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시크가 준 AI 희망, 삼성의 희망은 아니다

입력 2025.02.08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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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딥시크, AI 패러다임을 흔들다

딥시크는 사실상 지난해 12월에 태어나서 (딥시크 V3) 한 달 만에 진화한 뒤 (딥시크 R1)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일반적인 수준에서 질문에 답하는 능력이 챗GPT나 llama와 같은 미국의 주요 거대언어모델(LLM) AI와 유사한데, 그 성능을 내는 데 들어간 비용이 극도로 적었다는 이유에서다. 우리 돈으로 불과 80억 원 정도를 들여 학습(Training)을 마쳤다고 알려졌다.

물론 의심도 많다. 80억 원은 '학습'에 드는 GPU 구매 비용에 불과하다, 미국 AI들이 학습한 내용을 몰래 훔쳐봤다, 이 모델의 강점은 학습을 마친 뒤 고객에게 서비스할 때 필요한 추론(Inference) 측면의 우수성인데 여기 든 비용은 숨겼다, 의도적으로 누락시킨 학습 이후에 추가로 든 비용이나 막대한 인력들을 고용하는 비용도 감안해야 한다, 실제로 든 돈은 5천억 원 수준에 달할 것이다... 등.

그럼에도 엔비디아 주가가 급락했다. 하루 만에 800조 원이 증발했다. 삼성전자 2.5개가 사라졌다. 왜냐, 미국 AI 기업들이 사용한 엔비디아 최신 칩(H100)에 한참 모자라는 H800을 썼기 때문이다. 엔비디아 최신 칩을 굳이 사지 않아도 AI 구축이 가능하다는 메시지가 아니냐는 의구심이 증폭됐다.

■ 중국이 주도하고, 미국은 공포에 질렸는데, 삼성에겐 기회라고?

게다가 알고 보니 중국에는 LLM AI가 더 있었다. 알리바바는 Qwen이라는 자체 모델 2.5 맥스 버전을 발표하며 '전반적으로 GPT-4o나 딥시크 V3, llama 3.1을 능가한다'고 주장했다. 로이터는 딥시크 R1이 나온 지 이틀 뒤에 텐센트도 자체 AI를 발표했고, 바이두 역시 AI 모델을 가지고 있고 판매하고 있다고 보도한다. 모두 미국의 '최신 칩 수출 규제' 속에서 이룬 '효율적이고 개방적인' AI 모델이다.


엔비디아의 최신 칩 없이 이룬 이 중국 기업들의 성과 속에 미국의 공포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상황을 삼성에도 기회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신호로 해석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최고 사양 제품이 아닌 그 아래 단계 칩도 이제 잘 팔릴 것 아니냐는 계산에서 나온 해석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 모든 AI 기업이 품은 공통의 목표, 나아가서 모든 IT 기업이 품은 공통의 꿈을 생각해 보면 그렇다.

■ 결국은 무어의 법칙이 지배한다

IT 기업의 꿈은 한결같다. 최대한의 정보처리, 그리고 연산 능력의 혁신이다. 늘 더 빠른 시스템, 그러면서도 더 싼 시스템이 필요했다. 더 좋고, 더 싼 시스템이 더 많이 보급되어야 했다.

그리고 늘 그렇게 되었다. 바로 무어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다.

무어의 법칙을 흔히 일정 기간이 지나면 '칩의 밀도(성능)가 두 배가 된다'는 과학 기술의 법칙으로 생각하지만, 본질은 경제적 예언이다. <칩 워>를 쓴 크리스 밀러도 KBS와의 인터뷰에서 무어의 법칙은 '더 나은 칩(제품)을 만드는 기업이 경제적으로 생존한다'는 경제 법칙이라고 강조했다. 다시 말하면 경쟁에서 실패하면 시장에서 사라진다는 예언이다.

역사를 보면 과거 삼성전자의 성공 역시 이 무어의 법칙의 지배를 받았다. 삼성은 1990년대 이후 메모리 혁신 경쟁에서 30년간 1위를 했다. 최고의 D램을 늘 가장 낮은 원가로 가장 많이, 가장 먼저 만들었다. 그리고 번영했다.

반면 경쟁에서 진 기업은 가혹한 최후를 맞았다. 미국의 D램 기업은 하나만 남기고 다 소멸했다. 일본의 D램 기업들은 모두 다 소멸했다. 타이완의 D램 기업들도 최후는 일본과 같았다. 뒤처지면 사라진다, 이것이 D램 시장의 가혹한 경쟁 법칙이다.

D램만 그런 것도 아니다. 디스플레이 시장에서도 그랬다. 일본의 기업들은 평판 브라운관을 만들다가 LCD에서 앞선 삼성에 뒤처지고 거의 사라졌다. 플래시 시장에서 HDD를 만들던 기업들은 플래시로 SSD를 만든 삼성에 뒤처지고 거의 사라졌다. IT 제조업은 이런 식이다.

■ '더 싸고, 더 뛰어난 시스템이 더 많이 보급될 때까지' 무한 경쟁은 계속된다

AI 경쟁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기업이 '최대한의 연산 능력 확보'를 위해 질주한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면에서 인간보다 현격히 뛰어난 '자율적 AI',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가 종착지다.

게티 이미지게티 이미지

이를 위해서 AI는 인간의 두뇌를 모방한다. 인간처럼 막대한 정보를 학습하고 이를 바탕으로 추론한다. 현재는 LLM이라 불리는 거대한 모델을 통해 특정 분야에서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최신 GPU와 최신 HBM의 조합이 이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다만 최종 종착지는 아직이다. 지금의 AI는 너무 비싸고 정확하지 않다. 즉, 더 좋고, 더 싼 시스템이 더 많이 보급되어야 하는 무어의 법칙은 아직 온전히 실현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를 흔히 비용과 환각(AI hallucination) 문제라고 말한다. 비용은 '효율성이 극히 낮을 정도로 비싸' 극히 소수의 기업만이 이 경쟁에 참여할 수 있다는 한계다. 환각은 '정확성'에서의 한계다. 현재의 AI는 사실이 아닌 정보를 천연덕스럽게 사실처럼 제시한다. 이 환각을 없애는 데는 한계가 있다. 모든 분야에서 인간을 뛰어넘지도 못한다. 한계는 이렇다.

이 상황에서 비교적 작은 중국기업 딥시크가 무어의 법칙을 '더 싸게' 실현할 가능성을 보여줬다. 베일에 가려진 딥시크의 창업자 량원펑은 지난해 7월 중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효율을 극대화하는 린 Lean 경영과 느슨한 조직이 특징인 딥시크'가 미래 AI경쟁에서 비효율적이고 관료적인 중국의 다른 거대 빅테크를 이길 것이라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접근방식부터 조직 운영까지 새로운 딥시크에 대한 자신감이었고, 이는 결과물로 증명됐다. (로이터) 즉, 혁신에 다가섰다.

다만 이는 저사양 하드웨어가 충분하다는 측면 보다는, 소프트웨어적인 변화로 인식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또 여전히 학습의 경제성에 관한 성과일 뿐, 이후 서비스 단계에서 주로 언급되는 '추론'의 경제성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붙어 있다. 환각 현상이란 한계, 중국 정치체제의 한계로 인한 제약은 여전하다.

즉, AI혁신은 여전히 중간단계에 있다. 량원펑 역시 이 인터뷰에서 "목적은 AGI"라며 갈 길이 멀다고 언급했다.(로이터)

■ '덜 우수한 칩을 만들어도 살아남냐' 묻기

따라서 단순하게 묻고 답하면 된다. 이 무한 경쟁에서 앞서고자 하는 기업들이 '덜 우수한 칩을 일부러 쓸 것인지'.

답도 단순하다. 아니다. 가능하다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 2등은 1등과 똑같은 첨단 제품을 만들지 못할 뿐 아니라, 첨단이 아닌 레거시 제품 생산에서도 비용 대비 효율에서 뒤처진다. 무어의 법칙에서 뒤진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CXMT 같은 중국의 D램 업체들이 삼성이나 하이닉스와 유사한 범용 제품을 만들기는 하지만, 같은 품질과 같은 가격으로 같은 양을 만들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보조금이 없다면 경쟁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런 칩을 일부러 쓸 기업은 없다.

그리고 딥시크의 혁신이 증명된다면 반복적 상호 모방 속에서 이 효율적 방식이 확산할 것이다. 그러면 업계 보편으로 자리잡을 것이고, 그 이후 승부는 다시 더 우수한 하드웨어에서 결정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 기술적으로 뒤처지는 제조 기업을 위한 기회는 없다.

(참고로, H800은 미국이 엔비디아 H100 칩 수출을 금지하자 엔비디아가 성능을 낮춰 개발한 칩인데, 이 H800용 HBM의 주요 공급자도 SK하이닉스였다. 지금은 H800마저 수출을 금지해 성능을 더 낮춘 H20이 들어가는데, 삼성은 이 H20에는 HBM을 납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번 딥시크 쇼크 이후 미국은 H20 수출과 관련해서도 제재를 준비하고 있다. 기술적으로도, 지정학적으로도 2등의 자리는 더 좁아지고 있다.)

■ AI 반도체의 새로운 가능성: 리벨리온과 NPU

새로운 기회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를테면 NPU(Neural Processing Unit) 같은 또 다른 카테고리의 칩에 기회가 올 수 있다.

NPU는 GPU나 CPU 같은, 보다 고도화된 연산 칩과의 비교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기존의 연산장치 CPU가 소수의-매우 복잡한 연산을 잘하는 연산장치라면, GPU라는 가속기(Accelerator)는 상당히 많은 숫자의-단순한 연산을 잘하는 연산장치다. NPU는 또 다른 가속기다. GPU보다도 더 단순한 산수 밖에 못 하지만 숫자는 GPU와 비교해도 훨씬 많다. 즉,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CPU가 1~2명의 대학교수라면, GPU는 수십 명의 수학 잘하는 중고등학생, NPU는 수백 명의 산수 잘하는 초등학생이다.

CPU 다음은 GPU, 그 다음은?CPU 다음은 GPU, 그 다음은?

GPU보다 더 효율적인 AI 반도체가 필요하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한국의 팹리스 리벨리온 같은 업체가 상당한 경쟁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애플과 AMD, 테슬라 등에서 활약하며 반도체 아키텍처 분야에서 '마이더스의 손'이라 불리는 짐 켈러 역시 '다음 단계 AI 칩의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리벨리온 측의 설명을 들어보면 딥시크가 불러올 변화는 '제본스 패러독스'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MS의 수장인 사티아 나델라도 언급한 개념인데, 비용이 떨어지면 전체 수요는 늘어난다. 즉 메모리 가격이 떨어질 때 메모리 시장(수요)은 더 커졌듯, 딥시크로 인해 향후 AI 시장 역시 더 커질 것이라는 의미다.

타당해 보인다. 적은 자본으로 승부할 수 있게 됐으니, AI 경쟁에 더 많은 기업이 뛰어들 것이다. 특히 학습(Training)에서 효율화가 이뤄졌으니, 추론(Inference)으로 AI 경쟁의 무게추가 옮겨질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추론에 최적화된 AI 반도체(NPU)의 가능성은 더 커질 수 있다.

예로든 리벨리온으로 설명하자면, 리벨리온은 설계만 하는 팹리스이고, 이 설계를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파운드리는 삼성전자다. 삼성이 이 파운드리와 같은 새로운 부문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보인다면 리벨리온과 함께 작지만 의미 있는 희망이 될 수는 있다.

■ 다시 무어의 법칙을 다시 맨 앞에서 실현해야 한다

즉, 칩 제조회사는 최대한의 연산 성능을 확보하고자 하는 고객의 요구에 응답해야 생존한다. 해내면 번영이다.

메모리 칩에서 하이닉스가 번영의 대열에 올라탔다. 엔비디아 최신 칩셋에 들어가는 HBM은 초고부가가치 제품이 됐다. 최신 칩셋 원가의 50% 안팎을 차지할 정도다. 없어서 못파는 제품을 만들고 그에 걸맞는 이익을 낸다. 그래서 SK하이닉스는 2024년 삼성의 칩 부문(DS) 전체를 압도하는 영업이익을 냈다.

파운드리 칩에서는 TSMC다. TSMC의 2024년 매출의 약 4분의 1(25.2%)은 애플 단 한 기업에서 나온다.(폰아레나 보도) 지구상 최고의 기업인 애플이 아이폰을 만들 때 없으면 안 되는 최신 AP를 독점한 결과다. 올해는 엔비디아로부터도 비슷한 매출을 올릴 것 같다. 지난해 10%를 차지한 TSMC의 엔비디아향 매출 비율이 올해는 20%가 넘을 것이라는 전망(미국 씨티은행 전망)이 나온다.

딥시크와 같은 효율적 방법론이 각광을 받으면 기존 시장에서 독과점 상황의 이익을 누리던 이들 기업의 수익성에 적신호가 들어올 수는 있다. 분명 도전이다. 그러나 이 위기가 혁신 자체를 못 하는 기업의 미래를 밝힐 수는 없다.

무어의 법칙이 유효하다면, 결국 최고의 칩을 만드는 기업만이 장기적으로 생존하고, 혁신 못 하는 기업은 도태된다는 경제적 함의도 유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딥시크는 아직 삼성의 희망과는 무관하다

냉정히 바라보건대 삼성은 위기다.

본업인 D램은 최고가 아니다.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는 스마트폰 부문에선 1위 애플과의 격차가 너무 큰 2등에 머문다.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고 거대하게 투자한 파운드리에선 실패하고 있다. 자체 연산 칩 설계능력(LSI 부문)은 사실상 평가하기 어려운 수준이 됐다.

즉, 지금의 삼성을 있게 한 모든 핵심 부문이 위기다. 삼성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공식이 내부에서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태에서 운 좋게도 '혁신에 들어가는 칩이 만들기 쉬워져서' 승리자 대열에 드는 날은 오지 않는다.

어떻게든 '고객이 요구하는 칩'을 다시 가장 잘 만들어야 한다. 즉, 삼성이 조직 내부에 다시 혁신과 성공의 공식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아니면 궁극적으로 '작은 이익'만 떨어지는 시장에 머물 수밖에 없고, 긴 시간이 흐르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뿐이다.

따라서 딥시크가 AI 혁신과 칩 제조 산업에 새로운 희망의 가능성을 불어넣은 것은 맞지만, 이 희망은 아직은 삼성과는 무관하다.

위기의 삼성을 조망하는 연속기사입니다. 다양한 기업과 비교하고, 여러 전문가의 분석을 경청하며 삼성의 현주소를 살핍니다. 구독해 두시면, 삼성 위기의 이유와 극복의 실마리를 살필 수 있습니다. 남은 두 편 정도의 기사를 통해, 무엇이 삼성의 부활을 가능케 할지 전망해 보겠습니다.

① [D램] 젠슨, 삼성이 왜 HBM을 새로 설계해야 하죠?
② [모바일] 애플과 삼성의 격차, 이제는 17배
③ [파운드리] 삼성도 TSMC처럼 망하던 기업 '세계 1위' 만들 수 있나
④ [세 번째 사과] 축제인 하이닉스, 세 번째 사과가 두려운 삼성
⑤ [딥시크와 삼성] 딥시크가 준 AI 희망, 삼성의 희망과 무관하다
(추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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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딥시크가 준 AI 희망, 삼성의 희망은 아니다
    • 입력 2025-02-08 11: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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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딥시크, AI 패러다임을 흔들다

딥시크는 사실상 지난해 12월에 태어나서 (딥시크 V3) 한 달 만에 진화한 뒤 (딥시크 R1)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일반적인 수준에서 질문에 답하는 능력이 챗GPT나 llama와 같은 미국의 주요 거대언어모델(LLM) AI와 유사한데, 그 성능을 내는 데 들어간 비용이 극도로 적었다는 이유에서다. 우리 돈으로 불과 80억 원 정도를 들여 학습(Training)을 마쳤다고 알려졌다.

물론 의심도 많다. 80억 원은 '학습'에 드는 GPU 구매 비용에 불과하다, 미국 AI들이 학습한 내용을 몰래 훔쳐봤다, 이 모델의 강점은 학습을 마친 뒤 고객에게 서비스할 때 필요한 추론(Inference) 측면의 우수성인데 여기 든 비용은 숨겼다, 의도적으로 누락시킨 학습 이후에 추가로 든 비용이나 막대한 인력들을 고용하는 비용도 감안해야 한다, 실제로 든 돈은 5천억 원 수준에 달할 것이다... 등.

그럼에도 엔비디아 주가가 급락했다. 하루 만에 800조 원이 증발했다. 삼성전자 2.5개가 사라졌다. 왜냐, 미국 AI 기업들이 사용한 엔비디아 최신 칩(H100)에 한참 모자라는 H800을 썼기 때문이다. 엔비디아 최신 칩을 굳이 사지 않아도 AI 구축이 가능하다는 메시지가 아니냐는 의구심이 증폭됐다.

■ 중국이 주도하고, 미국은 공포에 질렸는데, 삼성에겐 기회라고?

게다가 알고 보니 중국에는 LLM AI가 더 있었다. 알리바바는 Qwen이라는 자체 모델 2.5 맥스 버전을 발표하며 '전반적으로 GPT-4o나 딥시크 V3, llama 3.1을 능가한다'고 주장했다. 로이터는 딥시크 R1이 나온 지 이틀 뒤에 텐센트도 자체 AI를 발표했고, 바이두 역시 AI 모델을 가지고 있고 판매하고 있다고 보도한다. 모두 미국의 '최신 칩 수출 규제' 속에서 이룬 '효율적이고 개방적인' AI 모델이다.


엔비디아의 최신 칩 없이 이룬 이 중국 기업들의 성과 속에 미국의 공포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상황을 삼성에도 기회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신호로 해석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최고 사양 제품이 아닌 그 아래 단계 칩도 이제 잘 팔릴 것 아니냐는 계산에서 나온 해석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 모든 AI 기업이 품은 공통의 목표, 나아가서 모든 IT 기업이 품은 공통의 꿈을 생각해 보면 그렇다.

■ 결국은 무어의 법칙이 지배한다

IT 기업의 꿈은 한결같다. 최대한의 정보처리, 그리고 연산 능력의 혁신이다. 늘 더 빠른 시스템, 그러면서도 더 싼 시스템이 필요했다. 더 좋고, 더 싼 시스템이 더 많이 보급되어야 했다.

그리고 늘 그렇게 되었다. 바로 무어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다.

무어의 법칙을 흔히 일정 기간이 지나면 '칩의 밀도(성능)가 두 배가 된다'는 과학 기술의 법칙으로 생각하지만, 본질은 경제적 예언이다. <칩 워>를 쓴 크리스 밀러도 KBS와의 인터뷰에서 무어의 법칙은 '더 나은 칩(제품)을 만드는 기업이 경제적으로 생존한다'는 경제 법칙이라고 강조했다. 다시 말하면 경쟁에서 실패하면 시장에서 사라진다는 예언이다.

역사를 보면 과거 삼성전자의 성공 역시 이 무어의 법칙의 지배를 받았다. 삼성은 1990년대 이후 메모리 혁신 경쟁에서 30년간 1위를 했다. 최고의 D램을 늘 가장 낮은 원가로 가장 많이, 가장 먼저 만들었다. 그리고 번영했다.

반면 경쟁에서 진 기업은 가혹한 최후를 맞았다. 미국의 D램 기업은 하나만 남기고 다 소멸했다. 일본의 D램 기업들은 모두 다 소멸했다. 타이완의 D램 기업들도 최후는 일본과 같았다. 뒤처지면 사라진다, 이것이 D램 시장의 가혹한 경쟁 법칙이다.

D램만 그런 것도 아니다. 디스플레이 시장에서도 그랬다. 일본의 기업들은 평판 브라운관을 만들다가 LCD에서 앞선 삼성에 뒤처지고 거의 사라졌다. 플래시 시장에서 HDD를 만들던 기업들은 플래시로 SSD를 만든 삼성에 뒤처지고 거의 사라졌다. IT 제조업은 이런 식이다.

■ '더 싸고, 더 뛰어난 시스템이 더 많이 보급될 때까지' 무한 경쟁은 계속된다

AI 경쟁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기업이 '최대한의 연산 능력 확보'를 위해 질주한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면에서 인간보다 현격히 뛰어난 '자율적 AI',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가 종착지다.

게티 이미지
이를 위해서 AI는 인간의 두뇌를 모방한다. 인간처럼 막대한 정보를 학습하고 이를 바탕으로 추론한다. 현재는 LLM이라 불리는 거대한 모델을 통해 특정 분야에서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최신 GPU와 최신 HBM의 조합이 이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다만 최종 종착지는 아직이다. 지금의 AI는 너무 비싸고 정확하지 않다. 즉, 더 좋고, 더 싼 시스템이 더 많이 보급되어야 하는 무어의 법칙은 아직 온전히 실현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를 흔히 비용과 환각(AI hallucination) 문제라고 말한다. 비용은 '효율성이 극히 낮을 정도로 비싸' 극히 소수의 기업만이 이 경쟁에 참여할 수 있다는 한계다. 환각은 '정확성'에서의 한계다. 현재의 AI는 사실이 아닌 정보를 천연덕스럽게 사실처럼 제시한다. 이 환각을 없애는 데는 한계가 있다. 모든 분야에서 인간을 뛰어넘지도 못한다. 한계는 이렇다.

이 상황에서 비교적 작은 중국기업 딥시크가 무어의 법칙을 '더 싸게' 실현할 가능성을 보여줬다. 베일에 가려진 딥시크의 창업자 량원펑은 지난해 7월 중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효율을 극대화하는 린 Lean 경영과 느슨한 조직이 특징인 딥시크'가 미래 AI경쟁에서 비효율적이고 관료적인 중국의 다른 거대 빅테크를 이길 것이라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접근방식부터 조직 운영까지 새로운 딥시크에 대한 자신감이었고, 이는 결과물로 증명됐다. (로이터) 즉, 혁신에 다가섰다.

다만 이는 저사양 하드웨어가 충분하다는 측면 보다는, 소프트웨어적인 변화로 인식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또 여전히 학습의 경제성에 관한 성과일 뿐, 이후 서비스 단계에서 주로 언급되는 '추론'의 경제성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붙어 있다. 환각 현상이란 한계, 중국 정치체제의 한계로 인한 제약은 여전하다.

즉, AI혁신은 여전히 중간단계에 있다. 량원펑 역시 이 인터뷰에서 "목적은 AGI"라며 갈 길이 멀다고 언급했다.(로이터)

■ '덜 우수한 칩을 만들어도 살아남냐' 묻기

따라서 단순하게 묻고 답하면 된다. 이 무한 경쟁에서 앞서고자 하는 기업들이 '덜 우수한 칩을 일부러 쓸 것인지'.

답도 단순하다. 아니다. 가능하다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 2등은 1등과 똑같은 첨단 제품을 만들지 못할 뿐 아니라, 첨단이 아닌 레거시 제품 생산에서도 비용 대비 효율에서 뒤처진다. 무어의 법칙에서 뒤진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CXMT 같은 중국의 D램 업체들이 삼성이나 하이닉스와 유사한 범용 제품을 만들기는 하지만, 같은 품질과 같은 가격으로 같은 양을 만들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보조금이 없다면 경쟁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런 칩을 일부러 쓸 기업은 없다.

그리고 딥시크의 혁신이 증명된다면 반복적 상호 모방 속에서 이 효율적 방식이 확산할 것이다. 그러면 업계 보편으로 자리잡을 것이고, 그 이후 승부는 다시 더 우수한 하드웨어에서 결정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 기술적으로 뒤처지는 제조 기업을 위한 기회는 없다.

(참고로, H800은 미국이 엔비디아 H100 칩 수출을 금지하자 엔비디아가 성능을 낮춰 개발한 칩인데, 이 H800용 HBM의 주요 공급자도 SK하이닉스였다. 지금은 H800마저 수출을 금지해 성능을 더 낮춘 H20이 들어가는데, 삼성은 이 H20에는 HBM을 납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번 딥시크 쇼크 이후 미국은 H20 수출과 관련해서도 제재를 준비하고 있다. 기술적으로도, 지정학적으로도 2등의 자리는 더 좁아지고 있다.)

■ AI 반도체의 새로운 가능성: 리벨리온과 NPU

새로운 기회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를테면 NPU(Neural Processing Unit) 같은 또 다른 카테고리의 칩에 기회가 올 수 있다.

NPU는 GPU나 CPU 같은, 보다 고도화된 연산 칩과의 비교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기존의 연산장치 CPU가 소수의-매우 복잡한 연산을 잘하는 연산장치라면, GPU라는 가속기(Accelerator)는 상당히 많은 숫자의-단순한 연산을 잘하는 연산장치다. NPU는 또 다른 가속기다. GPU보다도 더 단순한 산수 밖에 못 하지만 숫자는 GPU와 비교해도 훨씬 많다. 즉,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CPU가 1~2명의 대학교수라면, GPU는 수십 명의 수학 잘하는 중고등학생, NPU는 수백 명의 산수 잘하는 초등학생이다.

CPU 다음은 GPU, 그 다음은?
GPU보다 더 효율적인 AI 반도체가 필요하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한국의 팹리스 리벨리온 같은 업체가 상당한 경쟁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애플과 AMD, 테슬라 등에서 활약하며 반도체 아키텍처 분야에서 '마이더스의 손'이라 불리는 짐 켈러 역시 '다음 단계 AI 칩의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리벨리온 측의 설명을 들어보면 딥시크가 불러올 변화는 '제본스 패러독스'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MS의 수장인 사티아 나델라도 언급한 개념인데, 비용이 떨어지면 전체 수요는 늘어난다. 즉 메모리 가격이 떨어질 때 메모리 시장(수요)은 더 커졌듯, 딥시크로 인해 향후 AI 시장 역시 더 커질 것이라는 의미다.

타당해 보인다. 적은 자본으로 승부할 수 있게 됐으니, AI 경쟁에 더 많은 기업이 뛰어들 것이다. 특히 학습(Training)에서 효율화가 이뤄졌으니, 추론(Inference)으로 AI 경쟁의 무게추가 옮겨질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추론에 최적화된 AI 반도체(NPU)의 가능성은 더 커질 수 있다.

예로든 리벨리온으로 설명하자면, 리벨리온은 설계만 하는 팹리스이고, 이 설계를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파운드리는 삼성전자다. 삼성이 이 파운드리와 같은 새로운 부문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보인다면 리벨리온과 함께 작지만 의미 있는 희망이 될 수는 있다.

■ 다시 무어의 법칙을 다시 맨 앞에서 실현해야 한다

즉, 칩 제조회사는 최대한의 연산 성능을 확보하고자 하는 고객의 요구에 응답해야 생존한다. 해내면 번영이다.

메모리 칩에서 하이닉스가 번영의 대열에 올라탔다. 엔비디아 최신 칩셋에 들어가는 HBM은 초고부가가치 제품이 됐다. 최신 칩셋 원가의 50% 안팎을 차지할 정도다. 없어서 못파는 제품을 만들고 그에 걸맞는 이익을 낸다. 그래서 SK하이닉스는 2024년 삼성의 칩 부문(DS) 전체를 압도하는 영업이익을 냈다.

파운드리 칩에서는 TSMC다. TSMC의 2024년 매출의 약 4분의 1(25.2%)은 애플 단 한 기업에서 나온다.(폰아레나 보도) 지구상 최고의 기업인 애플이 아이폰을 만들 때 없으면 안 되는 최신 AP를 독점한 결과다. 올해는 엔비디아로부터도 비슷한 매출을 올릴 것 같다. 지난해 10%를 차지한 TSMC의 엔비디아향 매출 비율이 올해는 20%가 넘을 것이라는 전망(미국 씨티은행 전망)이 나온다.

딥시크와 같은 효율적 방법론이 각광을 받으면 기존 시장에서 독과점 상황의 이익을 누리던 이들 기업의 수익성에 적신호가 들어올 수는 있다. 분명 도전이다. 그러나 이 위기가 혁신 자체를 못 하는 기업의 미래를 밝힐 수는 없다.

무어의 법칙이 유효하다면, 결국 최고의 칩을 만드는 기업만이 장기적으로 생존하고, 혁신 못 하는 기업은 도태된다는 경제적 함의도 유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딥시크는 아직 삼성의 희망과는 무관하다

냉정히 바라보건대 삼성은 위기다.

본업인 D램은 최고가 아니다.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는 스마트폰 부문에선 1위 애플과의 격차가 너무 큰 2등에 머문다.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고 거대하게 투자한 파운드리에선 실패하고 있다. 자체 연산 칩 설계능력(LSI 부문)은 사실상 평가하기 어려운 수준이 됐다.

즉, 지금의 삼성을 있게 한 모든 핵심 부문이 위기다. 삼성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공식이 내부에서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태에서 운 좋게도 '혁신에 들어가는 칩이 만들기 쉬워져서' 승리자 대열에 드는 날은 오지 않는다.

어떻게든 '고객이 요구하는 칩'을 다시 가장 잘 만들어야 한다. 즉, 삼성이 조직 내부에 다시 혁신과 성공의 공식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아니면 궁극적으로 '작은 이익'만 떨어지는 시장에 머물 수밖에 없고, 긴 시간이 흐르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뿐이다.

따라서 딥시크가 AI 혁신과 칩 제조 산업에 새로운 희망의 가능성을 불어넣은 것은 맞지만, 이 희망은 아직은 삼성과는 무관하다.

위기의 삼성을 조망하는 연속기사입니다. 다양한 기업과 비교하고, 여러 전문가의 분석을 경청하며 삼성의 현주소를 살핍니다. 구독해 두시면, 삼성 위기의 이유와 극복의 실마리를 살필 수 있습니다. 남은 두 편 정도의 기사를 통해, 무엇이 삼성의 부활을 가능케 할지 전망해 보겠습니다.

① [D램] 젠슨, 삼성이 왜 HBM을 새로 설계해야 하죠?
② [모바일] 애플과 삼성의 격차, 이제는 17배
③ [파운드리] 삼성도 TSMC처럼 망하던 기업 '세계 1위' 만들 수 있나
④ [세 번째 사과] 축제인 하이닉스, 세 번째 사과가 두려운 삼성
⑤ [딥시크와 삼성] 딥시크가 준 AI 희망, 삼성의 희망과 무관하다
(추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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