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이유로 운항취소한 기장 징계는 부당”

입력 2025.02.07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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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심 법원 "비행 안전과 관련해 원칙대로 일할 수 있는 여건 보장돼야"

대구지방법원 제12민사부(재판장 채성호 부장판사)는 어제(6일) 기장 A 씨가 티웨이 항공을 상대로 낸 징계처분 무효 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앞서 티웨이 항공은 지난해 1월 19일, A 씨가 독단적으로 항공기 결항을 결정해 회사에 1억 원이 넘는 재산상 손해를, 해당 편 승객에겐 정신적 손해를 가했다는 사유로 정직 6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징계 수위는 재심 끝에 정직 5개월로 조정됐다.

A 씨가 결항을 결정한 이유는 항공기의 안전과 관련된 부품 때문이었다. A 씨는 지난해 1월 1일 베트남 깜라인 국제공항을 출발하려던 TW158편(HL8324)의 기장이었고, 출발 전 점검 중 브레이크 패드의 마모도를 알 수 있는 부품이 교체 기준보다 짧아진 걸 발견했다. A 씨는 기준대로 브레이크 교체를 요구했고, 이 과정에서 대체 편이 투입돼 출발이 15시간 30분 넘게 지연됐다.

티웨이 항공은 대체 편이 투입된 지난해 1월 2일, 해당 기준을 무효로 공시했고, 이후 A 씨를 징계했다. 이에 대해 1심 법원은 " 다수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비행안전과 관련하여 관계자들이 징계나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없이 원칙에 따라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이 보장될 필요가 있다"며 부당 징계로 판단했다.

■ 그날 베트남 깜라인 국제공항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TW158편(HL8324)의 예정 출발 시각은 지난해 1월 1일 베트남 현지 시각 밤 11시 30분경이었다. 이 여객기는 한국 시각으로 다음 날 새벽 5시 50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기장 A 씨는 출발 전 직접 항공기 외부 점검을 했고, 왼쪽 뒷바퀴의 브레이크 핀 중 하나가 짧아 보여 티웨이 항공의 운항정비팀 소속 정비사에게 핀의 길이를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 정비사가 2차례 쟀더니 한 번은 0.7mm, 다른 한 번은 0.9mm였다. 이에 A 씨는 티웨이 항공의 운항기술공시 23-49호에 따라 브레이크 핀이 1mm 이하여서 브레이크를 교체하지 않으면 해당 여객기를 운항할 수 없다고 말했다.

A 씨의 요청에 티웨이 항공의 정비통제팀 간부는 제작사 기준상 브레이큰 핀이 평평한 상태가 될 때까지 사용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이에 A 씨는 티웨이 항공 운항본부가 공식적인 운항 지시를 해주거나 운항기술공시 23-49호를 취소해야 항공기를 운항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엄연히 회사의 기준이 있는 상황에서 이를 어기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고, 직장인 입장에선 회사가 공식적으로 해당 기준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의 지시를 해야 문제가 발생해도 면책받을 수 있다. 그러나 티웨이 항공 측은 공식적인 운항 지시를 하거나 해당 운항기술공시를 바로 취소하지 않았다. 이에 A 씨는 운항 취소를 결정했다.

티웨이 항공은 다음 날인 지난해 1월 2일, 해당 운항기술공시를 무효로 공시하고, 자체 기준이 아닌 항공기 제작사 기준에 따라 브레이크 핀이 표면과 같거나 그 이하일 때 교체하도록 기준을 바꿨다. 이후 A 씨는 대체 편 항공기를 몰아 15시간 37분 늦게 인천공항에 도착했고, 회사는 징계 절차에 착수했다.

■ 브레이크 핀이 뭐길래?…왜 기준은 1mm였나?

티웨이 항공 운항기술공시 23-49호, 붉은색 박스 안이 브레이크 교체 기준이다.티웨이 항공 운항기술공시 23-49호, 붉은색 박스 안이 브레이크 교체 기준이다.

브레이크 핀의 정식 명칭은 브레이크 웨어 인디케이터 핀(Brake Wear Indicator Pin)이다. 브레이크 가까이 바퀴에 인디케이터 가이드가 붙어있고, 그 위에 솟아있는 게 브레이크 핀이다. 이 핀의 역할은 브레이크 패드의 마모 상태를 알려주는 것으로 핀이 기준치까지 짧아지면 정비사는 브레이크를 교체해야 한다. 일종의 안전표지인 셈이다.

항공기 제작사는 당초 브레이크 핀이 인디케이터 가이드의 표면과 같거나 이하일 때 브레이크를 교환하도록 정했다. 실제 핀의 길이가 기준치에 가까워지면 항공사의 정비팀은 브레이크를 분리한 뒤 수리를 맡은 업체에 보낸다. 그런데 이 업체와의 계약 조건이 1mm를 초과할 경우 수리 업체에 페널티를 지급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티웨이 항공 측에서 브레이크 핀이 1mm를 초과하는 데도 수리를 맡기는 경우가 있었고, 이 때문에 2022년 한해에만 페널티로 8만 달러 가까이 청구가 됐다. 이에 티웨이 항공은 2023년 10월 11일 브레이크 교환 기준을 핀 길이 1mm 이하로 안내하는 운항기술공시 23-49호를 마련했다.

■ 1심 법원의 구체적인 판단 이유와 노사 반응은?

티웨이 항공 측은 법정에서 운항기술공시 규정은 정비 효율을 위한 참고 사항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수리업체에 페널티를 내지 않기 위해 해당 규정을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1심 법원은 티웨이 항공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티웨이 항공의 해당 운항기술공시는 브레이크 교체 기준에 관해 핀 길이가 1mm 또는 그 이하의 경우 브레이크를 교환하라고 확정적으로 지시하고 있고, A 씨는 해당 기준에 근거해 티웨이 항공에 브레이크 교환을 요구했다. 또 브레이크 핀 길이가 1mm 이하인 상황에서 항공기 운항이 실제 문제없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명시적인 규정을 준수하고자 한 A 씨의 행위가 잘못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A 씨의 항공기 운항 중단 행위는 징계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더욱이 A 씨는 브레이크 핀 길이가 기준치에 미달했다는 이유로 무조건적인 운항 불가를 결정한 게 아니었다. A 씨는 운항이나 정비 관계자와 협의하면서 운항기술공시 등 규정에도 불구하고 운항이 가능하도록 운항본부의 구체적인 지시를 요청했다. 그러나 운항본부로부터 구체적인 비행 지시 등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고, 법원도 이 점을 감안했다.

이 같은 결정에 A 씨가 소속된 대한민국 조종사노동조합 연맹은 법원이 현명한 판결을 했다며 환영했다. 특히, 이번 판결이 안전의 최후 보루인 기장의 권한은 다수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비행안전 확보를 위하여 어떤 불이익이나 징계의 두려움이 없이 지속 보장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발전적인 항공 안전 문화 조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반면, 티웨이 항공은 판결문 검토 중이라며 항소 여부와 관련해선 아직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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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전이유로 운항취소한 기장 징계는 부당”
    • 입력 2025-02-07 16:50:26
    경제

■ 1심 법원 "비행 안전과 관련해 원칙대로 일할 수 있는 여건 보장돼야"

대구지방법원 제12민사부(재판장 채성호 부장판사)는 어제(6일) 기장 A 씨가 티웨이 항공을 상대로 낸 징계처분 무효 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앞서 티웨이 항공은 지난해 1월 19일, A 씨가 독단적으로 항공기 결항을 결정해 회사에 1억 원이 넘는 재산상 손해를, 해당 편 승객에겐 정신적 손해를 가했다는 사유로 정직 6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징계 수위는 재심 끝에 정직 5개월로 조정됐다.

A 씨가 결항을 결정한 이유는 항공기의 안전과 관련된 부품 때문이었다. A 씨는 지난해 1월 1일 베트남 깜라인 국제공항을 출발하려던 TW158편(HL8324)의 기장이었고, 출발 전 점검 중 브레이크 패드의 마모도를 알 수 있는 부품이 교체 기준보다 짧아진 걸 발견했다. A 씨는 기준대로 브레이크 교체를 요구했고, 이 과정에서 대체 편이 투입돼 출발이 15시간 30분 넘게 지연됐다.

티웨이 항공은 대체 편이 투입된 지난해 1월 2일, 해당 기준을 무효로 공시했고, 이후 A 씨를 징계했다. 이에 대해 1심 법원은 " 다수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비행안전과 관련하여 관계자들이 징계나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없이 원칙에 따라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이 보장될 필요가 있다"며 부당 징계로 판단했다.

■ 그날 베트남 깜라인 국제공항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TW158편(HL8324)의 예정 출발 시각은 지난해 1월 1일 베트남 현지 시각 밤 11시 30분경이었다. 이 여객기는 한국 시각으로 다음 날 새벽 5시 50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기장 A 씨는 출발 전 직접 항공기 외부 점검을 했고, 왼쪽 뒷바퀴의 브레이크 핀 중 하나가 짧아 보여 티웨이 항공의 운항정비팀 소속 정비사에게 핀의 길이를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 정비사가 2차례 쟀더니 한 번은 0.7mm, 다른 한 번은 0.9mm였다. 이에 A 씨는 티웨이 항공의 운항기술공시 23-49호에 따라 브레이크 핀이 1mm 이하여서 브레이크를 교체하지 않으면 해당 여객기를 운항할 수 없다고 말했다.

A 씨의 요청에 티웨이 항공의 정비통제팀 간부는 제작사 기준상 브레이큰 핀이 평평한 상태가 될 때까지 사용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이에 A 씨는 티웨이 항공 운항본부가 공식적인 운항 지시를 해주거나 운항기술공시 23-49호를 취소해야 항공기를 운항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엄연히 회사의 기준이 있는 상황에서 이를 어기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고, 직장인 입장에선 회사가 공식적으로 해당 기준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의 지시를 해야 문제가 발생해도 면책받을 수 있다. 그러나 티웨이 항공 측은 공식적인 운항 지시를 하거나 해당 운항기술공시를 바로 취소하지 않았다. 이에 A 씨는 운항 취소를 결정했다.

티웨이 항공은 다음 날인 지난해 1월 2일, 해당 운항기술공시를 무효로 공시하고, 자체 기준이 아닌 항공기 제작사 기준에 따라 브레이크 핀이 표면과 같거나 그 이하일 때 교체하도록 기준을 바꿨다. 이후 A 씨는 대체 편 항공기를 몰아 15시간 37분 늦게 인천공항에 도착했고, 회사는 징계 절차에 착수했다.

■ 브레이크 핀이 뭐길래?…왜 기준은 1mm였나?

티웨이 항공 운항기술공시 23-49호, 붉은색 박스 안이 브레이크 교체 기준이다.
브레이크 핀의 정식 명칭은 브레이크 웨어 인디케이터 핀(Brake Wear Indicator Pin)이다. 브레이크 가까이 바퀴에 인디케이터 가이드가 붙어있고, 그 위에 솟아있는 게 브레이크 핀이다. 이 핀의 역할은 브레이크 패드의 마모 상태를 알려주는 것으로 핀이 기준치까지 짧아지면 정비사는 브레이크를 교체해야 한다. 일종의 안전표지인 셈이다.

항공기 제작사는 당초 브레이크 핀이 인디케이터 가이드의 표면과 같거나 이하일 때 브레이크를 교환하도록 정했다. 실제 핀의 길이가 기준치에 가까워지면 항공사의 정비팀은 브레이크를 분리한 뒤 수리를 맡은 업체에 보낸다. 그런데 이 업체와의 계약 조건이 1mm를 초과할 경우 수리 업체에 페널티를 지급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티웨이 항공 측에서 브레이크 핀이 1mm를 초과하는 데도 수리를 맡기는 경우가 있었고, 이 때문에 2022년 한해에만 페널티로 8만 달러 가까이 청구가 됐다. 이에 티웨이 항공은 2023년 10월 11일 브레이크 교환 기준을 핀 길이 1mm 이하로 안내하는 운항기술공시 23-49호를 마련했다.

■ 1심 법원의 구체적인 판단 이유와 노사 반응은?

티웨이 항공 측은 법정에서 운항기술공시 규정은 정비 효율을 위한 참고 사항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수리업체에 페널티를 내지 않기 위해 해당 규정을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1심 법원은 티웨이 항공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티웨이 항공의 해당 운항기술공시는 브레이크 교체 기준에 관해 핀 길이가 1mm 또는 그 이하의 경우 브레이크를 교환하라고 확정적으로 지시하고 있고, A 씨는 해당 기준에 근거해 티웨이 항공에 브레이크 교환을 요구했다. 또 브레이크 핀 길이가 1mm 이하인 상황에서 항공기 운항이 실제 문제없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명시적인 규정을 준수하고자 한 A 씨의 행위가 잘못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A 씨의 항공기 운항 중단 행위는 징계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더욱이 A 씨는 브레이크 핀 길이가 기준치에 미달했다는 이유로 무조건적인 운항 불가를 결정한 게 아니었다. A 씨는 운항이나 정비 관계자와 협의하면서 운항기술공시 등 규정에도 불구하고 운항이 가능하도록 운항본부의 구체적인 지시를 요청했다. 그러나 운항본부로부터 구체적인 비행 지시 등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고, 법원도 이 점을 감안했다.

이 같은 결정에 A 씨가 소속된 대한민국 조종사노동조합 연맹은 법원이 현명한 판결을 했다며 환영했다. 특히, 이번 판결이 안전의 최후 보루인 기장의 권한은 다수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비행안전 확보를 위하여 어떤 불이익이나 징계의 두려움이 없이 지속 보장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발전적인 항공 안전 문화 조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반면, 티웨이 항공은 판결문 검토 중이라며 항소 여부와 관련해선 아직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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