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마 키이우]① 어서 와, 분쟁지역은 처음이지? [취재후]

입력 2025.01.06 (17:20) 수정 2025.01.06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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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KBS 우크라이나 특별 취재팀은 1월 한 달 동안 지난해 12월 우크라이나 출장 경험을 취재 후기 형태로 전합니다. 첫 후기로 우크라이나 특별 취재팀 구성과 준비 과정을 되새겨봤습니다.

우크라이나 키이우주 부차시 부차 제3고등학교 벽면에 걸려있는 우크라이나 지도 ©금철영 기자(cykum@kbs.co.kr)우크라이나 키이우주 부차시 부차 제3고등학교 벽면에 걸려있는 우크라이나 지도 ©금철영 기자(cykum@kbs.co.kr)

■ 우크라이나로 출장을 명 받았습니다!

2024년 11월 21일, 다음 날부터 국제부로 출근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함께 갈 취재팀은 리더격인 금철영 기자, 촬영 기자인 신봉승 기자, 고형석 기자 등 이렇게 4명으로 꾸려졌다. 출장 목적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휴전 압력을 받는 러시아-우크라이나전 현지 상황과 러시아에 파병돼 쿠르스크 전선에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 북한군의 동향 파악 등이었다. 출발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취재진은 모두 분쟁지역 또는 위험지역 취재 경험이 있었다. 금철영 기자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전초 기지였던 쿠웨이트, 2004년과 2006년 이라크까지 분쟁지역을 3차례 다녀왔다.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중동과 계엄령이 내려졌던 이집트 등 위험지역 취재 경험도 있었다. 우크라이나도 이번이 3번째였다. 앞서 2007년 페르보마이스크 핵미사일 기지 등을 취재했고, 2011년엔 사고 25주년을 맞은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와 우크라이나 접경지인 벨라루스 고멜의 방사능 오염 지역 등을 방문했다.

신봉승 기자는 2007년 레바논에서 벌어진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의 분쟁을 취재했다. 같은 해 미얀마 민주화 시위와 2010년 아이티 대지진 등 위험지역 취재 경험도 2차례 더 있었다. 고형석 기자도 2015년 네팔 대지진과 2016년 일본 구마모토 지진 등 위험지역에 2차례 다녀왔다. 분쟁지역이나 위험지역 취재는 처음이었던 나는 두려움보단 기대감으로 출장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 우크라이나, 어떻게 갈 것인가?

출장 결정이 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동선 파악이다. 비행기가 언제, 어디서, 어디로 떠나고, 돌아오는지 파악해야 일정도 짤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는 정기 여객편 운항이 이뤄지지 않는다. 인접국에서 육로로 들어가야 했다. 먼저 우크라이나는 동쪽에서부터 러시아와 벨라루스,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몰도바로 둘러싸여 있다. 이 가운데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적성국인 러시아와 벨라루스를 제외하면 다섯 나라가 남고, 우리나라에서 직항이 있는 나라는 폴란드와 헝가리였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우크라이나 키이우까진 육로로 8백 km가 조금 넘고,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선 천백 km가 조금 넘는다. 서울에서 키이우로 가는 최단 경로는 폴란드 바르샤바까지 비행기로 이동한 뒤 그곳에서 우크라이나 키이우까지 육로로 가는 길이었다. 인천에서 폴란드 바르샤바 직항을 알아봤더니 폴란드 항공(LOT)에서 화, 목, 토, 일로 주 3~4회 출발했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우크라이나 키이우로 가는 육로 이동 수단은 크게 5가지였다. ▲ 차량과 기사를 빌리거나, ▲ 직행버스를 타거나, ▲ D-68 야간열차를 타고 직행하거나, ▲ 우크라이나 코벨과 가까운 폴란드 헤움까지 가서 기차를 갈아타거나, ▲ 우크라이나 르비우와 가까운 폴란드 프셰미실까지 가서 기차를 갈아타야 했다. 시간과 편의성을 감안하면 최적의 선택은 '키이우 익스프레스'라고 불리는 D-68 야간열차다. 그러나 해당 열차의 티켓 발권은 출발일 기준 한 달 전에 대부분 마감됐다. 항공 교통이 마비된 우크라이나에서 외국으로 오가는 최적의 수단이 이 열차이기 때문이다. 촬영 장비를 포함한 1인당 2~3개의 짐을 들고, 대기할 곳도 마땅치 않은 헤움이나 프셰미실에서 기차를 갈아타는 것도 바람직한 선택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우크라이나 입국만을 위해 변수가 많은 차량과 기사를 고용하기도 애매했다. 결국 출발 전까지 열차표를 구하지 못해 독일계 버스 회사인 플릭스부스(Flixbus)가 운영하는 버스를 탔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우크라이나 키이우까진 루블린과 헤움, 코벨과 사니, 코로스텐을 거쳐 14~15시간이 걸렸다. 취재가 끝나고 돌아갈 땐 국경에서 검문에만 14시간을 소모해 모두 27시간이 걸렸다.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떠나 폴란드 바르샤바로 갈 때 탔던 플릭스부스의 2층 버스다. ©금철영 기자(cykum@kbs.co.kr)우크라이나 키이우를 떠나 폴란드 바르샤바로 갈 때 탔던 플릭스부스의 2층 버스다. ©금철영 기자(cykum@kbs.co.kr)

■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 어떻게 받나?

우리 정부는 우크라이나 내 예외적 여권사용 허가 지역을 키이우시와 주를 포함한 북서부의 11개 주로 제한하고 있다.우리 정부는 우크라이나 내 예외적 여권사용 허가 지역을 키이우시와 주를 포함한 북서부의 11개 주로 제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역은 '여행금지' 지역이다. 우리 국민이 여행금지 지역을 방문하려면 외교부 장관으로부터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를 받아야 한다. 우크라이나에서 취재나 보도 목적으로 예외적 여권 사용이 허가되는 기간은 2주, 지역은 북서부 11개 주(키이우시와 키이우주, 지토미르주, 리우네주, 볼린주, 르비우주, 자카르파탸주, 이바노프란키우스크주, 테르노필주, 흐멜니츠키주, 체르니우치주, 빈니차주)다. 북서부 11개 주는 러시아군의 미사일이나 드론 공습으로부터 안전하다고 볼 순 없지만, 다른 주들보단 상황이 나은 편이다. 현재 크림반도와 헤르손주의 드니프로강 남측, 자포리자주, 포크로우스크 동쪽의 도네츠크주, 루한스크주는 일부나 전부가 러시아에 점령됐다. 크림반도를 거점으로 흑해를 통해 상륙이 가능한 오데사주와 미콜라이우주, 러시아 영토 쿠르스크와 가까운 수미주와 하르키우주도 최전선이나 마찬가지다.

참고로 예외적 여권 사용 신청 대상은 5가지 사유로 제한된다. ▲ 여행금지 국가나 지역의 영주권 등을 취득한 사람으로 해당 지역이 생활근거지인 경우, ▲ 본인이나 배우자의 직계존비속 등이 숨지거나 이에 준하는 사고·질병으로 긴급히 출국하는 경우, ▲ 외교·안보 임무나 재외국민 보호 등을 수행하는 국가기관 또는 국제기구의 공무를 위한 경우, ▲ 소관 중앙행정기관장의 추천으로 국가이익이나 기업활동에 관련된 임무를 수행하는 경우, 마지막으로 ▲ 공공의 이익을 위한 취재나 보도를 위한 경우다. 허가를 받지 않고 여행금지 지역을 방문하면 여권법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된다.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 신청은 재외동포 365 민원 포털을 통해 할 수 있다. 그러나 취재와 보도 목적으로 신청할 경우 활동계획서가 외교부나 재외동포 포털에 올려진 기본 양식과 다르다. 따라서 미리 외교부 재외국민보호과와 통화해 해당 양식을 받아야 한다. 양식을 수령한 뒤 활동계획서나 소속 단체장 확인서 등을 작성하고, 재직증명서 등 제출 서류를 발급받으면 신청 준비는 완료된다. 신청이 끝나면 1차로 활동계획과 안전대책을 중심으로 관계 부처 검토에 최소 1주일이 소요된다. 이후 여권정책협의회가 열려 서면 심의를 하는데 최소 1주일이 소요된다. 검토와 심의에 참여하는 기관은 외교부와 국가정보원, 법무부와 경찰청 등 외교·안보와 출입국에 관여하는 기관들이다. 전체 소요 기간은 서류 준비부터 신청, 허가까지 3~4주다.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가 나면 이와 같은 허가서를 받게 된다.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가 나면 이와 같은 허가서를 받게 된다.

■ 현지 통역 섭외와 우크라이나군 취재 인가 신청

러시아가 이스칸데르 탄도미사일로 키이우 수도 중심가를 공습한 직후 취재진이 현장에서 생방송을 준비하는 모습. 사진 이승철 기자 bullseye@kbs.co.kr러시아가 이스칸데르 탄도미사일로 키이우 수도 중심가를 공습한 직후 취재진이 현장에서 생방송을 준비하는 모습. 사진 이승철 기자 bullseye@kbs.co.kr

우크라이는 불리한 전세 역전을 위해 다양한 공격용 드론을 활용해 러시아에 반격을 가했다. 위 사진은 취재진이 우크라이나 드론 연구 및 생산관련 시설을  둘러보는 모습 .우크라이는 불리한 전세 역전을 위해 다양한 공격용 드론을 활용해 러시아에 반격을 가했다. 위 사진은 취재진이 우크라이나 드론 연구 및 생산관련 시설을 둘러보는 모습 .

해외 취재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은 흔히 코디네이터라고 하는 현지 가이드 또는 통역 선정이다. 코디네이터가 취재 과정에서 언어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코디네이터가 취재처를 발굴하거나 소개하는 섭외를 한다는 점이다. 우선 주우크라이나 한국대사관 홈페이지부터 찾았다. 한국어와 우크라이나어 동시통역이 가능한 명단 중에서 현지에 거주하고 있고, 통역 경험이 많은 후보군을 추렸다. 그리고 기존에 우크라이나 취재를 했던 선배들의 의견을 들었다. 최종 선택은 2022년 러시아 침공 당시 '특파원보고 세계는 지금'을 통해 키이우 현지 상황을 국내에 알렸던 테티아나 보디아니츠카 씨를 택했다. 테티아나 씨의 제안으로 우크라이나 내 이동을 맡아줄 기사도 섭외했다. 현지 사진작가이자 러시아군의 전쟁범죄를 기록하는 인권 단체 즈미나(@zmina_ua) 소속의 일명 제냐, 예우헤니이 씨였다.통역이 선정되자 출국 전 사전 섭외를 시작했다.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 면담과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러시아군의 민간인 학살이 있었던 부차 현지 취재 관련이었다. 이 가운데 총참모부 면담은 불발됐지만, 포로 문제를 총괄하는 우크라이나군 포로 처리 조정본부 대변인을 인터뷰할 수 있었고, 나머지는 계획대로 진행됐다. 테티아나 씨 측 제안으로 민간인 포로 석방 촉구 집회와 군인 포로 석방 촉구 집회, 즈미나의 설립자인 BBC 기자 출신이자 인권 운동가인 막쉼 부케비치 취재가 이뤄졌고, 우리팀의 요청과 제냐의 섭외로 우크라이나 측 드론 공학 교육기관 취재도 이뤄졌다.

출국에 앞서 우크라이나 내에서 자유로운 취재를 위해 별도의 절차도 밟아야 했다. 우리 국민은 우크라이나 입국 시 별도의 관광 비자나 취재 비자가 필요하진 않다. 다만, 우크라이나는 현재 러시아와 전쟁 중이고, 자연스럽게 취재 과정에선 군사 보안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군 취재 인가 신청을 받고, 신청자의 신원을 확인한 뒤 인가증을 발급하고 있다. 취재 인가를 받기 위해선 우크라이나 국방부(mod.gov.ua)에서 양식을 받아 작성 뒤 제출하면 되고, 기자증과 여권, 소속 언론사 편집장의 서신 등이 첨부돼야 한다. 우리 팀은 통역인 테티아나 씨를 통해 취재 인가를 신청했고, 발급까지 2주 반가량이 소요됐다.

취재 인가의 유효기간은 1년이다. 우크라이나 군·경의 통제를 받는 곳을 취재할 때 취재 인가를 제시하면 현장 진입을 허용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공습한 날, 미사일이 떨어지고 대략 1시간 반 뒤부터 현장 통제가 이뤄졌는데 우리 팀이 오전 취재를 마치고 오후에 재진입할 때 취재 인가를 제시하자 현장 진입이 허용됐다. 취재를 마치고 우크라이나를 빠져나올 때도 취재 인가를 제시한 적이 있다. 당시 우크라이나 국경수비대가 밀수품 검사를 한다며 다른 승객과 달리 우리 팀만 모든 짐을 버스에서 내리게 하고 가방을 열도록 요구했다. 아울러 채증한다며 촬영까지 시작했다. 이에 해당 취재 인가를 제시하며 항의하자 우크라이나군 국경수비대는 밀수품 검사 절차를 생략하고 통과시켜 줬다.

우크라이나군이 발급하는 취재 인가다.우크라이나군이 발급하는 취재 인가다.

■ 밤마다 공습, 어디서 잘 것인가?

러시아군은 주로 저녁부터 아침까지 공습한다. 입국 전부터 소통했던 테티아나 씨가 공습경보 때문에 잠을 못 이룬다고 얘기했던 적도 있다. 따라서 공습으로부터 안전한 숙소 선정이 매우 중요했다. 먼저 우크라이나 정부 기관이나 군 시설 주변은 피해야 했다. 다음으로 정교회 성당이나 외국 대사관 주변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조언을 받았다. 해당 조건을 만족하고 이름이 익숙한 호텔 체인을 찾기 시작했다. 예산 범위를 벗어나는 인터콘티넨털이나 하얏트, 힐튼 같은 체인을 제외하고 나니 홀리데이인과 이비스 정도가 남았다. 혹시나 해 테티아나 씨에게 추천하는 호텔이 있느냐고 물으니 라트비아계 호텔 체인을 추천했다. 앞서 우크라이나 취재를 했던 KBS팀도 묶었던 스카이로프트였다. 도로 맞은편에 성미카엘 성당과 종합병원이 있고, 옆에 걸리버라는 대형 백화점이 있다. 건물 지하엔 자체 방공호도 있었다.

러시아군의 키이우 공습으로 홀리데이인과 옆 건물의 외벽, 창문이 크게 파손됐다. ©이승철 기자(bullseye@kbs.co.kr)러시아군의 키이우 공습으로 홀리데이인과 옆 건물의 외벽, 창문이 크게 파손됐다. ©이승철 기자(bullseye@kbs.co.kr)

키이우에 미사일이 떨어지던 날, 이 호텔은 이번 출장 중 최고의 선택이 됐다. 당시 러시아군이 쏜 미사일은 홀리데이인 앞 건물을 겨냥했다. 지도 위에 이름도 나오지 않던 이 건물은 우크라이나군 특수부대 본부였다. 주변에 포르투갈과 아르헨티나, 몬테네그로와 마케도니아 등 대사관 6곳이 있고, 성미콜라 대성당이라는 가톨릭교회도 있는 지역이지만, 러시아군은 개의치 않았다. 이날 우크라이나군이 모두 격추했다던 러시아군 미사일 본체 5발 중 1발은 특수부대 본부 앞 도로에 떨어져 그 밑에 있던 가스관을 터뜨려 2차 폭발까지 일으켰다. 미사일 파편은 홀리데이인 옆 상업용 빌딩의 꼭대기를 직격했다. 홀리데이인 대신 스카이로프트에 머문 우리 팀은 이날 떨어지는 미사일을 1.5km 거리에서 직접 보고, 2차 폭발을 촬영하고, 무엇보다 목숨도 구할 수 있었다.

(캡션: 키이우 홀리데이인 호텔 옆 건물에 미사일 파편이 떨어지는 장면이다. 출처 텔레그램 Exileno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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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지마 키이우]① 어서 와, 분쟁지역은 처음이지? [취재후]
    • 입력 2025-01-06 17:20:04
    • 수정2025-01-06 17:50:00
    취재후
KBS 우크라이나 특별 취재팀은 1월 한 달 동안 지난해 12월 우크라이나 출장 경험을 취재 후기 형태로 전합니다. 첫 후기로 우크라이나 특별 취재팀 구성과 준비 과정을 되새겨봤습니다.
우크라이나 키이우주 부차시 부차 제3고등학교 벽면에 걸려있는 우크라이나 지도 ©금철영 기자(cykum@kbs.co.kr)
■ 우크라이나로 출장을 명 받았습니다!

2024년 11월 21일, 다음 날부터 국제부로 출근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함께 갈 취재팀은 리더격인 금철영 기자, 촬영 기자인 신봉승 기자, 고형석 기자 등 이렇게 4명으로 꾸려졌다. 출장 목적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휴전 압력을 받는 러시아-우크라이나전 현지 상황과 러시아에 파병돼 쿠르스크 전선에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 북한군의 동향 파악 등이었다. 출발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취재진은 모두 분쟁지역 또는 위험지역 취재 경험이 있었다. 금철영 기자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전초 기지였던 쿠웨이트, 2004년과 2006년 이라크까지 분쟁지역을 3차례 다녀왔다.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중동과 계엄령이 내려졌던 이집트 등 위험지역 취재 경험도 있었다. 우크라이나도 이번이 3번째였다. 앞서 2007년 페르보마이스크 핵미사일 기지 등을 취재했고, 2011년엔 사고 25주년을 맞은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와 우크라이나 접경지인 벨라루스 고멜의 방사능 오염 지역 등을 방문했다.

신봉승 기자는 2007년 레바논에서 벌어진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의 분쟁을 취재했다. 같은 해 미얀마 민주화 시위와 2010년 아이티 대지진 등 위험지역 취재 경험도 2차례 더 있었다. 고형석 기자도 2015년 네팔 대지진과 2016년 일본 구마모토 지진 등 위험지역에 2차례 다녀왔다. 분쟁지역이나 위험지역 취재는 처음이었던 나는 두려움보단 기대감으로 출장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 우크라이나, 어떻게 갈 것인가?

출장 결정이 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동선 파악이다. 비행기가 언제, 어디서, 어디로 떠나고, 돌아오는지 파악해야 일정도 짤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는 정기 여객편 운항이 이뤄지지 않는다. 인접국에서 육로로 들어가야 했다. 먼저 우크라이나는 동쪽에서부터 러시아와 벨라루스,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몰도바로 둘러싸여 있다. 이 가운데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적성국인 러시아와 벨라루스를 제외하면 다섯 나라가 남고, 우리나라에서 직항이 있는 나라는 폴란드와 헝가리였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우크라이나 키이우까진 육로로 8백 km가 조금 넘고,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선 천백 km가 조금 넘는다. 서울에서 키이우로 가는 최단 경로는 폴란드 바르샤바까지 비행기로 이동한 뒤 그곳에서 우크라이나 키이우까지 육로로 가는 길이었다. 인천에서 폴란드 바르샤바 직항을 알아봤더니 폴란드 항공(LOT)에서 화, 목, 토, 일로 주 3~4회 출발했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우크라이나 키이우로 가는 육로 이동 수단은 크게 5가지였다. ▲ 차량과 기사를 빌리거나, ▲ 직행버스를 타거나, ▲ D-68 야간열차를 타고 직행하거나, ▲ 우크라이나 코벨과 가까운 폴란드 헤움까지 가서 기차를 갈아타거나, ▲ 우크라이나 르비우와 가까운 폴란드 프셰미실까지 가서 기차를 갈아타야 했다. 시간과 편의성을 감안하면 최적의 선택은 '키이우 익스프레스'라고 불리는 D-68 야간열차다. 그러나 해당 열차의 티켓 발권은 출발일 기준 한 달 전에 대부분 마감됐다. 항공 교통이 마비된 우크라이나에서 외국으로 오가는 최적의 수단이 이 열차이기 때문이다. 촬영 장비를 포함한 1인당 2~3개의 짐을 들고, 대기할 곳도 마땅치 않은 헤움이나 프셰미실에서 기차를 갈아타는 것도 바람직한 선택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우크라이나 입국만을 위해 변수가 많은 차량과 기사를 고용하기도 애매했다. 결국 출발 전까지 열차표를 구하지 못해 독일계 버스 회사인 플릭스부스(Flixbus)가 운영하는 버스를 탔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우크라이나 키이우까진 루블린과 헤움, 코벨과 사니, 코로스텐을 거쳐 14~15시간이 걸렸다. 취재가 끝나고 돌아갈 땐 국경에서 검문에만 14시간을 소모해 모두 27시간이 걸렸다.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떠나 폴란드 바르샤바로 갈 때 탔던 플릭스부스의 2층 버스다. ©금철영 기자(cykum@kbs.co.kr)
■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 어떻게 받나?

우리 정부는 우크라이나 내 예외적 여권사용 허가 지역을 키이우시와 주를 포함한 북서부의 11개 주로 제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역은 '여행금지' 지역이다. 우리 국민이 여행금지 지역을 방문하려면 외교부 장관으로부터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를 받아야 한다. 우크라이나에서 취재나 보도 목적으로 예외적 여권 사용이 허가되는 기간은 2주, 지역은 북서부 11개 주(키이우시와 키이우주, 지토미르주, 리우네주, 볼린주, 르비우주, 자카르파탸주, 이바노프란키우스크주, 테르노필주, 흐멜니츠키주, 체르니우치주, 빈니차주)다. 북서부 11개 주는 러시아군의 미사일이나 드론 공습으로부터 안전하다고 볼 순 없지만, 다른 주들보단 상황이 나은 편이다. 현재 크림반도와 헤르손주의 드니프로강 남측, 자포리자주, 포크로우스크 동쪽의 도네츠크주, 루한스크주는 일부나 전부가 러시아에 점령됐다. 크림반도를 거점으로 흑해를 통해 상륙이 가능한 오데사주와 미콜라이우주, 러시아 영토 쿠르스크와 가까운 수미주와 하르키우주도 최전선이나 마찬가지다.

참고로 예외적 여권 사용 신청 대상은 5가지 사유로 제한된다. ▲ 여행금지 국가나 지역의 영주권 등을 취득한 사람으로 해당 지역이 생활근거지인 경우, ▲ 본인이나 배우자의 직계존비속 등이 숨지거나 이에 준하는 사고·질병으로 긴급히 출국하는 경우, ▲ 외교·안보 임무나 재외국민 보호 등을 수행하는 국가기관 또는 국제기구의 공무를 위한 경우, ▲ 소관 중앙행정기관장의 추천으로 국가이익이나 기업활동에 관련된 임무를 수행하는 경우, 마지막으로 ▲ 공공의 이익을 위한 취재나 보도를 위한 경우다. 허가를 받지 않고 여행금지 지역을 방문하면 여권법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된다.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 신청은 재외동포 365 민원 포털을 통해 할 수 있다. 그러나 취재와 보도 목적으로 신청할 경우 활동계획서가 외교부나 재외동포 포털에 올려진 기본 양식과 다르다. 따라서 미리 외교부 재외국민보호과와 통화해 해당 양식을 받아야 한다. 양식을 수령한 뒤 활동계획서나 소속 단체장 확인서 등을 작성하고, 재직증명서 등 제출 서류를 발급받으면 신청 준비는 완료된다. 신청이 끝나면 1차로 활동계획과 안전대책을 중심으로 관계 부처 검토에 최소 1주일이 소요된다. 이후 여권정책협의회가 열려 서면 심의를 하는데 최소 1주일이 소요된다. 검토와 심의에 참여하는 기관은 외교부와 국가정보원, 법무부와 경찰청 등 외교·안보와 출입국에 관여하는 기관들이다. 전체 소요 기간은 서류 준비부터 신청, 허가까지 3~4주다.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가 나면 이와 같은 허가서를 받게 된다.
■ 현지 통역 섭외와 우크라이나군 취재 인가 신청

러시아가 이스칸데르 탄도미사일로 키이우 수도 중심가를 공습한 직후 취재진이 현장에서 생방송을 준비하는 모습. 사진 이승철 기자 bullseye@kbs.co.kr
우크라이는 불리한 전세 역전을 위해 다양한 공격용 드론을 활용해 러시아에 반격을 가했다. 위 사진은 취재진이 우크라이나 드론 연구 및 생산관련 시설을  둘러보는 모습 .
해외 취재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은 흔히 코디네이터라고 하는 현지 가이드 또는 통역 선정이다. 코디네이터가 취재 과정에서 언어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코디네이터가 취재처를 발굴하거나 소개하는 섭외를 한다는 점이다. 우선 주우크라이나 한국대사관 홈페이지부터 찾았다. 한국어와 우크라이나어 동시통역이 가능한 명단 중에서 현지에 거주하고 있고, 통역 경험이 많은 후보군을 추렸다. 그리고 기존에 우크라이나 취재를 했던 선배들의 의견을 들었다. 최종 선택은 2022년 러시아 침공 당시 '특파원보고 세계는 지금'을 통해 키이우 현지 상황을 국내에 알렸던 테티아나 보디아니츠카 씨를 택했다. 테티아나 씨의 제안으로 우크라이나 내 이동을 맡아줄 기사도 섭외했다. 현지 사진작가이자 러시아군의 전쟁범죄를 기록하는 인권 단체 즈미나(@zmina_ua) 소속의 일명 제냐, 예우헤니이 씨였다.통역이 선정되자 출국 전 사전 섭외를 시작했다.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 면담과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러시아군의 민간인 학살이 있었던 부차 현지 취재 관련이었다. 이 가운데 총참모부 면담은 불발됐지만, 포로 문제를 총괄하는 우크라이나군 포로 처리 조정본부 대변인을 인터뷰할 수 있었고, 나머지는 계획대로 진행됐다. 테티아나 씨 측 제안으로 민간인 포로 석방 촉구 집회와 군인 포로 석방 촉구 집회, 즈미나의 설립자인 BBC 기자 출신이자 인권 운동가인 막쉼 부케비치 취재가 이뤄졌고, 우리팀의 요청과 제냐의 섭외로 우크라이나 측 드론 공학 교육기관 취재도 이뤄졌다.

출국에 앞서 우크라이나 내에서 자유로운 취재를 위해 별도의 절차도 밟아야 했다. 우리 국민은 우크라이나 입국 시 별도의 관광 비자나 취재 비자가 필요하진 않다. 다만, 우크라이나는 현재 러시아와 전쟁 중이고, 자연스럽게 취재 과정에선 군사 보안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군 취재 인가 신청을 받고, 신청자의 신원을 확인한 뒤 인가증을 발급하고 있다. 취재 인가를 받기 위해선 우크라이나 국방부(mod.gov.ua)에서 양식을 받아 작성 뒤 제출하면 되고, 기자증과 여권, 소속 언론사 편집장의 서신 등이 첨부돼야 한다. 우리 팀은 통역인 테티아나 씨를 통해 취재 인가를 신청했고, 발급까지 2주 반가량이 소요됐다.

취재 인가의 유효기간은 1년이다. 우크라이나 군·경의 통제를 받는 곳을 취재할 때 취재 인가를 제시하면 현장 진입을 허용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공습한 날, 미사일이 떨어지고 대략 1시간 반 뒤부터 현장 통제가 이뤄졌는데 우리 팀이 오전 취재를 마치고 오후에 재진입할 때 취재 인가를 제시하자 현장 진입이 허용됐다. 취재를 마치고 우크라이나를 빠져나올 때도 취재 인가를 제시한 적이 있다. 당시 우크라이나 국경수비대가 밀수품 검사를 한다며 다른 승객과 달리 우리 팀만 모든 짐을 버스에서 내리게 하고 가방을 열도록 요구했다. 아울러 채증한다며 촬영까지 시작했다. 이에 해당 취재 인가를 제시하며 항의하자 우크라이나군 국경수비대는 밀수품 검사 절차를 생략하고 통과시켜 줬다.

우크라이나군이 발급하는 취재 인가다.
■ 밤마다 공습, 어디서 잘 것인가?

러시아군은 주로 저녁부터 아침까지 공습한다. 입국 전부터 소통했던 테티아나 씨가 공습경보 때문에 잠을 못 이룬다고 얘기했던 적도 있다. 따라서 공습으로부터 안전한 숙소 선정이 매우 중요했다. 먼저 우크라이나 정부 기관이나 군 시설 주변은 피해야 했다. 다음으로 정교회 성당이나 외국 대사관 주변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조언을 받았다. 해당 조건을 만족하고 이름이 익숙한 호텔 체인을 찾기 시작했다. 예산 범위를 벗어나는 인터콘티넨털이나 하얏트, 힐튼 같은 체인을 제외하고 나니 홀리데이인과 이비스 정도가 남았다. 혹시나 해 테티아나 씨에게 추천하는 호텔이 있느냐고 물으니 라트비아계 호텔 체인을 추천했다. 앞서 우크라이나 취재를 했던 KBS팀도 묶었던 스카이로프트였다. 도로 맞은편에 성미카엘 성당과 종합병원이 있고, 옆에 걸리버라는 대형 백화점이 있다. 건물 지하엔 자체 방공호도 있었다.

러시아군의 키이우 공습으로 홀리데이인과 옆 건물의 외벽, 창문이 크게 파손됐다. ©이승철 기자(bullseye@kbs.co.kr)
키이우에 미사일이 떨어지던 날, 이 호텔은 이번 출장 중 최고의 선택이 됐다. 당시 러시아군이 쏜 미사일은 홀리데이인 앞 건물을 겨냥했다. 지도 위에 이름도 나오지 않던 이 건물은 우크라이나군 특수부대 본부였다. 주변에 포르투갈과 아르헨티나, 몬테네그로와 마케도니아 등 대사관 6곳이 있고, 성미콜라 대성당이라는 가톨릭교회도 있는 지역이지만, 러시아군은 개의치 않았다. 이날 우크라이나군이 모두 격추했다던 러시아군 미사일 본체 5발 중 1발은 특수부대 본부 앞 도로에 떨어져 그 밑에 있던 가스관을 터뜨려 2차 폭발까지 일으켰다. 미사일 파편은 홀리데이인 옆 상업용 빌딩의 꼭대기를 직격했다. 홀리데이인 대신 스카이로프트에 머문 우리 팀은 이날 떨어지는 미사일을 1.5km 거리에서 직접 보고, 2차 폭발을 촬영하고, 무엇보다 목숨도 구할 수 있었다.

(캡션: 키이우 홀리데이인 호텔 옆 건물에 미사일 파편이 떨어지는 장면이다. 출처 텔레그램 Exileno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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