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 동료 잃은 노동자들…“트라우마 고통” [낮은곳 향하는 죽음]③

입력 2025.02.27 (10:06) 수정 2025.02.27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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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0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작업하다 숨진 고 김용균 씨.2018년 12월 10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작업하다 숨진 고 김용균 씨.

■ 일터에서 동료 잃은 노동자들… "사고 이후에도 계속 고통"

2018년 12월 10일 밤,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이인구 씨는 설비를 점검하러 나간 뒤 돌아오지 않는 동료를 찾아 나섰습니다.
"제발 살아만 있어라…."
간절한 마음으로 발전소 곳곳을 돌아다니던 이 씨는 3시간 만에 이미 차갑게 식은 동료의 주검을 발견했습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끼임 사고로 숨진 24살의 노동자, 고 김용균 씨였습니다.

"(사고가 난) 그날 밤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어요. 분명히 우리 동료 두 명이 옆에서 저를 붙들고 있었어요.
(현장을 보고 놀라서) 그때 욕도 엄청나게 하고, 소리도 지르고…."

- 이인구 씨 (고 김용균 씨 사고 첫 목격자) -


산업 재해로 숨진 고 김용균 씨의 동료 이인구 씨.산업 재해로 숨진 고 김용균 씨의 동료 이인구 씨.

6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이 씨의 시간은 아직도 그날에 멈춰있습니다. 참혹했던 사고 이후, 하루 종일 멍하니 있는 시간이 늘어갔습니다. 일하다 숨진 김 씨를 생각하면 잠을 이룰 수 없었고, 김 씨 또래 젊은이들만 봐도 눈물이 났습니다.
이 씨는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5년이나 약물에 의지해 생활해야 했습니다. 복직을 세 번 미룬 끝에 지난해 초 일터에 복귀했지만 사고 후유증이 계속돼 결국, 반년 만에 회사를 떠났습니다.

"저도 사실은 그렇게까지 고통을 받을 줄은 몰랐어요. 다른 동료들처럼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서 생활하게 될 줄 알았는데…. 아직도 용균이를 생각하면 눈물짓게 되고, 분하고 억울한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어요."
- 이인구 씨 (고 김용균 씨 사고 첫 목격자) -


이인구 씨가 산업 재해 희생자들을 기리면서 고향에 만든 추모 공간.이인구 씨가 산업 재해 희생자들을 기리면서 고향에 만든 추모 공간.

회사를 떠나 고향인 전북 군산으로 돌아온 이 씨는 용균 씨를 위해 조그만 추모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이곳에는 용균 씨를 비롯해 일터에서 목숨을 잃은 젊은이들의 사진이 놓여있습니다. 방 안에는 이 씨가 "젊은 동료들이 하늘에서 보고 좋아할 것"이라면서 사다 놓은 방탄소년단의 음반과 프라모델 등이 가득했습니다. 가족들도, 친구들도 "그만 끌어안고 살라"고 했지만, 이인구 씨는 아직도 용균 씨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 산업 재해로 정신적 외상, 트라우마 피해 심각

외부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발생한 정신적 외상, '트라우마(Trauma)'입니다. 트라우마를 경험한 이후, 사건에 대한 기억이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등 정신적인 외상이 한 달 이상 지속되는 경우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고 합니다.

일터에서 사고를 목격한 노동자들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립니다. 동료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무력감, 열악한 노동 환경에 대한 분노, 불면증 등 육체적인 고통까지 그 증세도 다양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식적으로 해마다 10만 건 안팎의 산업 재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터에서 1명이 다치거나 죽으면, 최소한 1명 이상의 목격자나 구조자가 발생합니다. 1건의 사고가 나면 최소 2명이 심리적 외상에 노출되고, 한 해 수십만 건의 산업 재해 트라우마, PTSD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고 김용균 씨의 사고 당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근무했던 직원 155명 중 89명이 '부분 외상'이나 '완전 외상'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부정적 시선 걱정돼"… 트라우마 '치료 골든타임' 놓쳐


전문가들은 정신적 외상, 트라우마를 치료할 최적 시간을 사고 후 일주일에서 한 달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이들이 전문 상담받을 수 있는 '직업 트라우마센터'는 서울, 인천, 충북, 강원, 대구, 광주 등 전국적으로 23곳에 설치됐습니다.

하지만 이런 정신적인 고통을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분위기 탓에 노동자들은 상처를 제때 치료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업장은 개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고, 노동자는 부정적인 시선을 우려해 치료받지 않으려 합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고통이 심해진 후에야 병원이나 센터를 찾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산업 재해 이후의 트라우마가 근로자 개인, 본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잘못 여겨져요.
아직도 이게 사업주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 김아련 충북직업트라우마센터 팀장 -

2013년부터 정부는 이런 정신적인 외상을 산업 재해로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트라우마도 산업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노동자도 많습니다. 지난 3년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산업 재해로 인정받은 사례는 179건으로, 산업 재해로 인정된 전체 사례의 0.041%에 불과합니다. 사고 피해 노동자의 몸과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정신적인 외상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절실합니다.

[연관 기사]
[낮은곳 향하는 죽음]① 중대재해 처벌 강화했는데…여전히 위험한 일터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185106
[낮은곳 향하는 죽음]② 일하다 1,600여 명 숨졌는데…처벌은 2%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185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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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5-02-27 10: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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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0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작업하다 숨진 고 김용균 씨.
■ 일터에서 동료 잃은 노동자들… "사고 이후에도 계속 고통"

2018년 12월 10일 밤,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이인구 씨는 설비를 점검하러 나간 뒤 돌아오지 않는 동료를 찾아 나섰습니다.
"제발 살아만 있어라…."
간절한 마음으로 발전소 곳곳을 돌아다니던 이 씨는 3시간 만에 이미 차갑게 식은 동료의 주검을 발견했습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끼임 사고로 숨진 24살의 노동자, 고 김용균 씨였습니다.

"(사고가 난) 그날 밤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어요. 분명히 우리 동료 두 명이 옆에서 저를 붙들고 있었어요.
(현장을 보고 놀라서) 그때 욕도 엄청나게 하고, 소리도 지르고…."

- 이인구 씨 (고 김용균 씨 사고 첫 목격자) -


산업 재해로 숨진 고 김용균 씨의 동료 이인구 씨.
6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이 씨의 시간은 아직도 그날에 멈춰있습니다. 참혹했던 사고 이후, 하루 종일 멍하니 있는 시간이 늘어갔습니다. 일하다 숨진 김 씨를 생각하면 잠을 이룰 수 없었고, 김 씨 또래 젊은이들만 봐도 눈물이 났습니다.
이 씨는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5년이나 약물에 의지해 생활해야 했습니다. 복직을 세 번 미룬 끝에 지난해 초 일터에 복귀했지만 사고 후유증이 계속돼 결국, 반년 만에 회사를 떠났습니다.

"저도 사실은 그렇게까지 고통을 받을 줄은 몰랐어요. 다른 동료들처럼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서 생활하게 될 줄 알았는데…. 아직도 용균이를 생각하면 눈물짓게 되고, 분하고 억울한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어요."
- 이인구 씨 (고 김용균 씨 사고 첫 목격자) -


이인구 씨가 산업 재해 희생자들을 기리면서 고향에 만든 추모 공간.
회사를 떠나 고향인 전북 군산으로 돌아온 이 씨는 용균 씨를 위해 조그만 추모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이곳에는 용균 씨를 비롯해 일터에서 목숨을 잃은 젊은이들의 사진이 놓여있습니다. 방 안에는 이 씨가 "젊은 동료들이 하늘에서 보고 좋아할 것"이라면서 사다 놓은 방탄소년단의 음반과 프라모델 등이 가득했습니다. 가족들도, 친구들도 "그만 끌어안고 살라"고 했지만, 이인구 씨는 아직도 용균 씨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 산업 재해로 정신적 외상, 트라우마 피해 심각

외부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발생한 정신적 외상, '트라우마(Trauma)'입니다. 트라우마를 경험한 이후, 사건에 대한 기억이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등 정신적인 외상이 한 달 이상 지속되는 경우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고 합니다.

일터에서 사고를 목격한 노동자들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립니다. 동료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무력감, 열악한 노동 환경에 대한 분노, 불면증 등 육체적인 고통까지 그 증세도 다양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식적으로 해마다 10만 건 안팎의 산업 재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터에서 1명이 다치거나 죽으면, 최소한 1명 이상의 목격자나 구조자가 발생합니다. 1건의 사고가 나면 최소 2명이 심리적 외상에 노출되고, 한 해 수십만 건의 산업 재해 트라우마, PTSD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고 김용균 씨의 사고 당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근무했던 직원 155명 중 89명이 '부분 외상'이나 '완전 외상'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부정적 시선 걱정돼"… 트라우마 '치료 골든타임' 놓쳐


전문가들은 정신적 외상, 트라우마를 치료할 최적 시간을 사고 후 일주일에서 한 달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이들이 전문 상담받을 수 있는 '직업 트라우마센터'는 서울, 인천, 충북, 강원, 대구, 광주 등 전국적으로 23곳에 설치됐습니다.

하지만 이런 정신적인 고통을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분위기 탓에 노동자들은 상처를 제때 치료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업장은 개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고, 노동자는 부정적인 시선을 우려해 치료받지 않으려 합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고통이 심해진 후에야 병원이나 센터를 찾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산업 재해 이후의 트라우마가 근로자 개인, 본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잘못 여겨져요.
아직도 이게 사업주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 김아련 충북직업트라우마센터 팀장 -

2013년부터 정부는 이런 정신적인 외상을 산업 재해로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트라우마도 산업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노동자도 많습니다. 지난 3년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산업 재해로 인정받은 사례는 179건으로, 산업 재해로 인정된 전체 사례의 0.041%에 불과합니다. 사고 피해 노동자의 몸과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정신적인 외상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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