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의 나라 엘살바도르를 가다② 국민들은 “못 믿어요” [특파원 리포트]
입력 2025.01.14 (07:00)
수정 2025.01.14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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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선 엘살바도르에서 비트코인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살펴봤습니다. 그러면 실제 국민들은 비트코인을 얼마나 사용하고 있을까요?
비트코인이 법정화폐인 만큼 모든 사업장은 비트코인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비트코인을 더 일상적으로, 자유롭게 쓸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거리가 좀 있습니다.
■ "모른다" "찾는 사람이 없다" "시스템이 없다"
번화가를 벗어나 주택가를 찾았습니다. 중산층이 사는 동네였습니다. 슈퍼마켓과 이발소 등에서 비트코인 사용이 가능한지 물었습니다. 하지만 상당수가 비트코인은 받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왜 비트코인을 받지 않느냐는 질문에 "비트코인을 모른다"라거나 "비트코인을 쓰겠다는 사람이 없다" 또는 "비트코인으로 결제할 시스템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중산층이 사는 동네의 한 약국. 비트코인을 받느냐는 질문에 시스템이 없어 비트코인을 받지 않는다고 답했다.
통계상으로 보면 비트코인을 받는 사업장은 전체의 20% 수준입니다. 법정화폐인데도 비트코인을 받지 않는 곳이 더 많은 이유는 의무화 조항에 예외가 있기 때문입니다. 비트코인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면 받지 않아도 됩니다. 비트코인을 받더라도 상당수 사업장이 곧바로 달러로 환전한다고 합니다.
■국민들은 "못 믿겠다"
그런데 일반 국민들의 반응을 보면 사업주들도 '시스템이 없어서'라기 보다 "비트코인을 모른다"나 "비트코인을 쓰겠다는 사람이 없다"가 더 솔직한 답으로 보입니다.
산살바도르 최대 번화가를 찾아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비트코인을 쓰느냐고 물었습니다. 신기술에 익숙할 것 같은 젊은층 위주였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돌아오는 답은 "써 본 적이 없다" "처음 받은 30달러는 어머니께 드렸다" 등의 답이 돌아왔습니다.
산살바도르 시내의 가장 번화한 광장. 여러 사람에게 비트코인 사용 여부를 물었으나 사용하고 있다는 답은 얻지 못했다.
실제 산살바도르에 있는 중앙아메리카대학 여론연구소의 조사를 보면 비트코인이 법정화폐가 된 이듬해인 2022년엔 전 국민의 24%가량이 비트코인으로 물건을 사 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지만, 2023년 조사에선 그 비중이 12%로 떨어졌습니다. 처음 정부가 나눠준 30달러만 쓰고는 더 이상 비트코인으로 결제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관점에서 볼 때 불안정한 금융자산에 투자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고 평가했습니다.
실제 엘살바도르 국민의 30%는 빈곤층입니다. 당장 쓸 현금이 필요하고, 당연히 저축을 생각할 여유도 없습니다.
또 인터넷 사용 요금도 상당합니다. Chivo앱을 쓰려면 네트워크에 언제 어디서든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지 코디네이터에게 확인해 보니 자신의 집에서 인터넷 비용으로 한 달에 60달러가량을 낸다고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한 달 최저임금이 365달러입니다.
이러다 보니 엘살바도르 경제의 4분의 1 가까이 차지하는 해외 송금에서도 비트코인 사용률은 미미합니다. 정부가 비트코인 도입 이유 가운데 하나로 이 해외송금을 들기도 했습니다. 현금으로 송금하면 수수료가 최대 10%나 되기 때문에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비트코인으로 주고받으면 훨씬 이득이라는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해외 송금에서 비트코인이 사용되는 비중은 1%에 불과합니다.
가족이 해외로부터 송금을 받고 있다는 한 시민은 "우리 가족은 비트코인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현금으로 송금받는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 가격 표시 못 하는 비트코인
비트코인의 변동성도 계속 제기되는 문제입니다. 엘살바도르에서 비트코인을 받는 슈퍼마켓 체인인 Super Seleto를 들어가 봤을 때 모든 가격 표시는 달러로 돼 있었습니다. 그때그때 가격 표시를 새로 할 수 없으니 달러로만 표시하는 겁니다.
물론 물건을 사는 사람 입장에서 비트코인 가격이 바뀌더라도 '몇 센트 정도는 신경 쓰지 않는다'라면 비트코인으로 가격을 표시해도 상관없을 겁니다. 하지만 사업주 입장에선 그 액수가 커질 수 있습니다.
비트코인으로 결제가 가능한 엘살바도르의 대형 슈퍼 체인점 슈퍼 셀렉토. 가격은 모두 달러로만 표시돼 있다.
또 사용자 입장에서 그냥 달러로 쓰면 되는데, 굳이 비트코인을 공부해 비트코인과 달러를 환전해 가면서 복잡하게 돈을 쓸 이유도 없습니다.
이에 대해 경제전문가인 호세 루이스 마가냐는 "변동성 때문에 그것(비트코인)은 가치 저장 수단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그래서 가격을 표시하는 단위가 될 수 없다. 기술적으로 비트코인은 화폐의 기능을 충족하지 못한다."라고 말합니다.
■ 또 하나의 장벽 '투명성'
국민들이 비트코인을 쓰지 않는 데는 정부에 대한 불신도 있습니다. 정책 도입 초기부터 국민의 상당수가 부자들에게만 이득이 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일반 서민들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정책으로 생각하는 이윱니다.
또 정부가 비트코인을 사고 있고,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지만, 이 비트코인을 실제로 보유하는지 알 수 없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연금까지 비트코인으로 지급하겠다고 하는데 정부가 돈이 없어서 그러는 것 아니야"라고까지 생각한다고 합니다.
수도 산살바도르에서 차량으로 약 4시간 거리에 있는 콘차구와 화산. 당초 저 화산 기슭에 비트코인 시티를 세우려 했으나 발표 3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아무런 공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열 발전으로 비트코인을 채굴하겠다는 사업도 지지부진합니다. 엘살바도르 정부는 산살바도르에서 약 4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콘차구와 화산의 지열을 이용한 비트코인 시티를 건설하겠다는 사업을 약 3년 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확인 결과 지열이 비트코인을 채굴하기에는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고, 언제 다시 추진될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섣부른 정책 발표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엘살바도르 국민들이 흔히 하는 말이 "부켈레 대통령은 믿지만 정부는 믿기 어렵다"입니다. 오랫동안 부패에 시달린 경험 때문으로 보입니다.
과거 엘살바도르가 콜론에서 달러로 전환할 때 약 4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콜론이 높은 물가상승률 등으로 제 기능을 할 수 없었던 게 전환의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사정이 좀 다릅니다. 달러가 정상적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트코인은 달러보다 더 낯섭니다. 비트코인의 일상화가 더 어려워 보이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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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1-14 07:00:55
- 수정2025-01-14 07:01:39
1편에선 엘살바도르에서 비트코인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살펴봤습니다. 그러면 실제 국민들은 비트코인을 얼마나 사용하고 있을까요?
비트코인이 법정화폐인 만큼 모든 사업장은 비트코인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비트코인을 더 일상적으로, 자유롭게 쓸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거리가 좀 있습니다.
■ "모른다" "찾는 사람이 없다" "시스템이 없다"
번화가를 벗어나 주택가를 찾았습니다. 중산층이 사는 동네였습니다. 슈퍼마켓과 이발소 등에서 비트코인 사용이 가능한지 물었습니다. 하지만 상당수가 비트코인은 받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왜 비트코인을 받지 않느냐는 질문에 "비트코인을 모른다"라거나 "비트코인을 쓰겠다는 사람이 없다" 또는 "비트코인으로 결제할 시스템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통계상으로 보면 비트코인을 받는 사업장은 전체의 20% 수준입니다. 법정화폐인데도 비트코인을 받지 않는 곳이 더 많은 이유는 의무화 조항에 예외가 있기 때문입니다. 비트코인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면 받지 않아도 됩니다. 비트코인을 받더라도 상당수 사업장이 곧바로 달러로 환전한다고 합니다.
■국민들은 "못 믿겠다"
그런데 일반 국민들의 반응을 보면 사업주들도 '시스템이 없어서'라기 보다 "비트코인을 모른다"나 "비트코인을 쓰겠다는 사람이 없다"가 더 솔직한 답으로 보입니다.
산살바도르 최대 번화가를 찾아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비트코인을 쓰느냐고 물었습니다. 신기술에 익숙할 것 같은 젊은층 위주였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돌아오는 답은 "써 본 적이 없다" "처음 받은 30달러는 어머니께 드렸다" 등의 답이 돌아왔습니다.
실제 산살바도르에 있는 중앙아메리카대학 여론연구소의 조사를 보면 비트코인이 법정화폐가 된 이듬해인 2022년엔 전 국민의 24%가량이 비트코인으로 물건을 사 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지만, 2023년 조사에선 그 비중이 12%로 떨어졌습니다. 처음 정부가 나눠준 30달러만 쓰고는 더 이상 비트코인으로 결제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관점에서 볼 때 불안정한 금융자산에 투자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고 평가했습니다.
실제 엘살바도르 국민의 30%는 빈곤층입니다. 당장 쓸 현금이 필요하고, 당연히 저축을 생각할 여유도 없습니다.
또 인터넷 사용 요금도 상당합니다. Chivo앱을 쓰려면 네트워크에 언제 어디서든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지 코디네이터에게 확인해 보니 자신의 집에서 인터넷 비용으로 한 달에 60달러가량을 낸다고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한 달 최저임금이 365달러입니다.
이러다 보니 엘살바도르 경제의 4분의 1 가까이 차지하는 해외 송금에서도 비트코인 사용률은 미미합니다. 정부가 비트코인 도입 이유 가운데 하나로 이 해외송금을 들기도 했습니다. 현금으로 송금하면 수수료가 최대 10%나 되기 때문에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비트코인으로 주고받으면 훨씬 이득이라는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해외 송금에서 비트코인이 사용되는 비중은 1%에 불과합니다.
가족이 해외로부터 송금을 받고 있다는 한 시민은 "우리 가족은 비트코인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현금으로 송금받는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 가격 표시 못 하는 비트코인
비트코인의 변동성도 계속 제기되는 문제입니다. 엘살바도르에서 비트코인을 받는 슈퍼마켓 체인인 Super Seleto를 들어가 봤을 때 모든 가격 표시는 달러로 돼 있었습니다. 그때그때 가격 표시를 새로 할 수 없으니 달러로만 표시하는 겁니다.
물론 물건을 사는 사람 입장에서 비트코인 가격이 바뀌더라도 '몇 센트 정도는 신경 쓰지 않는다'라면 비트코인으로 가격을 표시해도 상관없을 겁니다. 하지만 사업주 입장에선 그 액수가 커질 수 있습니다.
또 사용자 입장에서 그냥 달러로 쓰면 되는데, 굳이 비트코인을 공부해 비트코인과 달러를 환전해 가면서 복잡하게 돈을 쓸 이유도 없습니다.
이에 대해 경제전문가인 호세 루이스 마가냐는 "변동성 때문에 그것(비트코인)은 가치 저장 수단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그래서 가격을 표시하는 단위가 될 수 없다. 기술적으로 비트코인은 화폐의 기능을 충족하지 못한다."라고 말합니다.
■ 또 하나의 장벽 '투명성'
국민들이 비트코인을 쓰지 않는 데는 정부에 대한 불신도 있습니다. 정책 도입 초기부터 국민의 상당수가 부자들에게만 이득이 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일반 서민들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정책으로 생각하는 이윱니다.
또 정부가 비트코인을 사고 있고,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지만, 이 비트코인을 실제로 보유하는지 알 수 없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연금까지 비트코인으로 지급하겠다고 하는데 정부가 돈이 없어서 그러는 것 아니야"라고까지 생각한다고 합니다.
지열 발전으로 비트코인을 채굴하겠다는 사업도 지지부진합니다. 엘살바도르 정부는 산살바도르에서 약 4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콘차구와 화산의 지열을 이용한 비트코인 시티를 건설하겠다는 사업을 약 3년 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확인 결과 지열이 비트코인을 채굴하기에는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고, 언제 다시 추진될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섣부른 정책 발표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엘살바도르 국민들이 흔히 하는 말이 "부켈레 대통령은 믿지만 정부는 믿기 어렵다"입니다. 오랫동안 부패에 시달린 경험 때문으로 보입니다.
과거 엘살바도르가 콜론에서 달러로 전환할 때 약 4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콜론이 높은 물가상승률 등으로 제 기능을 할 수 없었던 게 전환의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사정이 좀 다릅니다. 달러가 정상적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트코인은 달러보다 더 낯섭니다. 비트코인의 일상화가 더 어려워 보이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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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중 기자 baikal@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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