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차 30분 기다리다 사망…“미국도 의료 위기” [특파원 리포트]
입력 2024.12.21 (09:44)
수정 2024.12.21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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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급차가 필요하다고 말했어요. 딸아이를 이송해야 했어요. 우리는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렸어요"
15살 딸을 갑작스레 잃은 엄마의 호소입니다.
사정은 이렇습니다. 이달 5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교외 칼리지파크에서 15살 어맨다 실버스터가 배구 연습을 위해 몸을 풀던 도중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911(우리나라의 119)에 신고했고, 약 8분 만에 응급대원들이 도착했지만, 구급차는 30분이 넘어도 오지 않았습니다.
어맨다 실베스터가 몸을 풀고 있는 모습
결국 아이의 어머니는 자신의 차로 아이를 병원으로 옮겼는데, 그곳에서 심정지로 사망했습니다.
당시 통화기록을 보면 이렇습니다. 구급차를 파견하는 911 담당자는 구급차를 기다리고 있다는 신고 전화에 당장 출동할 수 있는 구급차가 없다고 답합니다. 구급차를 운용하는 응급의료 서비스 측은 처음 아이의 상태가 위급한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해 후순위로 밀렸으며, 아이의 상태가 심각해지면서 구급차를 보냈지만, 그땐 이미 아이의 어머니가 직접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고 답했습니다.
언뜻 보면 911과 구급차 운용사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 합리적으로 대응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뒤엔 계속해서 문을 닫고 있는 미국 병원의 현실이 숨어 있습니다. 칼리지 파크시 대변인도 지역 의료센터가 문을 닫으면서 응급상황에 대응이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지역에선 2022년 대형 병원인 애틀렌타의료센터가 문을 닫았습니다.
■주변 병원으로 몰리는 응급환자 '위험'
어느 한 병원이 문을 닫으면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여파는 주변 병원으로 퍼져나갑니다.
애틀랜타 의료 센터가 문을 닫은 이후 그 환자들은 애틀랜타 도심의 에모리 대학병원 미드타운과, 그래디 메모리얼 병원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병원의 수용 가능 인원 대비 실제 환자수를 비교해서 측정하면 빈번하게 '심각' 또는 '위험' 상태로 평가됩니다.
이렇게 의료 서비스가 부족하면 자연스레 사망 사례가 증가하게 됩니다. 2019년 하버드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한 병원이 문을 닫을 경우 근처 의료인에게 부담이 지워지며, 이로 인해 퇴원 후 30일 이내에 발생하는 환자 사망률이 3년 동안 3.8%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혈압이나, 유방암 검사 등 적절한 정기적인 검진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 나타나는 질병과 사망률은 포함되지 않았는데도 그렇습니다.
어맨다도 기존 병원이 문을 닫지 않고 구급차가 제때 도착했다면 살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재정난으로 폐쇄"...그로 인한 '소외'
병원들이 수익이 나면 당연히 문을 닫지 않을 것입니다. 문을 닫는 병원들도 '재정난'을 호소했고,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병원 폐쇄가 교외나 시골, 또 흑인이나 빈곤층이 많이 사는 곳에 집중되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문을 닫은 애틀랜타 의료센터은 2019년 기준 응급실 환자의3분의 2가 흑인이었고, 절반 이상은 메디케이드와 메디케어 등 정부 의료 보호의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전국적으로 봐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2010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미국의 시골 지역에서 149개의 병원이 문을 닫았거나 입원환자를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산과를 더이상 운영하지 않는 병원은 2010년 이후 100곳이 넘습니다.
2019년 6월 문을 닫은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하네만 대학 병원, 2019년 8월 파산한 시카고 웨스트레이크 병원 등도 모두 흑인과 저소득 주민이 많이 사는 지역에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 정말 재정난이 근본 원인일까?
병원들은 메디케이드 같은 정부 보험의 환급률을 높여달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민간 보험보다 메디케이드에서 지급하는 비용이 낮기 때문입니다. 메디케이드에서 환자당 45달러를 더 지불하면 의료격차의 3분의 2가량을 줄일 수 있을 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버드 대학, TH 챈 공중보건대학원의 경영학과 겸임교수인 낸시 케인은 병원 재정난의 원인을 수입 감소보다는 투자 부족이라고 지적합니다. 투자가 제대로 되지 않고 시설이 낙후되다보니 의사나 환자들이 점차 외면하게 되고 이게 매출 감소로 이어진다는 겁니다.
아울러 대형 의료 법인의 병원 인수도 지적합니다. 대형 의료 법인은 해당 지역에 대한 헌신이나 책임감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 병원이 메디케이드나 무보험 환자가 많고, 정부 지원도 많이 받지 못한다면 실적이 좋지 않은 병원으로 보이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때문에 지역 사회의 보건 시스템에 대한 통제 강화를 주장합니다.
현재 미국에는 의사가 110만 명 넘게 있습니다. 2010년보다 30%가량 늘어는 숫자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병원 예약은 어렵고 느립니다. 그리고 의료에서 소외되는 사람들도 늘고 있습니다.
문을 닫았던 애틀랜타 의료센터의 일부 진료 과목은 더 부유한 동네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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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급차 30분 기다리다 사망…“미국도 의료 위기” [특파원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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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4-12-21 09:44:54
- 수정2024-12-21 09:47:15
"구급차가 필요하다고 말했어요. 딸아이를 이송해야 했어요. 우리는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렸어요"
15살 딸을 갑작스레 잃은 엄마의 호소입니다.
사정은 이렇습니다. 이달 5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교외 칼리지파크에서 15살 어맨다 실버스터가 배구 연습을 위해 몸을 풀던 도중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911(우리나라의 119)에 신고했고, 약 8분 만에 응급대원들이 도착했지만, 구급차는 30분이 넘어도 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아이의 어머니는 자신의 차로 아이를 병원으로 옮겼는데, 그곳에서 심정지로 사망했습니다.
당시 통화기록을 보면 이렇습니다. 구급차를 파견하는 911 담당자는 구급차를 기다리고 있다는 신고 전화에 당장 출동할 수 있는 구급차가 없다고 답합니다. 구급차를 운용하는 응급의료 서비스 측은 처음 아이의 상태가 위급한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해 후순위로 밀렸으며, 아이의 상태가 심각해지면서 구급차를 보냈지만, 그땐 이미 아이의 어머니가 직접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고 답했습니다.
언뜻 보면 911과 구급차 운용사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 합리적으로 대응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뒤엔 계속해서 문을 닫고 있는 미국 병원의 현실이 숨어 있습니다. 칼리지 파크시 대변인도 지역 의료센터가 문을 닫으면서 응급상황에 대응이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지역에선 2022년 대형 병원인 애틀렌타의료센터가 문을 닫았습니다.
■주변 병원으로 몰리는 응급환자 '위험'
어느 한 병원이 문을 닫으면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여파는 주변 병원으로 퍼져나갑니다.
애틀랜타 의료 센터가 문을 닫은 이후 그 환자들은 애틀랜타 도심의 에모리 대학병원 미드타운과, 그래디 메모리얼 병원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병원의 수용 가능 인원 대비 실제 환자수를 비교해서 측정하면 빈번하게 '심각' 또는 '위험' 상태로 평가됩니다.
이렇게 의료 서비스가 부족하면 자연스레 사망 사례가 증가하게 됩니다. 2019년 하버드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한 병원이 문을 닫을 경우 근처 의료인에게 부담이 지워지며, 이로 인해 퇴원 후 30일 이내에 발생하는 환자 사망률이 3년 동안 3.8%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혈압이나, 유방암 검사 등 적절한 정기적인 검진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 나타나는 질병과 사망률은 포함되지 않았는데도 그렇습니다.
어맨다도 기존 병원이 문을 닫지 않고 구급차가 제때 도착했다면 살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재정난으로 폐쇄"...그로 인한 '소외'
병원들이 수익이 나면 당연히 문을 닫지 않을 것입니다. 문을 닫는 병원들도 '재정난'을 호소했고,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병원 폐쇄가 교외나 시골, 또 흑인이나 빈곤층이 많이 사는 곳에 집중되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문을 닫은 애틀랜타 의료센터은 2019년 기준 응급실 환자의3분의 2가 흑인이었고, 절반 이상은 메디케이드와 메디케어 등 정부 의료 보호의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전국적으로 봐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2010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미국의 시골 지역에서 149개의 병원이 문을 닫았거나 입원환자를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산과를 더이상 운영하지 않는 병원은 2010년 이후 100곳이 넘습니다.
2019년 6월 문을 닫은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하네만 대학 병원, 2019년 8월 파산한 시카고 웨스트레이크 병원 등도 모두 흑인과 저소득 주민이 많이 사는 지역에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 정말 재정난이 근본 원인일까?
병원들은 메디케이드 같은 정부 보험의 환급률을 높여달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민간 보험보다 메디케이드에서 지급하는 비용이 낮기 때문입니다. 메디케이드에서 환자당 45달러를 더 지불하면 의료격차의 3분의 2가량을 줄일 수 있을 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버드 대학, TH 챈 공중보건대학원의 경영학과 겸임교수인 낸시 케인은 병원 재정난의 원인을 수입 감소보다는 투자 부족이라고 지적합니다. 투자가 제대로 되지 않고 시설이 낙후되다보니 의사나 환자들이 점차 외면하게 되고 이게 매출 감소로 이어진다는 겁니다.
아울러 대형 의료 법인의 병원 인수도 지적합니다. 대형 의료 법인은 해당 지역에 대한 헌신이나 책임감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 병원이 메디케이드나 무보험 환자가 많고, 정부 지원도 많이 받지 못한다면 실적이 좋지 않은 병원으로 보이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때문에 지역 사회의 보건 시스템에 대한 통제 강화를 주장합니다.
현재 미국에는 의사가 110만 명 넘게 있습니다. 2010년보다 30%가량 늘어는 숫자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병원 예약은 어렵고 느립니다. 그리고 의료에서 소외되는 사람들도 늘고 있습니다.
문을 닫았던 애틀랜타 의료센터의 일부 진료 과목은 더 부유한 동네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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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중 기자 baikal@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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