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 있으시죠?”…‘돈 되는 과잉진료’ 규제 나선다

입력 2025.01.08 (15:09)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사례 1. 16살 A군은 허리통증으로 과천시의 소아과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병원 측은 자세 교정이 필요하다며 도수 치료를 권했습니다. A군은 근골격계 질환이 없었지만, 회당 23만 원을 주고, 122차례 도수 치료를 받았습니다.

사례 2. 50대 A 씨는 구내염 등으로 3년 동안 한 주에 서너 차례씩 영양제를 맞았습니다. 4개 병원에 90차례 내원해 나온 진료비만 천여만 원이었습니다.

■ 도수 치료·영양 주사…비급여 진료비 급증, 한 해 22조

도수 치료, 영양 주사, 무릎 줄기세포…모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이용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저렴해서가 아닙니다. 진료비 대부분을 실손보험으로 처리할 수 있다 보니, '과잉 진료'가 이뤄지고 있는 겁니다. 병원에 방문하면 실손 가입 여부부터 물어보는 게 일상이 됐습니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비급여 진료비는 지난해 기준 22조 6천억 원으로 추정되는데, 해마다 증가 추세입니다.

이렇게 남용되고 있는 비급여 의료비를 줄이기 위해 정부가 관리 방안을 추진합니다.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내일(9일) 초안을 공개하고, 각계 의견을 수렴할 예정입니다. 핵심 내용과 추진 배경을 짚어봅니다.

■ 정부가 가격 설정, 본인부담률 90~95% 검토

정부 방안의 핵심은 주요 비중증 비급여 항목을 '관리급여'로 지정해 건강보험 체계 내에서 관리하는 것입니다. 그간 비급여 진료는 별다른 규제 없이 관리 사각지대에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게 도수 치료, 체외충격파 치료, 영양주사입니다.

건강보험의 관리급여로 지정하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우선 정부가 '가격'을 정합니다. 지금은 가격이 천차만별이죠. 도수 치료의 경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병원급 의료기관에서 가격 차이가 최대 62배였습니다. 가장 비싼 곳은 50만 원인데, 가장 싼 곳은 만 원도 안 됐습니다.

정부가 책정한 가격에서 건강보험이 보장하는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는 본인이 내야 하는데, 이를 본인부담률이라고 합니다. 정부는 관리급여로 지정하는 항목에 대해 본인부담률 90~95% 적용을 검토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예를 들어, 도수 치료 가격이 10만 원으로 책정되면 본인부담률이 95%인 경우, 5천 원은 공단이, 나머지 9만 5천 원은 본인이 내야 합니다.


■ 치료 횟수 등 '진료 기준'도 설정

관리급여로 지정되면 진료 방식과 횟수 등 진료에 관한 기준도 설정됩니다.

현재 일부 실손보험의 경우, 도수 치료 등 비급여를 횟수 제한 없이 무제한으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강민국 국회 보건복지위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2023년 기준 비급여 물리치료로 보험금을 가장 많이 청구한 40대 남성의 경우, 8개 의료기관에서 도수 치료 23회, 체외충격파 309회를 받았습니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비급여 항목이 관리급여로 지정되면, 가격이 내려가고, 의료기관이 진료비를 공단에 청구할 때, 진료 기준에 맞게 진료가 이뤄졌는지 심사가 이뤄져 남용이 줄어들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건보 재정을 축내는 요인 중 하나였던 '병행 진료'도 일부 제한될 것으로 보입니다. 병행 진료가 이뤄진 경우, 급여 진료에 대해서도 건강보험에서 보장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병행 진료는 급여 진료(건강보험 적용)와 비급여 진료를 같이 받는 것을 말합니다. 건강보험이 보장하는 물리치료와 비급여인 도수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비급여가 과잉으로 이뤄지면, 덩달아 건강보험 재정에서도 지출이 많아지는 현상이 벌어지는 겁니다.

어떤 비급여 진료가 관리급여로 지정될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비급여 진료비가 많은 상위 항목이 포함될 것으로 보입니다.

건보공단이 지난해 3월 기준 전체 의료기관의 비급여 보고자료를 분석한 결과, 치과 항목을 제외하면 도수 치료와 체외충격파 치료, 영양 주사가 상위 10위에 포함됐습니다.

이와 맞물려 실손보험과 관련해서는 1∼4세대 실손보험보다 대체로 보장성이 축소된 5세대 실손보험 도입안이 논의 중입니다.

■ 보험사 책임 크지만…"필수 의료 위기 초래" 대책 필요

일각에서는 보험사가 당초 비중증 비급여 항목에 대해 제한 없이 보장하는 상품을 판매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전문가들도 보험사의 손해율이 높아지는 것에 대해 보험사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고 인정합니다.

다만, 과잉 비급여는 단순히 보험료율을 높이는 것뿐 아니라, 필수 의료의 위기를 가속화시킨다는 점에서 대책이 필요한 측면이 있습니다. 비급여로 돈이 되는 항목이 많은 과목, 즉 정형외과와 피부과, 안과 등에 의사들이 몰리지만, 비급여 항목이 거의 없는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에는 지원자가 급속하게 줄고 있습니다.

실제 개원 현황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지난해 7월 기준 전국 의원급 정형외과는 2645개소로 2019년에 비해 472곳이 늘어났지만, 소아청소년과는 2182개소 오히려 46개소가 줄었습니다. 매출액 차이도 커서, 지난해 1~7월 기준 정형외과는 1곳당 평균 6억 7천여만 원이었는데, 소아청소년과는 2억 8천만 원이었습니다. (김미애 국회 보건복지위원 국정 감사 자료)

환자 단체도 이런 측면에서 비급여 혜택이 다소 줄더라도, 관리가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과잉 비급여·실손 문제를 개혁하지 않고는 필수 의료 기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중증이 아닌 비중증 비급여 항목에 대해선 관리가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실손 있으시죠?”…‘돈 되는 과잉진료’ 규제 나선다
    • 입력 2025-01-08 15:09:43
    심층K

사례 1. 16살 A군은 허리통증으로 과천시의 소아과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병원 측은 자세 교정이 필요하다며 도수 치료를 권했습니다. A군은 근골격계 질환이 없었지만, 회당 23만 원을 주고, 122차례 도수 치료를 받았습니다.

사례 2. 50대 A 씨는 구내염 등으로 3년 동안 한 주에 서너 차례씩 영양제를 맞았습니다. 4개 병원에 90차례 내원해 나온 진료비만 천여만 원이었습니다.

■ 도수 치료·영양 주사…비급여 진료비 급증, 한 해 22조

도수 치료, 영양 주사, 무릎 줄기세포…모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이용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저렴해서가 아닙니다. 진료비 대부분을 실손보험으로 처리할 수 있다 보니, '과잉 진료'가 이뤄지고 있는 겁니다. 병원에 방문하면 실손 가입 여부부터 물어보는 게 일상이 됐습니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비급여 진료비는 지난해 기준 22조 6천억 원으로 추정되는데, 해마다 증가 추세입니다.

이렇게 남용되고 있는 비급여 의료비를 줄이기 위해 정부가 관리 방안을 추진합니다.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내일(9일) 초안을 공개하고, 각계 의견을 수렴할 예정입니다. 핵심 내용과 추진 배경을 짚어봅니다.

■ 정부가 가격 설정, 본인부담률 90~95% 검토

정부 방안의 핵심은 주요 비중증 비급여 항목을 '관리급여'로 지정해 건강보험 체계 내에서 관리하는 것입니다. 그간 비급여 진료는 별다른 규제 없이 관리 사각지대에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게 도수 치료, 체외충격파 치료, 영양주사입니다.

건강보험의 관리급여로 지정하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우선 정부가 '가격'을 정합니다. 지금은 가격이 천차만별이죠. 도수 치료의 경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병원급 의료기관에서 가격 차이가 최대 62배였습니다. 가장 비싼 곳은 50만 원인데, 가장 싼 곳은 만 원도 안 됐습니다.

정부가 책정한 가격에서 건강보험이 보장하는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는 본인이 내야 하는데, 이를 본인부담률이라고 합니다. 정부는 관리급여로 지정하는 항목에 대해 본인부담률 90~95% 적용을 검토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예를 들어, 도수 치료 가격이 10만 원으로 책정되면 본인부담률이 95%인 경우, 5천 원은 공단이, 나머지 9만 5천 원은 본인이 내야 합니다.


■ 치료 횟수 등 '진료 기준'도 설정

관리급여로 지정되면 진료 방식과 횟수 등 진료에 관한 기준도 설정됩니다.

현재 일부 실손보험의 경우, 도수 치료 등 비급여를 횟수 제한 없이 무제한으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강민국 국회 보건복지위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2023년 기준 비급여 물리치료로 보험금을 가장 많이 청구한 40대 남성의 경우, 8개 의료기관에서 도수 치료 23회, 체외충격파 309회를 받았습니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비급여 항목이 관리급여로 지정되면, 가격이 내려가고, 의료기관이 진료비를 공단에 청구할 때, 진료 기준에 맞게 진료가 이뤄졌는지 심사가 이뤄져 남용이 줄어들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건보 재정을 축내는 요인 중 하나였던 '병행 진료'도 일부 제한될 것으로 보입니다. 병행 진료가 이뤄진 경우, 급여 진료에 대해서도 건강보험에서 보장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병행 진료는 급여 진료(건강보험 적용)와 비급여 진료를 같이 받는 것을 말합니다. 건강보험이 보장하는 물리치료와 비급여인 도수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비급여가 과잉으로 이뤄지면, 덩달아 건강보험 재정에서도 지출이 많아지는 현상이 벌어지는 겁니다.

어떤 비급여 진료가 관리급여로 지정될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비급여 진료비가 많은 상위 항목이 포함될 것으로 보입니다.

건보공단이 지난해 3월 기준 전체 의료기관의 비급여 보고자료를 분석한 결과, 치과 항목을 제외하면 도수 치료와 체외충격파 치료, 영양 주사가 상위 10위에 포함됐습니다.

이와 맞물려 실손보험과 관련해서는 1∼4세대 실손보험보다 대체로 보장성이 축소된 5세대 실손보험 도입안이 논의 중입니다.

■ 보험사 책임 크지만…"필수 의료 위기 초래" 대책 필요

일각에서는 보험사가 당초 비중증 비급여 항목에 대해 제한 없이 보장하는 상품을 판매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전문가들도 보험사의 손해율이 높아지는 것에 대해 보험사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고 인정합니다.

다만, 과잉 비급여는 단순히 보험료율을 높이는 것뿐 아니라, 필수 의료의 위기를 가속화시킨다는 점에서 대책이 필요한 측면이 있습니다. 비급여로 돈이 되는 항목이 많은 과목, 즉 정형외과와 피부과, 안과 등에 의사들이 몰리지만, 비급여 항목이 거의 없는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에는 지원자가 급속하게 줄고 있습니다.

실제 개원 현황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지난해 7월 기준 전국 의원급 정형외과는 2645개소로 2019년에 비해 472곳이 늘어났지만, 소아청소년과는 2182개소 오히려 46개소가 줄었습니다. 매출액 차이도 커서, 지난해 1~7월 기준 정형외과는 1곳당 평균 6억 7천여만 원이었는데, 소아청소년과는 2억 8천만 원이었습니다. (김미애 국회 보건복지위원 국정 감사 자료)

환자 단체도 이런 측면에서 비급여 혜택이 다소 줄더라도, 관리가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과잉 비급여·실손 문제를 개혁하지 않고는 필수 의료 기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중증이 아닌 비중증 비급여 항목에 대해선 관리가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