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K] ‘불법’이냐 ‘생존’이냐…용암동굴과 농민들의 불편한 동거

입력 2025.02.24 (19:07) 수정 2025.02.24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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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세계자연유산이자 제주의 대표 관광지인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일대에서 제주도와 농민들의 갈등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현장 K, 문준영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만장굴 입구 삼거리에서 한라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도로.

양옆으로 땅들이 드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토지별로 돌담이 쌓여 있고, 경계도 명확하게 나뉘어 있습니다.

경작 흔적도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자, 무단 경작 금지 안내문이 곳곳에 붙어 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인근에서 당근을 캐고 있는 농민을 만나봤습니다.

사정을 묻자 맺힌 게 많은 듯 하소연을 늘어놓습니다.

[윤영옥/월정리 농민 : "여기가 거의 100년이 더 됐어요. 소나무 같은 거를 베고 낫으로 베고 삽으로 삽질하면서 옛날 할아버지들이 만든 땅이에요."]

선대부터 밭을 일궈온 곳인데, 용암동굴이 발견되고, 세계자연유산으로 인정되면서 오히려 농사를 못 짓게 됐다는 겁니다.

월정리 주민들이 오래전부터 농사를 지어온 곳, 하지만 토지는 제주도 소유의 공유지입니다.

엄밀히 말해 법을 위반해 농사를 해오고 있는 겁니다.

[월정리 농민 : "몇만 평을 농사를 짓지 말라고 하면 여기 사람들은 다 죽어야 해. 한 50명은 될걸."]

농민들은 월정리 동부하수처리장으로 바다 생태계도 망가졌고, 농사까지 막아버리면 당장 먹고살기도 힘들다고 토로합니다.

[김춘자/월정리 농민 : "비료 기운이 땅속으로 들어간다고 이제 못 하게 하는 거죠. 바다도 죽어버려 이제 농사도 못 지어, 그러면 우리 백성들은 어떻게 살라고."]

거문오름에서 분출된 용암이 해안가로 흘러나와 만들어진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만장굴과 김녕굴, 용천동굴 등 여러 용암동굴이 포함돼 있습니다.

2007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는데, 이후 용암동굴과 농민들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됐습니다.

[기진석/제주도 세계유산본부 학예연구사 : "2007년 세계유산 등재될 당시에 IUCN(세계자연보전연맹)으로부터 동굴 상부에 있는 핵심 지역을 매입하고, 농업 활동을 규제하라는 권고를 받은 바가 있습니다. 그에 따라 사유지 매입도 하고 있고."]

제주도는 수백억을 들여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일대 사유지를 매입하고 있습니다.

이 일대 공유지는 531개 필지, 면적은 500만㎡에 달합니다.

[기진석/제주도 세계유산본부 학예연구사 : "농약이라든지 비료를 쓸 수밖에 없는데 동굴 내부에 있는 석회 생성물에 영향을 줄 수가 있거든요."]

세계유산본부는 지난해 공유지 실태조사를 벌여 10필지에서 무단 경작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실제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세계유산본부는 월정리와 김녕리 마을회에 분기별로 경작 금지 공문을 보내는 등 단속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고정익/월정리 주민 : "농민들은 무서움을 느끼죠. 공청회든 어떤 설명회든 그런 얘기는 전혀 없었고 그걸 알면서도 저희는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지난해 이 일대에서 공유재산관리법 위반으로 변상금이 부과된 건수는 6건.

오늘도 불법과 생존을 두고 제주도와 농민들의 갈등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KBS 뉴스 문준영입니다.

촬영기자:양경배/그래픽:고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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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2-24 19:07:51
    • 수정2025-02-24 21:54:51
    뉴스7(제주)
[앵커]

세계자연유산이자 제주의 대표 관광지인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일대에서 제주도와 농민들의 갈등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현장 K, 문준영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만장굴 입구 삼거리에서 한라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도로.

양옆으로 땅들이 드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토지별로 돌담이 쌓여 있고, 경계도 명확하게 나뉘어 있습니다.

경작 흔적도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자, 무단 경작 금지 안내문이 곳곳에 붙어 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인근에서 당근을 캐고 있는 농민을 만나봤습니다.

사정을 묻자 맺힌 게 많은 듯 하소연을 늘어놓습니다.

[윤영옥/월정리 농민 : "여기가 거의 100년이 더 됐어요. 소나무 같은 거를 베고 낫으로 베고 삽으로 삽질하면서 옛날 할아버지들이 만든 땅이에요."]

선대부터 밭을 일궈온 곳인데, 용암동굴이 발견되고, 세계자연유산으로 인정되면서 오히려 농사를 못 짓게 됐다는 겁니다.

월정리 주민들이 오래전부터 농사를 지어온 곳, 하지만 토지는 제주도 소유의 공유지입니다.

엄밀히 말해 법을 위반해 농사를 해오고 있는 겁니다.

[월정리 농민 : "몇만 평을 농사를 짓지 말라고 하면 여기 사람들은 다 죽어야 해. 한 50명은 될걸."]

농민들은 월정리 동부하수처리장으로 바다 생태계도 망가졌고, 농사까지 막아버리면 당장 먹고살기도 힘들다고 토로합니다.

[김춘자/월정리 농민 : "비료 기운이 땅속으로 들어간다고 이제 못 하게 하는 거죠. 바다도 죽어버려 이제 농사도 못 지어, 그러면 우리 백성들은 어떻게 살라고."]

거문오름에서 분출된 용암이 해안가로 흘러나와 만들어진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만장굴과 김녕굴, 용천동굴 등 여러 용암동굴이 포함돼 있습니다.

2007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는데, 이후 용암동굴과 농민들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됐습니다.

[기진석/제주도 세계유산본부 학예연구사 : "2007년 세계유산 등재될 당시에 IUCN(세계자연보전연맹)으로부터 동굴 상부에 있는 핵심 지역을 매입하고, 농업 활동을 규제하라는 권고를 받은 바가 있습니다. 그에 따라 사유지 매입도 하고 있고."]

제주도는 수백억을 들여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일대 사유지를 매입하고 있습니다.

이 일대 공유지는 531개 필지, 면적은 500만㎡에 달합니다.

[기진석/제주도 세계유산본부 학예연구사 : "농약이라든지 비료를 쓸 수밖에 없는데 동굴 내부에 있는 석회 생성물에 영향을 줄 수가 있거든요."]

세계유산본부는 지난해 공유지 실태조사를 벌여 10필지에서 무단 경작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실제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세계유산본부는 월정리와 김녕리 마을회에 분기별로 경작 금지 공문을 보내는 등 단속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고정익/월정리 주민 : "농민들은 무서움을 느끼죠. 공청회든 어떤 설명회든 그런 얘기는 전혀 없었고 그걸 알면서도 저희는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지난해 이 일대에서 공유재산관리법 위반으로 변상금이 부과된 건수는 6건.

오늘도 불법과 생존을 두고 제주도와 농민들의 갈등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KBS 뉴스 문준영입니다.

촬영기자:양경배/그래픽:고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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