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일본군이 발가락 부러뜨리고 끌고가”…96살 중국 위안부의 ‘눈물’

입력 2025.02.2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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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의 비극, 일본군 위안부는 우리 역사에 잊을 수 없는 아픈 기억입니다. 하지만, 당시 동원된 위안부 상당수가 중국 대륙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학계는 당시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됐던 조선 출신 여성이 10~20만 명에 달했던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일본군 보고서는 1940년 중국에서 성병에 걸린 병사 1만 4,757명 가운데 51.8%가 한국인을 통해 감염됐다고 적고 있습니다. 중국 내 일본군 위안소에서 조선 출신 위안부의 비중이 절반가량이었던 것으로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가해자가 부인하는 가운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제라도 밝히기 위해, 한-중 양국이 위안부 공동 연구에 나서야 하는 이유입니다.

현재 생존한 중국인 위안부는 8명입니다. 이 가운데 한 명인 96살 펑주잉 할머니를 KBS 취재진이 직접 만나 당시 상황을 들어봤습니다.

펑 할머니는 9살 무렵 일본군의 생화학 무기 공격에 노출돼 시력을 잃었다고 합니다. 15살이 되던 해에는 마을로 들이닥친 일본군에 끌려가다 저항하자, 일본군은 펑 할머니가 걷지 못하게 발가락 2개를 부러뜨렸다는 참담한 증언이 이어졌습니다.

펑주잉/96살(생존 중국인 위안부)
"내가 10대 후반이었을 거예요. (일본군이 끌고 가려고) 내 발가락 2개를 부러뜨렸어요.
제 언니도 배를 한 번 (흉기로) 찔렸습니다. 많은 사람을 강간하고 죽였습니다. 많이 죽었습니다."

펑 할머니는 몇 달 동안 하혈을 하면서도 계속 위안부로 일해야 했다고 취재진에게 담담하게 설명했습니다. 펑 할머니는 당시의 상처로 지금도 옆구리 쪽에 구멍이 난 채 생활하고 있습니다.

펑 할머니가 위안부로 징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 남부의 시골 마을에서도 한국인 위안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펑 할머니 조카/중국 후난성 웨양현
"(인근 마을에) 오래 거주한 주민이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중국인 처녀 외에 한국인(위안부)이 있었다고…그들이 한국말을 했기 때문에 100% 한국인이라고."

하지만, 일본은 위안부의 모집과 관리 책임을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최근 일본 침략 역사를 중점 연구하는 난징 대학살 기념관이 이런 사실을 뒤집는 사료를 발굴했습니다.

1939년 작성된 '관동군 제6병원 후방 지원 문서'라는 이름의 서류철입니다. 의료 일지와 병원 보급 상황 기록 가운데 '위안부 신체검사 기록지'가 포함됐습니다. '김', '박', '남' 같은 한국식 성이 모두 9명으로, 조선 출신이라는 뜻의 한자 '조(朝)'가 적혀있습니다.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위안부 이름입니다. 성병 확인 목적으로 병명과 치료 내용을 적는 칸까지 있어 일본군이 조선 위안부를 직접 관리한 주요 증거로 평가됩니다.

쑤즈량/중국 위안부연구소장
"일본 정부와 군대가 위안소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위안소는 중국 '헝다오허즈' 있었다고만 간략하게 적혀있습니다. 위안소 건물이 남아 있다면 보존과 연구가 시급한 상황, 취재진은 헝다오허즈 위안소를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습니다. 헝다오허즈라는 지명이 존재하는 곳은 헤이룽장성 등 동북 지역에만 3곳입니다.

수소문 끝에 조선 출신 위안부들이 머문 것으로 추정되는 '헝다오허즈'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헝다오허즈 주민
"이 사람이 끝나면 또 다른 사람…일본(군)들이 많지 않습니까…여자들을 참말로…그들이 말을 타고 와서 말 밧줄을 발목에 묶기까지 했습니다."

조선 위안부들이 머문 헝다오허즈 위안소. 그동안 역사적 기록이 남겨져 있지 않았던 곳입니다. 취재진이 처음으로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을까요? 자세한 내용은 3월 1일 밤 9시 40분 KBS1TV '특파원보고 세계는 지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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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의 비극, 일본군 위안부는 우리 역사에 잊을 수 없는 아픈 기억입니다. 하지만, 당시 동원된 위안부 상당수가 중국 대륙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학계는 당시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됐던 조선 출신 여성이 10~20만 명에 달했던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일본군 보고서는 1940년 중국에서 성병에 걸린 병사 1만 4,757명 가운데 51.8%가 한국인을 통해 감염됐다고 적고 있습니다. 중국 내 일본군 위안소에서 조선 출신 위안부의 비중이 절반가량이었던 것으로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가해자가 부인하는 가운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제라도 밝히기 위해, 한-중 양국이 위안부 공동 연구에 나서야 하는 이유입니다.

현재 생존한 중국인 위안부는 8명입니다. 이 가운데 한 명인 96살 펑주잉 할머니를 KBS 취재진이 직접 만나 당시 상황을 들어봤습니다.

펑 할머니는 9살 무렵 일본군의 생화학 무기 공격에 노출돼 시력을 잃었다고 합니다. 15살이 되던 해에는 마을로 들이닥친 일본군에 끌려가다 저항하자, 일본군은 펑 할머니가 걷지 못하게 발가락 2개를 부러뜨렸다는 참담한 증언이 이어졌습니다.

펑주잉/96살(생존 중국인 위안부)
"내가 10대 후반이었을 거예요. (일본군이 끌고 가려고) 내 발가락 2개를 부러뜨렸어요.
제 언니도 배를 한 번 (흉기로) 찔렸습니다. 많은 사람을 강간하고 죽였습니다. 많이 죽었습니다."

펑 할머니는 몇 달 동안 하혈을 하면서도 계속 위안부로 일해야 했다고 취재진에게 담담하게 설명했습니다. 펑 할머니는 당시의 상처로 지금도 옆구리 쪽에 구멍이 난 채 생활하고 있습니다.

펑 할머니가 위안부로 징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 남부의 시골 마을에서도 한국인 위안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펑 할머니 조카/중국 후난성 웨양현
"(인근 마을에) 오래 거주한 주민이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중국인 처녀 외에 한국인(위안부)이 있었다고…그들이 한국말을 했기 때문에 100% 한국인이라고."

하지만, 일본은 위안부의 모집과 관리 책임을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최근 일본 침략 역사를 중점 연구하는 난징 대학살 기념관이 이런 사실을 뒤집는 사료를 발굴했습니다.

1939년 작성된 '관동군 제6병원 후방 지원 문서'라는 이름의 서류철입니다. 의료 일지와 병원 보급 상황 기록 가운데 '위안부 신체검사 기록지'가 포함됐습니다. '김', '박', '남' 같은 한국식 성이 모두 9명으로, 조선 출신이라는 뜻의 한자 '조(朝)'가 적혀있습니다.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위안부 이름입니다. 성병 확인 목적으로 병명과 치료 내용을 적는 칸까지 있어 일본군이 조선 위안부를 직접 관리한 주요 증거로 평가됩니다.

쑤즈량/중국 위안부연구소장
"일본 정부와 군대가 위안소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위안소는 중국 '헝다오허즈' 있었다고만 간략하게 적혀있습니다. 위안소 건물이 남아 있다면 보존과 연구가 시급한 상황, 취재진은 헝다오허즈 위안소를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습니다. 헝다오허즈라는 지명이 존재하는 곳은 헤이룽장성 등 동북 지역에만 3곳입니다.

수소문 끝에 조선 출신 위안부들이 머문 것으로 추정되는 '헝다오허즈'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헝다오허즈 주민
"이 사람이 끝나면 또 다른 사람…일본(군)들이 많지 않습니까…여자들을 참말로…그들이 말을 타고 와서 말 밧줄을 발목에 묶기까지 했습니다."

조선 위안부들이 머문 헝다오허즈 위안소. 그동안 역사적 기록이 남겨져 있지 않았던 곳입니다. 취재진이 처음으로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을까요? 자세한 내용은 3월 1일 밤 9시 40분 KBS1TV '특파원보고 세계는 지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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