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의 한 해안가. 갈매기 한 마리가 고통스러운 듯 몸부림칩니다. 뭔가 답답한 듯 계속해서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보지만, 상태는 나아지지 않습니다.
자세히 보니 부리와 목 주변에 투명한 낚싯줄이 어지럽게 엉켜있습니다. 갈매기가 풀어보려 발버둥 칠수록 낚싯줄은 몸을 더욱 파고듭니다.
인근에서 갈매기 사체가 발견됐습니다. 손으로 들어 올리자,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며 긴 낚싯줄이 나타납니다.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를 먹었다가 바늘이 내장에 걸려 죽은 겁니다.

낚싯바늘엔 물고기가 빠지지 않도록 하는 미늘이 달려 있습니다. 새들이 삼키면 스스로 뺄 수 없어 대부분 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해당 장면을 촬영한 오승목 다큐멘터리 감독(다큐제주)은 "야생조류 피해가 지역에 가리지 않고 제주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오 감독은 "제주 남서쪽에 위치한 모슬포, 동쪽에 있는 성산 지역 등 곳곳에서 폐어구에 의한 야생조류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그만큼 폐어구가 제주 곳곳에 산재해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제주에선 2년 전 폐어구에 걸린 새끼 남방큰돌고래 '종달이'가 발견돼 많은 국민의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이후 여러 차례 구조가 이어졌지만, 일부만 제거됐을 뿐 여전히 낚싯줄은 종달이의 꼬리를 옭아매고 있습니다.
지난달 포착된 종달이의 모습을 보면 여전히 주둥이에 낚싯바늘이 걸려 있고, 꼬리에 걸린 긴 줄에 해조류가 달라붙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11월엔 폐어구에 걸린 남방큰돌고래 성체인 '행운이'도 추가로 발견됐습니다. 행운이를 촬영한 오승목 감독은 "다행히 정상적으로 먹이 활동은 하고 있지만, 폐어구가 수중 암반이나 그물 등에 걸릴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라고 우려했습니다.

돌고래를 보기 위해 제주를 찾은 관광객들도 우려의 목소리를 나타냅니다. 아이와 함께 대정읍 해안을 찾은 관광객 조분경 씨는 "돌고래들이 그물에 걸리면 매우 아플 것 같다"며 "아이들에게도 교육적으로도 좋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조 씨는 갯바위에는 어지럽게 널브러진 폐어구를 보며 "빨리 치우거나, 아니면 쓰신 분들이 직접 치워가면 좋겠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유엔환경계획 자료에 따르면, 폐어구와 해양쓰레기 등으로 전세계에서 해마다 10만 마리 이상의 해양 동물과 100만 마리 이상의 야생 조류가 다치거나 폐사하고 있습니다. 청정 해안을 자랑하는 제주에서도 비슷한 피해가 잇따르고 있지만, 정확한 실태조사나 연구는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해상에서 해마다 발생하는 폐어구는 3만 8,000~4만 4,000여 톤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수거량은 절반 안팎에 불과합니다. 지금도 바닷속 어딘가에 많은 양의 폐어구가 쌓이고 있다는 뜻입니다. 정부는 이로 인해 유령어업이 발생하고, 연간 4천억 원 상당의 경제적인 피해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 해양수산부 폐어구 예방 대책 국회 논의 중
해양수산부는 지난해 9월 폐어구 예방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유실률이 높은 자망과 통발, 안강망 어선의 어구 사용량을 비롯해, 폐어구의 반납과 처리 장소까지 세세하게 기록하는 ① 어구관리기록부 제도를 도입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어구를 잃어버렸을 때 신고를 의무화하는 ② 유실어구 신고제도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실제 어업인이 어떤 어구를 얼마나 사용하고 어떻게 버려지는지 세세하게 기록하고, 해상에 불법 투기하거나 육상에 무단 방치되는 것을 막기 위한 특단의 조치입니다. ③ 불법 어구를 즉시 철거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현재 해당 제도들을 시행하기 위한 수산업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습니다.
해양수산부에서 폐어구 제도를 총괄하고 있는 강동양 어구순환정책과장은 "지난달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법안소위에서 관련 제도들이 통과됐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앞으로 상임위 전체 회의와 법사위, 본회의까지 특별한 상황이 없는 한 이번 임시국회를 통해 법안이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습니다.
인간이 버린 폐어구는 지금도 '바닷속 흉기'로 변해 수많은 생명을 무참히 앗아가고 있습니다.
촬영기자 고아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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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리고 찢기고…야생조류·돌고래 수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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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3-04 17:00:15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의 한 해안가. 갈매기 한 마리가 고통스러운 듯 몸부림칩니다. 뭔가 답답한 듯 계속해서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보지만, 상태는 나아지지 않습니다.
자세히 보니 부리와 목 주변에 투명한 낚싯줄이 어지럽게 엉켜있습니다. 갈매기가 풀어보려 발버둥 칠수록 낚싯줄은 몸을 더욱 파고듭니다.
인근에서 갈매기 사체가 발견됐습니다. 손으로 들어 올리자,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며 긴 낚싯줄이 나타납니다.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를 먹었다가 바늘이 내장에 걸려 죽은 겁니다.

낚싯바늘엔 물고기가 빠지지 않도록 하는 미늘이 달려 있습니다. 새들이 삼키면 스스로 뺄 수 없어 대부분 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해당 장면을 촬영한 오승목 다큐멘터리 감독(다큐제주)은 "야생조류 피해가 지역에 가리지 않고 제주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오 감독은 "제주 남서쪽에 위치한 모슬포, 동쪽에 있는 성산 지역 등 곳곳에서 폐어구에 의한 야생조류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그만큼 폐어구가 제주 곳곳에 산재해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제주에선 2년 전 폐어구에 걸린 새끼 남방큰돌고래 '종달이'가 발견돼 많은 국민의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이후 여러 차례 구조가 이어졌지만, 일부만 제거됐을 뿐 여전히 낚싯줄은 종달이의 꼬리를 옭아매고 있습니다.
지난달 포착된 종달이의 모습을 보면 여전히 주둥이에 낚싯바늘이 걸려 있고, 꼬리에 걸린 긴 줄에 해조류가 달라붙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11월엔 폐어구에 걸린 남방큰돌고래 성체인 '행운이'도 추가로 발견됐습니다. 행운이를 촬영한 오승목 감독은 "다행히 정상적으로 먹이 활동은 하고 있지만, 폐어구가 수중 암반이나 그물 등에 걸릴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라고 우려했습니다.

돌고래를 보기 위해 제주를 찾은 관광객들도 우려의 목소리를 나타냅니다. 아이와 함께 대정읍 해안을 찾은 관광객 조분경 씨는 "돌고래들이 그물에 걸리면 매우 아플 것 같다"며 "아이들에게도 교육적으로도 좋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조 씨는 갯바위에는 어지럽게 널브러진 폐어구를 보며 "빨리 치우거나, 아니면 쓰신 분들이 직접 치워가면 좋겠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유엔환경계획 자료에 따르면, 폐어구와 해양쓰레기 등으로 전세계에서 해마다 10만 마리 이상의 해양 동물과 100만 마리 이상의 야생 조류가 다치거나 폐사하고 있습니다. 청정 해안을 자랑하는 제주에서도 비슷한 피해가 잇따르고 있지만, 정확한 실태조사나 연구는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해상에서 해마다 발생하는 폐어구는 3만 8,000~4만 4,000여 톤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수거량은 절반 안팎에 불과합니다. 지금도 바닷속 어딘가에 많은 양의 폐어구가 쌓이고 있다는 뜻입니다. 정부는 이로 인해 유령어업이 발생하고, 연간 4천억 원 상당의 경제적인 피해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 해양수산부 폐어구 예방 대책 국회 논의 중
해양수산부는 지난해 9월 폐어구 예방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유실률이 높은 자망과 통발, 안강망 어선의 어구 사용량을 비롯해, 폐어구의 반납과 처리 장소까지 세세하게 기록하는 ① 어구관리기록부 제도를 도입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어구를 잃어버렸을 때 신고를 의무화하는 ② 유실어구 신고제도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실제 어업인이 어떤 어구를 얼마나 사용하고 어떻게 버려지는지 세세하게 기록하고, 해상에 불법 투기하거나 육상에 무단 방치되는 것을 막기 위한 특단의 조치입니다. ③ 불법 어구를 즉시 철거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현재 해당 제도들을 시행하기 위한 수산업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습니다.
해양수산부에서 폐어구 제도를 총괄하고 있는 강동양 어구순환정책과장은 "지난달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법안소위에서 관련 제도들이 통과됐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앞으로 상임위 전체 회의와 법사위, 본회의까지 특별한 상황이 없는 한 이번 임시국회를 통해 법안이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습니다.
인간이 버린 폐어구는 지금도 '바닷속 흉기'로 변해 수많은 생명을 무참히 앗아가고 있습니다.
촬영기자 고아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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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준영 기자 mj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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