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중구 광복로 앞 분수 광장
■ 분수 광장 조성·주민센터 신축으로 지방 소멸 대응?
부산 중구 남포역 앞. 관광객들에게는 '광복로 트리 축제'로 유명한 부산의 대표적인 원도심 관광지입니다. 지난 10월 이곳에 분수 광장이 설치됐습니다.
분수 광장 앞에는 커다란 영상 꾸밈 벽도 세워져 시선을 끕니다. 중구는 분수 광장을 설치해 관광 산업을 활성화하고 거점 공간을 만들겠다고 공언했습니다. 내년부터는 시원한 물줄기가 남포역 앞에 쏟아질 예정입니다.
전체 예산 21억 원. 재정자립도가 열악하고, 인구가 8만 명 수준인 부산시 중구에서는 예산 조성조차 쉽지 않은 사업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사업에 절반가량, 그러니까 10억 원이 '지방소멸대응기금'으로 집행됐습니다.
영도구 문화로빛센터가 들어설 봉래2동주민센터 일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30%를 넘어 초고령화 지역으로 분류된 부산 영도. '문화도시 영도'를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하며 기존 봉래2동주민센터 자리에 대형 문화시설을 건립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전체 예산만 120억 원가량. 역시 이곳도 예산 중 106억 원이 지방소멸대응기금으로 조성됐습니다.
부산의 인구 감소 및 인구 감소 관심 지역은 모두 5곳. 이들 지자체 모두 주요 사업 예산이 '지방소멸대응기금'으로 조성되고 있습니다. 마치 마법의 단어 같은 '지방소멸대응기금'. 대체 어떻게 쓰이고 있을까요?
■ 구청장 공약사업 일색…주민 의견은 어디로
부산에서 지방소멸대응기금을 받는 지자체는 모두 5곳입니다. 이 중 인구 감소 지역이 4곳(동구, 중구, 서구, 영도구), 인구 감소 관심 지역이 1곳(금정구)입니다. 이들 지자체는 2022년부터 3년 동안 기금 537억 원가량을 따냈습니다. 사업도 다양합니다. 문화로빛센터, 분수 광장 조성, 노인회관 등 30개에 달합니다.
그런데 전체 사업을 분석한 결과, 30개 사업 중 11개가 구청장 공약사업이라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전체 사업의 1/3이 넘는 수준이죠. 특히 부산 중구의 경우 지방소멸대응기금을 따낸 7개 사업 중 5개가 구청장 공약사업이었고, 전체 예산 53억 원의 96%에 달하는 돈이 들어갔습니다.
자치단체마다 선정 기준을 물었더니, '지역에 필요한 정책을 발굴한다'는 일관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필요하다는 기준은 누가 정하느냐는 질문에 부서별로 사업안을 제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답했는데요.
지역 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절차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모두 '그렇지는 않다'고 답했습니다. 결국 구청 내부에서 자의적으로 사업안을 내는 구조이다 보니 너나 할 것 없이 구청장 공약사업에 집중되는 결과가 나온 겁니다.
■ 집행률 저조에 삭감 위기…3년 동안 15%가 고작?
부산 지역 지방소멸대응기금 집행률
사업 집행률 자체도 저조합니다. 실제 지방소멸대응기금을 받는 부산의 5개 자치단체 가운데 4곳이 3년간 집행률이 50%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 영도구가 44%, 중구가 41%, 서구가 38%, 심지어 동구는 15% 수준에 그쳤습니다. 그나마 금정구는 65% 정도까지 사업이 진행됐는데요.
제일 집행률이 저조한 동구는 현재 2개 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이 중 한 가지 사업인 '어울림파크 복합 플랫폼'의 경우 지난해 기금을 한 푼도 집행하지 못했습니다. 동구 측은 해당 사업의 중앙투자심사 등을 거치면서 공사비를 지급하지 못하다 보니 벌어진 일이라며 내년부터는 사업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습니다.
부산 동구 어울림파크 복합 플랫폼 예정지
문제는 앞으로의 기금입니다. 정부는 최근 지방소멸대응기금 부실 운영 등을 지적받자, 2022년도 기금의 경우 집행률이 30% 미만이면 내년도 기금을 전액 삭감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어울림파크 사업은 35.9%로 아슬아슬하게 삭감 기준을 피했습니다. 하지만 당장 내년에도 관련 제재가 계속될 것으로 보여서 지자체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입니다.
■ 한시적 사업 아닌 장기 사업 발굴·추진해야
지자체 담당자들은 지금의 구조로 운영한다면 저조한 집행률과 주먹구구식 사용은 반복될 거라고 지적했습니다. 익명의 한 지자체 관계자는 "매년 기금 보고서를 집행해야 하는 입장에서 단기성 사업에 치우칠 수밖에 없다"며 "장기 사업 발굴은 어렵다"고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행정안전부도 "최대한 지자체들이 기금을 사용할 수 있게 하겠다"며 집행이 어려워진 사업은 사업을 변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진행에 차질을 빚는 사업도 꾸준히 지자체와 논의를 거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지방소멸대응기금 자체가 10년짜리 한시적 사업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고 봤습니다. 특히 장기 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운 형태로 진행되는 현 체계가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는데요.
앞서 2014년부터 지방 소멸 대응 사업을 펼친 일본의 경우, 지방 자체에서 육성할 수 있는 장기적인 사업을 발굴하고, 마을 공동체를 만드는 등 커뮤니티 중심의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 과정에서 마을의 유대를 키워 마을 자체를 살리는 데 주력한 겁니다. 또 대규모 거점 시설 등은 별도의 정책 사업으로 분류해 교부금 형태로 지원하는 등 세밀하게 기준을 정했습니다.
박재욱 신라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자체가 장기적이고 전략적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방침부터 좀 바꿔주는 것이 맞다"며 정책 체계 변화가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이 단순한 쌈짓돈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보다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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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해 1조 원 ‘지방소멸대응기금’…구청장 공약 사업에 ‘줄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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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4-12-26 15:21:42
■ 분수 광장 조성·주민센터 신축으로 지방 소멸 대응?
부산 중구 남포역 앞. 관광객들에게는 '광복로 트리 축제'로 유명한 부산의 대표적인 원도심 관광지입니다. 지난 10월 이곳에 분수 광장이 설치됐습니다.
분수 광장 앞에는 커다란 영상 꾸밈 벽도 세워져 시선을 끕니다. 중구는 분수 광장을 설치해 관광 산업을 활성화하고 거점 공간을 만들겠다고 공언했습니다. 내년부터는 시원한 물줄기가 남포역 앞에 쏟아질 예정입니다.
전체 예산 21억 원. 재정자립도가 열악하고, 인구가 8만 명 수준인 부산시 중구에서는 예산 조성조차 쉽지 않은 사업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사업에 절반가량, 그러니까 10억 원이 '지방소멸대응기금'으로 집행됐습니다.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30%를 넘어 초고령화 지역으로 분류된 부산 영도. '문화도시 영도'를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하며 기존 봉래2동주민센터 자리에 대형 문화시설을 건립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전체 예산만 120억 원가량. 역시 이곳도 예산 중 106억 원이 지방소멸대응기금으로 조성됐습니다.
부산의 인구 감소 및 인구 감소 관심 지역은 모두 5곳. 이들 지자체 모두 주요 사업 예산이 '지방소멸대응기금'으로 조성되고 있습니다. 마치 마법의 단어 같은 '지방소멸대응기금'. 대체 어떻게 쓰이고 있을까요?
■ 구청장 공약사업 일색…주민 의견은 어디로
부산에서 지방소멸대응기금을 받는 지자체는 모두 5곳입니다. 이 중 인구 감소 지역이 4곳(동구, 중구, 서구, 영도구), 인구 감소 관심 지역이 1곳(금정구)입니다. 이들 지자체는 2022년부터 3년 동안 기금 537억 원가량을 따냈습니다. 사업도 다양합니다. 문화로빛센터, 분수 광장 조성, 노인회관 등 30개에 달합니다.
그런데 전체 사업을 분석한 결과, 30개 사업 중 11개가 구청장 공약사업이라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전체 사업의 1/3이 넘는 수준이죠. 특히 부산 중구의 경우 지방소멸대응기금을 따낸 7개 사업 중 5개가 구청장 공약사업이었고, 전체 예산 53억 원의 96%에 달하는 돈이 들어갔습니다.
자치단체마다 선정 기준을 물었더니, '지역에 필요한 정책을 발굴한다'는 일관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필요하다는 기준은 누가 정하느냐는 질문에 부서별로 사업안을 제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답했는데요.
지역 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절차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모두 '그렇지는 않다'고 답했습니다. 결국 구청 내부에서 자의적으로 사업안을 내는 구조이다 보니 너나 할 것 없이 구청장 공약사업에 집중되는 결과가 나온 겁니다.
■ 집행률 저조에 삭감 위기…3년 동안 15%가 고작?
사업 집행률 자체도 저조합니다. 실제 지방소멸대응기금을 받는 부산의 5개 자치단체 가운데 4곳이 3년간 집행률이 50%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 영도구가 44%, 중구가 41%, 서구가 38%, 심지어 동구는 15% 수준에 그쳤습니다. 그나마 금정구는 65% 정도까지 사업이 진행됐는데요.
제일 집행률이 저조한 동구는 현재 2개 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이 중 한 가지 사업인 '어울림파크 복합 플랫폼'의 경우 지난해 기금을 한 푼도 집행하지 못했습니다. 동구 측은 해당 사업의 중앙투자심사 등을 거치면서 공사비를 지급하지 못하다 보니 벌어진 일이라며 내년부터는 사업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습니다.
문제는 앞으로의 기금입니다. 정부는 최근 지방소멸대응기금 부실 운영 등을 지적받자, 2022년도 기금의 경우 집행률이 30% 미만이면 내년도 기금을 전액 삭감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어울림파크 사업은 35.9%로 아슬아슬하게 삭감 기준을 피했습니다. 하지만 당장 내년에도 관련 제재가 계속될 것으로 보여서 지자체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입니다.
■ 한시적 사업 아닌 장기 사업 발굴·추진해야
지자체 담당자들은 지금의 구조로 운영한다면 저조한 집행률과 주먹구구식 사용은 반복될 거라고 지적했습니다. 익명의 한 지자체 관계자는 "매년 기금 보고서를 집행해야 하는 입장에서 단기성 사업에 치우칠 수밖에 없다"며 "장기 사업 발굴은 어렵다"고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행정안전부도 "최대한 지자체들이 기금을 사용할 수 있게 하겠다"며 집행이 어려워진 사업은 사업을 변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진행에 차질을 빚는 사업도 꾸준히 지자체와 논의를 거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지방소멸대응기금 자체가 10년짜리 한시적 사업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고 봤습니다. 특히 장기 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운 형태로 진행되는 현 체계가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는데요.
앞서 2014년부터 지방 소멸 대응 사업을 펼친 일본의 경우, 지방 자체에서 육성할 수 있는 장기적인 사업을 발굴하고, 마을 공동체를 만드는 등 커뮤니티 중심의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 과정에서 마을의 유대를 키워 마을 자체를 살리는 데 주력한 겁니다. 또 대규모 거점 시설 등은 별도의 정책 사업으로 분류해 교부금 형태로 지원하는 등 세밀하게 기준을 정했습니다.
박재욱 신라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자체가 장기적이고 전략적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방침부터 좀 바꿔주는 것이 맞다"며 정책 체계 변화가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이 단순한 쌈짓돈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보다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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