유솔> 이장의 월급은 작년까지는 30만 원이었는데요.
◇이대호> 월급이?
◆김유솔> 네. 월급이 30만 원이었는데 올해 10만 원이 인상돼서 40만 원씩 받고 있고요. 또 명절에는 보너스가 나와서 그래서 이제 월급을 한 번 더 받습니다. 그래서 명절에는 80만 원씩.
◇이대호> 80만 원씩 나와요? 설과 추석 때 각각?
◆김유솔> 네. 보너스가 40만 원이라 80만 원의 보너스를 받아요, 1년에.
◇이대호> 이게 업무추진비 개념이에요? 아니면 별도로 또 뭐가 나와요? 활동비가?
◆김유솔> 이거는 순수 이장 월급이고요. 이제 마을별로 마을에 돈이 있긴 한데 이제 경로당 같은 경우에도 그 노인회에서 나오는 자금이 있어서 그걸로 경로당 운영을 하고 대부분은 좀 자체적으로 이렇게 모으시던지 뭐 이런 식으로 마을 사업을 하든지 해서 마을 돈을 만들어요. 그래서 이렇게 따로 나라에서 활동비를 받지는 않습니다.
◇이대호> 그거는 따로 이제 그 목적에 맞는 운영비가 따로따로 다른 항목들이 있는 거고 순수하게 급여는 월 40만 원. 이것도 올라서. 그런데 사실 이장하시는 분들이 또 다른 생업이 대부분 있으시잖아요. 뭐 농업이나 어업이나 다른 거 종사하시면서 이장을 또 하시다 보니까 되게 또 바쁘실 것 같아요. 신경 쓸 일도 많을 것 같고, 지역에서.
◆김유솔> 처음에는 그 비율을 맞추는 데 조금 시간이 많이 들었는데요. 그래도 이제 1, 2년 차 때 그래서 조금 많이 힘들었었어요. 이장 일도 중요한데 또 이장 일은 월급이 그렇게 크지 않다 보니까 제 본업을 해야 하기도 하고. 그런데 다행히 또 제가 하는 일들이 이장 일과 더불어서 할 수 있는 일이더라고요.
◇이대호> 사람 만나는 일이니까, 사진관도.
◆김유솔> 네. 대부분 마을 어르신들이 소개시켜 주시기도 하시고요. 무엇보다 사진관도 예약제로 지금 운영을 하고 있어서 시간 조율을 할 수 있게끔 이제 운영을 하고 있고 또 운영하고 있는 단체 같은 경우에도 이렇게 도시재생 활동을 하다 보니까 생각보다 더불어서 같이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장이다 보니까 주변 이장님들한테 이렇게 연락드리기도 되게 편하고 같이 마을에서 뭔가를 하기도 되게 좋고 해서 지금은 적응이 좀 많이 된 상태입니다.
◇이대호> 그리고 또 그 사진관을 하시니까 사진기 들고 다니시면서 그 지역에서 또 나름대로 활동도 하시고요. 다른 방송 보니까 사진기 들고 다니시면서 동네 어르신들도 사진 찍어드리고 하시더라고요. 되게 좋은 활동가 같고. 혹시 김유솔 이장님 같은 또래 청년들이 완도 특히 용암리에 많이 있나요?
◆김유솔> 저희 마을에는 없어요. 저희 마을에는 20대 친구들이 저 포함 3명 정도 있는 상황이고요. 10대 친구들이 한 집, 한 두 집 정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대호> 두 집밖에 없어요?
◆김유솔> 네. 10대, 20대 포함해서 10명이 넘지 않는 상황이고요. 이제 근처 마을들도 조금 비슷한데 여기저기 섬에서 친구들을 모아서 같이 놀고 어울리고 이러고 있는 상황이에요.
◇이대호> 용암리 전체 100가구가 안 된다고요?
◆김유솔> 네. 저희가 67세대 정도 살고 있고요. 총 105명 정도 살고 있어요, 저희 마을에.
◇이대호> 105분 정도? 그러니까 용암리만?
◆김유솔> 네. 용암리만.
◇이대호> 완도군으로 따지면 훨씬 더 이제 많으실 테고. 그런데 사실 20대 중반에 이장이 돼서 뭔가 이제 리더십을 발휘를 해야 되는데 주변 분들은 다 어르신들이고 어르신들 사이에서 리더십을 발휘한다는 게 되게 쉽지 않았을 거 아니에요.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김유솔> 처음에는 이제 어르신들도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이렇게 어린데 잘 운영을 할 수 있을까 해서. 아니나 다를까 첫 해에 조금 실수가 있었지만 어르신들이 엄청 개방적이시거든요. 그래서 저한테 이제 실수하는 거는 어려도 나이가 많아도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다. 뭐 이렇게 배우는 시간이 있어야 나중에 더 잘하는 시간도 있다. 이렇게 전 전 이장님이 말씀을 해 주셔서 또 그거에 힘입어서 마을 분위기가 좀 이장한테 많이 알려주자, 이렇게 많이 알려주시고 도와주시고 하다 보니까.
◇이대호> 오히려 어르신들이 더 도와주시는.
◆김유솔> 네. 다행히 또 마을 어르신들이 저한테 편하게 부르질 않으세요. 꼭 이장님 이렇게 불러주시거든요. 너무 감사하게 제가 조금 불리할 때는 또 젊어서 그런다 이렇게 말씀해 주시고 제가 잘한 거 있으면 역시 우리 이장이다 이렇게 높여 주시거든요.
◇이대호> 좋으신 분들이네요.
◆김유솔> 그래서 열심히 이렇게 어부바 받으면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대호> 격려도 많이 받으시는 거고. 혹시 혼난 적은 없어요?
◆김유솔> 혼난 적도 있긴 한데요. 그게 많지 않아서. 꼭 혼나면서 다음에는 어떻게 해라 이렇게 알려주세요.
◇이대호> 그냥 혼만 내는 게 아니라 따뜻한 조언까지. 좋은 어르신분들과 함께 살고 계시네요. 그런데 아까 그 20대 청년이 3명, 그리고 10대까지 해도 두 집 정도밖에 안 된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또래 친구들하고 어울리고 또 어디 나가서 놀고 싶고 약간 그런 생각은 안 들어요? 또 이제 완도로 간 지 지금 한 4년?
◆김유솔> 한 6년 차 됐는데요. 처음에는 좀 걱정을 많이 했어요. 놀 것도 없고 내가 완도에 내려가서 잘 버틸 수 있을까. 이미 맛을 한번 봐버렸는데.
◇이대호> 서울에서 4년 살고 내려갔으니까.
◆김유솔> 네. 그래서 그렇게 괜찮을까 또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또 완도에 저 같은 토박이 친구들이 있어서 그 친구들이랑 어울려서 놀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기대감이 많이 줄었던 것 같아요. 서울에서는 워낙 정보도 많고 놀 것도 너무 많다 보니까 기대를 조금 했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좀 더 재미있게 놀까, 더 멋있는 곳을 갈까 했는데 완도에서는 그런 부담이 전혀 없다 보니까 뭘 해도 되게 바다 보면서 커피 한 잔 마시는 것도 즐겁고 약간 되게 별거 아닌 것도 행복함을 많이 느끼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좀 더 마음이 홀가분해진 상태로 지내게 되는 것 같아요.
◇이대호> 왜 그런 얘기 있잖아요. 가장 행복해지는 방법은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다. 약간 그거를 젊은 나이에 벌써 깨달은 거네요.
◆김유솔> 그런가 봐요.
◇이대호> 혹시 아까 1*** 님도 그렇고 완도 용암리를 관광단지로 개발해 보면 어떨까요 이런 이야기도 해 주셨는데. 완도에서 가볼 만한 곳, 추천하는 곳 어디 있으세요?
◆김유솔> 저는 이게 명사십리나 이런 좋은 바다들도 있지만 이름 없는 공원들이, 유명해지지 않은 공원들이 꽤 있거든요. 그래서 뭐 갯바람공원이라든지 일몰공원이라고 바다에 맞붙어 있는 공원들이 있는데 거기에 가보시면 뭔가 좀 한적하게 바다를 즐기실 수 있어서 또 좋기도 하고 완도 자체를 또 휴식으로 많이 오시잖아요. 그래서 완도에 최근에 해양치유센터라고 생겼거든요. 완도에 있는 해조류나 아니면 완도에 있는 자원들로 센터를 운영을 하시는데 저희 온수풀도 있고 해서 휴식을 즐기기에 되게 좋은 곳이거든요. 그래서 완도에 오시면 그렇게 좀 휴식을 즐기시는 시간을 많이 가지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대호> 해양과 함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센터. 좋네요. 온수풀도 나오고. 여기에도 왜 그 빈집들은 좀 있지 않나요? 그런 거 어떻게 개조해서 요즘에 한달살이하고 막 이런 것도 있다던데. 그 지역에는 어때요?
◆김유솔> 일단은 빈집 비율이 되게 높은 편이고요. 저희 완망진창이라고 팀을 운영하고 있는데 저희 팀에서 최근에도 폐가를 리모델링을 해서 한달살기 숙소로 개조해서 지금 프로그램을 운영을 했어요. 그래서 외지에 있는 청년들한테 제공을 하면서 완도에서 좀 사실 수 있게 제공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활용할 수 있는 폐가도 있지만 완도에는 빈집 비율이 높지만 사용할 수 없는 빈집도 굉장히 많거든요.
◇이대호> 당장은 쓰기 힘들고 뭔가 좀 돈 들여서 고쳐야만 하는 상태.
◆김유솔> 그래서 저희 마을도 빈집 비율이 높지만 그중에 폐가가 굉장히 많은 비율로 있는 상황이에요.
◇이대호> 그러니까 지금 청년공동체 완망진창을 이끌고 있는 대표이기도 한데. 이게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지역 사회적인 일을 하는 거네요. 그런데 아까 20대 청년이 3명이라고 했는데 청년공동체면 3명에서 하시는 거예요? 아니면 청년이 거의 한 50대까지 올라가나요?
◆김유솔> 완도는 청년 기준이 49세까지긴 한데요. 그런데 사실 완도읍에 있는 친구들뿐만 아니라 뭐 어디 신지에 있는 친구들이라든지 저희가 싹싹 긁어 모았거든요. 그래서 그 완도 토박이라는 공통점으로 이제 5명 정도가 모여서 지금 팀을 운영하고 있고.
◇이대호> 싹싹 모아서 5명이다. 또 어떤 일을 하는 거예요? 완망진창이라는 단체가?
◆김유솔> 저희 팀에서는 처음에는 너무 친구들이 없으니까 어떻게 하면 좀 친구들을 완도에 데려올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이 친구들이 다시 완도에 내려올 생각을 할까 고민을 하면서 놀 게 없다, 우리가 만들어야겠다 이 생각을 하고 시작을 하게 됐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플리마켓을 운영을 한다든지.
◇이대호> 벼룩시장 같은 거.
◆김유솔> 약간 문제점을 해결하다 보니까 좀 운영을 하게 됐는 뭐 완도에 놀 거 없다고 하도 많이 말을 하니까 그거를 정리한 웹 지도를 만들기도 하고요. 또 주말만 되면 다들 수도권으로 놀러 가느라 완도가 주말에 텅텅 비는데 그걸 좀 해결하고 싶어서 주말에 플리마켓을 운영을 한다든지. 또 제가 생각해 보니까 완도에 좀 정착을 하려면 지역을 잘 아는 사람들을 만나야 되는데 그런 걸 할 수가 없으니까 만날 기회가 없어서 좀 정착을 제대로 못하는 거 아닐까 생각을 하게 돼서 저희가 손주학교라는 프로그램을 운영을 해서.
◇이대호> 손주학교요?
◆김유솔> 네. 그래서 손주 같은 친구들이 어르신들한테 핸드폰 사용 방법을 알려드리는 프로그램이에요. 이게 좀 봉사 프로그램 같아 보이긴 하는데 이 프로그램 끝나면 아는 할머니, 아는 할아버지가 생기게 돼서 뭐 집을 구해도 조금 조언을 해 주실 수도 있고 또 완도 같은 경우에는 아는 집을 챙겨주지 모르는 사람을 잘 챙겨주기는 조금 부담스럽다 보니까 뭐 부동산도 제대로 없는 상황이 많거든요.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고. 하다못해 가을철에는 저희 마을만 걸어가도 감을 막 선물 받기도 한다든지 이렇게 손에 이렇게 음식이 가득해지는 상황들이 생기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이런 손주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하고. 또 경력이 있지만 주부 생활을 하다 보니까 안 되신 분들이랑 또 지역 소상공인 분들이랑 같이 클래스를 운영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하기도 하고 또 청년 마을 운영하기도 하고 있습니다.
◇이대호> 하는 일이 되게 많네요. 이거를 다른 생업도 하면서. 사진관도 하고 이장 생활도 하면서 지역 청년공동체도 운영을 하고 계시는 거고. 그런데 그 아까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청년들까지 싹싹 긁어 모으고 계시다고 했는데 사실 청년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려면 일자리가 있어야 되잖아요. 이 측면은 물론 이제 이거는 한두 명이 어떻게 바꿀 수 있는 거는 아닙니다만 일자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유솔> 저는 사실 일자리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청년 친구들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완도에 많은 친구들이 없는 이유가 일자리는 생각보다 좀 더 있거든요. 그런데 의외로 일자리가 없어서 안 오신다기보다는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뚜렷하지만 그걸 완도에서 할 수 없어서 못 오는 친구들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뭔가 하다못해 일자리를 구해도 제가 하고 있는 전공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런데 그게 완도에서는 어업과 수산업이 너무 집중되어 있다 보니까 좀 다양한 친구들이 완도에 오기가 힘든 거죠. 그러다 보니까 생기는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이대호> 그런데 우리 김유솔 이장님은 서울에서 웹 디자인 같은 거 하셨다고 하는데 사실 이런 거는 서울에서 온라인으로 외주 같은 걸로 받아서 컴퓨터로 일하고 온라인으로 보내주고 화상으로 회의하고 이런 것도 가능하잖아요. 물론 이제 업종에 따라서.
◆김유솔> 그래서 저희도 완도에 이렇게 청년분들을 모셔올 때 제일 이렇게 초점을 뒀던 게 완도에 조금 오시기 쉬운 직종을 가지신 분들을 초대를 해보자 생각을 해서 예술이나 이렇게 예체능 쪽에 종사하시는 분들을 대부분 모셔왔어요. 그러다 보니까 저희가 세 분 정도 완도에 정착을 하시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그런 분들을 시작으로 이렇게 다양한 직업군들이 모여야 좀 완도에 그 사람들이랑 같이 살 수 있는 다양한 생활권의 사람들도 올 수 있는 것 같아요.
◇이대호> 계속 또 새로운 사람들이 모여들어야 더 많은 사람들이 또 모이게 되고 이런 식으로. 그러면서 그 공동체가 커져 나가는 거죠.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제 시작인 거고. 좋은 일도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아까 봤더니 이런 얘기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코가 좀 반짝거리십니다. 피어싱을 하셨는데 이게 섬마을 어르신들한테 더 눈에 띄었다면서요?
◆김유솔> 네. 오히려 제가 좀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은데요. 하필 이장 임기 되자마자 코로나가 운영되는 바람에 오히려 어르신들께 한 1~2년간은 제가 열심히 피어싱을 좀 숨겼어요.
◇이대호> 마스크 쓰면서.
◆김유솔> 네. 놀라실까 봐. 무엇보다 저도 어르신들이 당연히 이런 피어싱을 안 좋아하실 거다. 이렇게 생각을 해서. 그래서 마스크를 쓰고 좀 한 1~2년은 숨기고 다녔었는데요. 어느 날 이제 어머니들이 입에 약과를 넣어 주시겠다고 이장 아, 해 봐 이래서 저도 마스크를 확 내리고 받아먹었는데 아차 싶더라고요. 그런데 그 순간 되게 정적이 있었는데 어르신들이 이장 코걸이 했냐고 이렇게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네 이랬는데 그렇게 이제 어머니가 말씀 안 해 주시길래 놀라셔서 별 말씀을 못 하셨나 보다 이랬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다른 분들이 와서 이장이 코 피어싱 하면 어때요 이렇게 물어보시는 거예요. 그래서 어머니들이 모르실 텐데 이거를 어떡하지? 무엇보다 이거를 되게 안 좋게 보실 것 같은데 뭐라고 대답하실지 굉장히 저도 긴장을 했는데 이게 젊은이들만의 멋이 있는 것 같다고 예쁘게 하고 다니면 너무 좋지 이러면서 되게 좋게 봐주시더라고요. 그래서 다행히. 그때 이후로는 오히려 알 크기를 좀 더 키워 가지고 다니기도 하고 좀 당당하게 하고 다니고 있습니다.
◇이대호> 그래도 우리 어르신들 만나면 특히 이제 지역에서는 이제 스물여덟 되시는 건데 요즘에는 이런 조언을 하는 게 좀 금기어라고는 하는데 어르신분들 중에서는 그래도 꼭 결혼이나 이런 거 걱정하시는 분들 계시지 않으세요?
◆김유솔> 네. 많으시죠. 그런데 약간 제가 아무나 만날까 봐 걱정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이대호> 오히려 좋은 사람 만나야 된다.
◆김유솔> 제가 이제 제일 걱정을 하셨던 것도 이장 일을 할 때 미혼인 거를 걱정을 하셨어요. 미혼이면 결혼하면서 마을을 떠날 확률이 높다 이렇게 생각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결혼해도 여기 있을 거다 했지만 안 믿으셨었어요. 그런데 지금 임기도 조금 길어지고 하다 보니까 이제 결혼 얘기가 조금씩 나오고 있는데. 그래서 어르신들한테 최근에 이제 남자친구를 소개하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처음 본 날 하신 말씀에 어디 데리고 가버리면 안 된다고. 마을에서 떠나면 안 된다고.
◇이대호> 데리고 육지로 갈까 봐.
◆김유솔> 네. 그러니까 시집을 가는 게 아니라 장가를 와야 한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요새는 맛있는 거 하면 이렇게 꼭 같이 와서 먹으라고 말씀을 많이 하기도 하세요.
◇이대호> 그 이장 생활하면서 위기도 있었다면서요. 이장에서 쫓겨날 뻔했다고도. 어떤 일이었어요?
◆김유솔> 제가 첫 이장 일을 부임을 했을 때 뭘 어떻게 하는지 모르다 보니까 작년에 한 걸 그대로 하면 되는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이장이 바뀌었다는 건 약간 정권이 바뀌었다는 것과 같은 내용이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이제 기존에 진행됐던 일들도 다시 공지를 하고 다시 했었어야 하는데 저희가 마을 사업을 운영을 하고 있는데 제가 마을에 허락도 안 받고 진행을 해버렸던 거죠. 그래서 마을이 뒤집어졌었어요. 그래서 이거 어떻게 된 일인 거냐. 그러면서 마을회의가 갑자기 열리게 됐고 그때 이제 피바람이 불더니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냐 그래서 죄송합니다. 저는 작년에 하던 걸 그대로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이래서 이거는 꼭 허락을 받고 진행을 해야 한다. 또 다행히 알려주셨고 그때 되게 진지하게 물어보시더라고요. 이장이 하고 싶냐. 사실 제가 좀 겁을 먹고 어르신들께 말씀을 드렸어요. 제가 너무 실수하는 것 같아서 이장 일을 제가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말씀을 드렸는데 그때 이제 어르신들이 말씀을 많이 해 주셨죠. 처음에 못하는 게 되게 당연하고 하면서 배우는 거니까 한번 하겠다고 해봐라. 나는 이장이 이장을 하겠다고 해서, 손녀가 이렇게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너무 편해서 되게 편하게 말할 수 있었는데. 그래서 이장이 이장을 해서 좋았다. 이렇게 말씀을 해 주시다 보니까 다행히 고비를 넘겨서 하게 됐던 것 같아요.
◇이대호> 그렇죠. 24살에 이장은 처음이라. 그랬었던 것 같고 또 많은 어르신들이 또 이해를 해 주셨고 잘 넘겼고. 이게 이장도 권력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왜 우리가 권한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게 권력과 한도, 한계라는 뜻을 갖고 있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디까지 이 힘을 또는 권력을 써야 하는지는 지역 주민들과 또 국민들과 또 함께 의견을 나눠야 되는 거고요. 아무래도 그 최연소 이장 또 여성 이장이라는 타이틀이 또 화제가 되다 보니까 전국적으로 지금 이장되는 방법을 많이 또 물어본다면서요?
◆김유솔> 네. 되게 신기한 게 이장이 왜 하고 싶으신지 저도 이장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는데요. 이 이장 일을 하면서 어르신들한테 사랑받는 걸 조금 다들 좋게 봐주셨는지 이장이 되고 싶은 분들이 연락이 오시기도 하고 또 어떻게 해야 뭐 이렇게 연임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시는 분도 생기시더라고요.
◇이대호> 연임하는 방법. 장기 집권하는 방법.
◆김유솔> 네. 저도 아직 장기까지는 아니라서 뭐 나름의. 이장 일이라는 게 저도 처음엔 아예 모르다 보니까 막 인터넷 검색을 해봤어요. 이장 일 잘하는 방법 하면 요새는 조금 영화가 나오면서 내용이 달라지긴 했는데 그 전까지만 해도 묘지 이장하는 방법 이런 게 되게 많이 떴었는데 지금은 영화가 나와서 막 파묘 막 이러면서 되게 그런 내용이 많아져서 아직도 이렇게 관련 정보는 검색을 해도 알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생각을 해 보니까 그래도 요새는 젊은 분들이 많이 늘어나다 보니까 어린 사람도 입장을 충분히 해도 괜찮겠다 이런 인식이 많이 생긴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마을에 아직 이런 분위기가 좀 조성이 안 된 분들은 오히려 약간 이런 사례를 많이 보여주시는 게 되게 좋겠다 생각이 듭니다.
◇이대호> 마지막으로 그 지방 이야기하면 지역 소멸 이런 이야기 많이 하지 않습니까? 젊은 사람들은 다 이제 일자리를 찾아서 도시로 나가게 되고. 그런데 이제 거꾸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서 이장이 되시는 입장에서 이 지역 소멸 혹은 또 이제 지역을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 한마디 부탁드릴게요.
◆김유솔> 저는 되게 지금 인식이 많이 바뀌면서 오히려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하는 때가 되게 많은데요. 제가 처음 완도에 내려왔을 때만 해도 실패해서 완도에 내려오는 거 아니냐 이런 인식을 되게 많이 받았었어요. 그런데 오히려 요새는 이렇게 지역에서 사업을 하거나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오히려 기회가 많이 생기고 있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완도 밖에 또는 지역 밖에 계신 분들한테는 조금 더 늦게 오시면 기회가 너무 늦지 않으실까.
◇이대호> 지금이 기회다.
◆김유솔> 네. 지금이 기회다. 나중에 오시면 조금 더 그땐 이미 늦은 거 아닐까 이렇게 이제 말씀을 드리고 싶고. 또 지역 내에서는 되게 좋은 방향을 못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지역에 있는 분들끼리 열심히 힘을 합쳐서 이제 지역의 특색을 좀 살려서 지역을 가꿔 나가는 걸 좀 중요하게 생각하시면서 다 같이 생활을 해 나가면 어떨까 생각을 합니다.
◇이대호> 3*** 님이 서울 생활 접고 완도읍 용암리로 이사 가야겠습니다. 귀향도 계획이 필요합니다. 준비가 필요합니다. 3*** 님은 이장님 말씀도 참 예쁘게 하시네요. 섬을 사랑하는 이장님이 있어서 완도 이장님 동네는 계속 새파란 마을로 쭉 계속될 것 같아요. 파이팅. 이렇게 보내주셨습니다. 김유솔 청년 이장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김유솔> 감사합니다.
인터뷰 자료의 저작권은 KBS라디오에 있습니다.
전문 게재나 인터뷰 인용 보도 시,
‘KBS 1라디오 성공예감 이대호입니다’와 같이
채널명과 정확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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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서 일하다 완도로 귀향 "완도가 이렇게 예뻤구나"
- 24살에 시작한 4년차 이장, 사진관과 도시재생활동도 병행
- 이장의 역할은? 지자체와 마을을 엮어주는 소통 창구
- 월급은 10만원 인상돼 月40만원..."매년 보너스도 나와요"
- 젊은 이장, 리더십 비결은? 어르신들의 따뜻한 격려 덕분
- 완도의 매력, 한적한 바다와 커피 한 잔..해양치유센터도 개설
- 폐가 리모델링, 손주학교 운영 등 '완망진창' 활동도
- 지역 소멸?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 모집..."위기가 기회다"
■ 프로그램명 : 성공예감 이대호입니다
■ 방송시간 : 12월 17일(화) 09:05-10:53 KBS1R FM 97.3MHz
■ 진행 : 이대호
■ 출연 : 김유솔 이장 (완도 용암리)
◇이대호> 성공예감 이대호입니다. 2부의 문을 열겠습니다. 전라남도 완도군의 주민 평균 연령이 68세라고 합니다. 물론 다리가 연결되어 있긴 한데 예전에 섬마을이라고 불렀었죠. 그런데 그곳에 전국 최연소 이장이 부임했습니다. 24살에 이장이 된 분. 아니, 어떻게 20대 중반에 이장이 될 수 있지? 의아하기도 한데요. 청년 이장의 하루는 어떨까요? 그리고 또 지방 소멸 시대에 어떻게 이 지역을 되살릴 수 있을지 같이 한번 고민해 보시죠. 전남 완도군 용암리 이장님입니다. 김유솔 이장님, 안녕하세요.
◆김유솔> 안녕하세요.
◇이대호> ‘제가 이 마을 이장인디요’ 이게 책 이름. 죄송합니다만 지금 나이가?
◆김유솔> 만 나이로 27살입니다.
◇이대호> 현재 27이고 24살에 이장이 되었고. 직업이 많더라고요. 사진관을 운영하고 계시고 그리고 완도군의 그 청년 단체 ‘완망진창’의 대표이시고 가장 중요한 건 완도읍 용암리 이장.
◆김유솔> 네. 완도군 완도읍 용암리 이장입니다.
◇이대호> 아마 이 질문 수백 번 들으셨겠습니다만 어떻게 하다가 이장이 되신 거예요?
◆김유솔> 네, 저는 완도에서 나고 자랐고요. 그러다 보니까 당연하게 일을 하려면 서울로 가야 된다 이렇게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한 6~7년 정도 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완도에 내려오게 됐는데 한 번씩 이렇게 오니까 완도가 예쁜 줄 몰랐었어요. 그런데 제가 서울에 있을 때 막 제주도고 어디 다른 데 여행을 다녀보니까 저는 바다가 그렇게 예쁜가 생각을 못하고 있었는데 완도에 다시 돌아와 보니까, 이게 그 바다나 이 바다나 이렇게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이렇게 예쁜 데를 맨날 보고 자랐으니까 그렇게 예쁜 줄 몰랐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사실이 되게 기뻐서 어떻게 하면 완도에 살 수 있을까 고민을 했었는데 그때 친구들이랑 얘기를 하다가 친구들이 얘기를 해 줘서 사진관을 운영을 하려고 생각을 하게 됐고. 사진관이 완도에 하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할아버지가 운영을 하셨는데 보정을 되게 달덩이처럼 해 주셨거든요. 여자애들의 미의 기준과 조금 달랐었는데.
◇이대호> 아, 그러니까 옛날 방식으로.
◆김유솔> 네. 그래서 친구들한테 내가 그냥 찍어줄게, 내가 보정해 줄게 하다가 친구들이 너 같은 애가 사진을 찍어줬으면 좋겠다 해서 사진관 한번 해볼까? 생각을 하고 내려오게 됐었어요.
◇이대호> 원래 서울에서는 디자인 일도 좀 하셨었다고 하고 약간 그쪽으로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데 또 어떻게 보면 20년 가까이 살아왔었던 같은 고향이고 같은 지역이고. 10대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게 20대 때는 보인 거네요. 그런데 원래는 고향을 떠나고 싶었다면서요. 그래서 실제로 떠난 거였잖아요.
◆김유솔> 네. 일단은 서울에서 진짜 먼 곳이거든요. 서울에서 있을 때는 그 회사 분들이 그 정도면 여권 들고 다녀야 되는 거 아니냐 할 정도로, 농담으로 그런 얘기를 하셨는데 사실 저는 학창 시절까지 완도를 좋아한 적이 진짜 없었어요. 너무 좁고 조금만 나가도 아는 사람들이 있다 보니까 저한테 너무 관심도 많이 가져주시고 그러다 보니까 그게 또 싫고 무엇보다 제일 중요했던 게 제 꿈이 디자이너였는데 디자인을 배울 수가 없는 거예요, 완도에서는. 그래서 나는 디자인을 배우고 싶은데 완도에서는 미술 학원도 없다 보니까 조금 막연하게 꿈을 갖고 있다가 이제 서울에 와서 좀 디자인학원도 다니고 준비를 해서 이제 중소기업에 디자이너로 취직을 하게 됐었어요.
◇이대호> 그렇죠. 어릴 때는 동네만 나가도 그 지역사회라고 하지 않습니까? 어느 집 누구 뭐 이런 게 다 나오니까, 누구 동생 누구. 근데 어린 마음에는 좀 싫을 수 있겠다. 완도 분들 많이 듣고 계시나 봅니다. 4*** 님이 ‘용암리 이장이어라’가 원어민 발음입니다. 알려주셨어요. 저도 완도 사람입니다. 젊은 이장님 부럽습니다. 이렇게 보내주셨고. 이** 님은 완도 한번 놀러 가야겠네요. 이렇게. 완도가 그 전남 중에서도 거의 끝에 있죠? 해남 밑에.
◆김유솔> 네. 저희는 육지가 아니라서 땅 끝 밑에 붙어 있는 섬들인 거죠.
◇이대호> 그런데 해남에서부터 다리로는 연결이 되어 있잖아요. 거기 섬들끼리는.
◆김유솔> 네. 다리로 연결이 돼 있어서, 그래서 육지로 쳐주신다면 땅 끝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대호> 그런데 그렇게 해서 서울로 떠났어요. 그런데 서울에서 한 4년 동안 생활을 해 본 거죠. 당연히 서울 생활 쉽지는 않았을 거고 어떻게 하다가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게 된 거예요? 그 마음을 먹은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
◆김유솔> 네. 서울에서 너무 멀다 보니까 전 명절에도 잘 안 내려갔었거든요. 그런데 휴가 때 자꾸 제가 완도에서 살았다고 하니까 저 빼고 다 완도에 놀러 가시더라고요. 볼 게 하나도 없는데 대체 왜 놀러 가시냐 여쭤보니까 막 너무 좋다고 하니까 또 소문에 소문을 타서 또 옆 회사 사람도 갔다 오고 이러시는데 그게 점점 저도 궁금해지는 거예요. 아니, 뭐가 좋아서 저렇게 가는 걸까 해서 저도 생각을 해보니까 완도에 한 번도 놀러 가본 적이 없다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대호> 그냥 평생 살았으니까.
◆김유솔> 네. 살아만 봤는데 그래서 한번 놀러 가보는 완도는 어떨까 생각을 하고 처음에 내려갔었어요.
◇이대호> 완도에 돌김이 유명한가요?
◆김유솔> 네. 김도 맛있죠.
◇이대호> 김** 님이 돌김에 참기름 발라 먹어야 된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남들은 그렇게 놀러 가고 아름다움을 찾아서 가는 곳이었는데 정작 그곳에 살던 사람은 떠나고 싶어 했고. 물론 어린 마음에 그럴 수 있겠죠. 그래서 다시 완도로 돌아가니까 보이지 않던 게 보였고, 어떻던가요? 처음에. 20살 가까이 살던 그 완도의 모습 다시 봤을 때.
◆김유솔> 저는 이렇게 예쁜 곳이 저희 제 고향이었나, 되게 기분이 좋았어요. 서울 사람들이 모든 것을 약간 내려놓고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하려고 제주도에 내려가시는 분들이 많아졌잖아요. 그런데 저는 이렇게 북적거리지 않는, 되게 꽁꽁 숨겨놓은 보물이 알고 보니 내 고향이었다. 이런 느낌이라서 되게 기분이 좋았고 뭔가 제가 구계등이나 완도에 있는 많은 곳들을 놀러 다녔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뭔가 몽돌이 부딪혀서 파도 소리가 나는 것도 너무 좋고 또 이렇게 숲도 가득한 것도 너무 좋고. 그런데 그 좋은 걸 되게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한적하게 즐길 수 있는 것도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좋은 곳에서 더 살고 싶다 생각을 하다 보니까 서울에서 완도로 내려올 준비를 계속하게 됐던 것 같아요.
◇이대호> 멀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새로운 게 또 보였던 거네요. 새로운 건 아니었는데, 그렇죠, 사실은. 안** 님이 완도가 외갓집이에요. 이렇게 보내주셨어요. 완도라는 말이 너무 반갑네요. 공기 맑고 바닷가 좋고 사람들도 다 좋아요. 이렇게 보내주셨어요. 다시 고향에 내려와서 사진관을 열었어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처음에 사진관 가서 찍으니까 너무 달덩이로 보정을 해 주셨고. 어떻게 하다가 사진관을 여셨는지는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장사가 잘 됐습니까, 초반에?
◆김유솔> 저도 걱정을 좀 많이 했는데요. 그런데 제가 생각했던 게 저 같은 여고생이 좀 없길 바라는 마음에서 달덩이들을 조금 더 홀쭉하게 찍어주자 생각을 했었어서 열심히 또 기술을 갈고 닦아가지고 보정을 해 줬었는데 하고 보니까 이게 보정도 중요하지만 좀 아쉬운 것들이 눈에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막 여자애들 앞머리도 잘라주고 막 고데기도 해주고 막 이렇게 세팅도 해주고 막 오지랖을 부리다 보니까 좀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좀 많이 나서 요새 중고등학생 친구들은 다 저희 가게에 와 주시는 것 같아요.
◇이대호> 이야, 그래서 어떻게 보면 더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신세대 사진관, 약간 이런 느낌이네요. 그런데 사진관을 하고 있는데 “자네 이장할 생각 없나?” 이런 제안을 받았다는 거예요?
◆김유솔> 네. 저희 가게 앞에 빈집이 원래 있었어요. 그 빈집을 되게 탐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뭐가 들어가더라고요. 그래서 아쉬워하고 있다가. 도시재생 센터라고 약간 공공기관 같아 보이는 게 들어왔는데 말 그대로 이렇게 도시를 재생시키는 일들을 하시더라고요. 궁금해서 저도 몇 번 참여를 하고 저희끼리 관련 프로그램도 하고 하다 보니까 거기에서 이장님을 뵙게 됐어요. 전 이장님을.
◇이대호> 네. 혹시 전 이장님의 연세는 어떻게 되셨나요?
◆김유솔> 아마 52년생, 그 정도 되셨던 것 같아요. 환갑이 넘으셨는데 사실 전 이장님도 이장님 치고는 굉장히 어린 축에 속하시는 편이셨거든요.
◇이대호> 잠시만요. 4년 전이면 거의 칠순에 가까운 연세셨을 텐데 이장님 중에서도 젊으신 편이었던 거예요, 그분이?
◆김유솔> 네. 52년생이시니까 칠순은 아직 안 되셨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젊으신 편이셨어요.
◇이대호> 그런데 그 제안을 받은 거예요?
◆김유솔> 네. 갑자기 저한테 차 한 잔 하자고 하셔가지고 좀, 사실 좀 겁을 엄청 먹었었어요. 약간 옆 반 담임 선생님이 갑자기 차 한 잔 하자고 하는 상황이었던 것 같은데.
◇이대호> 교무실로 오라고 하면.
◆김유솔> 네, 네. 그래서 내가 뭐 잘못했나? 이렇게 좀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이장을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 주셔 가지고 감사하게 또 그런 제안을 받게 됐었어요.
◇이대호> 아니, 그 전 이장님도 상당히 진취적인 분이셨네요. 24살, 어떻게 보면 청년에게 마을 이장을 맡길 그런 생각을 하셨다는 게. 어떤 면에서 본인이 그런 제안을 받은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지금 이것도 캐스팅인데.
◆김유솔> 일단은 제가 진짜 24살 정도 될 거라고 생각을 못 하셨을 것 같아요. 이게 가게를 하고 있으니까 그 정도로 어리진 않겠지, 생각을 하셨던 것도 있으신 것 같고. 무엇보다 활동을 해오면서 이렇게 마을에 관심을 가지는 모습을 좀 좋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여기저기 좀 물어보셨대요. 저 친구 어떠냐.
◇이대호> 평판 조회를 먼저 하셨구나.
◆김유솔> 네. 그래서 이런 일을 열심히 하는 친구다. 다행히 또 좋은 분들이 말씀을 해 주셔 가지고 그렇게 해서 좀 말을 하기까지 오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대호> 그러게, 어르신들은 다 계획이 있으십니다. 그냥 충동적으로 제안한 게 아니라 사전에 사진관 저 친구 어때, 이런 식으로 다 평판 조회를 하고 오신 거고. 완도 용암리 김유솔 이장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전원일기 같은 드라마 보면 저도 어릴 적에는 이제 시골에 있었어서 마을 회관으로 모여달라는, 혹은 이장님의 방송도 저는 어릴 적에 많이 들었었거든요. 지금도 그거 있나요? 혹시 이렇게 마이크 툭툭 치면서 아, 아, 아, 이렇게. 주민 여러분, 이렇게.
◆김유솔> 네. 저희 경로당에 방송을 할 수 있는 기계가 비치돼 있어요.
◇이대호> 혹시 직접 방송하세요, 그래서?
◆김유솔> 네. 그래서 마을 행사나 아니면 회의를 해야 되면 항상 마을 방송을 먼저 해요. 이따가 몇 시에 마을 회관에서 뭐를 진행할 예정인데 마을에 계신 모든 분들은 지금 경로당으로 오셔라, 이런 방송을 하고 있어요.
◇이대호> 보통 이장의 역할이라는 게 어떤 것이 있어요? 주요 업무라고 하면.
◆김유솔> 한마디로 정리하면 약간 지자체하고 마을을 엮어주는 소통 창구거든요. 그래서 마을에 민원이 생기면 제가 그걸 취합해서 지자체로 올려 보내고요. 지자체에서 하고 계시는 사업들을 마을 분이 이렇게 활용하실 수 있게 제가 좀 전달을 해드리는 역할을 하고 또 마을에 있는 크고 작은 일들을 처리해요. 그래서 가로등이라든지 아니면 폐가가 주변에 영향을 끼칠 것 같다 이러면 제가 지자체랑 연결을 해서 안전사고 없이 문제가 생기지 않게 미리 처리를 한다든지 이런 일들을 하고 있어요.
◇이대호> 어떻게 보면 연결고리고 육지와 섬을 이어주는 다리 같은 존재를 본인이 하고 있는 거네요. 지자체와 주민들을 연결해 주는 그런 다리 같은 존재. 혹시 이장은 임기제입니까? 임기가 어떻게 돼요?
◆김유솔> 임기는 1년이고요.
◇이대호> 짧은데요?
◆김유솔> 네. 그래서 해년마다 연말에 다시 회의를 해요. 그래서 1년씩 연장을 하고 있는 시스템으로 이렇게 매일매일 되게 쫄깃하게 벌써 3년 차 이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대호> 혹시 그러면 이번 임기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김유솔> 저번 주에 마을 회의를 했고 다행히 또 내년까지 해달라고 하셔가지고 4년 차가 될 예정입니다.
◇이대호> 임기 연장 축하드립니다.
◆김유솔> 감사합니다.
◇이대호> 그러면 3연임 되는 거네요. 1년씩 해서. 그러면 4년 차가 되는 거고. 혹시 이게 무슨 이장 후보 추천위원회나 무슨 위원회에서 추대를 하고 이런 과정이 있어요? 어떻게 돼요?
◆김유솔> 저희 마을은 워낙 사람이 많질 않아서요. 약간, 사실 새로운 후보가 생기면 미리 좀 분위기를 알 수가 있어요. 누가 어디 한번 나가봐라 이런 추천들을 서로 하시기도 하시고요. 그렇지만 뭔가 저도 그래서 긴장을 하고 있었어요. 저도 모르는 후보가 나오지 않을까. 그래서 마을 회의할 때 혹시 이장 하고 싶으신 분 계세요? 그러면 잠잠하고. 마을 분께서 계속 하지 뭐, 더 새롭게 할 사람이 있나, 얘기를 하셔가지고 이렇게 또 별 무리 없이 이렇게 쿨 하게 거수로 하거든요, 저희는. 이장해도 괜찮은 사람 손들어, 이러면 다 손 드시고.
◇이대호> 그렇게 해서 3연임에 성공하신 거고.
◆김유솔> 네, 하게 됐습니다.
◇이대호> 축하드립니다. 저희가 경제 방송이어서 그런데, 이런 거 여쭤봐야 되는지 모르겠는데 궁금하긴 하지 않습니까? 이장님의 급여는 얼마나 됩니까?
◆김유솔> 이장의 월급은 작년까지는 30만 원이었는데요.
◇이대호> 월급이?
◆김유솔> 네. 월급이 30만 원이었는데 올해 10만 원이 인상돼서 40만 원씩 받고 있고요. 또 명절에는 보너스가 나와서 그래서 이제 월급을 한 번 더 받습니다. 그래서 명절에는 80만 원씩.
◇이대호> 80만 원씩 나와요? 설과 추석 때 각각?
◆김유솔> 네. 보너스가 40만 원이라 80만 원의 보너스를 받아요, 1년에.
◇이대호> 이게 업무추진비 개념이에요? 아니면 별도로 또 뭐가 나와요? 활동비가?
◆김유솔> 이거는 순수 이장 월급이고요. 이제 마을별로 마을에 돈이 있긴 한데 이제 경로당 같은 경우에도 그 노인회에서 나오는 자금이 있어서 그걸로 경로당 운영을 하고 대부분은 좀 자체적으로 이렇게 모으시던지 뭐 이런 식으로 마을 사업을 하든지 해서 마을 돈을 만들어요. 그래서 이렇게 따로 나라에서 활동비를 받지는 않습니다.
◇이대호> 그거는 따로 이제 그 목적에 맞는 운영비가 따로따로 다른 항목들이 있는 거고 순수하게 급여는 월 40만 원. 이것도 올라서. 그런데 사실 이장하시는 분들이 또 다른 생업이 대부분 있으시잖아요. 뭐 농업이나 어업이나 다른 거 종사하시면서 이장을 또 하시다 보니까 되게 또 바쁘실 것 같아요. 신경 쓸 일도 많을 것 같고, 지역에서.
◆김유솔> 처음에는 그 비율을 맞추는 데 조금 시간이 많이 들었는데요. 그래도 이제 1, 2년 차 때 그래서 조금 많이 힘들었었어요. 이장 일도 중요한데 또 이장 일은 월급이 그렇게 크지 않다 보니까 제 본업을 해야 하기도 하고. 그런데 다행히 또 제가 하는 일들이 이장 일과 더불어서 할 수 있는 일이더라고요.
◇이대호> 사람 만나는 일이니까, 사진관도.
◆김유솔> 네. 대부분 마을 어르신들이 소개시켜 주시기도 하시고요. 무엇보다 사진관도 예약제로 지금 운영을 하고 있어서 시간 조율을 할 수 있게끔 이제 운영을 하고 있고 또 운영하고 있는 단체 같은 경우에도 이렇게 도시재생 활동을 하다 보니까 생각보다 더불어서 같이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장이다 보니까 주변 이장님들한테 이렇게 연락드리기도 되게 편하고 같이 마을에서 뭔가를 하기도 되게 좋고 해서 지금은 적응이 좀 많이 된 상태입니다.
◇이대호> 그리고 또 그 사진관을 하시니까 사진기 들고 다니시면서 그 지역에서 또 나름대로 활동도 하시고요. 다른 방송 보니까 사진기 들고 다니시면서 동네 어르신들도 사진 찍어드리고 하시더라고요. 되게 좋은 활동가 같고. 혹시 김유솔 이장님 같은 또래 청년들이 완도 특히 용암리에 많이 있나요?
◆김유솔> 저희 마을에는 없어요. 저희 마을에는 20대 친구들이 저 포함 3명 정도 있는 상황이고요. 10대 친구들이 한 집, 한 두 집 정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대호> 두 집밖에 없어요?
◆김유솔> 네. 10대, 20대 포함해서 10명이 넘지 않는 상황이고요. 이제 근처 마을들도 조금 비슷한데 여기저기 섬에서 친구들을 모아서 같이 놀고 어울리고 이러고 있는 상황이에요.
◇이대호> 용암리 전체 100가구가 안 된다고요?
◆김유솔> 네. 저희가 67세대 정도 살고 있고요. 총 105명 정도 살고 있어요, 저희 마을에.
◇이대호> 105분 정도? 그러니까 용암리만?
◆김유솔> 네. 용암리만.
◇이대호> 완도군으로 따지면 훨씬 더 이제 많으실 테고. 그런데 사실 20대 중반에 이장이 돼서 뭔가 이제 리더십을 발휘를 해야 되는데 주변 분들은 다 어르신들이고 어르신들 사이에서 리더십을 발휘한다는 게 되게 쉽지 않았을 거 아니에요.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김유솔> 처음에는 이제 어르신들도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이렇게 어린데 잘 운영을 할 수 있을까 해서. 아니나 다를까 첫 해에 조금 실수가 있었지만 어르신들이 엄청 개방적이시거든요. 그래서 저한테 이제 실수하는 거는 어려도 나이가 많아도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다. 뭐 이렇게 배우는 시간이 있어야 나중에 더 잘하는 시간도 있다. 이렇게 전 전 이장님이 말씀을 해 주셔서 또 그거에 힘입어서 마을 분위기가 좀 이장한테 많이 알려주자, 이렇게 많이 알려주시고 도와주시고 하다 보니까.
◇이대호> 오히려 어르신들이 더 도와주시는.
◆김유솔> 네. 다행히 또 마을 어르신들이 저한테 편하게 부르질 않으세요. 꼭 이장님 이렇게 불러주시거든요. 너무 감사하게 제가 조금 불리할 때는 또 젊어서 그런다 이렇게 말씀해 주시고 제가 잘한 거 있으면 역시 우리 이장이다 이렇게 높여 주시거든요.
◇이대호> 좋으신 분들이네요.
◆김유솔> 그래서 열심히 이렇게 어부바 받으면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대호> 격려도 많이 받으시는 거고. 혹시 혼난 적은 없어요?
◆김유솔> 혼난 적도 있긴 한데요. 그게 많지 않아서. 꼭 혼나면서 다음에는 어떻게 해라 이렇게 알려주세요.
◇이대호> 그냥 혼만 내는 게 아니라 따뜻한 조언까지. 좋은 어르신분들과 함께 살고 계시네요. 그런데 아까 그 20대 청년이 3명, 그리고 10대까지 해도 두 집 정도밖에 안 된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또래 친구들하고 어울리고 또 어디 나가서 놀고 싶고 약간 그런 생각은 안 들어요? 또 이제 완도로 간 지 지금 한 4년?
◆김유솔> 한 6년 차 됐는데요. 처음에는 좀 걱정을 많이 했어요. 놀 것도 없고 내가 완도에 내려가서 잘 버틸 수 있을까. 이미 맛을 한번 봐버렸는데.
◇이대호> 서울에서 4년 살고 내려갔으니까.
◆김유솔> 네. 그래서 그렇게 괜찮을까 또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또 완도에 저 같은 토박이 친구들이 있어서 그 친구들이랑 어울려서 놀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기대감이 많이 줄었던 것 같아요. 서울에서는 워낙 정보도 많고 놀 것도 너무 많다 보니까 기대를 조금 했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좀 더 재미있게 놀까, 더 멋있는 곳을 갈까 했는데 완도에서는 그런 부담이 전혀 없다 보니까 뭘 해도 되게 바다 보면서 커피 한 잔 마시는 것도 즐겁고 약간 되게 별거 아닌 것도 행복함을 많이 느끼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좀 더 마음이 홀가분해진 상태로 지내게 되는 것 같아요.
◇이대호> 왜 그런 얘기 있잖아요. 가장 행복해지는 방법은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다. 약간 그거를 젊은 나이에 벌써 깨달은 거네요.
◆김유솔> 그런가 봐요.
◇이대호> 혹시 아까 1*** 님도 그렇고 완도 용암리를 관광단지로 개발해 보면 어떨까요 이런 이야기도 해 주셨는데. 완도에서 가볼 만한 곳, 추천하는 곳 어디 있으세요?
◆김유솔> 저는 이게 명사십리나 이런 좋은 바다들도 있지만 이름 없는 공원들이, 유명해지지 않은 공원들이 꽤 있거든요. 그래서 뭐 갯바람공원이라든지 일몰공원이라고 바다에 맞붙어 있는 공원들이 있는데 거기에 가보시면 뭔가 좀 한적하게 바다를 즐기실 수 있어서 또 좋기도 하고 완도 자체를 또 휴식으로 많이 오시잖아요. 그래서 완도에 최근에 해양치유센터라고 생겼거든요. 완도에 있는 해조류나 아니면 완도에 있는 자원들로 센터를 운영을 하시는데 저희 온수풀도 있고 해서 휴식을 즐기기에 되게 좋은 곳이거든요. 그래서 완도에 오시면 그렇게 좀 휴식을 즐기시는 시간을 많이 가지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대호> 해양과 함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센터. 좋네요. 온수풀도 나오고. 여기에도 왜 그 빈집들은 좀 있지 않나요? 그런 거 어떻게 개조해서 요즘에 한달살이하고 막 이런 것도 있다던데. 그 지역에는 어때요?
◆김유솔> 일단은 빈집 비율이 되게 높은 편이고요. 저희 완망진창이라고 팀을 운영하고 있는데 저희 팀에서 최근에도 폐가를 리모델링을 해서 한달살기 숙소로 개조해서 지금 프로그램을 운영을 했어요. 그래서 외지에 있는 청년들한테 제공을 하면서 완도에서 좀 사실 수 있게 제공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활용할 수 있는 폐가도 있지만 완도에는 빈집 비율이 높지만 사용할 수 없는 빈집도 굉장히 많거든요.
◇이대호> 당장은 쓰기 힘들고 뭔가 좀 돈 들여서 고쳐야만 하는 상태.
◆김유솔> 그래서 저희 마을도 빈집 비율이 높지만 그중에 폐가가 굉장히 많은 비율로 있는 상황이에요.
◇이대호> 그러니까 지금 청년공동체 완망진창을 이끌고 있는 대표이기도 한데. 이게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지역 사회적인 일을 하는 거네요. 그런데 아까 20대 청년이 3명이라고 했는데 청년공동체면 3명에서 하시는 거예요? 아니면 청년이 거의 한 50대까지 올라가나요?
◆김유솔> 완도는 청년 기준이 49세까지긴 한데요. 그런데 사실 완도읍에 있는 친구들뿐만 아니라 뭐 어디 신지에 있는 친구들이라든지 저희가 싹싹 긁어 모았거든요. 그래서 그 완도 토박이라는 공통점으로 이제 5명 정도가 모여서 지금 팀을 운영하고 있고.
◇이대호> 싹싹 모아서 5명이다. 또 어떤 일을 하는 거예요? 완망진창이라는 단체가?
◆김유솔> 저희 팀에서는 처음에는 너무 친구들이 없으니까 어떻게 하면 좀 친구들을 완도에 데려올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이 친구들이 다시 완도에 내려올 생각을 할까 고민을 하면서 놀 게 없다, 우리가 만들어야겠다 이 생각을 하고 시작을 하게 됐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플리마켓을 운영을 한다든지.
◇이대호> 벼룩시장 같은 거.
◆김유솔> 약간 문제점을 해결하다 보니까 좀 운영을 하게 됐는 뭐 완도에 놀 거 없다고 하도 많이 말을 하니까 그거를 정리한 웹 지도를 만들기도 하고요. 또 주말만 되면 다들 수도권으로 놀러 가느라 완도가 주말에 텅텅 비는데 그걸 좀 해결하고 싶어서 주말에 플리마켓을 운영을 한다든지. 또 제가 생각해 보니까 완도에 좀 정착을 하려면 지역을 잘 아는 사람들을 만나야 되는데 그런 걸 할 수가 없으니까 만날 기회가 없어서 좀 정착을 제대로 못하는 거 아닐까 생각을 하게 돼서 저희가 손주학교라는 프로그램을 운영을 해서.
◇이대호> 손주학교요?
◆김유솔> 네. 그래서 손주 같은 친구들이 어르신들한테 핸드폰 사용 방법을 알려드리는 프로그램이에요. 이게 좀 봉사 프로그램 같아 보이긴 하는데 이 프로그램 끝나면 아는 할머니, 아는 할아버지가 생기게 돼서 뭐 집을 구해도 조금 조언을 해 주실 수도 있고 또 완도 같은 경우에는 아는 집을 챙겨주지 모르는 사람을 잘 챙겨주기는 조금 부담스럽다 보니까 뭐 부동산도 제대로 없는 상황이 많거든요.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고. 하다못해 가을철에는 저희 마을만 걸어가도 감을 막 선물 받기도 한다든지 이렇게 손에 이렇게 음식이 가득해지는 상황들이 생기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이런 손주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하고. 또 경력이 있지만 주부 생활을 하다 보니까 안 되신 분들이랑 또 지역 소상공인 분들이랑 같이 클래스를 운영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하기도 하고 또 청년 마을 운영하기도 하고 있습니다.
◇이대호> 하는 일이 되게 많네요. 이거를 다른 생업도 하면서. 사진관도 하고 이장 생활도 하면서 지역 청년공동체도 운영을 하고 계시는 거고. 그런데 그 아까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청년들까지 싹싹 긁어 모으고 계시다고 했는데 사실 청년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려면 일자리가 있어야 되잖아요. 이 측면은 물론 이제 이거는 한두 명이 어떻게 바꿀 수 있는 거는 아닙니다만 일자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유솔> 저는 사실 일자리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청년 친구들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완도에 많은 친구들이 없는 이유가 일자리는 생각보다 좀 더 있거든요. 그런데 의외로 일자리가 없어서 안 오신다기보다는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뚜렷하지만 그걸 완도에서 할 수 없어서 못 오는 친구들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뭔가 하다못해 일자리를 구해도 제가 하고 있는 전공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런데 그게 완도에서는 어업과 수산업이 너무 집중되어 있다 보니까 좀 다양한 친구들이 완도에 오기가 힘든 거죠. 그러다 보니까 생기는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이대호> 그런데 우리 김유솔 이장님은 서울에서 웹 디자인 같은 거 하셨다고 하는데 사실 이런 거는 서울에서 온라인으로 외주 같은 걸로 받아서 컴퓨터로 일하고 온라인으로 보내주고 화상으로 회의하고 이런 것도 가능하잖아요. 물론 이제 업종에 따라서.
◆김유솔> 그래서 저희도 완도에 이렇게 청년분들을 모셔올 때 제일 이렇게 초점을 뒀던 게 완도에 조금 오시기 쉬운 직종을 가지신 분들을 초대를 해보자 생각을 해서 예술이나 이렇게 예체능 쪽에 종사하시는 분들을 대부분 모셔왔어요. 그러다 보니까 저희가 세 분 정도 완도에 정착을 하시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그런 분들을 시작으로 이렇게 다양한 직업군들이 모여야 좀 완도에 그 사람들이랑 같이 살 수 있는 다양한 생활권의 사람들도 올 수 있는 것 같아요.
◇이대호> 계속 또 새로운 사람들이 모여들어야 더 많은 사람들이 또 모이게 되고 이런 식으로. 그러면서 그 공동체가 커져 나가는 거죠.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제 시작인 거고. 좋은 일도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아까 봤더니 이런 얘기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코가 좀 반짝거리십니다. 피어싱을 하셨는데 이게 섬마을 어르신들한테 더 눈에 띄었다면서요?
◆김유솔> 네. 오히려 제가 좀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은데요. 하필 이장 임기 되자마자 코로나가 운영되는 바람에 오히려 어르신들께 한 1~2년간은 제가 열심히 피어싱을 좀 숨겼어요.
◇이대호> 마스크 쓰면서.
◆김유솔> 네. 놀라실까 봐. 무엇보다 저도 어르신들이 당연히 이런 피어싱을 안 좋아하실 거다. 이렇게 생각을 해서. 그래서 마스크를 쓰고 좀 한 1~2년은 숨기고 다녔었는데요. 어느 날 이제 어머니들이 입에 약과를 넣어 주시겠다고 이장 아, 해 봐 이래서 저도 마스크를 확 내리고 받아먹었는데 아차 싶더라고요. 그런데 그 순간 되게 정적이 있었는데 어르신들이 이장 코걸이 했냐고 이렇게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네 이랬는데 그렇게 이제 어머니가 말씀 안 해 주시길래 놀라셔서 별 말씀을 못 하셨나 보다 이랬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다른 분들이 와서 이장이 코 피어싱 하면 어때요 이렇게 물어보시는 거예요. 그래서 어머니들이 모르실 텐데 이거를 어떡하지? 무엇보다 이거를 되게 안 좋게 보실 것 같은데 뭐라고 대답하실지 굉장히 저도 긴장을 했는데 이게 젊은이들만의 멋이 있는 것 같다고 예쁘게 하고 다니면 너무 좋지 이러면서 되게 좋게 봐주시더라고요. 그래서 다행히. 그때 이후로는 오히려 알 크기를 좀 더 키워 가지고 다니기도 하고 좀 당당하게 하고 다니고 있습니다.
◇이대호> 그래도 우리 어르신들 만나면 특히 이제 지역에서는 이제 스물여덟 되시는 건데 요즘에는 이런 조언을 하는 게 좀 금기어라고는 하는데 어르신분들 중에서는 그래도 꼭 결혼이나 이런 거 걱정하시는 분들 계시지 않으세요?
◆김유솔> 네. 많으시죠. 그런데 약간 제가 아무나 만날까 봐 걱정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이대호> 오히려 좋은 사람 만나야 된다.
◆김유솔> 제가 이제 제일 걱정을 하셨던 것도 이장 일을 할 때 미혼인 거를 걱정을 하셨어요. 미혼이면 결혼하면서 마을을 떠날 확률이 높다 이렇게 생각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결혼해도 여기 있을 거다 했지만 안 믿으셨었어요. 그런데 지금 임기도 조금 길어지고 하다 보니까 이제 결혼 얘기가 조금씩 나오고 있는데. 그래서 어르신들한테 최근에 이제 남자친구를 소개하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처음 본 날 하신 말씀에 어디 데리고 가버리면 안 된다고. 마을에서 떠나면 안 된다고.
◇이대호> 데리고 육지로 갈까 봐.
◆김유솔> 네. 그러니까 시집을 가는 게 아니라 장가를 와야 한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요새는 맛있는 거 하면 이렇게 꼭 같이 와서 먹으라고 말씀을 많이 하기도 하세요.
◇이대호> 그 이장 생활하면서 위기도 있었다면서요. 이장에서 쫓겨날 뻔했다고도. 어떤 일이었어요?
◆김유솔> 제가 첫 이장 일을 부임을 했을 때 뭘 어떻게 하는지 모르다 보니까 작년에 한 걸 그대로 하면 되는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이장이 바뀌었다는 건 약간 정권이 바뀌었다는 것과 같은 내용이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이제 기존에 진행됐던 일들도 다시 공지를 하고 다시 했었어야 하는데 저희가 마을 사업을 운영을 하고 있는데 제가 마을에 허락도 안 받고 진행을 해버렸던 거죠. 그래서 마을이 뒤집어졌었어요. 그래서 이거 어떻게 된 일인 거냐. 그러면서 마을회의가 갑자기 열리게 됐고 그때 이제 피바람이 불더니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냐 그래서 죄송합니다. 저는 작년에 하던 걸 그대로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이래서 이거는 꼭 허락을 받고 진행을 해야 한다. 또 다행히 알려주셨고 그때 되게 진지하게 물어보시더라고요. 이장이 하고 싶냐. 사실 제가 좀 겁을 먹고 어르신들께 말씀을 드렸어요. 제가 너무 실수하는 것 같아서 이장 일을 제가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말씀을 드렸는데 그때 이제 어르신들이 말씀을 많이 해 주셨죠. 처음에 못하는 게 되게 당연하고 하면서 배우는 거니까 한번 하겠다고 해봐라. 나는 이장이 이장을 하겠다고 해서, 손녀가 이렇게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너무 편해서 되게 편하게 말할 수 있었는데. 그래서 이장이 이장을 해서 좋았다. 이렇게 말씀을 해 주시다 보니까 다행히 고비를 넘겨서 하게 됐던 것 같아요.
◇이대호> 그렇죠. 24살에 이장은 처음이라. 그랬었던 것 같고 또 많은 어르신들이 또 이해를 해 주셨고 잘 넘겼고. 이게 이장도 권력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왜 우리가 권한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게 권력과 한도, 한계라는 뜻을 갖고 있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디까지 이 힘을 또는 권력을 써야 하는지는 지역 주민들과 또 국민들과 또 함께 의견을 나눠야 되는 거고요. 아무래도 그 최연소 이장 또 여성 이장이라는 타이틀이 또 화제가 되다 보니까 전국적으로 지금 이장되는 방법을 많이 또 물어본다면서요?
◆김유솔> 네. 되게 신기한 게 이장이 왜 하고 싶으신지 저도 이장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는데요. 이 이장 일을 하면서 어르신들한테 사랑받는 걸 조금 다들 좋게 봐주셨는지 이장이 되고 싶은 분들이 연락이 오시기도 하고 또 어떻게 해야 뭐 이렇게 연임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시는 분도 생기시더라고요.
◇이대호> 연임하는 방법. 장기 집권하는 방법.
◆김유솔> 네. 저도 아직 장기까지는 아니라서 뭐 나름의. 이장 일이라는 게 저도 처음엔 아예 모르다 보니까 막 인터넷 검색을 해봤어요. 이장 일 잘하는 방법 하면 요새는 조금 영화가 나오면서 내용이 달라지긴 했는데 그 전까지만 해도 묘지 이장하는 방법 이런 게 되게 많이 떴었는데 지금은 영화가 나와서 막 파묘 막 이러면서 되게 그런 내용이 많아져서 아직도 이렇게 관련 정보는 검색을 해도 알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생각을 해 보니까 그래도 요새는 젊은 분들이 많이 늘어나다 보니까 어린 사람도 입장을 충분히 해도 괜찮겠다 이런 인식이 많이 생긴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마을에 아직 이런 분위기가 좀 조성이 안 된 분들은 오히려 약간 이런 사례를 많이 보여주시는 게 되게 좋겠다 생각이 듭니다.
◇이대호> 마지막으로 그 지방 이야기하면 지역 소멸 이런 이야기 많이 하지 않습니까? 젊은 사람들은 다 이제 일자리를 찾아서 도시로 나가게 되고. 그런데 이제 거꾸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서 이장이 되시는 입장에서 이 지역 소멸 혹은 또 이제 지역을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 한마디 부탁드릴게요.
◆김유솔> 저는 되게 지금 인식이 많이 바뀌면서 오히려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하는 때가 되게 많은데요. 제가 처음 완도에 내려왔을 때만 해도 실패해서 완도에 내려오는 거 아니냐 이런 인식을 되게 많이 받았었어요. 그런데 오히려 요새는 이렇게 지역에서 사업을 하거나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오히려 기회가 많이 생기고 있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완도 밖에 또는 지역 밖에 계신 분들한테는 조금 더 늦게 오시면 기회가 너무 늦지 않으실까.
◇이대호> 지금이 기회다.
◆김유솔> 네. 지금이 기회다. 나중에 오시면 조금 더 그땐 이미 늦은 거 아닐까 이렇게 이제 말씀을 드리고 싶고. 또 지역 내에서는 되게 좋은 방향을 못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지역에 있는 분들끼리 열심히 힘을 합쳐서 이제 지역의 특색을 좀 살려서 지역을 가꿔 나가는 걸 좀 중요하게 생각하시면서 다 같이 생활을 해 나가면 어떨까 생각을 합니다.
◇이대호> 3*** 님이 서울 생활 접고 완도읍 용암리로 이사 가야겠습니다. 귀향도 계획이 필요합니다. 준비가 필요합니다. 3*** 님은 이장님 말씀도 참 예쁘게 하시네요. 섬을 사랑하는 이장님이 있어서 완도 이장님 동네는 계속 새파란 마을로 쭉 계속될 것 같아요. 파이팅. 이렇게 보내주셨습니다. 김유솔 청년 이장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김유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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