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물 던진 아이는 퇴학…그날의 진상
입력 2025.02.05 (07:45)
수정 2025.02.05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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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4·3 당시 폭발물을 갖고 놀다 희생된 어린이들에 대한 보도 이어갑니다.
9년 전 알려진 표선초등학교 폭발사고의 또 다른 희생자들을 찾았다는 소식, 전해드렸는데요.
KBS 취재로 드러난 서귀포초등학교 폭발사고 희생자들도 추가로 확인됐습니다.
안서연 고성호 기자입니다.
[리포트]
지난해 KBS에 전화 한 통이 걸려 왔습니다.
1949년 3월 10일 서귀포초등학교 폭발사고 현장에 있던 12살 소년이었습니다.
[오홍제/서귀포초등학교 폭발사고 목격자 : "사필귀정이랄까, 진실에 아주 가깝게 해주는 게 좋지 않겠나 해서 내가 전화를 걸었던 거야."]
오 할아버지는 그날 폭발물을 가지고 논 친구들을 또렷이 기억했습니다.
[오홍제/서귀포초등학교 폭발사고 목격자 : "수류탄을 가져온 사람도 우리 반 학생이고, 던진 것도 우리 반이고 그랬더라고요. (던진 아이는) 활달한 친구인데 그 후로 뭣하니까 친구들하고 사귈 수도 없고 참…."]
당시 학교에서 처음으로 폭발물을 발견한 학생을 찾아갔습니다.
[백세봉/서귀포초등학교 폭발사고 생존자 : "한 30cm 될 거야. 박격포탄이니까. 그래서 그거 들고 교무실로 가려던 찰나에 김도신이 '보자 보자' 해서 던져버린 거야. 창밖으로. 난 창문 옆에 있으니까 파편에 이거(얼굴) 맞았는데. 김도신 걔는 무릎을 맞았을 거야. 모르니까 그렇게 한 거지. 알았으면 그렇게 안 할 건데."]
이 일로 30여 명이 죽거나 다치면서 폭발물을 던진 아이는 퇴학을 당했습니다.
처참한 현장을 목격한 뒤, 더 이상 학교에 가지 않은 11살 소녀도 있습니다.
[김순매/서귀포초등학교 폭발사고 생존자 : "충격이지. 그러니까 무서워서 학교를 안 나갔지. 그때 놓치니까 공부를 못했던 거라 무서워서. 또 그렇게 한다고 하니까."]
아무도 묻는 이가 없었기에, 4·3 피해라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8살 동생을 잃었던 언니도 이제야 그날의 진상을 알았습니다.
[김영란/서귀포초등학교 폭발사고 희생자 故 김민혜 언니 : "그때는 학교에서 일절 아무것도 조사도 안 하고. 아무것도 안 했어. 같이 그냥 다 같이 묻은 모양이라 어디 가서. 그것뿐이지."]
학교 제적부에선 또 다른 희생자들도 확인됐습니다.
["단기 4282년(서기 1949년) 3월 10일 본교 폭발사건에 사망이라고 적혔네요. 1학년이에요."]
부산 출신 장길돌은 숨지고, 양상수와 현성용은 치료를 위해 전학 갔습니다.
묻혀있던 이 희생자들은 내년 6월 발간될 4·3 추가 진상조사보고서에 기록될 예정입니다.
KBS 뉴스 안서연입니다.
촬영기자:고성호/그래픽:박미나
4·3 당시 폭발물을 갖고 놀다 희생된 어린이들에 대한 보도 이어갑니다.
9년 전 알려진 표선초등학교 폭발사고의 또 다른 희생자들을 찾았다는 소식, 전해드렸는데요.
KBS 취재로 드러난 서귀포초등학교 폭발사고 희생자들도 추가로 확인됐습니다.
안서연 고성호 기자입니다.
[리포트]
지난해 KBS에 전화 한 통이 걸려 왔습니다.
1949년 3월 10일 서귀포초등학교 폭발사고 현장에 있던 12살 소년이었습니다.
[오홍제/서귀포초등학교 폭발사고 목격자 : "사필귀정이랄까, 진실에 아주 가깝게 해주는 게 좋지 않겠나 해서 내가 전화를 걸었던 거야."]
오 할아버지는 그날 폭발물을 가지고 논 친구들을 또렷이 기억했습니다.
[오홍제/서귀포초등학교 폭발사고 목격자 : "수류탄을 가져온 사람도 우리 반 학생이고, 던진 것도 우리 반이고 그랬더라고요. (던진 아이는) 활달한 친구인데 그 후로 뭣하니까 친구들하고 사귈 수도 없고 참…."]
당시 학교에서 처음으로 폭발물을 발견한 학생을 찾아갔습니다.
[백세봉/서귀포초등학교 폭발사고 생존자 : "한 30cm 될 거야. 박격포탄이니까. 그래서 그거 들고 교무실로 가려던 찰나에 김도신이 '보자 보자' 해서 던져버린 거야. 창밖으로. 난 창문 옆에 있으니까 파편에 이거(얼굴) 맞았는데. 김도신 걔는 무릎을 맞았을 거야. 모르니까 그렇게 한 거지. 알았으면 그렇게 안 할 건데."]
이 일로 30여 명이 죽거나 다치면서 폭발물을 던진 아이는 퇴학을 당했습니다.
처참한 현장을 목격한 뒤, 더 이상 학교에 가지 않은 11살 소녀도 있습니다.
[김순매/서귀포초등학교 폭발사고 생존자 : "충격이지. 그러니까 무서워서 학교를 안 나갔지. 그때 놓치니까 공부를 못했던 거라 무서워서. 또 그렇게 한다고 하니까."]
아무도 묻는 이가 없었기에, 4·3 피해라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8살 동생을 잃었던 언니도 이제야 그날의 진상을 알았습니다.
[김영란/서귀포초등학교 폭발사고 희생자 故 김민혜 언니 : "그때는 학교에서 일절 아무것도 조사도 안 하고. 아무것도 안 했어. 같이 그냥 다 같이 묻은 모양이라 어디 가서. 그것뿐이지."]
학교 제적부에선 또 다른 희생자들도 확인됐습니다.
["단기 4282년(서기 1949년) 3월 10일 본교 폭발사건에 사망이라고 적혔네요. 1학년이에요."]
부산 출신 장길돌은 숨지고, 양상수와 현성용은 치료를 위해 전학 갔습니다.
묻혀있던 이 희생자들은 내년 6월 발간될 4·3 추가 진상조사보고서에 기록될 예정입니다.
KBS 뉴스 안서연입니다.
촬영기자:고성호/그래픽:박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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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4·3 당시 폭발물을 갖고 놀다 희생된 어린이들에 대한 보도 이어갑니다.
9년 전 알려진 표선초등학교 폭발사고의 또 다른 희생자들을 찾았다는 소식, 전해드렸는데요.
KBS 취재로 드러난 서귀포초등학교 폭발사고 희생자들도 추가로 확인됐습니다.
안서연 고성호 기자입니다.
[리포트]
지난해 KBS에 전화 한 통이 걸려 왔습니다.
1949년 3월 10일 서귀포초등학교 폭발사고 현장에 있던 12살 소년이었습니다.
[오홍제/서귀포초등학교 폭발사고 목격자 : "사필귀정이랄까, 진실에 아주 가깝게 해주는 게 좋지 않겠나 해서 내가 전화를 걸었던 거야."]
오 할아버지는 그날 폭발물을 가지고 논 친구들을 또렷이 기억했습니다.
[오홍제/서귀포초등학교 폭발사고 목격자 : "수류탄을 가져온 사람도 우리 반 학생이고, 던진 것도 우리 반이고 그랬더라고요. (던진 아이는) 활달한 친구인데 그 후로 뭣하니까 친구들하고 사귈 수도 없고 참…."]
당시 학교에서 처음으로 폭발물을 발견한 학생을 찾아갔습니다.
[백세봉/서귀포초등학교 폭발사고 생존자 : "한 30cm 될 거야. 박격포탄이니까. 그래서 그거 들고 교무실로 가려던 찰나에 김도신이 '보자 보자' 해서 던져버린 거야. 창밖으로. 난 창문 옆에 있으니까 파편에 이거(얼굴) 맞았는데. 김도신 걔는 무릎을 맞았을 거야. 모르니까 그렇게 한 거지. 알았으면 그렇게 안 할 건데."]
이 일로 30여 명이 죽거나 다치면서 폭발물을 던진 아이는 퇴학을 당했습니다.
처참한 현장을 목격한 뒤, 더 이상 학교에 가지 않은 11살 소녀도 있습니다.
[김순매/서귀포초등학교 폭발사고 생존자 : "충격이지. 그러니까 무서워서 학교를 안 나갔지. 그때 놓치니까 공부를 못했던 거라 무서워서. 또 그렇게 한다고 하니까."]
아무도 묻는 이가 없었기에, 4·3 피해라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8살 동생을 잃었던 언니도 이제야 그날의 진상을 알았습니다.
[김영란/서귀포초등학교 폭발사고 희생자 故 김민혜 언니 : "그때는 학교에서 일절 아무것도 조사도 안 하고. 아무것도 안 했어. 같이 그냥 다 같이 묻은 모양이라 어디 가서. 그것뿐이지."]
학교 제적부에선 또 다른 희생자들도 확인됐습니다.
["단기 4282년(서기 1949년) 3월 10일 본교 폭발사건에 사망이라고 적혔네요. 1학년이에요."]
부산 출신 장길돌은 숨지고, 양상수와 현성용은 치료를 위해 전학 갔습니다.
묻혀있던 이 희생자들은 내년 6월 발간될 4·3 추가 진상조사보고서에 기록될 예정입니다.
KBS 뉴스 안서연입니다.
촬영기자:고성호/그래픽:박미나
4·3 당시 폭발물을 갖고 놀다 희생된 어린이들에 대한 보도 이어갑니다.
9년 전 알려진 표선초등학교 폭발사고의 또 다른 희생자들을 찾았다는 소식, 전해드렸는데요.
KBS 취재로 드러난 서귀포초등학교 폭발사고 희생자들도 추가로 확인됐습니다.
안서연 고성호 기자입니다.
[리포트]
지난해 KBS에 전화 한 통이 걸려 왔습니다.
1949년 3월 10일 서귀포초등학교 폭발사고 현장에 있던 12살 소년이었습니다.
[오홍제/서귀포초등학교 폭발사고 목격자 : "사필귀정이랄까, 진실에 아주 가깝게 해주는 게 좋지 않겠나 해서 내가 전화를 걸었던 거야."]
오 할아버지는 그날 폭발물을 가지고 논 친구들을 또렷이 기억했습니다.
[오홍제/서귀포초등학교 폭발사고 목격자 : "수류탄을 가져온 사람도 우리 반 학생이고, 던진 것도 우리 반이고 그랬더라고요. (던진 아이는) 활달한 친구인데 그 후로 뭣하니까 친구들하고 사귈 수도 없고 참…."]
당시 학교에서 처음으로 폭발물을 발견한 학생을 찾아갔습니다.
[백세봉/서귀포초등학교 폭발사고 생존자 : "한 30cm 될 거야. 박격포탄이니까. 그래서 그거 들고 교무실로 가려던 찰나에 김도신이 '보자 보자' 해서 던져버린 거야. 창밖으로. 난 창문 옆에 있으니까 파편에 이거(얼굴) 맞았는데. 김도신 걔는 무릎을 맞았을 거야. 모르니까 그렇게 한 거지. 알았으면 그렇게 안 할 건데."]
이 일로 30여 명이 죽거나 다치면서 폭발물을 던진 아이는 퇴학을 당했습니다.
처참한 현장을 목격한 뒤, 더 이상 학교에 가지 않은 11살 소녀도 있습니다.
[김순매/서귀포초등학교 폭발사고 생존자 : "충격이지. 그러니까 무서워서 학교를 안 나갔지. 그때 놓치니까 공부를 못했던 거라 무서워서. 또 그렇게 한다고 하니까."]
아무도 묻는 이가 없었기에, 4·3 피해라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8살 동생을 잃었던 언니도 이제야 그날의 진상을 알았습니다.
[김영란/서귀포초등학교 폭발사고 희생자 故 김민혜 언니 : "그때는 학교에서 일절 아무것도 조사도 안 하고. 아무것도 안 했어. 같이 그냥 다 같이 묻은 모양이라 어디 가서. 그것뿐이지."]
학교 제적부에선 또 다른 희생자들도 확인됐습니다.
["단기 4282년(서기 1949년) 3월 10일 본교 폭발사건에 사망이라고 적혔네요. 1학년이에요."]
부산 출신 장길돌은 숨지고, 양상수와 현성용은 치료를 위해 전학 갔습니다.
묻혀있던 이 희생자들은 내년 6월 발간될 4·3 추가 진상조사보고서에 기록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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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서연 기자 asy0104@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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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호 기자 rumpiu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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