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일 만에 혼인신고, 20일 후 살인…“피해자 무시한 판결” [주말엔]

혼인신고한 여자친구를 살해한 ‘수능만점’ 의대생 최 모 씨

피해자 유족들은 선고 이후 눈물을 흘리며 한동안 법정 주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피해자 아버지와 변호인은 취재진을 찾았습니다. 어렵게 입을 뗀 피해자 아버지는 재판 판결에 분노했습니다.

피해자 아버지는 "의대생은 살인을 저질러도 되는 겁니까? 이러니까 '의대생이니까 봐줬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거예요!"고 강조했습니다.

지난 5월, 서울 강남의 한 옥상에서 흉기로 여자친구를 살해한 '수능 만점' 의대생 최 모 씨의 1심 선고 후 법정 풍경이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우인성)는 지난 19일,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최 씨에게 징역 26년을 선고했습니다.

지난달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재판부에 최 씨에게 사형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사귄 지 53일 만에 혼인 신고…부모, 무효 소송 준비

최 씨와 피해자는 중학교 때 잠깐 교제했습니다. 당시 최 씨 어머니는 최 씨에게 학업에 집중할 것을 요구해 둘의 관계는 소원해졌습니다.

최 씨와 피해자가 다시 만난 건 성인이 된 올해 2월이었습니다. 둘은 지난 2월 24일부터 사귀기 시작했습니다.

둘은 약 두 달 뒤인 4월 16일, 구청에서 양가 부모에게 알리지 않고 혼인신고를 했습니다.

얼마 후 딸의 혼인 신고를 알게 된 피해자 아버지는 딸에게 "정상적인 결혼이 아니다. 그러니 혼인무효소송을 진행할 것이고, 변호사가 서로 연락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조언하니 최 씨를 만나지 말라"고 말합니다.

■법적 보호자이지만 수신 차단한 최 씨

이 시기, 피해자는 최 씨와 통화를 하다가 자해를 했고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부모가 혼인 무효 소송을 언급했지만, 의대생 최 씨는 법적으로 피해자의 '보호자'가 된 상황이었습니다.

피해자 아버지로부터 병원으로 와 달라는 연락을 받았지만, 최 씨는 의대 마취 관련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이유로 병원에 가지 않고, 피해자 연락처를 수신 차단까지 했습니다.

최 씨는 인터넷으로 '배우자 유기죄' 검색하고, 피해자를 위해 병원에 가지 않은 것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연관기사] [단독] 여자친구 살해 20대…수능만점 의대 재학생 (2024.05.07. KBS 뉴스9)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57817

■말다툼 후 살해 계획…혼인 신고 20일 후 살해

4월 16일에 법적으로 부부가 됐지만, 20일 후에 피해자는 최 씨로부터 살해당했습니다.

재판부는 최 씨가 지난 5월 5일에 피해자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퇴원한 후 최 씨와 있었던 말다툼이 원인이라고 봤습니다.

최 씨는 자신의 가정환경보다 피해자 가정환경이 경제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해 피해자에게 "네가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한 것은 금수저여서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네 아버지가 나를 고소해서 내 학력을 잃게 될까 봐 무섭다"고 말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최 씨는 피해자가 최 씨 말을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이고 동시에 피해자가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가정환경이 학력보다 더 중요하다'는 취지로 말했는데, 최 씨는 이를 자신에 대한 공격적인 말로 이해했습니다.

말다툼 다음 날인 5월 6일, 최 씨는 살해를 계획한 장소에 가서 현장을 둘러보고, 흉기와 함께 사고 피해자가 반항할 것에 대비해 청테이프까지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피해자를 건물 옥상에 데리고 가 살해했습니다.

■피해 부모 "사회로 돌아와선 안 된다" 강조했지만…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는 최 모 씨

총 4차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피해자 아버지는 증언을 통해 최 씨에 대한 엄벌을 강조했습니다.

아버지는 "최 씨는 의대 졸업 후 병원을 운영할 건물이 필요했고, 제 도움으로 건물을 마련할 계획을 갖고 딸을 이용했다"면서 "딸을 가스라이팅을 해서 혼인신고까지 했다"고 흐느끼며 말했습니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자신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혼인 신고 사실을 부모에게 말한 딸을 잔인하게 살해했다"면서 "최 씨는 결코 사회에 돌아와선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검찰이 최 씨에 대해 사형을 구형한 마지막 재판에선 재판부에 무릎까지 꿇으면서 "최 씨에게 사형을 선고해 가족들이 미약하나마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길 간청한다"고 했습니다.

■재판부 "살해 고의 뚜렷…살인 재범 개연성 없어 보여"

재판부는 최 씨에 대해 "피해자를 살해하겠다는 고의는 뚜렷하고 확정적이었다"면서 "범행 방법이 잔혹하고 비난 가능성이 높다"고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재범 위험성이 '높음' 수준으로 평가된 사실이 인정되고 자기애적 취약성이나 극단적인 방어기제, 충동적 성향이 관찰된다"면서도 "자살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이런 특성이 '타인을 살해'한다는 폭력 성향으로 이어진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어 "최 씨가 장래에 다시 살인 범죄를 범하여 법적 평온을 깨뜨릴 만한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검찰이 요청한 전자장치 부착 30년과 보호관찰 명령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재판부가 피해자를 무시하고 판결했다" 울분

징역 26년이라는 중형이 선고됐지만, 당초 사형 선고가 내려지길 바랐던 피해자 가족들은 실망을 넘어 분노했습니다.

피해자 아버지는 취재진에게 "사망한 제 딸 생명의 가치를 생각해 국민이 납득할 만한 선고를 해달라고 말씀드렸는데, 재판부는 무시했다"면서 "차라리 무죄로 방면하지 왜 징역 26년을 선고했냐?"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아버지는 "재판부가 피해자와 관련해서 아무런 관심이 없고, 최 씨가 의대생이고 앞으로 사회에 기여할 거라고 생각하니까 저런 선고 판결이 나온 거다"면서 "이 친구가 징역 26년이 맞느냐? 피해자 가족에게 고통만 더 줬다"고 울분을 토했습니다.

피해자 측 변호인은 "잔혹하게 인간의 생명을 뺏어갔는데, 징역 26년 후 이 사회로 최 씨를 돌아올 수 있게 한 사법부가 국민을 보호하겠다는 생각이 있는지 묻고 싶다"면서 "피해자 가족의 고통을 무시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피해자 가족은 검찰에 항소를 요청하겠다고도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